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3화. 거짓말
표묘각이 천상의 권위를 사용해 천하의 전쟁을 중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건 상상을 벗어나는 사건이었다. 수많은 사람의 계략이 중간에 중단되었으며, 수많은 계획이 동결되었다. 최후의 결과가 어떤 식으로 변할지, 그것이 희(喜)일지 비(悲)일지, 아무도 몰랐다.
유일하게 알 수 있는 것은 표묘각에서 관련자들의 감정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그저 표묘각이 지정한 일을 순조롭게 집행하는 것에만 신경 썼다. 모든 것은 표묘각의 의도가 선결 조건이었다. 그 누구도 반항할 권리가 없었으며, 이것이 바로 천하의 법칙이었다!
천하의 모든 것이 바로 이 법칙 아래 움직였고, 어기는 자는 죽음을 맞이했다!
구름 위, 누각 안,
아름다운 시녀가 한쪽에서 금을 타고 있었다. 금음은 아주 우아했고, 사여래는 한쪽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밖에 흘러가는 구름을 감상하고 있었다.
“선생님.”
백옥루가 도착했다. 그리고 다가와 여러 번 접힌 종이를 건넸다.
“각국에서 다시 보내온 명단이 모두 도착했습니다.”
그는 원래 적성성 요월객잔의 지배인이었다. 하지만 이번 천도비경에 선수들이 참가하는 것을 고려해, 적성성에서 문파의 수행자들이든 산수든 가리지 않고 많은 인연을 맺고 있는 백옥루를 데려왔다. 이쪽 상황에 대해서 비교적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여래가 이번 표묘각의 책임자였기 때문에 딸 곁에 있는 사람을 임시로 불러올 수 있었다.
사여래가 술잔을 내려놓고는 명단을 확인했다. 그리고 대충 몇 번 펼쳐보더니 물었다.
“이번에는 별문제 없나?”
“명단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심사해 보았습니다. 이번엔 확실히 엄선한 듯했고, 별문제 없습니다. 단지…….”
갑자기 말을 얼버무렸다. 사여래가 그런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설마 받드는 척하면서 따르지 않는 자가 있는 것인가?”
“그런 뜻이 아닙니다. 단지 이 우유도를 천도비경에 들여보내는 것이 괜찮은지 모르겠습니다.”
사여래의 두 눈이 번쩍였다.
“네 성주가 우유도를 대신해서 나서달라고 하더냐?”
백옥루가 몸을 숙이고는 말했다.
“아가씨와 아무 상관 없는 일입니다. 우유도를 대변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아래에서 일부 상황을 포착했습니다. 최근, 각 국가에서 우유도를 주의 깊게 눈여겨보고 있었습니다. 우유도가 제법 큰 풍파를 일으켰기에, 각 국가는 우유도를 지키려는 자와 죽이려는 자로 나뉘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심지어 죽이려는 자들은 서로 연계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각국의 전쟁이 동결되었고, 우유도가 천도비경에 불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천하의 세력이 천도비경 안에 들어가 우유도의 생사를 놓고 다투게 될 것입니다. 우유도의 생사가 동결된 전쟁의 승패를 크게 좌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국가의 이익이 우유도의 생사와 긴밀히 연결돼 있으니, 천도비경에서 이들은 우유도의 생사를 놓고 치열하게 다툴 것입니다. 즉, 우유도가 천도비경에 들어간다는 것은, 어느 정도 각국의 전쟁이 천도비경 안까지 연장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말을 마치고 조심스럽게 사여래의 반응을 살폈다. 사여래는 잠시 침묵하더니 담담히 말했다.
“그게 중요한가? 중요하지 않지!”
사여래가 중요하지 않다고 하면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알겠습니다!”
백옥루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 *
송국 경성,
감옥의 문이 철컥하고 열렸다. 입구에 서 있는 나조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다만 내심은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자신을 여기까지 끌고 오다니.
전쟁에서 손해를 너무 많이 보는 바람에 너무 많은 사람의 이익에 영향을 미치고 말았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조정은 서로 싸우는 것을 그만두고, 같이 외부의 적을 상대하고자 했다. 그 때문에 나조를 그냥 내버려 둔 것이었다. 하지만 전쟁이 중지되자, 조정의 다툼이 철저하게 폭발하기 시작했다. 예상한 결과였다. 그리고 나조는 그 다툼의 핵심이 되었다.
이번 책임은 그냥 쉽게 지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 일어난 적 없다는 듯이 넘기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리고 우선은 공격의 핵심이 황제가 될 수 없었다. 그리고 연국을 공격하자고 주장했던 삼대 문파의 책임이 될 수도 없었다. 책임을 지기에는 나조가 제일 적당했다.
이런 시기에는 황제와 삼대 문파 모두 나조를 위해 나서주기 어려웠다.
조정에서 협상하고, 사람을 보내 병력의 지휘권을 인계받았다. 나조는 붙잡혀 경성으로 압송되었고, 전쟁에서 패배한 것에 대해 심문을 하고 책임을 확인했다.
심문이 끝난 후, 나조는 급작스레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이는 나조조차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아직 책임이 확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를 그대로 감옥에 가둬버린 것이다.
나조는 이제야 부인 풍관아의 실종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었다. 과거였다면, 풍관아가 바로 능소각을 찾아가서 난리를 피웠을 것이다. 풍관아의 신분은 능소각에서도 참으로 골치 아픈 일이었다. 그러니 아직 책임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나조를 감옥에 가둬둘 수 없었다.
다행인 점은 그를 범죄자들이 쓰는 형틀로 묶어놓지 않았다는 것뿐이었다.
“대도독, 저희를 곤란하게 하지 마시고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한 관리가 손을 뻗었다. 나조는 굳은 얼굴로 한 걸음 한 걸음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통해 안쪽으로 들어가, 음습한 복도 안에 있는 독방 밖에서 멈춰 섰다. 문이 열리자 병사들은 나조를 집어넣었고 잠시 후, 감옥의 문이 다시 잠겼다.
‘찍찍’ 소리를 내며 쥐가 도망쳤다. 곧이어 옥졸들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졌고, 주위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감옥 밖에는 벽에 달려있는 어두컴컴하게 주위를 비추는 유등만이 있을 뿐이었고, 그 외에 감옥 내부에는 어떠한 빛도 들어오지 않았다. 유등 아래 나조의 안색이 유독 어두워 보였다. 그렇게 안에 서서 움직이지 않고 있자, 곧 주위에서 곰팡내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과거 위풍당당하던 시기를 생각해보면, 어찌 오늘 같은 날이 있을 줄 알았을까.
어제는 천군만마를 지휘하는 대도독이었는데, 오늘은 감옥 속의 죄인이 되었구나.
* * *
접몽환계, 기이하고 아름다웠다.
나무 아래 개울가에서 은아는 우유도의 요구에 따라서 입고 있던 만수문 제자의 옷을 벗었다. 그리고 얼굴에 쓰고 있던 변장도 찢어 버렸다. 곧 반짝이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유도와 원강은 한쪽에서 그런 그녀를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지금 만수문 제자의 옷을 입고 있었으며, 얼굴에는 가면을 써서 변장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당연히 만수문 장로 조경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 사람이 역용한 후, 조경이 이들을 만수문의 제자라고 속이고 수행원으로 데리고 움직였다. 조경은 접몽환계를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바로 우유도 일행을 데리고 접몽환계로 들어왔고, 아주 순조로웠다.
“도도, 맛있는 게 어디 있어?”
반짝이는 두 눈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우유도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우유도는 한 곳을 가리키며 웃었다.
“이쪽으로 계속 가면 큰 장원을 발견할 수 있을 거야. 거기 맛있는 게 아주 많아.”
은아가 웃었다. 아주 기분 좋게 웃으며 천진난만하게 물었다.
“정말이야?”
“여기서 기다릴 테니까 먹을 걸 찾으면 우리 것도 가져오는 거 잊지 마.”
은아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먹을 걸 다른 사람과 나눠 먹는 게 싫었다. 하지만 그런 요구를 한 사람이 우유도였으니, 그것을 봐서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좋아!”
그리고 그대로 몸을 돌려 아주 기쁜 모습으로 달려나갔다.
두 남자는 사라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았다. 원강이 복잡한 얼굴로 우유도를 바라보았다.
“도야, 그냥 이대로 보내는 겁니까?”
그래도 오랜 시간을 같이 보냈다. 이 요괴왕은 사실 정말 단순했고, 나쁜 마음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그런 그녀를 속여서 이곳에 내다 버리니, 원강은 마음이 아주 불편했다.
원강은 원래 그랬고, 우유도 같이 냉정하지 못했다. 우유도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이처럼 쉽게 속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면, 애초에 데리고 나가지도 않았을 거야.”
“도야, 쉽게 속일 수 있는 게 아니라, 도야를 믿는 거예요. 은아는 다른 사람을 쉽게 믿지 않아요. 도야만 믿고 의지하죠.”
“누구나 키울 수 있는 아이가 아니지. 우리는 아직 그녀를 곁에 둘 자격이 없어. 아마도 상찬 정도는 되어야 그녀를 기를 수 있겠지. 나도 당시 상찬 부부가 어째서 은아를 이곳에 남겨 놓았는지 모르겠어. 어쩌면 은아는 원래부터 이곳에 속한 것이었을 수도…. 됐다. 가자!”
원강은 침묵하고 우유도와 같이 몸을 돌렸다.
이곳은 입구와 매우 멀었다. 원강과 같이 입구 부근에 갔을 때, 바쁘게 움직이는 만수문의 제자들을 볼 수 있었다.
지금 만수문의 제자들은 접몽환계에서 대대적으로 구광초를 심어 수행자들의 영역을 늘리고, 나찰들의 영역을 줄이고 있었다.
조경은 지금까지 약속된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도대체 우유도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몰라 조마조마한 마음이었다.
두 사람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조경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어째 두 명인가, 한 명 더 있지 않았나?”
우유도가 담담히 말했다.
“협상이 잘 이뤄지지 않아서 다툼이 있었어. 그래서 살인멸구했지.”
조경은 어이가 없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여긴 오래 있을 곳이 못 돼, 자 가자고.”
말을 마치고 두 사람을 데리고 그 자리를 떠나갔다.
* * *
은아는 한참을 움직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우유도가 말한 큰 장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은아의 두 눈이 반짝였다. 한쪽에 아주 아름다운 야경이 펼쳐져 있었는데, 그 중심에 궁전이 있었다. 은아가 손가락을 내밀어 가리켰다.
지금까지 은아를 붙잡고 움직이던 혈나찰은 은아의 손짓을 보자마자, 즉시 그 방향으로 날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혈나찰은 그 거대한 궁전의 중앙에 은아를 내려주었다.
바닥에 내려선 은아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은아는 이곳을 아는 것 같았다. 은아는 무언가를 기억해 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곧 ‘맛있는’이라는 생각에 사라졌다. 은아는 치마를 들고 뛰었다. 궁전에 있는 수많은 방을 옮겨 다니며 먹을 것을 찾았다.
하지만 아무리 오랫동안 찾아도 은아가 원하는 먹을 것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궁전 안을 돌아다니던 은아는 어느 순간, 전각을 발견했다. 은아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전각 내부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원통형의 동 기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동 기둥은 철판으로 여기저기 막혀 있었는데, 이 중심에는 팔각정이 있었다.
은아는 자리에 멈춰 선 채, 한참 동안 팔각정을 응시했다. 이상하게, 그녀의 두 눈에 눈물이 고이더니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손을 들어 눈물을 닦아낸 은아는 어째서 눈물을 흘리는지 몰랐다.
잠시 후, 그녀는 몸을 돌려 그곳을 떠났고, 거대한 궁전을 혼자서 둘러보았다. 눈에는 계속해서 눈물이 흘렀고, 입은 계속 중얼거렸다.
“도도, 찾을 수 없어. 도도, 못 찾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