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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990화 (89/1,000)

990화. 방류(放流)할 것인가? (1)

태숙산악은 답답한 듯, 뒤돌아 소리쳤다.

“멍청한 놈! 연국 놈들이 숨을 수 있는데, 우리라고 못 할 것은 무엇이냐?”

그 제자는 순간적으로 무슨 뜻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계획을 성공시키고 즉시 도망치자는 말이었다. 그렇게 숨어 있다가, 출구가 열렸을 때 뚫고 나가자는 것이었다.

비록 알아듣기는 했지만, 어째 좋은 방법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 * *

오래 기다렸다. 산 중에서 오랜 시간 기다린 우유도는 드디어 엄입을 만날 수 있었다.

엄입은 겨우 네다섯 명만을 거느리고 있었다.

엄입의 뒤에 다른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한 우유도가 일단의 사람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무조행 등 삼인, 사도요, 부화, 낭량공, 단무상, 홍개천이 모두 모습을 드러냈다.

다시 우유도를 만났을 때 엄입은 원래 조금은 기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 수많은 잡스러운 사람들이 모두 그와 만나기 위해 나온 것을 보고 엄입의 얼굴이 즉시 굳어졌다.

엄입의 표정이 굳어진 이유를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는 많은 외인들에게, 우유도와 자신이 암중에 함께 모략을 펼쳤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는 의미였다. 즉, 지금 여기 있는 외인들에게 자신이 연국의 삼대 문파 중에 다른 두 문파를 배신했다는 사실이 모두 폭로됐다는 이야기였다!

만약 이 사실이 퍼져나간다면, 엄입이든지, 아니면 자금동이든지 체면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또 변고가 생길 여지가 있었다.

그 외에도 우유도가 생각보다 많은 사람을 데리고 있는 것에 비해, 엄입의 인원은 적었다. 그러니 어떤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유도는 이미 이것저것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엄입의 기분이 어떤지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마지막 관문이었다. 사람의 마음이 향하는 곳이 바로 승패의 관건이었다.

사해의 수행자들은 생사를 결정지을 선택을 해야 했다. 만약 이러한 때에 수상쩍은 모습을 보여주고 뭔가를 숨긴다면, 쓸데없는 생각을 할 수도 있었다. 당연히 사해의 수행자들도 다른 마음을 품게 될 것이다. 사해의 수행자들이 우유도의 부모도 아니고 무조건 우유도를 믿을 이유가 없었다.

여기저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했으니, 그들을 진심으로 대할 필요가 있었다!

마지막이었고,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 지금은 한마음으로 힘을 합쳐야 할 때였다.

우유도는 내부에서 벌어지는 쓸데없는 추측으로 인해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마지막 생사를 가르는 위기일수록,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지기 마련이었다. 그러니 우유도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편에 설 수 있는 확실한 믿음을 주어야 했다. 우유도는 지금 그를 돕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여야 했다!

“엄 장로님, 안색이 좋아 보입니다!”

우유도가 웃으며 포권을 했다. 엄입은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살피고는 담담한 태도로 말했다.

“먼 길이네, 여기까지 나오는 것도 쉽지 않았어.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울 수 없으니, 할 말 있으면 빨리하게.”

부화, 낭량공, 홍개천, 단무상은 혹시라도 배반당할까 봐 상대방을 세심히 관찰했다.

“알겠습니다!”

우유도가 끄덕였다.

“출구 쪽에 진, 한, 송국이 연합해서 봉쇄하고 있습니다!”

“그건 나도 알고 있네, 우리 쪽에서도 사람을 보내 조사하다가 발견했네.”

“그쪽은 저들의 봉쇄를 뚫어낼 확신이 있습니까?”

“확신이 있든 없든 결국은 나가야 하지, 저들이 봉쇄하고 있는 한, 우리 쪽도 연합해서 뚫고 나갈 것이네.”

그리고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하지만 자네도 알아야 할 것은, 지금 자네들이 저지른 일 때문에, 자네들을 데려갈 수 없게 됐다는 것이네. 자네들이 나타나면 상황이 크게 바뀔 것이야. 방어하는 측이나 공격하는 측이나 모두 자네들을 그냥 놓아주지 않을 것이네! 물론, 만약 손에 있는 영종을 모두 내놓겠다면 자네들과 같이 협력해서 공격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지.”

우유도가 웃었다.

“제 손에 있는 영종을 어찌 내놓겠습니까? 전 그걸로 목숨을 구해야 합니다!”

엄입이 두 손을 펼치며 마치 그럼 나도 어쩔 수 없다는 모양을 했다.

“세상일은 무상하고, 때에 따라 바뀌어야 합니다. 시대의 흐름을 잘 판단하는 능력 있는 사람이야말로 영웅호걸이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계획에 또다시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러니 즉시 조정을 하고 대응해야 하지요. 엄 장로님께서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엄입은 거절하지 않았다. 설사 거절하려 해도 이 많은 사람 앞에서 거절할 리 없었다.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엄입이 물었다.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는가?”

우유도가 동문서답했다.

“만약 진, 한, 송국에 내분이 일어나면 먼저 누가 누굴 칠 것 같습니까?”

엄입의 두 눈이 반짝였다. 수염을 만지며 침음하던 그가 말했다.

“기운종의 제자들은 법력과 육신을 동시에 수련하지. 그 전투력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저들이 먼저 횡포를 부릴 가능성이 있네! 그러니 한국과 송국이 먼저 진국을 건드릴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야. 이득을 취하기 어렵기 때문이지! 만약 정말 내분이 일어난다면, 아마도 진국이 먼저 손을 쓰고, 한국과 송국이 연합해서 대항할 것이네!”

우유도가 끄덕였다.

“역시 영웅호걸은 보는 안목도 비슷하군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진, 한, 송국 쪽에 제가 사람을 시켜 수작을 부렸습니다…….”

우유도는 계옥덕 등 사람을 통해 처리한 일을 사실대로 알려주었다. 이 또한 사람들 마음속에 자신감을 불어 넣기 위해서였다.

부화 등 일행은 서로 눈빛을 반짝이며 시선을 교환했다. 엄입도 다소 놀라워했다. 우유도가 진, 한, 송국 상황에 대해서 아주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엄입은 우유도의 말대로 일이 진행되면 그들 세 나라 사이에 내분이 일어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엄입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자네가 그 안에 심어놓은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서 온 사람들인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각국에 밀정을 심는 건 사실 별일 아니었다. 하지만 천도비경의 명단에 임의로 자신의 밀정을 추가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걸 생각하면 두려울 정도였다. 도대체 암중에 얼마나 대단한 세력을 운영해야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심지어 우유도가 심어둔 밀정들은 우유도를 위해 저마다 목숨을 내걸기까지 했다.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는 사람들을 이렇게 많이 심어뒀다. 이렇게 하려면, 대체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할까? 초려산장이 세력을 일으킨 지 몇 년 되지 않았다. 그런데 대체 어디서 이렇게 많은 인력과 물력을 동원할 수 있었단 말인가?

엄입의 위치에서 보면, 이건 신진 세력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우유도 배후에 다른 세력이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중에 자금동에게 다 설명을 해 드릴 겁니다! 그러니 더 묻지 말아 주십시오.”

엄입도 더 묻지 않고 원래 주제로 돌아왔다.

“자네 말은 그들 세 나라가 한창 세력을 소모했을 때, 우리 쪽에서 공격해 들어가란 말인가?”

“틀렸습니다. 기다릴 것 없이 내분이 일어나는 즉시 연, 위, 제국을 이끌고 공격해 들어가야 합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내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해도, 다른 사람들은 적들의 세력이 아직 온전할 때 정면 대결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네, 그러면 치러야 하는 대가가 너무 커지니 말이야. 저들이 모두 내 수하라도 되는 줄 아는 건가? 내가 말하면 저들이 그냥 따르기라도 한다던가? 저들을 설득할 방법이 없네!”

“설득? 설득할 필요 없습니다! 더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 쓸데없이 설득하는 데 힘을 쓸 필요 있겠습니까? 엄 장로님은 다른 세력은 신경 쓰지 말고, 자금동의 사람을 이끌고 달려나가면 됩니다. 저들은 자금동이 수상쩍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자연스럽게 뒤를 따를 겁니다. 그러니 그들을 설득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당당한 엄 장로님께서 그 정도 능력도 없지는 않으시겠지요?”

“…….”

엄입은 말이 턱 막혔다. 지금까지는 어느 정도 우유도의 사고를 따라갈 수 있었는데, 마지막 말에 이르러서는 그러지 못했다. 너무 갑작스럽게 우유도의 사고를 따라가려다 보니,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부화 일행도 서로를 바라보았다. 우유도의 방법은 간단하고도 투박했다. 다만, 정말 우유도의 말대로 될지, 부화 일행도 확신할 수 없었다.

무조행은 무뚝뚝하게 침묵했고, 운희는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이들이 우유도의 말을 듣고 납득하지 못했음에도 침묵하고 있는 이유는, 지금껏 우유도의 말이 틀린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엄입이 한참이 지나 정신을 차리고는, 솔직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게 정면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위국과 제국은 그렇게 할 리 없네. 나도 자금동의 제자들에게 책임이 있으니, 제자들의 생명을 함부로 위험 속으로 밀어 넣을 수 없네! 좀 더 정확히 설명해 주게.”

“그게 어떻게 함부로 밀어 넣는 것입니까?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으시는 겁니까? 정면으로 싸우라는 말이 아닙니다. 가서 도우라는 겁니다. 진국이 한국, 송국과 싸움을 하는 순간, 가서 한국과 송국을 도와 진국을 치십시오! 여러분이 중요한 순간에 나타나 소리 몇 번 지르고 힘을 보태주면 됩니다.”

“어찌 그게….”

“끝까지 들어보십시오. 진국이 가진 영종이 적지 않다는 것을 우리도 알고 있다, 그러니 힘을 합쳐 함께 진국을 치자,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그 이후, 진국이 가진 영종을 빼앗아 공평하게 나누자고 그들을 유혹하십시오. 어차피 저들 사이에 이미 의심이 크게 일어난 상태이니, 엄 장로님의 말에 혹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엄입의 입이 벌어졌다.

“한국과 송국은 진국의 기습을 당한 이후이니, 당연히 크게 분노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자금동이 뭐라고 하든 분명 승낙할 겁니다. 승낙하지 않을 이유도 없습니다! 승낙 안 하면 진국에 의해 큰 손해를 보게 생겼는데,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협력하지 않고 배기겠습니까? 그러니 확실히 어부지리를 챙길 수 있습니다!”

엄입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진국이 가진 영종을 빼앗은 후에 이를 각국과 나누란 말인가?”

우유도는 엄입이 치매에 걸린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곧 정말 희한한 사람을 다 보겠다는 듯이 말했다.

“정말 진국 손에 있는 영종을 빼앗으려는 겁니까?”

엄입이 의아해했다.

“그게 무슨 소린가? 가서 빼앗으라고 하지 않았는가?”

“하! 정확히 알려드리겠습니다. 그건 그저 연, 위, 제국이 결정적인 순간에 자금동과 같이 손을 쓰게 하려는 유인책에 불과합니다. 아니면 결정적인 순간에 진국을 도망치게 하려는 기세라고 볼 수도 있지요! 대충 싸우면 그만입니다. 자금동도 너무 격하게 싸우지는 마십시오. 진국을 완전히 죽이면 안 됩니다. 적절히 방류해야 합니다. 적당한 때에 도망칠 수 있게 그들을 놓아줘야 합니다!”

부화 일행은 또다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한국 송국과 힘을 합쳐 진국을 공격하라고 하더니, 이제는 적당한 때에 또 진국을 놓아주라 하고 있었다. 대체 정확히 뭘 하려고 하는지를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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