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4화. 영종(靈種)
만 명 분의 물건은 적은 양이 아니었기에, 이를 한 줄로 길게 늘어놓은 탁자 또한 아주 길게 협곡 중앙을 가르고 있었다. 물건을 받고 등록한 사람들은 탁자를 지나쳤고, 천곡 끝에 은은한 안개가 생겨나 배회하는 구역에서 대기했다.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는 기회는 이번이 유일할 듯했다. 그렇기에 우유도는 금단방 윗자리에 있는 몇몇 고수들을 알아두고 싶었다. 다만 우유도는 그들을 모르니, 옆에 있는 연국 수행자들에게 금단방의 고수가 물건을 가지러 오면 자신에게 알려달라고 말했다.
물건을 받고 지나간 후, 우유도는 손을 펼쳐보았다. 손바닥 안에는 참깨 같은 물건이 서른 알 정도 흩어져 있었는데, 맑고 투명하며, 자색으로 빛나는 물건이었다.
이것이 바로 천도비경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물건으로 영종(靈種)이라고 불리는 물품이었다.
천도비경의 내부 환경은 비교적 특수했다. 공기나 물, 토양, 각종 생물 모두, 인체에 큰 영향을 미쳤다. 천도비경의 환경에 노출되면 머리가 이상해지기도 했고, 그곳에 오래 머물게 되면 신체가 기형적으로 바뀌기도 했다. 이 영종은 바로 그런 특수한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물건이었다.
영종은 수행계에서 영원단(靈元丹)을 제련하는 데 들어가는 필수품이었다. 영원단은 그냥 제조하면 각종 부작용이 있었는데, 영종은 그런 부작용들을 없앨 수 있었다. 그러니 영종은 수행계에 없어서는 안 되는 물건이었다.
그리고 이 영종이 천도비경에서 나오는 물건이었다. 그렇기에 천도비경이 발견된 후, 수행자들의 시대가 열린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므로 천도비경에 수행자들이 들어가는 목적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물건을 채집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천도비경이 오십 년에 한 번 열리니, 이 한 번의 채집으로 반드시 수행계에서 오십 년 동안 사용하기 충분할 만큼의 영종을 수집해 와야만 했다.
지금 사람들에게 분배해준 영종의 분량은 같았다. 일 인당 서른 알이었다. 한 알의 영종으로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
그 말은 지금 사람들에게 분배한 용량이, 일 년이라는 기간 중에, 오직 삼십일 만을 보장해 준다는 것이었다. 만약 삼십일 안에 다른 영종을 찾아서 보충하지 않으면, 위험에 처할 수 있었다.
표묘각의 손에 얼마나 더 많은 영종이 있는지 외부인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이 정도의 영종만을 손에 쥐여준 이유는, 비경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목숨 걸고 영종을 찾아다니라고 강요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물론, 표묘각도 공짜로 일을 시키는 것은 아니었다.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떼돈을 벌 기회를 주기도 했다. 가지고나온 영종의 수량에 따라서 표묘각은 순위를 매겼고, 그 순위의 고하에 따라 상을 내렸다.
표묘각은 천하를 오시하는 만큼, 체면을 차릴 줄도 알았다. 그렇기에 높은 순위에 있는 문파들에게는 큰 상을 내렸다. 각 문파가 눈이 시뻘게져서 달려들 만했다. 반면, 말석에 있는 문파들은 헛고생만 할 수도 있었다.
다만, 일이 그렇게 진행되다 보니 가끔 골치 아픈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골치 아픈 문제는 다름 아니라 영종의 크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었다. 영종의 크기가 너무 작다 보니, 설사 일만 알을 몸에 숨겨도 다른 사람이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 생겼다. 마지막까지 가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얼마나 얻었는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얼마 없다고 사실대로 말해도, 그걸 곧이곧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문파에게 자신들의 물건들을 수색하게 할 문파도 없었다.
예를 들어 위국 문파 수행자가 제국 문파의 수행자에게 몸을 수색하게 할 리가 없었다. 그런 치욕적인 일을 승낙할 사람은 없었다. 만약 정말 그렇게 고개를 숙인다면, 나중에 돌아가서도 좋은 미래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한 가지 결과만이 남는다. 빼앗는 것이다!
일단 빼앗기 시작하면, 싸움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부 순진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현실적이지 않은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문파들이 어리석지 않으니, 다 같이 협상을 한다면 순위 싸움을 할 필요 없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잔혹했다. 일단 누군가 이익분쟁과 얽힌 순위를 만들어 냈으니, 누군가는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움직였다.
각국은 말할 것도 없고, 각 문파의 내부 제자들만 보아도, 그들이 선한 사람들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천도비경에 들어가서 자신의 뛰어남을 보여줄 기회라 할 수 있는데, 어찌 침묵하고 가만히 있으려 할까?
천도비경에 들어간 문파 중에, 당당히 빈손으로 나올 수 있는 문파는 아무 곳도 없었다. 표묘각에서 책임을 묻는다면, 즉각 멸절할 문파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러니 최소한 어느 정도의 영종은 가지고 나올 필요가 있었다.
천도비경은 정말로 거대했으니, 영종을 찾으려면 여기저기 흩어져서 찾아야만 했다. 한 문파가 다 같이 몰려다니며 한 방향으로 움직이면, 그건 혼자서 다니는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그렇지만 제자들이 제각각 분산되어 다니다 보면, 열세에 처하는 상황이 나오기 마련이었다.
강자가 약자를 만나게 됐을 때, 그게 바로 더 많은 수확물을 얻을 기회였다. 모든 사람이 다들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는가?
만약 동문 사형제들이 자신보다 더 나은 성과를 거두는 것을 봤을 때, 어떤 사람이 비열한 수단을 쓰지 않는다고 어찌 장담할 수 있는가?
게다가 제각각 먼 곳에 떨어져 있으니, 한 사람이 목숨을 잃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어찌 죽었는지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살인을 시인하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저 천도비경에서 너무 무리하다 죽은 것이라 둘러댈 게 분명했다.
인정하는 사람이 없다 해도, 사람들은 다들 누군가 영종을 빼앗기 시작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결국, 서로서로 믿지 못하게 되는 것은 당연했다.
이 천도비경이라는 곳은, 정말 누군가의 사소한 행동이 방아쇠가 되어 전체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니 한 사람의 살인이, 전체 상황을 뒤엎고 커다란 연쇄반응을 일으킬 수 있었다.
거기에 미꾸라지 같은 진(晉)국이 있었다. 진국은 가난했다. 당연히 표묘각의 포상을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진국뿐만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꼴등을 하고 싶어 할까. 얻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문중 제자들의 목숨도 헛되이 사라지는 것이다.
게다가 꼴등을 하게 되면 문파의 명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니 다른 선택이 없었다. 순위 경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해서, 서로 뺏고 빼앗기는 상황을 피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천도비경에 들어간다는 것은 피비린내 나는 살육전에 뛰어드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게다다 보통 살육이 아니었다. 천도비경에 들어간 제자들은 대부분이 정예였고, 어느 문파도 이들이 쉽게 목숨을 잃도록 두고 볼 리가 없었다. 설사 보여주기식으로라도, 재력을 모아 지원을 해주었다.
그러니 매번 이 시기는, 천행종의 장사가 가장 흥할 때라 할 수 있었다. 대량의 부적을 팔아 치울 수 있었다.
덕분에 천도비경은 온 수행계에서 가장 격렬하고, 가장 잔인한, 오직 수행자들끼리 서로 싸우고 죽이는 장소라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천도비경을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었다.
우유도 또한 오고 싶지 않았다. 이곳에 오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가지고 노는 것이었다. 다만 우유도 또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규칙에 따라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지금 우유도는 손바닥을 들어 그중에 몇 알을 집어 들더니 냄새를 맡아 보았다. 그러자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사람의 가슴 깊이 스며드는 담담한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작다 보니, 잃어버려도 모를 정도였다. 우유도는 영종을 조심스럽게 품에 넣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좌우 절벽 위에 걸려 있는 거대한 족자를 바라보았다.
족자에 그려져 있는 나무는 영종을 채집할 수 있는 나무였는데, 수행계에서는 영수(靈樹)라고 불렀다. 이곳에 영수를 그려 걸어 놓은 것은, 비경에 들어가기 전에 어떻게 생겼는지 한번 보라는 의미였다. 당연히 천도비경에 들어가서 채집을 좀 더 쉽게 하라는 의도였다.
모든 사람이 물건을 받은 후, 은은한 안개 밖에 모여 기다렸다.
대략 한 시진이 흘렀을 때, 조용히 흐르던 안개가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웅’ 하는 아득한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의 심신을 뒤흔드는 소리였다.
소리가 계곡을 천천히 덮었고, 그러자 있는 듯 없는 듯하던 안개가 급격히 짙어지더니 안개 사이에서 백광이 뿜어져 나왔고, 백광은 순간적으로 주위를 아주 밝게 비추었다.
우유도를 포함해 모든 사람이 그 기이한 장면을 빤히 바라보았다.
몇 명의 표묘각 수행자들이 몸을 날려 안개 앞에 서더니, 사람들을 바라보고 각각 영종 한 알을 꺼내 어떻게 사용하는지 보여주었다.
그들은 영종을 그대로 입에 넣어 삼키고는 법력을 이용해 몸에 흡수시켰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들은 마치 자신들이 시범을 보이는 것처럼, 그대로 몸을 돌려 짙은 안개가 있는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들은 들어갈 때 쇠사슬을 끌고 들어갔다.
쇠사슬의 한쪽이 수행자들에 의해 안개 안으로 들어갔고, 다른 한쪽은 여전히 밖에 있는 절벽에 걸려 있었다.
조금 시간이 흘러, 안개 안에서 마치 강한 힘이 쇠사슬을 당기는 듯, 쇠사슬이 팽팽해졌다. 절벽에 걸려 있는 종이 ‘땡땡땡’ 하고 세 번 울렸다.
종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백옥루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 사람들에게 포권을 하더니, 안개 쪽으로 손을 뻗으며 말했다.
“다들 들어가시오!”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았지만, 앞부분에 서 있던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먼저 영종 한 알을 꺼내 복용한 후에 조심스럽게 안개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흐름에 따라 앞으로 나아가던 우유도도 마찬가지로 수많은 사람의 호위 아래 그 안으로 들어갔다. 혹시라도 지금처럼 번잡할 때 누군가 우유도를 기습할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안개에 들어가기 전, 사람들은 안개 뒤가 절벽으로 막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렇게 절벽을 향해 걸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절벽에 부딪힐 것 같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충분한 거리를 움직였음에도, 절벽에 닿지 않았다. 마치 절벽이 사라진 것 같았다.
그렇게 계속 앞으로 걸어가자, 어느 순간 눈앞이 밝아졌다. 갑자기 오래된 숲이 두 눈에 가득 들어왔다. 어디를 둘러 보아도 협곡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이곳이 바로 천도비경인가? 순간적으로 뒤바뀐 풍경을 보면서, 우유도는 돌연 뒤를 돌아보았다. 등 뒤의 안개는 이미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뒤에 펼쳐진 것도 마찬가지로 오랜 세월을 간직한 숲이었다.
허공에서 마치 물결처럼 파동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그 뒤로 사람들이 갑자기 허공에서 튀어나오고 있었다. 아주 신비로웠다.
비록 우유도는 이곳에 처음 오는 것이지만, 이곳에 오기 전에 충분한 공부를 했었다. 그러니 일단 천도비경에 들어오면 다시 돌아가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 년 후, 천곡과 연결된 안개가 다시 이 숲에 나타날 터였다. 그 괴이한 안개가 나타났을 때만, 사람들은 안개를 통해서 천곡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현실 세계 쪽에 있는 천곡 내부에 열린 신비한 안개 통로는 일 년 동안, 천도비경과 천곡을 계속해서 연결해주고 있다고 했다. 즉, 천도비경에 한 번 들어오면 무조건 일 년 후에 나갈 수 있지만, 천곡에서 천도비경으로 들어오는 것은 일 년 내내 언제든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다만 일 년이 지나고 나면, 천곡 내부에 열린 신비한 안개 통로 또한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니 일 년이 지나고 나면 천곡에서도 천도비경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만약 일 년 후에 입구가 열렸을 때, 천도비경에서 나오지 못했다면, 오십 년을 기다려야만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