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4화. 놀라 눈물을 흘리다
안보여 앞에 멈춰선 우유도는 또다시 발을 들어 그녀의 등을 밟았다. 그렇게 너무나 손쉽게 그녀를 다시 땅에 처박아, 일어나지 못하게 했다.
우유도는 혈흔이 낭자한, 낭패한 모습의 안보여를 차가운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가 아침에 했던 화장은 이미 지워져 있었고, 단정한 머리카락도 완전히 흐트러져 있었다. 온몸에 잡초를 두르고 있었고, 행색이 거지와 다름없었다. 그녀의 도도한 아름다움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고, 금단방 이 위의 존엄은 이미 온데간데없이 잃어버린 후였다.
우유도의 발아래, 발버둥 치고 있는 그녀를 보며 우유도가 물었다.
“말해, 누가 네게 사주했지?”
저런 사람이 자신을 밟고 있다니! 안보여는 수치스러운 마음에 소리쳤다.
“그냥 죽여라!”
죽어도 승복하지 않겠다는 태도였고, 안보여의 눈빛만큼은 아직도 살아 있었다.
“호오.”
우유도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앞쪽에 있는 한 흙더미에 잠시 시선이 머물렀다. 그리고 다시 발아래 있는 안보여를 보더니 말했다.
“그렇게 안 보이는데 기개가 있군! 사실 나는 싸우고 죽이는 걸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야. 강호를 거닐면서, 바람을 만나고, 비를 만나고, 죽고 사는 것을 수없이 목격했지. 그리고 서서히 남과 어울려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
덕분에 ‘자비를 베풀 수 있을 때, 베풀어야 한다’는 말의 진리를 깨달았지. 마음도 많이 약해졌고 말이야. 말로 풀지 못할 일이 없는데, 왜 굳이 피비린내를 맡고, 일을 난폭하게 처리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당신을 너무 심하게 대하고 싶지 않은 내 고충을 이해해 줄 거라고 믿어.”
안보여는 헛웃음을 지었다. 이놈은 진짜 미친놈인가 싶었다. 결국, 참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고양이 쥐 생각하는 격이군! 죽여라, 지금 나를 죽이란 말이다!”
“꽃처럼 아름다운 당신에게 얼마나 많은 남자가 구애했을까? 당신 능력으로, 좋은 남자를 찾아서 알콩달콩 살 기회도 있었을 거야. 그게 아름다운 여자들이 누릴 수 있는 큰 복이기도 하지. 칼에 피를 묻히는 일은 당신처럼 아름다운 여자들이 할 일이 아니야. 생각해봐. 사랑하는 남자와 꽃과 달을 벗 삼아 서로 행복하게 지내는 나날들이 얼마나 좋을지 말이야. 그러니 왜 죽으려고 그러는 거야. 그렇지 않아?”
하지만 안보여는 계속해서 욕설을 퍼부었다.
“남자는 다 똑같아. 너라고 해서….”
아직 안보여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우유도가 안보여의 등을 강하게 밟아 말을 끊었다.
“거기까지! 여자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질리도록 들었지. 그래 봤자, 결국은 남자가 무정하다는 이야기겠지.”
우유도는 손에 든 검으로 안보여의 얼굴에 붙은 머리카락을 치우고는 말했다.
“여자의 눈에는 남자들이 쓰레기로 보이겠지만, 남자들의 눈에는 여자들이 천박해 보이기도 해. 그러니 누가 옳은지, 누가 그른지 이야기하는 건 아무 의미 없어.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야. 알겠지만, 이곳에는 피비린내를 맡고 달려올 맹수가 아주 많지.”
안보여가 분노해 소리쳤다.
“네놈이 뭐라도 된다고 그러는 것이냐?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해라!”
“좋은 말로 해도 듣질 않는구나. 상관없겠지!”
우유도는 검을 들어 그녀의 얼굴에 들이대고는 말했다.
“네가 했던 말 중에, 깔끔한 걸 좋아한다고 했던 말이 기억나는군. 네 손을 더럽히기 싫으니 고분고분 협조하라고 했었지. 그렇게 날 협박했었어. 기억나?”
그 말을 듣고, 뭔가를 깨달은 안보여는 엎드린 채로 자신도 모르게 손을 움츠렸다.
하지만 그것보다 우유도가 먼저 움직였다. 우유도의 검이 번쩍하더니,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대로 검을 바닥에 꽂아 넣었다. 그야말로 지독할 정도의 단호함이었다.
“악!”
바닥에 쓰러진 안보여는 하늘로 고개를 치켜들고 고통에 소리쳤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옥처럼 고운 손이 바닥에 박힌 것이다. 우유도가 검으로 그 손을 꿰뚫었다. 검의 삼분지 일이 바닥에 박혀 들었다.
좋은 말로 풀자던 사람이 바로 태도를 바꿔 독수를 썼다.
우유도의 표정은 여전히 변한 게 없었다. 그는 등을 밟고 있던 발을 치웠다. 그리고 검에서 손을 떼고는 뒤고 두 걸음 정도 물러나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나는 싸우는 게 싫어. 사실, 죽이는 건 더욱 싫어하지. 그런데 그토록 네가 죽고 싶어 하니, 기회를 주도록 할게. 그 손에 박힌 검으로 자진하도록 해. 시신은 황야에 널브러지지 않도록 내가 잘 묻어 주도록 하지. 원한을 덕으로 갚다니, 이 정도면 괜찮지 않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안보여는 몇 번이나 일어나고자 발버둥 쳤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손이 바닥에 박혀 있으니 일어나기도 쉽지 않았다.
우유도는 옆에서 그 모습을 서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건곤장을 맞고도 지금까지 견디다니! 그것을 본 우유도는 안보여의 경지가 정말로 심후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결국, 한참 후에 안보여는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바닥에 반쯤 무릎을 꿇고 앉아 다른 손으로 박혀 있는 검병을 잡고 뽑아 들었다. 그녀는 고통에 이를 악물고 신음했다.
나머지 한 손이 자유를 찾았지만, 고통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녀는 검을 들어 목에 가져다 대었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자진할 수 없었다. 이렇게 그냥 죽어버린다고?
우유도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의 안색이 변하는 것을 지켜봤다.
결국 갑자기, 안보여가 미친 것처럼 검을 들고 우유도에게 쏘아져 왔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상황으로 우유도를 상처 입힐 수 있을 리 없었고, 우유도에게 가볍게 검을 빼앗겼다.
바닥에 쓰러진 안보여는 고통과 절망에 몸부림쳤다.
“개 같은 년, 죽을 용기도 없으면서 감히 내 앞에서 허세를 부려?”
우유도가 갑자기 분노했다. 손을 뻗어 안보여의 복부를 한 대 갈기고는, 머리카락을 붙잡아 일으켜 세우더니 그대로 질질 끌고 움직였다.
안보여는 힘없이 우유도의 팔을 툭툭 치며 발버둥 쳤다.
하지만 우유도는 신경도 쓰지 않고, 그대로 머리카락을 붙잡고 초원을 가로질렀다. 우유도는 아까 봐두었던 흙무더기로 향하고 있었다.
이 흙무더기는 방금까지 사람 키를 넘어서는 수풀 안에 숨겨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수풀이 우유도의 검기에 의해 모두 베어졌기에, 밖으로 드러난 상태였다. 흙무더기 근처로 다가가니, 수천 마리, 수억 마리는 될 법한 개미들이 흙무더기를 끊임없이 들락날락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것만 보아도 그것이 개미굴임을 알 수 있었다.
우유도는 안보여를 그곳으로 끌고 가더니 흉악한 얼굴로 그녀에게 눈앞에 있는 개미굴을 확인하게 했다.
안보여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곧 경악하며 소리쳤다.
“뭐 하려는 거야?”
우유도는 아무 말 하지 않고,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머리를 흙더미에 처박았다.
퍽!
안보여의 머리가 흙더미에 부딪히며 강제로 개미굴에 집어 넣어졌다. 머리가 흙덩이 안에 들어간 채로, 안보여의 사지가 발버둥 쳤다.
개미 집안에서 비명에 가까운 ‘우우’ 하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그녀가 충분히 개미굴을 맛보기 전, 우유도가 안보여의 머리를 다시 끄집어냈다.
수많은 개미가 얼굴과 머리카락 사이를 기어 다니고 있었다. 그 모습은 보기만 해도 두려울 정도였다. 심지어 개미 중에 몇 마리는 이미 그녀의 몸에도 들어가 기어 다니고 있었다. 안보여는 미친 듯이 고개를 저으며 개미들을 떨쳐내려고 했고, 심지어 온몸을 버둥거리며 몸에 붙은 개미들도 떨쳐내려 했다. 이미 체면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었다.
우유도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붙잡은 채, 그 앞에 쭈그리고 앉더니 귓가에 그녀의 얼굴을 가져다 대고는 말했다.
“예전에 땅굴을 파는 일을 했었지. 나중에 깨달은 건데 말이야. 산사람이 죽은 사람처럼 사는 게 가장 두려운 일이더라고. 예전에 내가 너 같은 여자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알아? 쉽게 죽여주지도 않았어. 그녀를 땅에 묻고는 관을 통해서 음식을 먹여주었지. 그렇게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었어. 땅속에서 움직이지도 못한 채로 계속 살아 있게 했지. 사흘이 되지도 않았는데, 내가 묻는 말에 뭐든지 대답하더군. 그건 나중에 천천히 맛보게해줄게, 지금은 우선 이 개미 맛 좀 느긋하게 보도록 해.”
우유도는 빙그레 미소짓고는, 법력으로 근처에 있던 나뭇가지 하나를 손으로 당겨왔다. 나뭇가지를 부러뜨려 적당한 크기로 만들고는, 안보여의 입에 가로로 나뭇가지를 집어넣었다. 그렇게 그녀의 입을 강제로 벌려 다물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다시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개미굴에 머리를 집어넣으려 했다.
그 순간, 눈을 부릅뜬 안보여가 미친 여자처럼 웅얼거렸다.
“마…. 마하께….”
우유도가 멈췄다. 손가락 두 개를 안보여의 입에 집어넣고 나뭇가지를 꺼내고는 웃으며 물었다.
“뭐라고? 잘 못 들었어.”
“말할게요!”
흙으로 범벅이 된 안보여의 얼굴에서 눈물이 흘러, 흙 가운데 물줄기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우유도의 협박에 놀라 눈물, 콧물 흘리며 울었다.
“동백이에요. 연국 대사도 동백이 당신을 죽이라고 했어요!”
동백? 눈살을 찌푸린 우유도는 안보여의 몸을 뒤로 당겨 넘어뜨렸다. 이후, 법력을 이용해 장풍을 그녀에게 출수했다. 거센 바람이 그녀를 매섭게 훑었고, 그 몸에 붙어 있는 흙과 개미들이 대부분 떨어져 나갔다. 남아 있는 개미는 그녀가 알아서 털어냈다.
그러나 쉴 틈을 주진 않았다. 그녀의 멱살을 붙잡고는 질질 끌며 개미굴에서 멀어졌다. 개미굴에서 멀어진 후, 우선 그녀의 몸에 금제를 가했다. 그 후에야 상처를 지혈해주었고, 몸을 일으켜 세운 후, 그녀의 등에 손을 올렸다.
잠시 후, 건곤결 때문에 그녀의 체내에서 격하게 충돌하고 있던 차갑고 뜨거운 두 가지 기운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사실, 안보여에게 이 정도 상처는 견딜 만한 것이었다. 금단방 이 위에 올라오기까지 그녀도 험한 전투를 적지 않게 겪었기에, 이 정도 상처는 겪어본 적이 있었다. 다만 그녀를 두렵게 한 것은 바로 그녀의 체내에 있던 차갑고 뜨거운 기운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것이 사라지게 되었고, 그제야 안보여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비로소 죽음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알게 됐고, 자기도 모르게 안심되기 시작했다.
고통에서 벗어난 안보여는 큰 짐을 내려놓은 듯, 낭패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멍청하게 넋이 나가 있었다.
살려달라고 비는 그 순간이 떠올랐다. 금단방 이 위의 자존심이 철저히 무너진 것이다. 우유도는 검을 짚고 그녀 앞에 서서 물었다.
“동백이 보냈다고? 상건웅의 지시를 받은 건가?”
안보여는 실의에 빠진 채, 멍한 얼굴로 대답했다.
“상건웅? 모르겠어요. 제가 천도비경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들은 후, 갑자기 동백이 연락해왔고, 당신을 죽이라고 했어요. 절대로 살아서 나가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어요. 왜 그래야 하냐고 물으니, 이건 기회라고, 당신이 죽어야만 남주에 내분이 일어나고, 조정이 남주를 장악할 수 있다고 했어요.
연국과 조국이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이야기하니,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내부를 먼저 안정시키는 것이라고 말했어요! 저도 그냥 물었을 뿐이에요. 정확한 이유는 몰라요. 사실, 왜 당신을 죽여야 하는지, 크게 관심도 없었어요.”
“당신의 신분과 지위라면 자유롭게 살 수 있었을 터. 그런데 어째서 다른 사람의 사냥개가 된 것이지? 어째서 그의 말을 고분고분 듣는 거야?”
“금단방 이 위라 해도, 산수는 산수일 뿐. 제대로 된 취급을 받을 수 없어요. 일개 산수가 돈이 없다면 어떻게 자유롭게 살 수 있겠어요? 지금껏 동백의 상납을 받아 왔고, 그는 저에게 항상 충분한 재력을 제공해 주었어요. 그리고 저는 그에게 문제가 있을 때마다 가능한 선에서 도움을 주었지요.”
그렇군, 우유도가 다시 물었다.
“지금은 어떻게 나를 따라올 수 있었던 거지?”
우유도는 이번에 움직이기 전, 사도요에게 세부 사항에 관해서 물었었고, 사도요는 이 여자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었다. 사도요는 저풍평이 나머지 두 문파에 이를 비밀로 했다고까지 이야기했다.
그래서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풍평이 다른 사람에게 비밀로 하면서까지, 어째서 통제할 수 없는 이 여자를 통해서 자신을 죽이려고 한 걸까?
혹시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우유도는 사도요가 자신에게 숨기고 있는 것이 있는지 의심했다. 그것도 아니면 안보여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있는 것인가? 그러니 이건 반드시 파악해야 하는 일이었다. 우유도가 어떻게 해서든 안보여의 입을 열려고 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만동천부의 장로 여무화에요. 무슨 목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저를 찾아와서….”
안보여는 멍청하게 앉아서 여무화가 자신을 찾아왔던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우유도는 끝까지 들은 후에 지금처럼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 어떻게 해서 일어났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우유도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심정이었다. 여무화가 호의로 한 일이 하마터면 일을 그르칠 뻔한 것이었다!
다행히 안보여가 큰 이익분쟁에 얽혀 있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심계가 조금만 깊은 사람이었다면, 여무화 때문에 자신이 죽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