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7화. 협상
“무조행?”
관방의가 깜짝 놀랐다. 무조행이 어쩌다가 같은 편이 되었단 말인가?
무조행은 사실 어쩔 수 없었다. 천도비경에서 난리를 치며, 우유도와 같이 수많은 세력에게 원한을 샀다. 비록 암중에 뒷배가 있다고는 하나, 공개할 수 없는 세력이었다. 덕분에 이 넓은 세상에서, 칠국의 원한을 사게 되었다. 그러니 자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목이 달아나도 탓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우유도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무조행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상황이 변했기에, 결국 배후에 있는 사람에게 연락해 상황을 알릴 수밖에 없었다. 무조행 배후에 있는 사람 또한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무조행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렇게 우물쭈물하는 사이, 결국 무조행은 우유도와 같이 움직이게 되었다.
사실 마교 또한 우유도를 별로 나쁘게 여기진 않고 있었다. 그렇기에 무조행과 우유도의 동행을 허락한 것으로 보였다. 이는 아마도, 칠국 내에 우유도가 혼란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인 듯했다. 어쨌든 마교로서는 그런 혼란이 나쁠 리 없었다.
게다가 사실 다른 방법이 없기도 했다. 보이는 세력의 보호가 없다면, 무조행은 큰 위험에 처할 것이 분명했다. 덕분에 당당히 금단방 육 위에 있는 고수가 초려산장에 의탁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무조행 자신은 이런 상황에 짜증이 났다. 어째 우유도 이놈을 만난 후부터는 떨쳐낼 수 없는 것 같았다.
무조행은 이제 자기 뜻대로 편히 살 수 없었다. 우유도가 무조행을 끌어들이고는 배불리 먹이고 그냥 모시고 살려 하겠는가? 우유도가 무조행을 끌어들인 이유는 바로 그가 잘 싸우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천도비경 안에서 무조행은 우유도를 도와 싸웠다. 그런데 천도비경을 나와서도 우유도를 위해 싸워야 하는 처지가 되었으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무조행은 사실 조금 답답한 마음이 들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어쩔 수 없었다. 마치 호랑이 등에 올라타서 내리기 어려운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다쳤어?”
우유도의 왼손에 흰 천이 감겨 있는 것을 보고 관방의가 물었다. 우유도가 담담히 웃었다.
“별것 아니야.”
관방의는 우유도의 안색을 세심히 살폈다. 하지만 딱히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곧 두 눈을 번쩍이며 손을 뻗으며 말했다.
“내가 준 천제단은?”
우유도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줘 놓고 다시 빼앗아 가는 거야?”
관방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그건 하나에 백만 냥짜리 영단이야. 만약을 대비해서 준 거지. 별것 아닌 부상에 사용할 필요 없으니 당연히 돌려받아야지.”
“어휴!”
우유도는 매우 곤란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별말 하지 않고, 요대에서 천제단이 들어있는 납환을 꺼내 관방의에게 던져 주었다.
관방의는 받아들고 살펴보았다. 천제단인 것을 확인하고는 큰 부상이 아니라는 우유도의 말을 믿었다. 그렇지 않으면 천제단을 사용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눈앞에 있는 우유도는 돈을 아끼는 사람이 아니었다. 좋은 것이 있는데 그것보다 안 좋은 것으로 대충 넘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무조행과 운희는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두 사람은 우유도가 중상을 입었고, 며칠간의 정양을 통해서 안색을 회복했음을 알고 있었다. 또 서해요왕이 우유도에게 천제단을 한 알 선물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납환을 품에 넣은 관방의가 다시 물었다.
“천도비경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우유도가 쓴웃음을 지었다.
“조금 위험하고 복잡한 일이 있었지. 한두 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워. 나중에 이야기해 줄게.”
우유도가 무슨 말을 할까? 자신이 얼마나 똑똑한지, 얼마나 대단한 수완으로 각 세력을 가지고 놀았는지, 그걸 다 이야기할까? 그렇게 자랑할 필요가 있겠는가?
우유도가 말하지 않는 것을 보고, 관방의는 눈을 치켜떴다. 더 물을 필요도 없었다. 우유도는 항상 이랬다. 말하고자 하지 않는 일은 아무리 물어도 소용이 없었다.
어쨌든, 어느 정도 감격스러운 재회가 끝나자, 우유도는 초려산장의 상황에 대해서 물었다. 대부분 우유도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대략적인 상황을 모두 이야기한 후, 관방의는 불만스럽게 말했다.
“다들 줏대 없는 사람들이야. 기회주의자이기도 하지.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야. 그들을 어떻게 처리할 거야?”
우유도가 담담히 말했다.
“사람들은 모두 갈림길을 만나고, 선택해야 할 때가 있어. 다들 너무 힘든 길을 가고 싶어 하지 않지. 어려운 길을 만나면 다들 머뭇거리고 발걸음을 멈추지. 어떤 길을 갈 것인지 고민하는 건 인지상정이야. 그저 여전히 같은 길에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지. 그런 걸 문제 삼는 건 아무 의미 없어.”
관방의가 불쾌한 기색으로 말했다.
“그럴 줄 알았어. 이리 와봐, 할 말이 있어.”
그리고는 우유도의 팔을 잡아끌고 한편으로 움직였다.
“무슨 일인데 이러는 거야?”
“붉은 원숭이 일이야.”
원강의 일이라는 것을 듣고 우유도는 고분고분 관방의와 같이 움직였다. 한쪽에 도착한 관방의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떤 일들은 다른 사람 앞에서 말하기 곤란해서 말이야. 그 ‘소조’가 무슨 신분이었는지, 넌 상상도 못 할 거야.”
우유도가 조용히 관방의를 바라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관방의가 잠시 한숨을 내쉬더니, 한 글자, 한 글자 정답을 공개했다.
“송국 대도독 나조의 부인, 풍관아였어!”
우유도는 눈을 한번 치켜뜨더니 다시 찌푸렸다.
“그렇다면 효월각의 사람이 아니라는 건가? 내가 쓸데없는 걱정을 했군. 풀어주도록 해. 아니, 이미 풀어줬나?”
“풀어주고, 안 풀어주고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어. 네가 시키는 대로 일을 처리했거든. 원숭이와 풍관아가 술을 마시고, 몸을….”
관방의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 주고는 마지막에 퍽 서럽다는 듯이 말했다.
“본녀는 평생에 이런 일을 처음 해봤어. 그리고 그 일 때문에 원숭이한테 따귀를 맞았지. 왜 날 때리는 거야? 때려도 널 때려야 하는데 말이야! 거기다 네 체면을 생각해서 반격도 하지 않고, 그대로 따귀를 맞았다고!”
원숭이가 나조의 부인과 몸을 섞었다고? 우유도의 얼굴에 부들부들 경련이 일어났다. 확실히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그 여자가 나조의 부인이라니,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송국 쪽에서는 아무 반응 없어?”
관방의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어.”
“호오!”
우유도는 다소 의외였다. 이런 일이 있었는데, 송국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다니! 다소 비정상적으로 느껴졌다. 듣기로 나조의 부인은 능소각의 사람이라고 했다. 아마 사실일 것이다. 그러니 능소각이든 나조든 이런 큰 치욕을 그냥 참을 리 없었다.
잠시 침묵하더니 우유도가 한숨을 내쉬었다.
“문제가 좀 심각해진 것 같군. 오량산에 연락해서 송국 경성 쪽에 있는 밀정에게 연락하라 해. 풍관아에 관한 상황을 알아보라 전해.”
“아무 일 없으면 그냥 놔두는 건 어때?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 없잖아. 당당한 일도 아니니, 그냥 과거의 일로 묻어 두자고.”
우유도가 쓴웃음을 지었다.
“홍랑, 원숭이가 어떤 사람인지는 내가 더 잘 알아. 나쁘게 말하면 아주 고지식한 사람이고, 좋게 말하면 도의를 중요시하고, 책임지는 남자라고 할 수 있지. 만약 그 여자가 잘 지내고 있으면, 원숭이는 계속 침묵할 거야. 당연히 가서 귀찮게 하지 않겠지.”
“하지만 만약 그 여자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원숭이는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홍랑이 움직이지 않아도, 아마 원숭이는 진즉에 오량산의 밀정을 동원해서 주시하고 있었을 거야. 만약 정말 무슨 일이 있었음에도 가만있는 거라면, 그건 단지 내가 돌아오지 않았기에 움직이지 않았던 것뿐이야.
초려산장이 얽히는 것을 꺼린 것이지. 하지만 이제 내가 돌아왔으니…. 원숭이가 그 여자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가만 내버려 둘 리 없어. 그러니 빨리 그 여자 상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어. 그래야 원숭이가 멍청한 짓을 하기 전에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할 수 있어.”
관방의는 이해했다. 즉시 허노육을 불러들여 명령을 내렸다. 허노육이 떠난 후, 관방의는 아주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그나저나, 전쟁을 갑자기 왜 일으킨 거야? 연국과 조국이 화친을 맺으려고 하고 있었지. 그런데 네가 갑자기 전쟁을 일으켰어. 사실 이건 선을 넘는 행동이야. 아마 연국 삼대 문파는 크게 진노하고 있을 거야!”
“내가 천곡에 있을 때, 조국 삼대 문파의 장로를 죽였지. 그건 조국에 있는 삼대 문파 모두에게 원한을 산 것이라 할 수 있어. 조국이 천도비경에 들어가서 전멸한 것도 그것과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지. 이미 나와 큰 원한이 생긴 거야. 그러니 전쟁을 일으키지 않으면? 문제가 썩어 곪기 전에 미리 처리하는 게 좋아.
조국의 힘은 내게 너무 큰 위협이야. 남겨 놓는다면 앞으로도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겠지. 그러니 이번 기회에 조국을 멸해야 해. 철저하게 조국 삼대 문파가 살아갈 수 있는 땅을 없애야 해!”
멸국(滅國)? 관방의는 대경실색했다. 우유도와 오래 지냈지만, 이제야 우유도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얼마나 큰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관방의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보니 효월각만 좋게 되었네!”
우유도가 담담히 말했다.
“그런 것도 아니야. 효월각은 너무 깊숙이 숨어있어. 수면 밖으로 나와야 뿌리 뽑을 수 있지!”
뿌리까지? 관방의의 머릿속에 초려산장 밖에 있는 무덤이 떠올라 물었다.
“설마 효월각이 천도비경 안에서 도움을 주지 않은 거야?”
“그거하고 이건 다른 일이야. 만약 내게 이용가치가 없었다면 그래도 나를 도왔을까? 어떻게 보면 나를 도운 것이고, 어떻게 보면 협력하고 서로 이용한 것이라 할 수 있지. 그러니 돕고 말고 할 것도 없는 거야. 정말 나를 도운 사람은 누군지 내가 모를 수 없지!”
관방의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보니 흑모란의 죽음을 지금까지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군. 도야, 지금까지 도량이 참 넓어 보이던데, 이번에는 어째서 이렇게 내려놓지 못하는 거지?”
우유도는 말투에 어떤 감정도 없이 말했다.
“홍랑, 나는 남자야. 어떤 여자가 나를 구하기 위해 죽었어. 그 일을 나는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죽어간 사람을 위해서 갚아줘야 해. 나도 무슨 일에든 얽매이는 사람은 아니야. 잊어버릴 수 있는 일은 잊어버리는 것이 더 좋겠지. 하지만 이 일이 그냥 잊어버릴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효월각이 지금 나랑 협력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게 영원히 협력한다는 의미는 아니야. 저들이 이번 거사를 성공시킨다면, 그대로 멈출 것 같아? 남주도 이대로 뒤처지지 않을 것이니, 양측은 언젠가는 충돌이 발생할 거야.”
* * *
송국 경성 조정,
연국이 조국과 전쟁을 시작한 일을 가지고 의견이 분분했다.
송국 황제 목탁진은 옥좌에 앉아 듣고 있었다. 그 얼굴은 우려가 가득했고, 정신이 다른 곳에 가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여기 오기 전, 어서방에서 대신들과 나눴던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었다.
진정한 기밀은 쉽게 비밀이 새나갈 수 있는 조정에서 의논할 리 없었다.
얼마 전 초려산장에서 보내온 소식을 받았다. 그는 몇몇 대신들과 같이 망설이고 있었다. 연국이 결정을 내리는 것에 우유도의 발언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설마 연국 삼대 문파가 그냥 장식처럼 돼버릴 리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들의 망상이라 생각했던 것이 현실이 되었다. 연국 병력이 삼대 문파의 통제를 전혀 받지 않은 상태에서 조국을 공격했다. 그 상황을 보니, 우유도가 연국 군대에 아주 큰 발언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유도가 보낸 서신에 따르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도 소용없으니 자신을 찾아오라는 말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었다.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이 들린 후, 목탁진은 몇몇 대신들과 같이 비밀리에 인원을 선발했고, 초려산장에 있는 우유도와 협상을 하기 위해 가장 빠르게 인원을 파견했다.
사실 협상이라고 하는 것도 자신들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일 뿐, 사실상은 우유도에게 간절히 부탁하기 위해 보낸 것으로, 파견할 밀사는 상당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미색, 미녀, 미인, 뭐든 송국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우유도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밀사는 그 자리에서 승낙할 수 있었다.
재물 같은 경우도, 일정 금액 안에서 우유도가 원한다면 승낙할 수 있었다.
물론, 전제는 우유도가 연국 북주의 병력으로 한국을 공격해 그들을 후퇴시켜, 송국에 대한 압박을 해소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