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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903화 (2/1,000)

903화. 추천 명단

야심한 저녁,

별들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는 가운데, 근천궁의 내부는 여전히 등불이 환했다. 근천궁의 천장과 들보에 박혀 있는 크고 작은 야명주들이 밤새 밝은 빛을 내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근천궁 내부에서는 늦은 밤까지 계속해서 말이 오가고 있었다. 내부에는 서른 개의 탁자가 좌우로 늘어서 있었고, 서른 명의 사람들이 탁자 옆에 놓인 의자에 단정히 앉아 있었다. 이들은 바로 여러 각지 세력의 수장들이었다. 궁임책 등도 그사이에 앉아 있었다. 오늘 모인 사람들은 모인 이유에 대해서 아무도 알지 못했다.

모두 침묵하고 있는 가운데, 근천궁의 문이 열리더니 몇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 선두에는 다소 마른 남자가 서 있었는데, 얼굴이 쓸쓸해서, 모든 것에 초연한 느낌을 주었다.

그자가 들어오자, 대전에 앉아 있던 서른 명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가 느긋하게 눈앞을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이들의 공경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당연히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남자는 구대지존 중 한 명인 나추의 제자이자, 사위이며, 적성성 성주 사환려의 부친인 사여래(莎如來)였다.

표묘각은 구대지존이 연합해서 천하의 일을 처리하는 곳으로, 구대지존이 돌아가면서 관리하는 곳이었다. 이번 기수의 수장이 바로 사여래였다.

수행원은 단상 아래 좌우에 섰고, 상석 위로 올라간 사여래가 뒤돌아 사람들을 보더니 담담히 말했다.

“다들 오셨으면, 자리에 앉으시오.”

사람들이 자리에 앉자, 그도 탁자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다시 사람들을 빤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을 부른 것은 별다른 일이 아니라, 천도비경에 관해 전해드릴 것이 있어서요. 알다시피 천도비경이 곧 열릴 것이오. 다들 관례에 따라서 알아서 명단을 제출해줬으니, 고마울 따름이오. 올려준 명단은 제가 잘 확인했소. 그런데 조금 그 부분에 대해 말할 것이 있소. 사실 그 명단이 조금 이상한 것 같았소. 오늘 여러분들을 부른 것은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요. 내게 설명을 해주셔야 할 것이오.”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의아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다들 아무 말이 없으니, 바다 밖에 있는 동해요왕(東海妖王)이 입을 열었다.

“사 선생님, 저희는 관례에 따라서 일을 처리했습니다. 혹시 뭐가 잘못되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사여래가 그를 힐끗 보았다.

“각 해역에서 올려보낸 명단은 아무 문제 없었소.”

“그렇군요.”

동해요왕은 안심한 듯 표정이 풀어졌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보며 비꼬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인제 보니, 당신들 대륙의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었구먼. 그럼 어디 사 선생님께 잘 설명해 보시오.”

강 건너 불구경하는 태도였고, 동시에 도대체 무슨 일인지 호기심이 일기도 했다.

대륙의 수행자들에게 지적이 들어오자, 천행종의 장문인 두운상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사 선생님, 각파에서 추천한 명단에 문제가 있다고 하셨는데,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혹시 어떤 문파에서 제출한 명단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명확히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사여래는 인간미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담담하게 말했다.

“딱히 어떤 문파라고 꼭 집어 말할 순 없소. 문제는 각 국가의 삼대 문파가 제출한 명단 전부라 할 수 있소. 이번에 각국 삼대 문파가 추천한 명단에 있는 수행자들의 자질이 과거에 비해 크게 떨어졌소. 천도비경은 오십 년에 한 번 열리는 곳이오.

매번 각국에서는 정예 수행자들을 보내 참여하게 했었지. 이번 천도비경은 마침 내가 표묘각을 책임질 때 열리게 되었소. 예전에는 관례에 따라서 잘 진행되었는데, 어째 내 차례가 되니 다들 뭔가 다른 마음을 품은 것 같소. 다들 지금 나를 곤란하게 하려 하는 것이오?”

그 말을 듣고 사람들은 머리가 맑아졌다. 대충 어찌 된 일인지 깨달은 것이다.

두운상도 생각에 잠겼다. 동해요왕이 ‘흐흐’ 웃으며 좌우에 있는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사람들이 아무 말 없는 것을 보고 사여래는 송국 쪽에 있는 장문인들을 바라보았다.

“송국에서 올린 명단의 수행자 자질이 가장 떨어졌소. 설명하지 않을 참이오?”

능소각의 장문인 관극태(關極泰), 혈신전의 장문인 문구번(門瞿翻), 열천궁의 장문인 오승우(吳承雨)는 서로 눈치를 보았다.

한쪽에 있는 만수문의 장문인 서해당이 고개를 돌려 그들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셋은 눈빛으로 뜻을 교환하더니, 결국 능소각의 장문인 관극태가 대표해서 입을 열었다.

“오해입니다. 절대 사 선생님께 폐를 끼칠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지금 송국의 처지가 너무나 어렵습니다. 전쟁이 한창인 가운데, 인력이 부족합니다. 만약 정예 제자들을 파견하게 된다면, 저희 삼대 문파는 이대로 멸망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사여래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만약 송국이 멸망한다면, 송국 삼대 문파는 표묘각에 들어올 자격도 없을 것이오. 그러니 천도비경이 열리든 말든 신경 쓸 것도 없겠지. 그 이유는 확실히 일리가 있소. 나조차도 그대들을 질책할 이유를 찾을 수 없군.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소. 한국도 곧 멸망할 위기에 있소? 지청려(池淸麗), 어떻게 생각하시오?”

지청려는 한국 천녀교의 장문인이었다. 눈처럼 하얀 백의를 입고 단정하게 앉아 있는 미부인이었다.

지청려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이걸 어찌 답한단 말인가. 지금 한국은 마침 송국을 괴롭히고 있었다. 송국을 멸망시키려 하는 것이다. 당연히 사여래가 말한 그런 이유가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지금 송국과 전쟁을 벌이고 있으므로, 정예 제자들은 전장에 참여해야 했다. 만약 전장에 있는 정예제자들을 빼고 머저리들만 남겨놓아서, 송국의 정예 수행자들을 막아낼 수 없다면, 전쟁이 불리하게 돌아갈 것이 분명했다.

난처한 것은 난처한 것이고, 이미 사여래에게 지명까지 당한 상황에서 뭐라도 대답을 해야 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지청려가 대답했다.

“선생님, 저희도 어쩔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한국과 송국 수행자들이 교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송국에 있는 수행자는 송국의 수행자만이 아닙니다. 제국과 위국의 수행자들도 그곳에 달려와 난리를 피우고 있습니다. 삼국 수행자가 연합해서 우리 한국을 상대하니, 만약 한국의 정예를 천도비경에 보내면 저희 또한 마찬가지로 멸망을 피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 이유를 듣고, 백천곡의 장문인 음여술(陰如術)과 무상궁의 장문인 허영광(虛迎廣)이 감탄했다는 의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를 듣던 능소각의 장문인 관극태는 분노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지청려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저주받을 계집년 같으니라고! 그게 무슨 개똥 같은 이유냐? 네놈들 한국이 우리 송국을 침략했지, 송국이 한국을 침략했느냐? 한국이 철수하겠다고 하면 양국의 전쟁이 멈출 것인데, 어찌 멸망할까? 순 억지다!”

계집년? 지청려도 마찬가지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소리쳤다.

“그 더러운 입 닥치시지!”

“당신들을 불러온 것은, 여기서 당신들이 다투는 것을 보려는 것이 아니오!”

사여래가 얼굴을 찌푸리고는 법력이 깃든 말로 호통쳤다. 곧 천둥 같은 목소리가 대전 내에 메아리쳤다.

관극태와 지청려는 상석에 있는 사여래를 바라보았다. 비록 분노가 가라앉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천천히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사여래가 다시 담담한 어투로 물었다.

“진국은? 각국의 전쟁이 진국과는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데, 진국에서 올린 명단은 어째서 이런 것이오?”

진국 삼대 문파는 기운종이 홀로 독존하고 있었고, 나머지 두 곳은 장식에 불과했다. 그러니 대답은 당연히 기운종에서 했다.

다만 기운종의 장문인 태숙비화(太叔飛華)도 다소 난처한 상황이었다. 비록 각국 상황이 지금 이 지경까지 왔지만, 진국의 야심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그 야심을 밝혀, 협공을 받을 필요는 없었다. 지금 진국이 계략을 세워 다른 나라를 집어삼킬 준비를 마쳤다고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정예를 남긴 것은 당연히 침략 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준비였다.

태숙비화가 마른기침을 몇 번 하고는 입을 열었다.

“사 선생님, 각국이 전쟁에 개입하니, 우리 진국도 그 전쟁의 불길을 피할 수 없을까 봐 두려운 마음이 있습니다. 언제든지 전쟁에 끌려들어 갈 수 있으니, 자구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말을 하자, 곧 사방에서 경멸의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

“음, 다들 이유가 있군!”

사여래가 코웃음을 치고는 말했다.

“인제 보니 천도비경이 열리는 시기를 잘못 맞춘 것 같군. 다들 전쟁을 치르고 있을 때 마침 천도비경이 열리다니 말이야!”

“…….”

“나는 그대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변명인지, 아니면 진짜 사실인지,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소. 하지만 관례는 관례라 할 수 있지. 비록 명문화되어있지는 않다고 해도, 결국 손해 보는 것은 당신들이오. 아직 성존(聖尊)들께서 언급하지 않았을 때 관례에 따르도록 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치러야 할 대가가 적지 않을 수 있소.”

그의 말에 많은 장문인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다만 이를 본 사여래가 다시 부드럽게 말했다.

“하지만, 천도비경의 일과 여러분의 일이 서로 충돌하게 됐으니, 근천궁 내부에서도 이에 대해 의논을 해보았소. 이곳의 관례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말이 통하지 않는 곳도 아니니 말이오. 그대들에게 너무 우리의 관례를 강요하는 것도 사실은 관례를 어기는 것이라 할 수 있지.”

“그러니 이렇게 합시다. 이번에 표묘각은 내가 관리하니, 내가 판결을 내리겠소! 관례를 어기지 않으면서도, 그대들에게 강요하지 않을 방법이지. 오늘부터, 각국은 모든 전쟁을 멈추시오. 지금 이 상황에서 아무것도 바꾸지 않고 전쟁을 멈추는 것이지! 즉, 휴전하라는 것이오. 다들 휴전한 이후, 먼저 정력을 집중해서 천도비경의 일을 잘 처리하도록 하시오.”

“그리고 천도비경의 일이 끝난 후에, 싸우고 싶은 대로 마음껏 싸우시오. 두 가지 일은 전혀 별개의 일로 처리할 것이오! 다들 돌아가서, 천도비경에 들어갈 명단을 다시 정리하여 보고하도록 하시오. 다시 한 번 이런 명단을 보내온다면, 다음에 나를 만날 때는 지금처럼 좋은 얼굴이 아닐 것이오!”

휴전? 대전이 즉시 소란스러워지며 의견이 분분히 나돌았다. 하지만 사여래의 말에 반박할 여지는 없었다. 반박? 이는 구대지존에게 반박한다는 것인데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사여래는 지금 이들과 의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판결을 내리고 통보를 한 것이었다. 천하 정세와 연관이 된 일이니, 사여래가 직접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것은 구대지존도 동의했다는 이야기였다. 당연히 여지가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여기서 의견을 취합했을 것이다.

지금 전쟁을 벌이고 있는 각 국가의 장문인들은 빠르게 속으로 이번 전쟁의 휴전이 자신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계산하기 시작했다.

“또 한 가지!”

이때, 사여래의 목소리가 다소 커졌다. 대전 안의 잡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번 비경이 열린 시기가 확실히 좋은 시기는 아니지. 마침 각국이 전쟁을 벌이는 시기에 열려, 정예 수행자들의 사상자들이 적지 않소. 하지만 이번 천도비경은 천하 수행자들의 수행자원과 밀접한 연관이 있소. 이에 성존께서 각국의 수행자들을 추가 파견하라는 결정을 내리셨소.”

“아!”

대전이 다시금 소란스러워졌다.

천도비경에 들어가는 것은 원래부터 피비린내 나는 손실이라 할 수 있었다. 비경이 열릴 때마다 각 문파는 심각한 손실을 보았다. 인원을 추가 파견하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이건 각 문파의 손실이 더욱 커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다들 뻔히 아는 이야기였지만, 이를 노골적으로 밝히는 사람은 없었다. 구대지존이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은, 원래부터 천하 수행자들의 힘을 소모해, 자신들의 통치 지위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다만 갑자기 더 가혹하게 대하니 사람들은 내심 불만이 가득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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