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7화.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감
부근 나무 위에 있는 표묘각의 사람들은 차가운 눈빛으로 소란을 지켜보았다. 한국 백천곡의 장로 씨여가 포권을 하며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이제 곧 시한이 끝날 것이오. 그러니 여기서 목숨 걸고 싸울 이유가 무엇이겠소!”
전복성이 냉소 지었다.
“당연히 그럴 필요 없소. 우리도 문제가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으니 말이오. 다른 세력이 우리를 건들지 않으면 우리도 그들을 건드릴 생각이 없소.”
헛소리에 불과했다. 이들이 입구를 지키고 있으니, 저곳을 통과하고자 한다면 당연히 이들과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송국의 정만당이 말했다.
“지금 말다툼이 무슨 의미가 있겠소. 괜찮다면 우리가 지나갈 길을 열어 주시오!”
“어렵지 않소. 통행료만 낸다면 보내주겠소!”
여기서 말하는 통행료란 분명 저들이 가진 영종이 분명했다. 한국과 송국은 당연히 승낙할 수 없었다. 만약 정말로 그렇게 무릎 꿇고 목숨을 구걸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나가서 이번 생은 끝장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앞으로 종문에서 고개를 들고 살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의 도무봉이 소리쳤다.
“우리를 너무 업신여기는군!”
조병이 말했다.
“그 전에 우리가 당신들을 도와 진국을 상대할 때, 어째서 그런 말을 하지 않았소?”
그렇게 양측이 대립하게 되었다. 한쪽은 출구를 단단히 지키고 있었고, 한쪽은 세력이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사실 이제 곧 마지막이었다. 다들 더는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결국, 양측은 합의를 보았다.
한국과 송국의 세력이 비록 조금 처진다고 하더라도, 저들에게 목숨을 구걸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저 진국의 영종을 연국 연합이 알아서 하겠다는 승낙을 받아냈을 뿐이다. 일전 위기를 벗어날 수 있게 도와준 보답으로 진국이 나타나면 같이 도와 상대하기로 했다.
연, 위, 제는 강대한 세력을 등에 업고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 진국이 가진 영종을 손에 넣기만 하면 그들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지금 이들은 한국과 송국, 그리고 진국이 같이 연합해서 등수를 쟁취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 세 나라의 영종을 합치면 열 몫에 달했다. 지금 연국 연합이 가진 일곱 몫보다 많았다. 그러니 한, 송, 진의 연합을 막기만 하면 충분했다. 그게 안 되면 그중에 한 나라라도 붙들어야 했다. 그럼, 일등을 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게 양측은 대치하며 진국의 사람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엄입은 참지 못하고 수시로 목을 쓰다듬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기다리기 귀찮다는 느낌이 역력했다. 엄입은 진국이 나타나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대로 기다리는 것도 헛수고에 불과했다. 그렇다 해도 엄입은 하는 척, 시늉해야 했다.
우유도가 엄입에게 일찍 나오라고 당부했고, 엄입 자신도 일찍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혼자 나갈 수는 없었다.
그렇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기다렸지만, 진국의 사람들은 나타나지 않았고, 사람들은 다들 의아해했다.
엄입이 내심 쓴웃음을 지었다. 표묘각의 사람들이 다시 한번 모래시계를 뒤집으며 엄중히 경고했다.
“마지막 모래요. 이제 일각 남았소!”
현병종의 장로 유흥고가 몇몇 제자를 보내 주변을 살펴보게 했다.
빠르게 주위를 둘러본 제자들이 돌아와 보고했다. 주위에 진국 사람들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안보여를 발견했다고 했다.
지금 그 누구도 시간을 안보여에게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곧 시간이 끝난다. 안보여도 도망치지 않았고, 이들도 그녀를 건들지 않았다.
사람들은 기이하게 생각했다. 진국 잔당이 부근에 있다면 어떻게 숨어 있는 것일까? 만약 부근에 없다면? 지금 시간을 보면 불가능했다. 설마 나갈 생각이 없는 것일까?
엄입이 거리낌 없이 큰소리로 소리쳤다.
“혹시 당신들이 진국 사람들을 처리한 것은 아니오? 혹시 그들의 물건을 당시들이 삼킨 것은 아니냔 말이오?”
연, 위, 제의 사람들이 즉시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송국의 부거연이 당장에 욕설을 퍼부었다.
“개자식, 그 개 같은 눈을 뜨고 잘 보아라, 이 정도 인원으로 정말 진국과 싸웠는데 어찌 아무 손실이 없겠느냐?”
엄입이 즉시 반박했다.
“그걸 누가 알겠소?”
“우리가 만약 진국의 물건을 취한 것이라면, 천벌을….”
한국과 송국 사람들은 마음이 급한 마음에 다들 입을 열어 독한 맹세를 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자신 문파의 이름을 빌려 맹세하며, 그런 일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다.
문파의 이름으로 독한 맹세를 하는 것을 본 연국, 위국, 제국은 서로를 돌아보았다. 지더라도 기세에서는 밀리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저들이 저렇게까지 맹세를 하는 것을 보면 아마 정말 한국, 송국과는 무관한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을 끌다 보니, 마지막 모래가 모두 떨어졌다. 표묘각의 사람들은 모두 나무 아래로 내려와 운무를 향해 걸어갔다.
그 장면을 보고, 더는 지체하는 사람은 없었다. 표묘각의 사람들이 출구를 통해 나가는 그 순간, 시간이 끝났음을 의미했다. 표묘각의 사람들은 밖에서 출구를 봉쇄할 것이고, 시간을 지나 나오는 사람을 가만히 놓아둘 리 없었다.
연국, 위국, 제국의 사람들은 우르르 돌아서더니 급히 운무를 향해 뛰어갔다.
한국, 송국 사람들도 더는 이것저것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저 다급히 밖을 향해 뛰어나갈 뿐이었다. 반드시 표묘각의 사람들보다 먼저 밖으로 나가야 했다.
안보여도 날아올라 그 뒤를 쫓아 움직였다.
이해할 수 없는 진국 때문에, 시간을 그저 이렇게 쓸모없이 낭비하고 말았다. 원래라면 피할 수 없는 마지막 전투가 이렇게 없어져 버렸다.
사람들이 연달아 뛰쳐나간 후, 다른 세계의 빛이 나타났을 때, 분분히 뒤돌아보았다.
그 뒤에 표묘각의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나오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진국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천도비경 안에서 표묘각의 사람들이 나오는 것을 보고, 양쪽 절벽 위에 있던 수많은 표묘각 인원이 내려와 출구를 정식으로 봉쇄하기 시작했다. 이건 이번 천도비경이 정식으로 끝났음을 의미했다. 즉, 규정을 어기고 나중에 나오는 사람들에겐 이제 죽음만이 있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결과를 알고 있음에도 다소 의외였다. 일등을 밥 먹듯이 하던 진국이 이번에는 한 명도 나오지 못하다니?
천곡 외부에서도 소란이 일었다. 마지막 순간에 갑자기 수많은 사람이 출구에서 쏟아져 나왔다. 각 문파 사람들은 분분히 눈을 부릅뜨고 자신 문파의 사람이 얼마나 나왔는지 살펴보고 있었다.
기운종의 장문인 태숙비화의 두 눈은, 튀어나오기라도 할 것처럼 부릅떠졌다. 표묘각의 사람들이 나와 출구를 봉쇄할 때까지 기운종의 제자들은 나오지 않았다. 가슴이 철렁했다. 수염을 매만지던 손을 움켜쥐었고, 덕분에 수염 몇 가닥이 뽑혀 나갔다. 두 눈이 붉어졌고, 가슴은 거친 호흡에 급격하게 부풀어 오르기를 반복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들 문파를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 당연히 기운종의 사람들이 있는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안에서 나온 엄입은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곧 벼랑 위에서 미소를 띠고 관망하고 있는 우유도를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천검부로 난사 당하는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니. 엄입 자신도 종문에 돌아가 임무 완수에 대해 보고할 수 있었다. 가히 큰 공을 세운 것이다!
황금환, 안묘아, 임비연은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펴보고 있었다. 하지만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그들도 미소짓고 있는 우유도를 발견했다.
사실 우유도는 그녀들을 보고 있지 않았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우유도에게 그녀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신경 쓰지도 않았다.
하지만 세 여자는 달랐다. 그녀들은 절벽에 뚫린 동굴 입구에 검을 지팡이 삼아 느긋한 모습으로 서 있는 우유도의 모습을 보자마자, 그 기세가 마치 초려산장에서 보던 모습과 같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것만으로 이들 세 여자들은 간담이 서늘해지고 오금이 저렸다.
세 여자들은 그 즉시, 조금이라도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해서 자신들이 의탁한 세 남자를 찾아갔다.
이제 그녀들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은 그들 세 남자뿐이었다. 일단 우유도가 살아서 여기를 벗어나게 된다면, 남주에서 하늘을 찌르는 권세를 가진 우유도의 능력을 봤을 때, 그녀들의 힘만으로는 천곡을 나서는 순간, 죽은 목숨일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그녀들의 사문이 먼저 나서서 그녀들을 아주 처참하게 죽일 터였다. 그렇지 않으면 우유도에게 할 말이 없기 때문이었다!
황금환의 말을 듣고 조등현은 우유도를 돌아보았다. 그도 참 의외였다. 천검부로도 저자를 죽이지 못하다니!
그리고 뒤돌아 황금환의 등을 토닥였다. 뭐라고 위로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황금환은 아주 고분고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꼬마 숙녀처럼 그 뒤에 딱 붙어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지금 그녀는 극도의 공황과 불안에 빠져있었다. 천도비경에서 빠져나왔다는 것에 조금도 기뻐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아직 희망이 있었다. 그녀는 우유도가 일등을 하지 못하길 빌었다. 만약 우유도가 일등을 하지 못한다면, 우유도는 반드시 죽음을 맞이할 터였다!
사실, 자신들이 몸을 의탁했다고는 하나, 세 남자에 대해서 그녀 자신들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그녀들 또한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그 남자들에게 몸을 의탁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었다. 그저 상황 때문에, 서로의 필요에의해 맺어진 관계였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 눈에 자신들이 얼마나 우스워 보일지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얕잡아 보니, 세 남자 또한 그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을 리 없었다. 결국, 어떻게 해도 세 남자가 그녀들을 버릴까 봐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 와 자신들의 결정을 후회할 수도 없었다. 우유도가 연국에서 쫓겨날 당시, 정말로 그 모습이 초라해 보였고, 의지할 데가 없어 보였다. 그러니 그때 따라갔다 한들, 지금보다 더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들이 모르고 있는 것이 있었으니, 우유도가 많은 사람들을 천도비경에서 안전하게 끄집어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이걸 알았다면, 아마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갔을 것이다.
이제 그녀들은 어쩔 수 없이 모든 희망을 눈앞의 남자에게 의탁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지금 그녀들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한편, 우유도는 그 세 여자에 대해서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다른 여자를 주목했다. 안보여!
우유도는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단지 어찌 된 일인지, 저렇게 많은 사람이 출구를 봉쇄하고 있는데도, 저 여자가 순조롭게 나올 수 있도록 엄입이 내버려 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안보여도 우유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과 마주치더니 가슴이 철렁했다.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감이 마음속에 솟구쳐 올랐다.
하지만 곧 빠르게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이곳은 천곡이었다. 우유도라 해도 천곡에서 문제를 일으킬까?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다시 마음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자신은 이미 본 적이 있었다. 천도비경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우유도가 천곡에서 문제를 일으킨 것을 본 것이었다!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볼 때, 다른 벼랑 위에 서 있는 중립 세 문파의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들은 분명 서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한 줄기 비통함이 가슴에서 솟아올랐다. 일단 이곳을 벗어나면, 자신을 기다리는 것이 어떤 상황일지 안보여도 알고 있었다. 공개적으로 중립 세 문파를 음해했으니, 저들이 그녀를 놓아줄 리 만무했다. 천곡을 벗어나면 분명 저들이 추격을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