902화. 효월각 각주
우유도의 말에 옥창이 한숨을 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이 일은 자네에게 나쁠 것이 하나도 없네. 우리를 돕는 것이기도 하지만, 자네를 위해 조국의 위협을 해결하는 것이기도 하지. 다들 서로 이득이 되는 상황이지. 그런데 어째서 거절하는 것인가? 설마 뭘 좀 더 얻으려고 흥정하는 것인가? 좋네, 그렇다면 어디 원하는 조건을 이야기해 보게.”
“제가 그렇게 혐오스러울 정도로 탐욕스러운 사람 같습니까? 물론, 원하는 것은 많지요. 하지만 작은 것들은 조건으로 달 필요도 없고, 정말 제가 원하는 것은 효월각이 줄 수 없습니다. 결국, 승낙하고 말고는 제 마음에 달린 것이지요!”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가 지금 우리 효월각 눈앞에 나타났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다시 올지 알 수 없지. 효월각은 너무 오래 기다렸어. 수많은 세대의 사람들이 오늘을 기다리지 못하고 죽어갔지. 오랜 시간을 기다린 끝에 오늘 드디어 그날이 온 것이야. 이를 위해서 우리 효월각은 어떤 대가도 치를 수 있어! 이번에 만약 우리 효월각의 앞길을 막는 사람이 있다면, 그자는 즉시 효월각의 원수가 될 것이네. 동생은 정말 효월각의 희망을 끊을 참인가? 동생은 효월각의 전면적인 보복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 말을 듣고 우유도의 마음이 무거워졌고, 얼굴도 서늘해졌다.
“옥창 선생님은 지금 저를 위협하시는 겁니까?”
“그게 아니네! 자네를 돕기 위해서 효월각의 적지 않은 형제들이 죽었네, 물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지급해야 하는 대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인 것이지. 그게 다 자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였다네.
자네의 지지를 얻기 원한 것은, 바로 이 날을 위해서였고! 그러니 우리는 자네를 위해 앞으로도 얼마든지 대가를 치를 용의가 있네, 하지만 그 결과가 우리를 희롱하는 것이라면,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야! 이 세상에 공짜는 없네. 오늘 내가 왔으니, 자네는 선택해야 하네!”
우유도는 검병 위에 올린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지금 선생님을 사로잡기는 너무나 쉽습니다. 이럴 때 저를 위협하시고도 괜찮겠습니까?”
옥창은 제압된 자신의 몸을 툭툭 치며 말했다.
“이런 대우를 받아들인 이상, 살아서 돌아갈 생각을 버렸네. 날 죽이고 효월각과 전쟁을 치르든지, 아니면 내 제안을 승낙해야 할 것이네. 세 번째 길은 없어. 긴 세월 동안 쌓아온 효월각의 실력이 바로 자네 눈앞에 있네!”
우유도가 눈살을 찌푸렸다.
“적성성의 요월객잔, 빙설각의 채홍객잔 같은 곳에 숨어든다면, 효월각이 저를 어찌하겠습니까?”
“어이없군!”
옥창이 반문했다.
“그곳이 도피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곳에 머문다 해도, 얼마 동안 숨을 수 있겠는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놓은 남주를 포기하려는가?”
도망친다는 것은 그저 해본 말일 뿐이었다. 요월객잔 같은 곳은 사람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해주는 곳이 아니었다. 이를 막는 특별한 규칙 또한 있었다.
물론, 돈이 있다면 피난처로 사용할 수도 있었다. 다만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황제라 해도 쉽지 않을 게 분명했다.
짧게 거주할 때는 크게 비싸지 않았다. 하루에 금 열 냥의 숙박비는 적지 않은 수행자가 충분히 지급할 수 있는 금액이다. 하지만 장기 숙박을 하게 되면 첫 번째 달에는 하루에 금 열 냥을 받았지만, 그다음 달에는 하루에 금 백 냥을 지급해야 했다. 매달마다 금액이 천정부지로 솟아올랐으니,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이라 해도 결국에는 돈이 모자랄 수밖에 없었다.
이게 바로 대가였다. 구대지존의 세력으로 목숨을 부지할 수는 있었으나, 그 대가가 싸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막다른 길에 몰린 사람들은 그곳으로 향했고, 하루하루를 연명하곤 했다.
우유도가 화제를 돌렸다.
“만약 내가 표묘각의 사람이라 해도, 효월각이 그처럼 당당할 수 있습니까?”
“무슨….”
옥창은 말문이 막혔다. 한참을 침묵하더니, 굳은 안색으로 물었다.
“자네, 표묘각 사람인가? 아니, 말도 안 돼!”
“뭘 그리 화들짝 놀라십니까? 제가 표묘각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효월각이 무소불위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말 강하게 나온다면, 효월각이 필사적이 되는 만큼 저도 필사적이 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효월각이 반드시 나를 어찌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제 도움이 필요하면 저를 위협하지 말고, 성의를 보이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무슨 성의를 원하는가?”
“다시 묻겠습니다. 효월각의 각주가 누구입니까?”
“일단 일이 성공하게 되면, 각주가 앞에 나와 국가의 성립을 공표하게 될 것이네. 그러니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네.”
그 말은 일이 성공하기 전에는 알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유도는 여전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이처럼 큰일을 얼렁뚱땅 돕지 않을 겁니다. 만약 그렇게 나를 속여 넘기려 한다면…. 좋습니다. 어디 효월각이 원하는 대로 한번 해보시지요. 제가 끝까지 어울려 드리겠습니다. 위협해도 소용없을 겁니다.”
“그 조건뿐인가? 누군지 알려주면 승낙할 것인가?”
“효월각의 조건은 연군이 전쟁을 지속한다는 것인데, 이는 더 많은 사람이 죽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더 많은 군비가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죽은 병사들의 친족들에게 위로금을 지급해야 하며, 앞으로 장기전을 대비해 더 많은 군량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러한 비용을 누가 내야 하겠습니까?”
“효월각을 도와 반란을 일으키면, 그래서 나라를 세우고 나면, 자네가 얻는 이익은 훨씬 더 클 것이네. 그렇게 되면 연군이 전쟁을 지속함으로써 소모하게 된 대량의 군비도 모두 메꿀 수 있을 거라네! 심지어 그 이득은 소모된 것과 비교할 수조차 없을 것이라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군.”
“전 미래의 약속을 원하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 얻을 수 있는 이득을 말하는 것입니다. 막말로 미래에 효월각이 독립 국가를 세우고 나서, 저를 모른 척하면 어찌합니까?”
“그게 무슨….”
“한 나라가 세워졌으니 저와는 비교할 수 없는 힘을 갖게 되겠지요. 그때 가서 모든 것을 없었던 일로 하면, 전 그냥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 다물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어차피 제가 입을 열어도 당신들이 무시해버리면 그만일 테니까요. 그러니 미래 일은 그만 이야기하시고, 현재를 이야기하시지요. 제게 지금 무엇을 주실 수 있습니까?”
“…….”
한참의 침묵이 지난 후, 옥창이 입을 열었다.
“무엇을 원하는가?”
“많지 않습니다. 각주가 누군지 알기 원합니다. 그리고….”
우유도는 한쪽 손을 활짝 펴고는 말했다.
“딱 금 오천만 냥만 주십시오!”
옥창의 말투가 단호하고 무거워졌다.
“너무 많네! 반란을 일으키면, 효월각도 돈 들어갈 곳이 많아!”
“좋습니다. 지금까지의 정을 생각해서, 구질구질하게 굴지 않고, 통쾌하게 절반만 받겠습니다. 금 삼천만 냥!”
“오천만의 절반이 어찌 삼천만 냥인가? 그렇게 따지면 이천만 냥도 되지 않는가?”
“알겠습니다. 그럼 그냥 이천만 냥으로 하지요! 이제 말해주십시오. 각주가 누구입니까?”
옥창이 한숨을 내쉬더니, 결국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영패!”
“…….”
한참 동안 말문이 막혀있던 우유도가 물었다.
“무슨 뜻입니까?”
옥창이 한 자, 한 자 끊어서 말했다.
“하영패가 바로 효월각의 각주네!”
우유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농담이시죠? 그 공부밖에 모르는 머저리가 효월각을 지배하는 각주란 말입니까?”
“머저리라는 말은 좀 심하군. 아무튼, 그의 할아버지가 그랬고, 그 아버지가 그랬지. 곧 결과를 알게 될 것이니, 자네를 속일 이유가 있겠는가.”
이번에는 우유도의 정신이 살짝 멍해졌다. 지금까지 효월각의 각주가 누구일지 계속해서 고민했었다. 그런데 각주가 자신의 제자였다니! 효월각의 각주가 최근까지 초려산장에 있었다니!
정말로 멀리 있다고 생각하면 하늘 저편에 있고, 가까운 곳에 있다고 생각하면 눈앞에 있는 꼴이었다.
참으로 복잡한 감정을 일으키는 일이었지만, 또 뭔가 깨닫는 바가 있었다. 일부 효월각이 그들 모자를 중시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옥창 선생의 조카라는 이름은 진정한 신분을 숨기기 위한 것일 터.
“장홍의 신분은요? 실권자가 그녀입니까?”
“별다른 신분은 없네, 그저 각주의 모친일 뿐이지. 효월각의 어떤 일에도 참여하고 있지 않네.”
“그 말은, 효월각을 통제하고 있는 실권자는 결국 옥창 선생님이라는 말씀이시군요.”
“그중에 한 명이지. 각 문파 장로와 같은 입장이라 할 수 있네. 그러니 나를 붙잡아도 효월각을 어쩌지는 못할 것이야.”
“하하하, 효월각의 각주가 제 학생이라니요. 일단 이번 일이 성공해서, 하영패가 수면 위로 나타난다면, 저와 효월각의 관계는 정말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겠군요.”
“애초 누가 굳이 그를 제자로 받겠다고 고집을 부렸는가? 자네가 그렇게 수작을 부리며 난리를 치는데 내가 어찌 막겠는가! 그리고, 어차피 그 걱정은 쓸데없는 것이네. 효월각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겠는가?”
해야 할 말은 모두 했고,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도 해버린 후에야 옥창은 모든 협상을 완료하고 떠나갈 수 있었다.
다만 지금 가져온 돈이 얼마 없었으니, 다음날 사람을 보내기로 했다.
옥창이 가고, 관방의가 빠르게 다가왔다. 우유도가 돌 위에 앉아 복잡한 얼굴을 한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하영패가 효월각의 각주라면 믿을 수 있겠어?”
우유도가 한숨을 내쉬었다.
“헉!”
관방의가 깜짝 놀랐다.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효월각이 오랫동안 계략을….”
관방의가 물어보기도 전에, 우유도는 옥창에게 들은 일을 모두 알려주었다.
관방의는 우유도의 이야기를 듣고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효월각의 손에 죽어간 흑모란이 생각나 조심스럽게 물었다.
“승낙했어?”
“승낙하지 않을 수도 없지! 효월각의 도움을 적지 않게 받았으니,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 승낙하지 않았다면 결국 이자까지 얹어서 자기들의 희생을 회수하려 했겠지. 이자는 내 목이었을 테고.”
우유도가 검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서서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냉소 지었다.
“다만 이제 효월각이 어둠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으니, 오히려 효월각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는 더 쉬워질 거야. 그물은 어둠 속에 숨어있어야 정말 무서운 법이니까. 수면 위로 떠오르면 더 쉬워지지!”
다음날, 관방의의 기분이 엄청나게 좋아졌다. 금 이천만 냥의 거금이 그녀의 주머니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 * *
표묘각,
칠 국이 자리한 대륙의 가장 높은 산 위에 있었으며, 이곳은 천도봉(天都峰)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곧 열릴 천도비경은 표묘각과 멀지 않았다.
천도봉은 대부분이 찬바람이 휘몰아치는 한지(寒地)였지만, 산 정상에 있는 협곡 내부만이 신기하게도 사계절 내내 봄과 같이 따뜻했다. 그 안에는 뜨거운 온천이 있었고, 각종 기화이초(奇花異草)가 자라나고 있었으며, 여러 날짐승과 짐승들이 자유롭게 거니는 곳이었다.
한편으로 그곳에는 전각과 전각이 끊임없이 늘어서 있었고, 건물들의 기세가 매우 드높았다.
밤이 돼도 이곳의 풍경은 다른 곳의 풍경과 매우 달랐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답게, 밤이 되면 별들이 하늘을 가득 메운 듯했으며,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았다. 풀밭에 누워 올려다보면 마치 은하 한가운데 있는 듯했다.
표묘각이 있는 곳의 중심에는 근천궁(近天宮)이 있었다. 그리고 이곳이 바로 천하의 강호들이 모여 의논을 하는 곳이었다.
그 외에도 표묘각에는 한자리를 차지한 문파들이 있었는데, 이 문파들은 모두 천하에서 가장 정상에 있는 수행 문파라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