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3화. 저를 난처하게 하는 겁니다
손님을 보내고, 풍관아가 돌아왔다. 나조가 반쯤 계단에 엎드려 있는 것을 보고, 빠르게 다가와 나조의 손에 든 술병을 빼앗았다.
“그만 마시세요!”
나조는 흐리멍덩한 눈으로 그녀에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내놔라, 천한 년 같으니, 돌려줘!”
풍관아는 나조의 손을 붙잡고 그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울었다.
“아무리 그래도, 어찌 자신을 이리 학대하는 건가요. 당신의 호기와 웅대한 포부는 어디로 갔나요? 대송을 도와 천하를 통일하겠다고 하지 않았나요! 대총관님의 말이 맞아요. 한 번의 좌절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다시 일어날 수 있어요. 아직 기회가 있어요. 제가 최선을 다해서 도울게요. 계속 이럴 수는 없어요.”
흐리멍덩한 눈이 살짝 뜨여졌다. 나조가 조금은 정신을 차린 듯했다.
“나를 돕겠다고? 그 말은 네가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인가. 그런가? 하긴, 만약 네가 없었으면 나는 아직도 감옥에 갇혀 있었겠지.”
풍관아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런 뜻이 아니에요. 나는 당신의 능력을 믿어요.”
하지만 나조가 집착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도대체 어디 있었지?”
풍관아는 고통스러웠다. 아무리 나조가 재촉하고 애원해도,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지금 말하면, 나조는 죽을 것이다. 지금 상태에서 나조는 분명 모든 것을 고려하지 않고 달려가서 목숨 걸고 싸우려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누가 나조를 도와 연국 초려산장에 가서 난리를 피우려 하겠는가? 그러니 나조가 달려가면 죽기밖에 더하겠는가?
그녀가 말하지 않자, 나조는 손을 뻗어 풍관아 손에 들린 술병을 빼앗으려 했다.
술병을 두고 다투다가, 나조는 또다시 풍관아의 뺨을 때리고 그녀를 발로 차서 바닥에 쓰러뜨렸다.
그래도 그녀는 술병을 놓지 않았고, 나조는 연달아 몇 번을 걷어찼다.
“멈추시오!”
나조의 장원을 지키는 능소각의 제자가 다가와 나조를 밀어내며 말했다.
“나조 장군, 너무 지나치시오!”
“내가 너무 지나치다고? 하하…. 하하하!!”
나조는 중얼거리며, 자조적인 얼굴로 휘청거리며 멀어져 갔다.
나조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풍관아가 사라진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풍관아가 말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그 남자가 누구인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풍관아는 끝까지 그 남자를 지키며 말하지 않았다. 나조는 쓸쓸해졌다.
어려서 뜻을 이루고, 승승장구했다. 높은 위치에 오르고 검을 뽑아 사방에 겨누며, 천하의 영웅들과 고하를 겨루겠다고 호언장담했다. 몇 번 패배하기도 했지만, 승리의 전과가 훨씬 더 많았다. 그는 하늘 높은 곳까지 올라섰다. 이 세상을 호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한 번의 전장을 만났을 뿐인데, 그의 모든 것이 무너져버렸다. 우선은 몽산명을 만나 참패를 당했고, 그다음은 금작을 만나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다시 일어나 전의를 가다듬으려 하는 순간, 자신의 여자가 다른 남자를 따르고 있었다. 그러니 과거에 천하의 영웅들에 대해서 왈가왈부한 것이 얼마나 황당한 일이겠는가? 나조는 지금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우스운지 깨달았다.
나조가 심문을 받았을 때, 수많은 조정의 간신들이 그에게 삿대질하며 병력을 운용하는 것에는 항상 위험이 따르는 법인데, 어찌 이리도 쉽게 국가 사이에 전쟁을 일으켰냐며 그를 욕했다. 나조가 나라와 백성들에게 재앙을 가져왔다고 꾸짖었다.
평생 이런 좌절을 맛본 적이 없었다. 이런 경험이 없을 때는 몰랐는데, 한번 실패를 맛보자, 끝없이 실패가 찾아왔다. 때문에 나조는 큰 충격을 받았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어쩌다가….”
바닥에 쓰러진 풍관아는 술병은 꽉 껴안고는 슬피 울었다.
능소각의 제자는 그런 그녀를 부축해 일으켜 세우며 얼굴에 분노를 떠올렸지만, 우물쭈물하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최근 나조는 술에 취해 난폭한 주사를 일삼았다. 취하기만 하면 풍관아를 때렸으니, 능소각의 제자들은 이를 차마 지켜볼 수 없었다. 하지만 또 뭘 어찌한단 말인가? 풍관아는 나조의 아내였다. 집안일은 남이 상관하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이들이 풍관아의 남편을 때려서 병신으로 만들거나 죽여서 화를 풀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 * *
하나로 모인 사해의 수행자들이 전면적으로 넓게 펼쳐져 온 길을 되돌아갔다. 마치 그물을 펼치듯이 움직이며 다른 나라의 세력을 찾아 나선 것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됐으니, 더는 세력이 부족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긴장하고 있던 우유도 또한 드디어 어느 정도 안도할 수 있었다. 사실 원래 이들 일행만으로는 이번 임무에서 일등을 하는 게 불가능했다.
물론, 지금 모인 사해의 수행자들이 처음 인원과 같다고 할 순 없었다. 칠 국이 난리를 피운 바람에 대략 오백 명이 넘는 인원이 죽어 나갔기 때문이었다. 현재 천오백 명 정도만이 남은 상태였다. 다만 그렇다 해도, 당연히 우유도에게는 큰 전력이었다. 넷에서 천오백이 되었으니, 천지 차이나 다름없었다.
우유도는 말하길, 진국은 일단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진국은 날카로운 가시 같은 자들이니, 우리가 굳이 건드리지 않아도 진국 사람들이 알아서 분명 다른 사람들의 것을 강탈하기 위해 움직일 것이라는 말이었다.
우유도는 그러니 진국을 건드리지 말고, 다른 칠 국의 세력을 먼저 건드리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여 진국과 나머지 육 국 사이에 갈등을 유발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그렇게 하여 자기들끼리 어느 정도 병력을 소모하게 되면, 결국 어느 정도 세력이 약해지는 문파가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우유도는 약해지기 시작한 쪽부터 손을 쓰기로 했다.
일단 가장 좋은 먹잇감이라면 조국이 있었다.
지금 우유도와 조국 사이에는 적지 않은 원한이 있었다. 그러니 우유도가 혼자 얼굴을 드러내기만 하면, 조국 사람들은 분명 추격해올 것이고, 손쉽게 끌어들여 포위할 수 있었다.
바로 이것이 우유도가 사해 수행자들에게 제시한 이점이었다. 우유도는 사해 수행자들과 자신이 협력하게 되면, 쉽게 칠 국의 세력을 끌어들여 사해 수행자들이 이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라 호언장담했었다.
지금 상황을 보니, 확실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누구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 우유도가 이렇게 많은 수행자를 자기편으로 만들었으리라 생각지 못할 터였다. 그러니 누구나 우유도를 보면 쫓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적을 끌어들이면, 결국 성공할 수 있을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사해의 수행자들은 우유도와 함께 움직이며, 조국의 수행자들을 찾기 시작했다. 물론 대부분 흩어져 있었기에, 실질적으로 우유도와 함께 움직이는 자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일행이 휴식을 취하던 도중, 사해의 책임자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조금씩 한쪽으로 슬금슬금 움직였다.
“뭘 그리 수상쩍게 움직이는 것이오?”
홍개천이 물었다. 부화가 고개를 돌려 먼 곳 나무 아래 있는 우유도를 가리키고는 조용히 말했다.
“우선 연국 사람을 찾는 게 좋겠습니다.”
일행이 눈빛을 교환했다. 부화의 말을 들으니 다른 생각이 있어 보였다. 낭량공이 물었다.
“부화, 그게 무슨 뜻이오?”
“우유도는 연국 사람이지요.”
홍개천이 말했다.
“그건 그대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소.”
“설사 우리가 여기서 일등을 한다고 해도 결국은 연국으로 돌아가겠지요. 당연하게도 연국의 기업을 포기하려 들지 않을 것입니다.”
단무상이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이오?”
“생각해 보세요. 지금 이게 함정이 아니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나요? 우유도가 연국 사람들과 한통속이 아니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단 말인가요? 설마 우유도의 말을 우리가 그대로 믿어야 하는 건가요? 나중에 우유도를 도와 각 나라와 난리를 피우게 되었는데, 나중에 태도를 바꿔서 연국과 같이 우리를 치면 어떻게 하나요?”
이들은 생각에 잠겼다. 부화의 뜻을 깨달을 것이다….
* * *
사해의 수행자들이 일정 위치까지 돌아간 후, 인원들이 일자로 쭉 늘어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목표가 걸려들기를 기다렸다. 일단은 칠국 세력이 어디 있는지 파악하기 위한 준비였다.
우유도에게 의형제들이 같이 있기는 했지만, 목표를 찾는 상황에 대해서 지금 우유도는 아무것도 몰랐다. 어느 세력을 찾았고, 어느 세력을 찾지 못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모든 상황은 사해의 수행자들이 통제하고 있었다.
며칠의 시간이 지나고, 퍼져나간 사람들이 돌아와 보고했다. 곧 홍개천이 우유도를 찾아와 아주 실감 나게 말했다.
“동생, 목표를 찾았네.”
“오!”
곧 우유도의 얼굴에 활력이 돌았다. 오랫동안 난리를 피웠는데, 드디어 시작된 것이다.
일행은 빠르게 사람들을 모아 그쪽으로 달려갔다. 누군가가 목표 뒤를 쫓고 있었다. 그는 목표를 쫓는 동시에, 뒤에서 따라올 수 있게끔 표식을 남기고 있었다.
구역이 너무 넓다 보니,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쪽에서 목표가 있는 곳까지 찾아가는 데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틀을 쫓고 나서야 목표를 찾을 수 있었다.
목표에 접근한 후, 일단의 사람들이 밀림에 숨어 영종을 수색하고 있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하지만 곧 우유도는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하고 뒤돌아 물었다.
“연국 사람?”
우유도가 모를 수 없었다.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영종을 채집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연국 자금동의 사람이었다. 사람은 볼 것도 없고 문파의 복식만 보아도 알아볼 수 있었다.
홍개천이 즉시 일행을 이끈 사람에게 호통쳤다.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것이냐. 연국 사람과 조국 사람도 분간하지 못하는 것이냐?”
“제가 실수했습니다. 다 제 잘못입니다.”
일행을 이끈 길잡이가 연신 용서를 빌었다. 홍개천이 또다시 우유도에게 말했다.
“동생, 지금까지 움직이는 게 쉽지 않았으니, 그냥 연국 쪽부터 손을 쓰는 것은 어떤가?”
우유도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곧 부화를 비롯한 사람들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고 눈살이 펴졌다. 뭔가를 깨달은 것이다. 자신들이 찾은 사람들이 누군지 이들이 어찌 모를 수 있단 말인가? 자금동의 복식이 저처럼 명확한데, 지금처럼 오래 감시하면서 조국 사람으로 착각한다고?
우유도는 자신도 모르게 냉소 지었다.
“나에 대해서 안심하지 못하고 떠보는 것입니까?”
무조행 등 삼 인은 즉시 경각심을 높이며 주위를 살폈다. 홍개천이 조금 당황했지만, 차분히 말을 받았다.
“동생, 무슨 말을 그리….”
부화가 손을 들어 홍개천에게 설명할 필요 없다는 손짓을 하고는 이어 말했다.
“동생, 솔직히 말하지. 도대체 동생이 정말로 우리와 한편인지, 아니면 연국과 한편인지, 최소한 우리도 그걸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아?”
“그래서 나를 지금 연국 쪽 사람이 있는 곳에 데려왔단 말입니까? 누님, 지금 이건 저를 난처하게 하는 겁니다.”
“나는 그 말을 이해 못 하겠군. 자넨 일등을 하려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자네가 일등을 하도록 우리가 대신 수고해주고 있지. 그러니 이 정도의 확신도 얻지 못한다면, 어찌 우리가 피 흘려 수고를 해줘야 한단 말인가? 자네에겐 이 정도 일조차 난처한 일이 된단 말인가?”
“저는 연국 수행자입니다. 앞으로 연국에서 자리를 잡아야 하는데, 일을 너무 극단적으로 처리하면 돌아갈 수 없지 않겠습니까.”
부화가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금 동생의 말이 서로 모순되는 것을 알고 있지? 일등을 하고 싶다면, 당연히 영종을 많이 모을수록 좋지 않겠어? 만약 저들을 놓아준다면, 네 위험이 늘어나겠지. 우리도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야. 그냥 이렇게 헛고생할 수는 없지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