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9화. 곧 돌아갈 시간
“잘 전달했느냐?”
한 제자가 우유도에게 조용히 다녀온 것을 보고, 엄입이 즉시 물었다.
엄입은 이 제자에게 명하길, 우유도에게 안보여를 처리하지 못한 사실을 전달하라 했었다. 안보여가 도망갔으니, 우유도에게 혹여나 있을 일을 대비해 미리미리 준비하라는 소식을 전하게 한 것이었다.
그 제자가 조용히 대답했다.
“전달했습니다.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유도가 사부님께 한 가지 말을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물건을 이미 확보했다고 합니다.”
엄입이 눈을 크게 떴다. 당연히 ‘물건’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우유도는 이미 진국을 처리한 것이다.
제자가 계속 말했다.
“지금 가진 것으로 일등을 하는 것은 문제없다고 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계속 우리가 가지고 있어도 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 자신이 가진 것이 너무 많은 것도 별로 보기 좋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엄입이 제자의 말에 깜짝 놀랐다.
“그게 무슨 헛소리냐, 표묘각 인원들이 몸을 수색한 후에야 천곡을 나설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연국의 다른 문파들에게 우리가 이번에 생각만큼 많은 양을 얻지 못했다고 말한 상태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한테서 많은 영종이 튀어나온다면 뭐라 변명한단 말이냐?”
“그 부분에 대해서 이미 언급이 있었습니다. 우유도는 사부님께 당부드리기를, 사해의 수행자들이 자금동이 있는 곳을 돌파할 예정이니, 그들을 막아서는 와중에 사해의 영종을 빼앗았다고 하면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라 했습니다.”
엄입은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참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이놈의 계책은 끝이 없구나, 하지만 가히 천의무봉(*天衣無縫: 선녀의 옷에는 바느질한 자리가 없다는 뜻으로, 매사에 치밀하여 흠잡을 데가 없음을 일컫는 말)이라 할 수 있으니,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당부하라 전했습니다. 진국 쪽 길이 막혔으니, 소요궁과 영검산이 아마 다른 세력과 연합해서 등수를 쟁취하려 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우유도는 사부님께 이를 승낙하라고 했습니다. 위국과 제국을 붙잡아 놓기만 하면, 우유도의 일등 자리를 위협하는 세력이 없을 것이라 했습니다!”
엄입이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연국이 가진 세 몫에 위국과 제국의 네 몫을 더하면, 나머지 문파들이 아무리 연합해도 우유도의 등수를 위협하지 못하게 될 게 분명했다. 연, 위, 제국이 일단 연합하면, 다섯 나라가 연합할 가능성도 사라졌다.
그것을 깨달은 후, 엄입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우유도는 마지막까지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길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철저하게 끊으려 하고 있었다.
* * *
하루가 지나고, 저풍평과 산해가 어두운 얼굴을 한 채 엄입과 만났다.
세 문파에서는 각각 제자를 보내 진국의 뒤를 수색하게 했다. 이 제자들은 세 문파의 정예 제자들로서 추적에도 능한 자들이었다. 그러나 이들 모두 단서를 따라 진국의 뒤를 쫓았지만, 결국 가던 길에 표식이 끊겨 더 이상 쫓을 수 없게 됐다는 말을 하며, 다시 돌아오고 말았다. 아무리 찾아도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 말은 진국이 어디로 갔는지 잃어버렸다는 것이었다.
사실 진국은 표식 같은 걸 남긴 적이 없었다. 여기서 이들이 말한 표식은 우유도가 사람을 시켜 남긴 것이었다. 우유도에게 속아 넘어간 것에 불과했으니, 당연히 진국 사람을 찾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심지어 진국은 이미 우유도에게 전멸당한 후였다.
“엄입, 아무 문제 없다고 하지 않았소? 단서가 어디 있소?”
저풍평이 어두운 얼굴로 물었다.
“하아!”
엄입이 하늘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문제가 생긴 것 같소. 아마도 표식을 남기던 사람이 진국 사람들에게 들킨 것 같소. 그렇지 않으면 표식이 중간에 끊겼을 리 없지.”
“이제 이틀만 있으면 출구가 열릴 것이오. 그런데 인제 와서 예상치 못한 일이라고 할 참이오?”
엄입이 양손을 펼치고 말했다.
“그럼 뭘 어쩐단 말이오? 내 늙은 목숨이라도 취해야 기분이 풀리겠소?”
“그 쓸모없는 모가지 따위, 취한다고 해도 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소!”
“말씀이 좀 심하시구려!”
“그만 싸우시오!”
산해가 소리쳤다. 그리고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국의 손에 네 몫의 영종이 있소. 거기에 자금동은 미처 한 몫도 마련하지 못했으니, 진국보다 분명 적을 것이오.”
결국, 우유도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이들 세 사람은 위국, 제국과 같이 연합해서 등수를 쟁취하기로 합의했다.
* * *
마침내 천도비경이 열릴 시간이 다가왔다. 그 결과가 어찌 될지, 온 수행계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다.
물론, 수행계뿐만 아니라 각국 세력도 마찬가지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다. 천도비경의 일이 끝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중지됐던 전쟁이 다시 시작될 터였다. 그러니 어찌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한편, 백성들은 그저 두려움에 떨고, 또 탄식했다. 이들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그저 배부르고 잘 지낼 수 있으면 충분했다. 수많은 사람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은 천도비경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하지만 이들 모두, 곧 전쟁이 다시 시작될 거라는 소식이 알게 모르게 퍼져나가자, 그것 때문에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이제야 조금 숨이 트였고, 병사들의 학살과 유린에서 그나마 잠시 벗어났었다. 그런데 또 그런 고통을 겪어야 한단 말인가?
* * *
대치하고 있는 한국과 송국의 대군은 마지막으로 공방 배치를 정비하고 있었다.
정자 안,
나조는 여전히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었고, 풍관아는 옆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묵묵히 서서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하아!”
대내총관 막고가 다시 한숨을 내쉬고는, 내시들은 이끌고 떠나갔다.
황제 목탁진은 속이 타들어 갔다. 눈앞에 전쟁이 다시 시작되려고 하는데, 전쟁을 인계받은 사령관은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일단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면, 그는 나조를 불러들여야 했다. 최소한 나조는 버틸 수라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조는 황제를 실망하게 했다. 한번 넘어진 후로 재기하지 못하고 있었다!
* * *
연국과 조국 전방에 대치하고 있는 병력도 최후의 정비를 하고 있었다. 상조종과 전방에 있는 몽산명이 빈번하게 서신을 주고받았다.
“왕야, 마음이 뒤숭숭하신 것 같습니다. 혹시 곧 다시 시작될 전쟁이 마음에 걸리시는 겁니까? 만약 정말 걱정되시면, 전방으로 가시는 것은 어떠십니까.”
찻잔을 들어 상조종에게 건네며 봉약남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배가 부른 것을 보니, 임신한 상태였다.
임신한 이후, 곧 누군가의 어머니가 된다는 것 때문인지, 봉약남의 눈매는 전보다 아주 부드러워져 있었다. 여성의 부드러움이 더해진 것이다. 드디어 마음을 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상조종과의 관계에 더는 문제랄 것이 없었다. 진정한 부부가 되었다.
봉약남이 배가 불러 거동이 불편한 것을 보고, 상조종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부축해주었다. 상조종은 이전과는 비할 수 없을 만큼 자상하고 상냥한 태도로 그녀가 자리에 앉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전쟁 때문만이 아니오. 천도비경의 결과가 곧 나올 것이니, 도야가 살아서 돌아올 수 있을지 알 수 없소. 도야의 생사에 따라 남주는 분명 한차례 비바람을 맞이하게 될 것이오. 지금 나는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소! 전방의 일은, 당분간 모두 몽 사령관에게 맡길 수밖에 없소. 나는 여기에 남아서 남주에 일어날 수 있는 변고에 대해 전력으로 대응해야 하오.”
봉약남이 이를 악물었다. 사실은 몹시 걱정되었지만, 여전히 굳건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야의 능력이라면 별일 없을 거예요.”
봉약남은 정말 우유도가 무사하길 바랐다. 오늘 그녀가 남편과 화목할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우유도 덕분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과거의 은원을 따질 수 없었다. 그러니 우유도에게 고마운 마음이 마음속에 가득했다.
봉 가와 상 가의 은원, 설사 상조종이 그녀의 오라버니를 죽였다 해도, 이젠 다 지나간 일이었다. 그저 놓아주어야 했다. 사실 이런 집안에 태어난 사람들은 어떤 일에 대해서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제 봉약남은 곧 누군가의 부모가 될 것이니 미래를 생각해야 했다.
게다가 봉 가가 완전히 멸망한 것도 아니었다. 썩어도 준치라고, 여전히 적지 않은 권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니 아기가 태어나고 상조종에게 간절히 부탁한다면, 어쩌면 부모님이 편안한 노년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줄 수도 있었다.
상조종이 봉약남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추측할 수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 그 또한 우유도에게 문제가 생기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것은 이들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상조종은 거기에 대해서 별말 하지 않았다.
“당신은 몸을 생각해서라도, 쓸데없는 걱정하지 마시오.”
봉약남이 한숨을 내쉬었다.
“청아가 초려산장에 가서 소식을 기다린 지도 꽤 시간이 흘렀어요. 지금 어찌 지내고 있을지 알 수 없군요. 왕야, 청아가 도야에게 정말로 진심인 것 같아요. 만약 도야가 돌아오시면, 청아를 위해 도야에게 자그마한 언질이라도 해주실 수는 없으신가요? 도야는 똑똑하신 분이니, 모르시지 않을 거예요.”
상숙청에 관해 이야기하자, 상조종은 자신도 모르게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이마를 문지르며 말했다.
“만약 도야가 승낙하신다면 우리에게는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을 것이오. 그렇지만 어떻소? 어떻게 보아도 청아를 마음에 들지 않아, 피하고 있는 것이 뻔한데, 굳이 이야기해서 모욕을 당할 필요가 있겠소?”
“하아!”
봉약남도 머리가 아팠다. 사실, 자신이 생각해도 아가씨의 얼굴은 확실히 좀 그랬다. 또 하필이면 초려산장의 그분을 좋아하게 되다니. 눈이 높아도 너무 높은 것 같았다.
집집마다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각자의 고충이 있다는 말을, 그녀는 확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 * *
초려산장의 분위기는 날이 갈수록 긴장이 고조되어 가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다가올 결과를 한편으로는 기대하고, 한편으로는 두려워하며 긴장했다.
일단 우유도가 돌아오지 않으면, 초려산장의 사람들은 그 즉시 뿔뿔이 흩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상숙청은 수시로 멍한 얼굴로 우유도가 거주하던 정원을 배회하고는 했다.
관방의는 높은 누각 위에서 서서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치맛자락이 바람에 휘날렸고,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
원강은 눈을 뻘겋게 뜨고 초려산장 일대를 순찰했다.
원방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잘 보이지도 않았다. 맨날 불당에 숨어 목탁을 두드리며 주야로 불경을 읽었다.
유선종, 부운종, 영수산의 사람들도, 초려산장의 사람들과 자주 교류하지 않았다. 세 문파의 장문인이 천도비경에 달려간 것도 이쪽에 알려주지 않을 정도였다.
초려산장 일대의 상황이 서서히 비정상적으로 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