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9화. 그르친 일
관방의의 말을 들은 오노이는 소름이 돋았다.
“이제 더러운 물을 뒤집어썼으니, 몸을 빼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 사람이 우릴 그냥 쉽게 용서할 것 같지 않습니다. 만약, 제 말은 만약입니다. 나중에 정말로 일이 그렇게 된다면, 저희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도야가 이미 우리가 갈 길을 안배해 놓았으니, 그건 걱정할 필요 없다.”
그녀의 말을 듣고 나서야 오노이는 조금 안심할 수 있었고, 곧 한숨을 내쉬었다.
“도야만이 이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으니, 다만 평안히 돌아오길 바랄 뿐입니다.”
오노이와의 대화가 끝난 후에도 관방의는 방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마치 초려산장의 밤을 지키는 사람 같았다. 오노이는 그 곁을 지키며 그녀와 한마디 한마디 대화를 나누었다.
밤은 똑같은 밤이었건만, 밤이 될 때마다 사람들의 마음은 이전과 달리 불안해졌다. 우유도가 떠난 후부터 다들 불안해하고 있었다.
* * *
창밖이 서서히 밝아 오고 있었다.
방안에는 벌거벗은 남녀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가 깨어나더니 머리를 움켜쥐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남자의 움직임에 여자가 말을 건넸다. 이미 깨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날 보내주세요.”
여자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누군가 음식에 수작을 부렸소.”
여자는 그제야, 일이 왜 이렇게 진행됐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일이 발생했음에도, 여자는 죽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이전 같으면 몸을 버렸다는 이유로 당장 자결했겠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고 있었다. 왜 그럴까?
원강과 오래 알고 지내면서, 그녀는 알게 모르게 항상 이 남자가 자신을 보호해 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였다. 그러니 악감정이 없었다. 지금 그녀는 말로 할 수 없는 애매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지금 그녀는 죄책감 때문에 몹시 괴로웠다. 심지어 자신의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 일이 음식에 수작을 부렸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모른다고 생각할 지경이었다.
“제 이름은 풍관아에요. 송국 대도독이 바로 제 남편이지요!”
여자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제 제 신분을 알았으니, 절 보내주세요!”
원강은 머리에 벼락이 치는 것 같았다. 돌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송국 대도독 나조의 부인이라고?
하지만 곧 상대방의 상아처럼 아름다운 몸을 보고는 급히 고개를 돌렸다. 차마 계속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원강이 급히 일어나더니 허둥지둥하며 옷을 입고, 줄행랑을 치는 것처럼 달려나갔다.
* * *
동이 트고, 원강이 초려산장의 가장 높은 누각 위에 올랐다. 누각 위에는 아침 햇살을 받고 있는 관방의가 있었다. 앉아 있던 관방의가 일어서자,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섰다.
짝!
원강이 매섭게 뺨을 후려쳤다.
관방의는 피하지 않고 그 손찌검을 그대로 맞았다. 관방의는 자신이 마땅히 맞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곁에 있던 오노이가 매우 놀라 손을 쓰려고 하자, 그것을 관방의가 저지했다. 오노이가 분노하며 말했다.
“원강, 이게 뭐 하는 짓이오!”
원강은 신경 쓰지 않았고, 그저 두 눈에 큰 분노를 품고 관방의를 노려보고 있었다. 상대방이 반항하지 않은 것을 보고 확실히 깨달았고, 그의 추측이 틀리지 않았다.
이 초려산장에서 그를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은 눈앞에 있는 이 여자 외에는 없었다. 역시 이 여자가 한 짓이었다! 원강이 분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천한 년!”
원강의 손속은 매우 매웠다. 원강이 가진 완력은 내력을 사용하는 수행자와 비교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였으니, 관방의가 내력을 통해 어느 정도 자신을 보호했음에도 입꼬리에서 피가 흘러나오게 되었다.
관방의는 손을 들어 입을 천천히 닦아 내었고, 피가 묻어 나오는 것을 보고 냉소 지었다.
“천한 년? 맞아. 나는 세상 모든 사람이 잘 아는 천한 년이지. 그러는 너는? 너는 그리 착한 사람인 것 같아? 확실히 내가 수작을 부리기는 했지. 하지만 만약 네가 하기 싫었다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 뛰쳐나올 수 있었을 거야. 그 정도 약으로 너를 움직이지도 못하게 만들 수 없었을 거야. 그런데도 계속한 것은 무슨 저의지? 어젯밤, 네가 짐승이 되겠다고 한 것은, 내심 너도 그것을 원했기 때문이야. 네가 자신의 욕망을통제하지 못한 것이지.”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만약 그 자리에 우유도가 있었다면, 분명 자신을 통제할 수 있었을 거야. 우유도는 자신이 하고 싶지 않았다면, 분명 뛰쳐나올 수 있었을 거야. 네 양심에 손을 얹고 물어봐. 너는 무슨 성인군자라도 된단 말이야? 혹시 다른 사람이 수작을 부렸다는 변명할 구석이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거야? 만약 그렇다면 좋아, 마음대로 해.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다면, 모든 책임을 내게 돌려도 상관없어!”
관방의가 한발 한발 압박하며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에, 원강은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뒷걸음질 쳤다. 만면에 부끄러움이 가득했지만, 원래 얼굴이 붉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알아볼 수 없었다.
관방의의 독한 말에 다급해진 원강이 갑자기 손을 뻗어 관방의의 목을 붙잡았다.
그 모습을 오노이가 좌시할 리 없었다. 즉시 손을 휘둘러 원강의 손을 쳐내고 두 사람 사이를 파고 들어가 가로막았다. 오노이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원강, 경고하는데, 더 이상 함부로 움직이면 나도 그냥 두고 보지 않을 것이오!”
원강은 그런 오노이를 격한 채, 관방의를 가리키며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송국 대도독 나조의 부인이오. 이게 바로 당신들이 원하는 답안이오. 이제 만족하시오?”
그 말을 듣고, 관방의와 오노이는 눈이 둥그레졌고, 식은땀이 흘렀다. 원강이 그대로 그 자리를 떠나갔다.
잠시 후, 오노이가 조용히 물었다.
“나조가 지금 아마 감옥에 갇혀 있었지요?”
관방의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 * *
날이 밝았고, 원강은 날짐승 한 마리를 준비시켰다. 풍관아를 송국 경성으로 돌려보내기 위해서였다.
원강은 계속 풍관아를 붙잡고 있을 만큼 뻔뻔하지 못했다. 이야기를 들은 관방의가 두 사람 앞을 가로막더니 원강에게 물었다.
“어디 가려는 거야?”
풍관아는 고개를 숙이고 침묵했고, 원강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여자를 돌려보내려 하오!”
“돌아가려면 혼자 돌아가라고 해. 네가 돌려 보내줄 필요 없어.”
“그대가 암중에 살수를 쓰기 쉽게 말이오?”
이건 원강이 지금까지 계속해서 걱정하던 문제였다. 우유도가 아직 떠나지 않았을 때에도 원강은 계속 그 문제를 걱정했다.
다른 사람은 도야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지만, 원강은 너무 잘 알았다. 우유도는 과거 흑도의 제왕이었고, 피비린내 나는 혈우를 뚫고 살아남은 사람이었다. 그 손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유명을 달리했는지 셀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 후, 도야는 정신수양을 하며 표면의 난폭한 기운이 아주 옅어지게 되었다. 그 이후, 더는 직접 싸우고 죽이는 일을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비바람 속에서 뼛속 깊이 새겨진 어두운 상처는 없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다른 건 말할 필요도 없고, 원강이 제국에 숨어들어 두부를 팔았을 때만 해도 우유도의 성정이 변하지 않았음을 이미 알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 당시, 두부를 팔던 식당에서 원강은 비밀리에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십여 명의 군관을 매수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가보았더니, 이미 모두 죽어 있었다.
그들이 지내던 곳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 없었다. 그리고 원풍의 입에서 도야가 그걸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즉시 어찌 된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원강이 신분을 속인 사실이 폭로될까 봐, 원강이 제경에 있을 동안 그의 안전에 위협이 될까 봐, 도야가 비밀리에 모두 죽여 입을 막은 것이었다!
우유도가 풍관아를 어찌하겠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우유도가 대략 뭘 하려고 하는지는 추측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더욱더 조심스럽게 보호하고 있었다.
다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최소한 원강은 우유도가 무고한 생명을 죽이는 것이 싫었다!
이때, 관방의가 진정하라는 듯이 양손을 뻗으며 말했다.
“빨간 원숭아, 지금 너와 다투고 싶지 않아. 저 여자를 보내주는 건 상관없어. 건들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하지만 넌 송경에 갈 수 없어!”
“당신 허락이 필요할 것 같소?”
적지 않은 사람이 소식을 듣고 뛰쳐나와 두 사람의 분쟁을 지켜보았다.
우유도가 없으니, 갈등이 즉시 터져 나온 것이다. 위에서 누르는 힘이 없으니, 대체 누가 누굴 관리하고, 또 누가 누구의 말을 고분고분 듣는단 말인가?
원강이 관방의를 관리할 수 없듯이, 관방의도 원강의 말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세 문파도 이들을 고분고분 따르지 않을 것이고, 오량산도 더는 다른 사람들에게 무조건 복종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상조종을 호령할 수 없었고, 대선산도 그들을 안중에 두지 않았다. 만동천부도 이들과 협력을 상의하지 않을 것이다.
우유도가 중심을 지키고 있지 않으니, 수많은 일이 모두 문제였다. 결국, 다툼에 초조해진 관방의가 분노해 소리쳤다.
“원강, 도야가 없다고 해서, 지금 도야가 심혈을 기울여 쌓은 기업을 다 무너뜨려 버리겠다는 거야? 설마 지금 송국이 도야를 어찌 대하는지 모르는 건 아니겠지? 네가 가서 일단 송국의 손에 붙잡힌다면, 내가 널 구해야 할까 구하지 말아야 할까? 나중에 도야가 돌아온 후에도, 대체 너를 어떻게 해야 할까? 정말 그 정도 일도 모른단 말이야?”
결국, 그 한마디로 원강은 냉정해질 수 있었다. 만약 정말 원강이 송국 손에 붙잡힌다면, 초려산장 일부분은 아마 원강의 편에 설 것이다. 관방의가 만약 구하지 않겠다고 하면 초려산장은 즉시 분열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구한다면, 관방의가 뭘 어찌 구한단 말인가? 송국의 손에서 어떻게 원강을 구한단 말인가?
지금 정세를 보면, 초려산장은 송국과 일전을 치를 능력이 없었다.
“송국에 가지 않아도 되오. 다만, 이 여자의 안전을 어찌 보장하겠소? 보장만 해주면 되오.”
원강은 관방의에게 풍관아를 놓아 주라고 압박을 가하려 했다. 관방의는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고, 양손을 허리에 척 올리고 말했다.
“본녀의 보장은 필요 없어. 네가 알아서 네 사람을 붙여 돌려보내면 되잖아!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양보야. 만약 초려산장을 반드시 망가뜨리려 한다면 나도 더는 할 말이 없겠지. 만약 손을 쓴다면, 너희 두 사람 모두 여길 떠나지 못할 거야!”
원강이 침묵했다. 확실히 다른 사람을 보내 풍관아를 돌려보내는 것은 좋은 방법이었다. 도야가 자리에 없으니, 일부 사람들은 관방의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그 후에는 관방의의 말대로 안배했다. 단호에게 직접 풍관아를 돌려보내게 한 것이다. 그리고 재삼 풍관아의 안전을 당부했다. 동시에 다른 대형 날짐승을 통제해 다른 사람이 쫓아가지 못하게끔 사전에 방비했다.
풍관아가 하늘 저편으로 멀어지는 것을 보고, 허노육이 관방의에게 다가와 서늘한 얼굴로 조용히 말했다.
“누님, 정말 이대로 그냥 풀어주는 것입니까?”
“이미 그르친 일이야. 그러니 풀어주지 않으면 뭘 어찌할까?”
관방의가 불쾌한 기색으로 말했다. 설마 그 여자가 나조의 부인이었을 줄이야.
그러니 악독한 수단을 썼어도 아마 소용이 없었을 것 같았다. 쓸데없이 나쁜 사람이 된 것이다.
간단한 이치였다. 원강의 성격을 보면, 이미 자신과 그렇고 그런 관계가 있는 여자를 그냥 두고 볼 리가 없을 터였다. 원강은 무슨 일이 있어도 풀어 주려 할 것이고. 만약 지금 저 여자를 죽인다면, 원강과 반목하게 될 것이다. 그때는 우유도를 들고나와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아마 원강은 관방의와 목숨 걸고 싸울 것이 분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초려산장에 내분을 일으켜야 하겠는가? 관방의는 어쩔 수 없이 차선을 선택했다. 우선 초려산장을 안정시켜야 했다.
허노육이 우려하며 말했다.
“듣기로 저 사람은 능소각 전임 장문인의 손녀라고 합니다. 저 여자에게 그런 짓을 했는데, 만약 능소각이 이를 알게 된다면, 이를 그냥 두고 보겠습니까?”
“나보고 지금 얼마나 더 심란해지라고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거야?”
관방의가 눈을 부라리며 분노한 목소리로 외쳤다.
관방의라고 뭘 어쩐단 말인가? 우유도가 없었다. 원강 일행은 관방의가 통제할 수 없었다.
이때, 다행히 영검산과 자금동의 사람들이 곧 도착했다. 그러니 이제는 능소각이 이 먼 곳까지 찾아온다 해도, 크게 두렵지 않았다. 다만 이 상황이 천도비경이 끝날 때까지, 더 악화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