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5화. 천도비경(天都祕境)
“뒤에 사람이 있으니, 나온 사람들은 빨리 비켜서시오!”
표묘각의 수행자가 소리쳤다. 이들도 일 년 동안 돌아가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우유도는 그 표묘각의 수행자들을 한번 힐끗 보고는 일행과 같이 비켜서서 길을 열었다.
그제야, 우유도는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숲의 고목들이 하나하나 경악스러울 정도로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작은 것도 백 장은 되어 보였다. 나무 굵기가 말이 안 될 정도였으니, 나무에 비하면 사람은 개미처럼 작아 보였다.
수많은 나무 아래에는 이미 전투를 벌인 오래된 흔적이 있었다. 이건 우유도도 알고 있는 일이었다. 매번 일 년이 지나 문이 다시 열렸을 때, 이곳은 서로 죽이며 마지막 수확물을 빼앗는 마지막 관문이 되었다. 그 전투가 얼마나 격렬할지 상상할 수 있었다.
“그만 구경하고 움직이세. 지금 자신의 처지를 잊은 것인가? 여기서 수많은 사람의 표적이 될 때까지 기다릴 것인가? 빨리 움직이세!”
자금동의 장로 엄입이 우유도를 잡아끌며 말했다. 사람들의 보호를 받으며 우유도는 숲을 가로질러 빠르게 멀어져 갔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우유도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잠시만!”
우유도가 먼저 멈춰 섰다. 엄입도 어쩔 수 없이 같이 멈춰 서서는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뭘 기다린단 말인가. 빨리 움직이지 않고 뭐 하는가?”
우유도는 숲에서 시내가 흐르는 방향을 한번 보더니 말했다.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서 인사 좀 하고 오겠습니다.”
사람들이 우유도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 시냇가에는 이곳 출구 지역을 관찰하고 있는 표묘각의 수행자가 한 바위 위에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아는 사람?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우유도와 같이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우유도는 손을 들어 그를 저지하더니 말했다.
“여러분은 여기서 기다려 주십시오. 여러분이 가까이 다가가면 대화하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표묘각의 사람이 여기 있으니, 지금 저를 어쩌지는 못할 겁니다.”
우유도의 말을 듣고, 그 자리에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우유도가 대담하게 벌인 짓을 봤으니, 괜히 말할 수 없는 두려움까지 생길 정도였다.
우유도는 그 표묘각의 수행자 옆으로 날아갔다. 바위 위에서 그런 우유도를 내려다보고 있던 표묘각의 수행자가 문득 말했다.
“우유도, 뭐 하는 것이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어 연국 수행자들을 바라보았다.
우유도가 웃었다. 지금 보니 천곡에서 벌였던 싸움이 헛되지 않은 것 같았다. 표묘각의 수행자가 자신을 알아보다니. 우유도가 포권을 하며 말했다.
“감히 저는 선생님과 교분을 맺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 있는데, 혹시 선배님께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대단한 명성을 가진 우유도가 선배님이라고 불러주니, 그 수행자는 나름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 다만 목소리는 여전히 굳어있었다.
“물어봐도 되는 것이 아니면 물어보지 마시오.”
우유도가 급히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선배님. 후배는 절대 그런 질문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단지, 다들 먹을 것을 가지고 들어오지 않았는데, 이 안에 있는 것들을 먹어도 되겠습니까?”
쓸데없는 것을 묻는 것을 보고, 수행자는 아무렇게나 대답했다.
“영종을 복용했으니 당연히 아무 문제 없을 것이오. 독이 있는 것을 먹지 않으면 모든 것이 외부 세계와 똑같고, 아무런 영향이 없을 것이오. 설마 자네, 이런 사소한 것도 여기 들어오기 전에 알아보지 않은 것이오? 조금 웃기는군. 옆에 있는 수행자들에게 물어봐도 될 일일 터. 지금까지 기다렸다가 나를 찾아와 물어볼 필요까지 있는 것이오? 가서 저들에게 물어보지 그러시오? 저들조차도 여기 들어오기 전에 천도비경에 대해서 알아보지 않았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하지 마시오.”
그리고 연국 사람들을 향해 턱짓했다. 연국 수행자들은 두 사람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의아해했다.
우유도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전에는 제가 이곳에 들어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습니다. 또 소식이 너무 갑작스러웠고, 당시 제 상황이 너무 특수하다 보니, 잠시 신분을 숨기고 다니느라, 이곳에 대해서 알아볼 충분한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 후에 저들과 대화를 하며 정보를 얻었지만, 다들 속에 능구렁이 몇 마리씩 품고 있는 것이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여기 계신 선배님께 여쭤보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선배님, 여기 있는물은 마실 수 있습니까?”
“영종을 복용하기만 하면, 먹고 마시는 것은 아무 문제없소.”
“저들 말에 따르면 선배님들도 일 년 동안 나가실 수 없다고 하셨는데, 설마 선배님도 저희와 같이 여기의 물을 마시는 겁니까?”
그리고 마치 정말로 궁금하다는 듯, 눈앞에 있는 시냇물을 가리키며 여전히 궁금한 눈초리로 수행자를 바라보았다.
그 수행자는 귀찮다는 듯이 대답했다.
“이 부근의 수원이라고 하면 이거 하나뿐이오. 우리가 이곳을 지키면서 이 물을 마시지 않으면 무엇을 마신단 말이오? 걱정하지 마시오. 당신이 다른 사람에 손에 죽지만 않는다면 먹지 못해 죽을 일은 없을 것이오. 됐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갈 길 가시오.”
이렇게 빨리 원하는 대답을 얻어 내다니, 우유도는 아직 말하지 않은 다른 말들은 뱃속에 넣어 두고는, 더는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지 않았다. 곧 포권을 하며 말했다.
“선배님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살아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저으며 그대로 그 자리를 벗어났다.
우유도의 쓸쓸한 목소리를 들은 후, 수행자는 우유도에게 동정심이 들었다. 지금 우유도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 더는 비밀도 아니었다. 그가 보기에도 우유도는 정말 살아서 돌아가기 어려워 보였다.
우유도는 그대로 연국 수행자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서 말했다.
“가시지요.”
“정말 저분과 아는 사인가?”
엄입이 의심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사실 조금 의심스러웠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우유도와 수행자가 서로 대화하는 모습이 서로 아는 사람 같아 보이진 않았다.
우유도가 ‘하하’ 웃었다.
“장난입니다. 도움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했습니다.”
사람들은 하마터면 눈을 치켜뜨고 우유도를 노려볼 뻔했다. 엄입은 화가 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곧 사람들을 불러 계속해서 길을 재촉하려고 할 때, 뒤에 일단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위국의 수행자들 이었다.
양측이 만났을 때, 서로서로 바라보며 눈치를 보았다. 그때 위국 수행자 사이에서 한 사람이 크게 기뻐하며 뛰쳐나왔다. 바로 위충이었다.
위충은 지금 위국 수행자로, 출발할 때부터 위국 수행자들과 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천곡에 있을 때, 위충은 우유도를 찾고 싶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저지를 당했는데, 위충을 막은 사람은 서문청공이었다.
위충은 상청종을 대표해서 참석했다. 위충 개인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 간에, 출발 전에 당희는 서문청공을 찾아와 위충을 돌봐 달라고 부탁했다. 아무리 그래도 당희에게 위충은 아버지의 제자였다. 이성적으로나, 감성적으로나 위충에게 문제가 생기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둘 중 누가 현미와 더 가까운지는 둘째치고, 둘 다 현미의 사람이었다. 위충은 이익과 크게 관련 없는 사람이기에 서문청공은 가벼이 승낙했다.
하지만 우유도가 천곡에 도착하자마자 문제가 생겼다. 서문청공은 위충이 그 사건에 말려드는 것을 바라지 않았고, 그렇게 그를 막아섰다.
“도야!”
위충이 기대 가득한 얼굴로 우유도를 불렀다.
예전에 우유도를 보면 ‘장문인’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나중에 우유도가 그 호칭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바로 호칭을 바꿨다.
하지만 우유도는 위충만 보면 마음이 심란했다. 위충 같은 사람과 대면하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친구는 친구를 대하는 방식이 있고, 보통 사람이라면, 보통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있었다. 적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위충은 도대체 어디에 놓아야 할까?
친구도 아니고, 보통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유도와 완전히 아무 상관 없는 사람도 아니었다. 적은 더더욱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위충이 우유도의 아랫사람도 아니었다. 그런데 또 하필이면 위충은 충심에 불타는 강아지 같은 태도를 보였다.
만약 위충이 상청종을 떠날 수 있다면, 우유도는 어쩌면 위충에 대해서 고려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위충처럼 고지식한 사람이 상청종을 떠날 수 있을 리 없었다.
상청종의 제자가 상청종에서 파문당한 사람을 장문인으로 대하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도대체 뭘 어쩌고 싶은 것인가? 우유도에게 뭘 어쩌란 말인가?
단지 우유도는 내심 위충이 정말로 우유도를 위한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러니 위충에게 성질을 내봐야 아무 소용이 없었다. 때리든 욕하든 상관이 없었다. 위충은 우유도가 원한다면 마음대로 하라는 듯이 어떠한 불만도 품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우유도가 보기에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아주 귀찮았다!
우유도는 위충 같은 사람이 너무 귀찮아서, 위충이 너무 싫었다.
“가시죠!”
우유도가 사람들을 부르며, 조금이라도 빨리 위충을 떼어놓기 위해 움직였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귀찮지도 않았다.
하지만 위충은 그런 우유도를 빤히 바라보며 뒤따라 움직였다.
이때, 우유도는 마치 뒤에 눈이라도 달린 듯 돌연 뒤돌아서더니 위충에게 손가락질하며 크게 소리쳤다.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위국 수행자들이 있는 그곳까지 들릴 정도였다.
“만약 이 사람이 계속 쫓아오면 죽여버리십시오!”
위충은 멍청한 얼굴로 그 자리에 서서 우유도 일행이 멀리 날아가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위국 수행자들이 다가왔다. 영허부의 장로 목응고(木應高)가 말했다.
“위충, 자네는 위국의 수행자네, 만약 위국의 명령을 듣지 않고 외부인과 가겠다면 지금 떠나도 무방하네.”
이 말은, 방금 위충이 독단적으로 대열을 이탈한 것에 대해 불만을 표한 것이다.
위충은 난처한 얼굴을 했다. 사실 위충은 우유도를 따라가고 싶었다. 하지만 우유도는 그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고, 심지어 따라오면 죽이겠다고까지 이야기했다. 만약 지금 위국 쪽에서 이탈한다면, 그 혼자의 힘으로는 이 천도비경에서 살아남기 힘들었다.
“그, 목, 목 장로님….”
위충은 말을 더듬으며, 한참 동안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표현하지 못했다. 이때, 등에 활검을 매고 있는 서문청공이 앞으로 나왔다.
“나와 같이 가세.”
목응고가 입을 열었다.
“호오, 서문청공, 당신도 설마 위국 쪽에서 이탈하려는 것입니까?”
“쓸데없는 생각이오. 영종을 수색하는데 언젠가는 흩어져야 하지 않겠소. 지금 우리가 계속 같이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할 수 있지. 사실 영종은 내게 별 의미 없으니, 내가 얼마를 얻든지 한 알도 남기지 않고 모두 당신들에게 주겠소.”
목응고는 코웃음을 치더니, 위국 사람들을 이끌고 그대로 떠나버렸다. 그 자리에는 서문청공과 위충 두 명만이 남았다.
위충은 떠나는 사람들을 보며, 다소 의기소침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서문청공이 천천히 그 앞에 다가가 말했다.
“자네 행동이 저들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 같군. 그러니 설사 저들과 같이 움직인다 한들, 좋은 대우를 받기는 힘들 것이네, 어쩌면 위험한 모험을 강요당할 수도 있지. 자네의 생사는 저들에게 조금도 중요하지 않으니 말이야. 이렇게 저들과 갈라선 것이 꼭 나쁘다고만은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야.”
위충이 참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서, 선배님을…. 끄, 끌어드…. 들였습니다.”
“저들은 내게도 그다지 좋은 마음을 품고 있지 않네, 저들과 같이 있으면 오히려 저들을 방비해야 하니, 처음부터 같이 다닐 생각이 없었네. 그러니 이건 자네 탓이 아니야. 일 년 동안, 자네는 나와 다니도록 하지. 일 년이 지났을 때 둘 다 살아서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군.”
말을 마친 서문청공은 그대로 몸을 돌려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