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1화. 강요하지 않겠네
나무 동굴 안이 잠깐 조용해졌다. 우유도는 떠나가는 산해의 뒷모습을 보더니, 고개를 돌려 엄입의 반응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결국은 엄입이 정적을 깨뜨리며 조용히 말했다.
“동생, 한 가지 확실히 알아야 할 일이 있네, 만약 영검산과 소요궁의 지지가 없다면, 자금동만으로는 자네를 지킬 세력이 너무 약할 수밖에 없어. 그러니 외적의 공격을 더 쉽게 받을 것이네. 지금 자금동의 인원은 내가 이끌고 있으니, 난 반드시 제자들의 생사에 책임을 져야 하네.
저들 두 문파가 만약 자네를 포기한다면, 자금동 또한 위험을 피할 수밖에 없네. 나는 겨우 여자 한 명의 생사 때문에 자금동 제자들의 생사를 도외시할 수 없네. 내 어려움을 헤아려 주게. 물론, 나도 자네에게 강요하지 않을 것이니, 고민해 보게나.”
말을 마친 두 장로는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정좌하고 있는 우유도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어렸다. 강요하지 않아? 이게 강요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저 두 사람은 이 연극이 진짜가 될 것을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이미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만약 우유도가 그 여자를 죽이지 않으면, 나머지 두 문파가 우유도를 압박할 것이 분명했다.
우유도는 처음부터 저들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일로 저들을 시험해 보았다. 역시나, 그에게 희생을 강요했다.
결국 이건 모두 표묘각 때문이었다. 괜히 한 나라에 삼대 문파라는 것을 만들어서 자신도 쓸데없는 피해를 보게 되었다.
“여봐라!”
우유도의 부름에 유선종의 제자가 안으로 들어와 포권을 했다.
“도야!”
우유도가 지시를 내렸다.
“만동천부의 장문인께 잠시 오시라 전해라.”
“알겠습니다!”
유선종 제자가 명령을 받들었다.
유선종, 부운종, 영수산에서 보낸 제자는 세 명의 여 제자였다. 그 외모가 나쁘지 않았으니, 무슨 의도인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세 문파는 우유도 덕분에, 연국에서 각 문파당 한 명의 제자만을 보내면 되었다. 덕분에 세 문파는 더 큰 손실을 피할 수 있었다.
그들도 자신들이 보낸 제자들의 힘으로는 비경 안에서 큰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사실 이들이 보낸 세 명의 제자는 그저 우유도의 시중을 드는 역할이라 할 수 있었다.
심지어 우유도가 원하기만 하면, 어떤 시중도 가능했다. 우유도에게 보답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일종의 도박이었다. 젊은 남녀가 오랫동안 같이 있다 보면 눈이 맞을 수도 있었다. 일단 우유도가 안전하게 돌아오면, 우유도와 더 가까운 관계를 맺을 수도 있었다.
만약 안전하게 돌아오지 못한다 해도, 한 문파에서 한 사람을 희생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어쨌든 간에 나쁘지 않은 투자였다.
세 여 제자도 문파의 뜻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 제자는 아직 자격이 되지 않았기에, 상부에서 정확히 어떤 이유로 자신들을 보냈는지는 그저 어림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게다가 이들 눈에는 이 ‘도야’라고 불리는 우유도가 아주 위풍당당하고, 매우 높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 이들의 눈에 이 도야라는 사람은 아주 높은 곳에 있는 존재였다. 본파의 장문인들조차 공손했다. 그런 도야의 여자가 된다는 것은 참 기대가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이 여인들은 몇 마디 말에 속아 넘어가 기대를 품고 여기까지 따라 들어왔다.
하지만 천도비경에 들어오고 나서도, 도야는 그녀들에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거의 정면으로 본 적도 없었다. 그저 그녀들을 심부름꾼 정도로 보고 잡일이나 시킬 뿐이니, 참으로 실망스러웠다.
물론, 아직은 남은 시간이 많았다. 이곳에 도착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으니 그녀들은 여전히 기대를 품고 있었다.
잠시 후, 사도요가 안으로 들어왔다.
확실히 지금 우유도는 과거와 그 위상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당당한 만동천부의 장문인이 우유도의 손짓에 오갈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사도요조차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느끼지 못했다!
“무슨 일인가?”
사도요가 우유도 앞에 앉으며 물었다. 우유도는 잠시 침묵하더니, 그에게 직설적으로 물었다.
“만약 제가 연국 삼대 문파와 갈라서면 만동천부는 저와 가실 겁니까?”
사도요는 잠시 멈칫하더니 즉시 손사래를 쳤다.
“동생, 지금 이대로 아주 좋네. 최소한 자네에게 나쁠 것이 없지 않은가. 그러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게.”
“사도 장문인, 농담이 아닙니다.”
사도요의 안색이 진중해졌다.
“혹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한마디로 다하기 어렵습니다!”
우유도가 사도요의 반응을 살폈다.
사도요는 두 손으로 무릎을 만지작거리며, 결정을 내리기 어려워하더니, 결국 입을 열었다.
“우리가 알고 지낸 시간이 짧지 않네, 나는 동생 편이네. 만약 외부에 있었다면 분명 동생과 같이 움직였겠지.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좀 다르지 않은가…. 만동천부는 이번에 조국 삼대 문파 때문에 큰 곤란을 겪고 있네.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은 만동천부의 생사존망과 연관이 있지. 만약 돌아갈 수 없다면, 만동천부는 다른 문파에 삼켜지거나, 쓸려나갈 것이네.”
“조국 쪽의 핵심 인력은 천곡에서 제가 거의 다 쓸어 버렸습니다. 조국 수행자는 아마 스스로를 지키기도 힘에 부칠 것이니, 만동천부를 찾아오지 않을 겁니다. 이 또한 나름 만동천부를 크게 도운 것이라 할 수 있지요. 당신들을 위해 큰 후환을 없앴습니다!”
“하지만 동생에게 불손한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네. 자네와 같이 가는 게 싫다는 게 아니네. 다만, 사방에서 공격이 닥쳐올 테니 우리 힘만으로 자네를 어떻게 지킬 수 있겠는가? 솔직히 말해서, 이건 같이 자멸하자는 이야기와 다른 바가 없네. 냉정히 말해 자네도 죽고, 만동천부도 매우 큰 손실을 보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천도비경에 있는 만동천부의 모든 제자가 다 죽을 수도 있네. 자네도 이 정도 예측은 할 수 있지 않나.”
우유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장문인의 뜻을 잘 알겠습니다. 좋습니다.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는 돌아가시라고 손을 뻗었다. 사도요는 참으로 난감한 얼굴을 했다.
“잘 지내고 있는데 어째서 갈라서려는 것인가.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겠는가. 정말 되돌릴 수 없는가? 동생, 좀 더 고민해 보게!”
우유도가 웃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하아!”
사도요가 한숨을 내쉬며 일어나 떠나갔다.
* * *
빛나는 월접 아래,
우유도가 혼자서 외롭게 앉아 있었다. 원래는 대선산의 사람도 불러서 물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헛수고일 뿐이다. 만동천부도 자신과 가지 않으려고 하는데, 대선산은 말할 것도 없었다.
지금 우유도는 스스로 낸 내상이 완치되지 않은 상태였다. 요상약을 품에서 꺼내 복용한 우유도는 우선 몸을 회복시키기 시작했다. 지금 이대로 나무 동굴 안에 계속 숨어있을 수는 없었다. 내일 아침 날이 밝으면, 시비(是非)와 은원(恩怨)이 어떻게 될지 예상하기 어려웠다.
천도비경은 낮이 아주 길었다. 밤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룻밤 동안 적당히 회복할 수 있었다.
날이 밝았을 때. 우유도는 법력을 거두고 두 눈을 떴다. 그리고 석벽 위에서 쉬고 있는 월접을 바라보는 눈빛이 깊어졌다. 곧 품에서 법력으로 가루로 만든 영종을 꺼내 월접의 사료에 섞어 주었다.
지금까지 그를 따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오직 눈앞에 있는 월접만이 완전히 신뢰할 수 있었고, 시종일관 우유도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니 우유도는 영종을 낭비해서라도, 설사 자신이 사용할 것이 줄어든다 해도, 최대한 월접을 보호하고 싶었다. 최대한 월접이 비경에서 죽지 않게 할 생각이었다.
월접을 불러들인 후, 우유도는 검을 짚고 몸을 일으켜서 동굴을 나섰다. 그리고 가부좌를 틀고 동굴 입구를 지키고 있는 무조행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이다!
비록 우유도 때문에 며칠의 시간을 낭비하긴 했지만, 그렇다 해도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고는 할 수 없었다. 우유도는 자신이 다 치료됐다는 것을 알리고는 출발하자고 말했다. 삼대 문파는 당연히 이견이 없었다. 그렇게 일행은 앞으로 나아갔다.
법력의 소모를 통제하며 반나절 정도 갔을 때, 아직 숲을 다 벗어나지 않았을 때, 땅을 울리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사람들이 경각심을 일으키고는 빠르게 숲을 벗어나, 언덕 위에서 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았다. 그들 눈앞에 광활한 초원이 펼쳐졌다.
이곳의 초원은 외부의 초원과 달랐다. 잡초가 사람보다 더 높이 자라있었고, 초원 위에 드문드문 자라고 있는 나무는 비록 뒤에 있는 거대한 숲에 있는 거목보다는 작았지만, 외부의 나무보다는 훨씬 컸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들어온 후부터 지금까지 정말 계속해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외부의 사물들은 이곳에 있는 나무나 생물들에 비해 정말이지 참으로 작다고 느끼고 있었다.
잠시 후, 일행은 땅을 울리는 소리가 어디서 들리는지 찾을 수 있었다. 기이할 정도로 거대한 몸집을 가진 동물이 평원에서 불쑥불쑥 솟아나 풀을 헤치며 초원을 지나가고 있었다. 긴 목과 긴 꼬리를 가지고 있는 이 동물들이 걸을 때마다, 땅이 ‘둥 둥’하고 울렸다.
사람들의 얼굴에 경악의 빛이 떠올랐고, 모두 탄식을 내뱉었다.
그중에 유독 경악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우유도였다. 지금 우유도의 머릿속은 아주 혼란스러웠다. 지금 그는 머릿속에는 하나의 단어만 떠올라 있었다.
공룡?
만약 자신이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전생의 기억을 떠올려 봤을 때,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느긋하게 움직이고 있는 이 거대한 동물은 브라키오사우루스(*쥐라기 후기에서 백악기 초기까지 살았던 거대한 초식 공룡, 몸집이 25m 정도 된다)였다.
천도비경에 들어오기 전, 우유도는 비경 안에 몸집이 거대한 동물이 많다는 이야기를 적잖이 들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여기서 공룡을 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우유도는 몸을 돌려 등 뒤에 있는 거대한 숲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고, 여러 가지 추측들이 한꺼번에 솟아났다.
왜 비경 안에서 외부의 동물은 영종을 먹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지, 그리고 왜 비경 안의 생물이 외부에서 생존할 수 없는지, 그런 이유들에 대한 여러 추측들이 생겨났다. 대체 어떤 환경의 차이가 있는 것인지, 과학 시간에 배웠던 내용들이 언뜻언뜻 떠올랐다.
우유도는 전생의 기억 중에 공룡의 멸종에 대한 것을 떠올렸다.
‘공룡은 운석 때문에 멸망했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설마 여기에 운석이 떨어지는 건 아니겠지?’
우유도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곁에 있던 장로 하나가 뒤를 보고 말했다.
“다들 걱정하지 말아라. 선인들의 경험에 따르면, 저 동물들이 비록 거대한 몸집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건드리지만 않으면 우릴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
산해가 뒤돌아 안색이 급변한 소요궁의 제자들을 다독였다. 물론, 당부의 말 또한 잊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공격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들 최대한 공격하지 않는 게 좋다. 물론 공격을 당하게 될 시, 각자 판단해야 할 것이다.”
우유도가 갑자기 물었다.
“만수문은 동물을 부릴 수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들도 부릴 수 있습니까?”
산해가 대답했다.
“불가능하네, 이곳에 와서 만수문도 여러 시도를 해봤지만, 전부 실패했다네. 두 세계의 동물은 아주 달라. 아마도 이곳의 특수한 환경과 연관이 있어 보이네.”
“갑시다. 우선은 다시 모이기 좋은 곳을 찾고 그곳에서부터 서로 흩어져 수색하는 게 좋겠소.”
엄입이 손짓하더니, 우선 자금동의 인원을 데리고 날아올랐다.
사람들이 분분히 날아올랐다. 천여 명의 사람들이 초원 위를 오르락내리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