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6화. 멍청이
위충에게는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저 침울한 얼굴로 그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서문청공이 돌아보고 위충의 우울한 얼굴을 보더니 물었다.
“우유도가 따라오지 못하게 해서 실망했는가?”
“제, 제가…. 죄, 죄송할 따, 따름입니다.”
“지금 우유도는 큰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그자를 따라가는 것은 아주 위험하네, 순리에 맡기게,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그자는 걱정할 필요 없네. 그같이 똑똑한 사람은 다들 자신의 방법이 있으니, 화와 복도 다 그 자신에게 걸려 있지. 그걸 자네가 걱정할 필요 없어.”
서문청공은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더욱이 이렇게 보살펴주지도 않았다. 이 세계는 무정하고 잔인한 세계였다. 하지만 위충은 예외였다.
서문청공은 위충을 잘 알지 못했다. 천곡에 오기 전에는 얼굴 한번 본 적이 없었다. 당희의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승낙한 것도 현미의 체면을 봐서였다. 또 비록 약속은 했지만 어떻게 도와줄지는 상황을 보고 판단하기로 했었다. 당희의 체면은 서문청공이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없었다. 현미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위충과 같이 지내면서, 그가 말더듬이인 것을 알았다. 경지가 높은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상청종에서 어찌 이런 자를 여기에 보냈는지 의아해했다. 설마 버리는 패로 이용한 것인가? 만약 당희가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이라면, 현미의 곁을 지키는 사람으로서 조심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위충에게 이것저것 물어볼 필요가 있었다.
다만 몇 마디 나눈 후, 그제야 상청종에서 위충을 보내려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상청종은 위충이 가는 것을 반대했고, 다른 사람을 안배하기까지 했다. 단지 위충이 반드시 오겠다고 고집을 부린 것이었다.
서문청공은 갈수록 의문스러웠다. 그래서 그 이유를 위충에 물었다. 그제야 위충이 우유도 때문이라고 입을 열었다. 위충은 우유도 혼자서 위험한 곳으로 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위충도 당희가 서문청공에게 그 자신을 돌봐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을 알았다. 당희가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다만 위충은 자신을 보호할 필요는 없으니, 서문청공에게 우유도를 보호해 줄 수 있는지 물었지만 서문청공은 승낙하지 않았다.
위충은 그때도 크게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을 보호해 주겠다는 서문청공의 호의에 감사를 표하고는, 천도비경에 들어간 후 자신은 우유도를 따라갈 것이라고 말한 바 있었다.
서문청공은 당시 별말 하지 않았다. 단지 천곡에 있을 때 위충이 우유도와 만나는 것을 저지했을 뿐이다. 천곡에서는 우유도를 주목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많은 사람에게 위충과 우유도의 관계를 알게 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위충이 우유도에게 퇴짜 맞은 것을 보고는 직접 나서서 위충을 자신 곁으로 데려온 것이다.
서문청공의 실력을 보면, 혼자서 움직이는 것이 훨씬 자유로웠다. 위충을 데리고 움직이는 것은 짐이라 할 수 있었다.
단지 이 위충은 어리석은 멍청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위충처럼 어리석은 자는 많지 않았고, 서문청공은 이런 멍청이를 좋아했다. 이런 멍청이가 적어질수록, 이 세상은 의미를 잃어가는 것 같았다. 위충 같은 멍청이는 그래도 살아남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기에 그 멍청이를 데리고 다니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검을 메고 있는 서문청공은 등을 꼿꼿이 세운 채,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여유롭게 움직였다. 그 뒤를 따르는 위충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 * *
시냇가에 있는 표묘각의 수행자들은 서늘한 눈빛으로 사람들이 흩어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 자리를 떠나갔다.
거목이 하늘을 뚫듯이 자라있는 이 숲은 엄청나게 넓었다. 그리고 그 나무 아래 펼쳐져 있는 기암괴석과 협곡은 남다른 풍취를 보여주었다.
연국 수행자들은 우유도의 강력한 요구 아래 시내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연국 수행자들이 다시금 멈춰 섰다. 앞에 한 여자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그녀는 화려한 옷을 입고 큰 바위 위에 홀로 서서 고혹적인 모습으로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여자는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도 눈에 띄었다. 게다가 이미 연국 수행자들이 우유도에게 이 여인에 대해 말해준 적이 있었다. 우유도가 금단방 고수가 물건을 가져갈 때, 자신에게 일러달라고 한 것을 잊지 않은 것이었다. 여자는 금단방 이 위에 있는 고수 안보여였다.
소요궁의 장로 산해가 나서 다소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안보여, 우리 앞을 가로막는 건 무슨 의미요?”
안보여는 허공을 향해 소매를 한번 펄럭이고는 아름다운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천지가 이리 넓은데 길이 여기뿐인가요? 그러니 내가 여기 서 있는 것이 어찌 길을 막는 게 되는 거죠? 그건 너무 횡포 아닌가요!”
산해가 경고했다.
“없는 문제를 만들지 마시오.”
안보여가 팔을 활짝 펴고 바위에서 뛰어내렸다. 그녀는 옷을 휘날리며 포횰 하게 산해 앞에 내려서더니 말했다.
“어쩌면 여기서 당신들을 기다린 것일 수도 있지요.”
소요궁에서 신속하게 두 고수가 뛰쳐나오더니 산해 좌우를 경계했다. 산해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를 기다렸단 말이오? 어째서 여기서 우리를 기다린 것이오?”
“장난이에요. 제가 왜 당신들을 기다렸겠어요?”
말을 빙빙 돌리는 것이, 마치 놀리는 것 같았다. 산해는 매우 기분 나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말장난하는 것이오?”
“조급해하지 마세요. 난 그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에요. 하지만 나도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지 알지 못했지요. 그저 인연이 있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고밖에 말할 수 없겠군요. 이 괴상한 곳에서 일 년 동안 지낼 것을 생각하니, 혼자서 지내는 것이 너무 무료해서 같이 지낼 사람을 찾고 있었어요. 일 년 동안 의식주를 직접 처리하려고 하니 너무 번거롭기도 해서요. 한마디로 잡일을 해줄 사람을 구하고 있었지요. 그래서 여기서기다리고 있었어요. 먼저 만나는 사람과 같이 다니기로 결정하고 누가 나와 인연이 있는지 한번 기다려본 거지요.”
말을 하고 웃었다.
“지금 보니 우리가 참 인연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당신 말은 우리 쪽에 의탁하고 싶다는 말이오?”
“의탁?”
안보여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말하니까 너무 듣기 싫군요. 당신들 문파의 사람들은 항상 저 높은 곳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사실 표묘각 앞에서는 한 마리 개와 같지요. 난 누구에게도 의탁하지 않아요. 그냥 잡일 할 일꾼과 내 의식주를 관리해줄 사람이 필요할 뿐이에요. 물론, 공짜로 해달라는 것은 아니에요. 이왕 같이 다니기로 한 것, 만약 우리를 방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냥 수수방관하지 않을 거예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리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소?”
“사실 영종은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지요.”
“…….”
산해의 두 눈이 반짝였다. 마음이 동한 것이다. 이런 고수가 도와준다면, 천도비경에서 절대 나쁜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이 안보여는 수행계에서 혼자 다니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어느 세력에도 속해 있지 않으니, 영종을 빼앗기 위해 문제를 일으킬 것 같지도 않았다.
산해가 사람들에게 돌아가 자금동의 엄입, 영검산의 저풍평과 의논을 했다.
잠시 후, 세 사람이 결론을 내렸다. 세 사람의 의견은 비슷했다. 결국은 안보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비록 우유도가 연국 수행자들의 중요 보호 대상이긴 했지만, 그 또한 엄밀히 말하면 연국 수행자들 중의 한 사람일 뿐이었다. 연국 삼대 문파는 여전히 이곳에서 가장 강한 발언권을 가지고 있었으니, 중요한 일에 우유도가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우유도 또한 안보여의 가입에 딱히 별다른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연국 수행자들이 안보여의 가입을 최종적으로 승인하는 듯한 분위기로 흘러가자, 우유도는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에게 당부했다.
“저 여자가 제 곁에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운희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혹시 무슨 문제가 있는가?”
우유도가 고개를 저었다.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것이 문제였다. 과거, 위국 쪽에서 금단방 일 위의 고수 서문청공을 보았고, 여기서는 금단방 이 위의 고수 안보여를 만났다. 비록 우연인 데다가, 안보여의 말이 일리가 있었기에 딱히 크게 의심이 가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우유도는 경각심을 크게 높이고 있었으니, 아주 작은 변화라 해도 그의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사실 달리 생각하면 이곳은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쉽게 빼앗긴 곳이었다. 그러니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우유도는 살아서 돌아가고 싶었다.
물론 이렇게 행동하는 게 마냥 좋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이렇게 모든 것에 대해 꼼꼼히 따져보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일은 피곤한 일이었다. 똑똑한 사람은 바로 그런 것이 안 좋았다. 모든 일을 과장되게 생각했다. 예를 들어 그 가짜 ‘소조’도 단순한 우연에 불과했지만, 마찬가지로 우유도의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
막말로, 우유도 같은 사람은 우연히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도 우연이라 생각지 않고, 이를 몇 번이나 다시 생각하고 경계하고 의심했다.
“잘 감시해 주십시오.”
우유도는 자신이 어째서 이처럼 의심이 많은지 설명하지 않았다. 아무튼, 의심을 떨쳐버리기 전에는 조심해야 했다.
우유도가 그렇게 이야기하니, 남주의 사람들도 신중해졌고, 남다른 시선으로 안보여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우유도와 동행하는 일행이 한 명 늘어났고, 이들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이들이 앞으로 나아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또 앞을 가로막는 사람이 나타났다. 이번에 앞을 가로막은 사람은 여자가 아닌 남자였다. 등에 검을 메고 있는 노인이었다.
다만 여자와 마찬가지로, 이 남자도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금단방 육 위의 고수 무조행이 바로 그였다.
마찬가지로 소요궁의 장로 산해가 앞으로 나서서 질문했다.
“무조행, 어째서 앞을 막는 것이오?”
“이런 괴상한 곳에서 일 년 동안 있기도 쉽지 않은 일이오. 아무래도 같이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면 최소한 잡다한 일에 직접 손을 쓸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했소. 난 이곳에 머무르며 처음 만나는 세력에 합류하려고 기다리고 있었소. 만약 괜찮다면 한 명 추가하는 것은 어떻겠소. 걱정하지 마시오. 영종은 내게 아무 쓸모 없는 물건이니 말이오.”
무조행의 말을 듣고 산해는 할 말을 잃었다. 연국 수행자들도 서로서로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무조행이 한 말이 방금 전에 안보여가 한 말과 거의 같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두 사람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너무 공교로웠다. 금단방의 십 위 안에 든 고수는 원래 평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할 정도로 보기 힘든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고수들을 이렇게 쉽게 마주치다니, 게다가 이들이 전부 연국 수행자들과 동행하길 원하다니.
두 사람의 고수가 거의 같은 시간에, 우연히 연국 수행자들을 처음 만났다. 그것도 모자라 두 고수가 연국 수행자들과 함께하겠다고 하니, 우연이라 해도 참 공교로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쯤 되니 사전에 공모하기라도 한 건 아닌지, 연국 수행자들조차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들뿐만 아니라, 안보여조차도 얼굴이 괴상해졌다. 내심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냐며 속으로 자문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