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4화. 약속을 번복하는 소인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 후, 엄입은 산해를 끌고 저풍평을 찾아갔다. 엄입은 저풍평과 얼굴을 마주한 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저 형, 외부인 앞에서 한 말은 저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한 말이오, 우유도가 갑자기 저 형이 있는 곳을 통해서 천도비경을 떠났소. 정말로 발견하지 못한 것이오? 아니면 고의로 그를 보내준 것이오?”
그 말을 듣자마자 산해는 문득 경각심을 일으켰다. 그리고 뭔가를 깨달은 듯 서늘한 눈빛으로 저풍평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말을 듣자마자 저풍평이 대노하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엄입이 적반하장으로 말했다.
“무슨 소리일 것 같소? 혹시 우리 뒤에서 우유도와 무슨 약속을 한 것은 아닌가 싶어서 그렇소. 혹시 지금 연기를 하는 것은 아니오?”
저풍평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개뿔! 연기하는 데 천검부까지 사용할 필요가 있겠소? 육백만 냥을 허공으로 날릴 필요가 있냔 말이오! 날짐승 한 마리의 절반이 넘는 돈을 허공에 뿌려댔으니, 누구보다 책망을 크게 받을 것이 나인데, 내가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겠소?”
* * *
다음날,
사해의 수행자들을 마중 나간 자금동의 제자가 빠르게 돌아왔다. 그리고 엄입에게 비밀리에 보고했다.
“사부님, 그들이 왔습니다.”
엄입이 즉시 조용히 경고했다.
“주위를 잘 살펴라, 다른 사람이 발견하면 안 된다.”
제자가 끄덕이며 말했다.
“이미 사람을 시켜 경계를 강화했습니다.”
사실 그도 사부가 뒤에서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큰일은 분명 그의 사부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종문의 비밀 계획일 것이 확실했다. 때문에 그는 더욱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또, 일단 손을 쓰면, 낙오된 자들에게는 확실히 살수를 펼치도록 해라, 사정 보아줄 것 없다!”
엄입이 차가운 한마디를 내뱉었다.
“헉!”
제자가 매우 놀라 물었다.
“그쪽과는 진짜가 아니라 연기하기로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엄입이 냉소 지었다.
“그쪽과 이야기한 것은 한 것이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지는 우리가 알아서 하면 그만이다. 어떻게 아무도 안 죽을 수 있겠느냐? 아무도 죽지 않으면 다른 세력에게 뭐라 변명한단 말이냐?”
사실 우유도와 같이 사해의 수행자들에게 비밀로 한 일도 있었다. 그 제자가 묵묵히 끄덕였다. 이해한 것이다.
곧, 자금동 제자의 인도 아래, 사해의 수백 명과 만동천부, 무조행 일행은 자금동이 지키는 곳으로 숨죽여 움직였다.
사해의 수행자들이 출구에 가까이 다가섰을 때, 약속된 연기를 시작했다. 사해의 수행자들이 저지선을 뚫기 위해 돌파하기 시작했고, 자금동은 그것을 막아섰다. 곧 싸움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부화, 단무상, 낭량공, 홍개천, 사도요, 무조행과 운희 모자 등 주력이 전방에서 길을 열었다.
연, 위, 제의 세력은 일부분의 인원만을 차출해 출구를 봉쇄하고 있었다. 당연히 출구를 뚫기 위한 세력이 나타나리라 생각지도 못했는데, 갑작스럽게 대량의 고수들이 나타나 공격해 들어오니, 처음부터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출구 봉쇄가 곧 뚫릴 지경에 처했다.
일단의 요마귀괴들은 만동천부의 사람들과 목숨을 걸고 비어있는 곳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부화 등 고수들은 출구를 등지고, 뒤에서 오는 수하들을 위해 후방을 막아섰다. 싸움 소리를 듣고 곧 세 나라의 고수들이 도착했다.
사해의 사람들은 곧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금동이 진지하게 자신들을 공격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자금동이 지금 자신들을 향해 진짜 살수를 쓰고 있었다!
“엄입, 약속을 번복하는 비겁한 소인 같으니!”
낭량공이 마치 다른 사람에게 알리겠다는 듯이 크게 소리쳤다. 자신들과 엄입 사이에 밀약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자 하는 것이다.
엄입이 내심 냉소 지었고,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걸렸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미 출구에 들어섰을 때, 소식을 듣고 달려오는 세 나라 세력의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었다. 부화 일행은 더는 버티기 어려웠다.
“후퇴하라!”
부화가 비통한 비명을 토해냈다. 입구를 막고 있던 고수들이 버티는 것을 포기하고 운무 속으로 몸을 날렸다. 아직 출구를 통해 빠져나가지 못한 백여 명의 사람들을 더는 신경 쓸 수 없었다.
그중에 이삼십 명은 목숨을 걸고 출구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천도비경 안에 남은 사람들의 최후가 어땠을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싸움 소리가 멈췄을 때, 엄입은 여전히 거친 숨을 몰아 내쉬고 있는 한 부상자를 발로 밟고 있었다. 엄입이 들고 있는 검이 스쳐 지나가자 피가 뿜어져 나왔다. 엄입은 한 사람도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잘려나간 사람 머리가 굴러가면서 늑대 머리로 변했다. 머리를 잃은 몸뚱이도 곧 늑대의 몸으로 변했다.
“이게 어찌 된 일이오?”
세 나라의 책임 장로가 다가와 엄입을 추궁했다.
엄입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뭐가 어찌 된 일이란 말이오?”
요선정이 강하게 말했다.
“저 많은 사해의 사람들이 이쪽을 통해 빠져나갔소. 자금동의 사람들이 눈이 멀기라도 했단 말이오, 저들이 출구에 거의 도착하고 나서야 발견하다니!”
“지금 나보고 왜 저들을 저지하지 않았는지 묻는 것이오?”
엄입이 ‘하하’ 웃으며 자문자답했다.
“저들 인원이 수백인데, 내가 왜 우리 자금동 제자들의 목숨을 걸고 저들과 싸워야 한단 말이오?”
요선정이 말했다.
“그래서 그렇게 지나가게 두었단 말이오? 지금 그렇게 설명할 참이오?”
“뭘 어떻게 하든, 그건 내 마음이오. 당신이 날 가르쳐 줄 필요 있겠소?”
조병이 대답했다.
“우리도 당신에게 뭔가를 가르쳐 주고 싶지 않소. 하지만 우리 기분을 상하게 한다면, 우리도 그냥 두고 보지 않을 것이오!”
저풍평도 마찬가지로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낭량공이 당신보고 약속을 번복하는 소인이라고 소리쳤소. 그건 어찌 된 일이오?”
엄입이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확실히 약속을 번복했소. 그게 어쨌다는 말이오?”
외부의 적보다 무서운 것이 내부의 적이라던가. 사람들은 놀라 화가 났고, 산해가 분노했다.
“엄입, 의도가 무엇이오?”
엄입은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몸을 돌려 움직이며 툭 한마디 내뱉었다.
“따라오시오.”
사람들은 서로를 돌아보았다. 엄입의 의도가 무엇인지 몰라 그 뒤를 쫓았다.
얼마 움직이지 않은 숲속, 일단의 자금동 제자들이 모여서, 다들 여러 봇짐을 열어보고 있었다. 그 안에는 자색으로 빛나는 영종이 가득 들어있었다. 자금동의 제자들이 마침 영종의 수량을 확인하고 있었다.
자금동이 그전에 영종을 숨겼다가, 지금 다시 꺼내 들어 봇짐에 정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외부인이 보았을 때는 어찌 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눈앞에 자금동이 가지고 있어야 하는 영종보다 확실히 더 많은 영종이 있었기에, 다들 의아해했다.
“이건 사해 수행자들의 영종이오?”
산해가 물었다. 엄입이 뻔뻔스럽게 말했다.
“지금은 우리 자금동의 영종이지.”
일련의 사건을 보면서, 사람들은 알듯 모를듯했다. 저풍평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엄 늙은이, 도대체 무엇을 하는 것이오?”
뭐긴 뭐겠는가? 사해의 사람들이 자금동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자금동은 그 대가를 요청했다!
사해의 사람들은 가지고 있는 영종을 대가로 지급했다. 하지만 엄입은 영종을 받은 후, 그 수량이 기대에 미치지 못함을 보고, 저들 몸에 영종이 더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 그들을 습격했다. 그렇게 하여 약속을 번복했다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엄입의 변명이었다. 전복성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사전에 우리에게 연락했다면, 같이 연합해서 그들을 전멸시킬 수 있지 않았겠소?”
“연합? 자금동 혼자서 처리할 수 있는 일이니, 어찌 여러분들을 귀찮게 하겠소!”
엄입이 크게 웃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손짓했다. 그만 확인하고 영종을 챙겨 넣으라는 뜻이다. 그리고 안색을 싹 바꾸고 말했다.
“여러분, 상금을 균등하게 나누는 것이 다소 불공평하게 느껴지오. 내가 봤을 때, 공헌이 많은 쪽이 좀 더 많이 가져가는 것이 합리적인 것 같소!”
갑작스럽게 마음을 바꾸다니, 사람들이 멍해졌다. 제국과 위국의 책임자들은 얼굴이 어두워졌다. 드디어 엄입이 어째서 사적으로 저들 요마귀괴와 결탁하려 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저 자라 새끼는 처음부터 영종을 나누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혼자서 이 영종을 삼키고자 했고, 성공했다. 이미 자금동이 영종을 손에 넣었는데, 지금 와서 빼앗기라도 해야 한단 말인가?
엄입의 말을 듣고 저풍평과 산해 또한 서로를 바라보았다. 제국과 위국의 영종을 더하면 네 몫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연국은 아마도 세 몫이 있어 보이니, 삼국이 균등하게 나눈다면, 연국이 손해 보는 것 같았다….
* * *
각국 책임자들이 한참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연국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우유도가 벌인 소란에 대한 이야기가 퍼져나가게 되었다.
그 소식을 들은 사람 중에, 경악한 채로 다리를 부들부들 떨고 있는 자들이 있었다. 바로 유선종의 황금환, 부운종의 안묘아, 영수산의 임비연이었다. 이들 세 여자는 그야말로 혼이 나갈 정도로 놀랐다.
우유도가 영검산을 상대하고, 운무 속으로 들어갔다니! 그 생사를 확인할 수 없게 됐다니!
황금환은 조등현을 만나고자 했다. 다만 조등현은 임무를 수행하고 있어 그녀를 만날 수 없었다. 결국, 참지 못한 그녀는 더는 견디지 못하고, 직접 조등현을 찾아갔다.
한쪽 구역을 책임지고 지키고 있는 조등현은 황금환이 찾아온 것을 보고 말했다.
“어찌 독단적으로 이곳에 온 것이오?”
황금환은 두말하지 않고 그대로 조등현의 품에 안겼다. 얼굴을 마주하고 꽉 껴안은 그녀가 말했다.
“조랑, 보고 싶었어요!”
황금환이 몸을 던져오자 조등현은 충동적인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성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주위를 살펴본 그가 그녀의 등을 다독이며 말했다.
“난 지금 당직을 서고 있소. 이런 모습을 다른 사람이 보게 된다면 별로 좋지 않을 것이오.”
황금환은 단지 조등현이 좀 더 자신을 생각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 안절부절못하며 말했다.
“조랑, 우유도가 비경 밖으로 나간 것 같아요. 너무 무서워요.”
조등현은 그녀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고 있었다.
“무서워할 필요 없소. 저풍평이 천검부로 그 주위를 쓸어 버렸소. 우유도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아직 알 수 없소. 게다가 설사 나갔다 해도, 일등을 그렇게 쉽게 할 수 있겠소?”
“혹시라도 살아 있다면요, 정말로 일등을 한다면요?”
조등현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걱정할 것 없소. 우유도는 우리 소요궁의 체면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오.”
황금환이 양손으로 그의 몸을 껴안고, 기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만약 살아 있다면, 정말 저를 위해 나서주실 건가요? 조랑, 저는 이미 제 모든 것을 조랑에게 주었어요. 저는 이미 당신의 여자예요. 절대 저를 버리지 마세요!”
조등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명확히 설명해 주지 않았소. 소요궁의 제자가 다른 문파의 제자를 아내로 맞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오. 까다로운 심사조건을 거쳐야 하지. 그러니 당신을 아내로 맞이한다고 약속할 수는 없소. 하지만 당신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아무 문제없을 것이오.
금환, 걱정하지 마시오. 나갈 수만 있다면, 우유도가 설사 그 어려움을 이겨낸다고 하더라도, 내가 바로 우유도를 찾아갈 것이오. 우유도뿐만 아니라, 내가 직접 유선종을 찾아가 그대의 장문인에게 당부의 말을 하겠소. 그러니….”
“하지만, 너무 불안해요!”
잠시 멈칫한 그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시오. 나 조등현이 하늘에 맹세하겠소. 만약 이 약속을 어긴다면 천벌을 받을 것이오!”
그가 독한 맹세를 하는 것을 보고, 비록 아직 긴장되고 두려웠지만, 어느 정도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정이 넘치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조랑을 위해서 아이를 낳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