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화. 거짓말!
장원 입구에 도착한 후, 곽만이 막 문을 열려고 할 때, 무심이 다시 발걸음을 멈추더니 기다리라고 말하고는 물었다.
“옷을 갈아입는 것이 좋을까?”
곽만이 그런 무심을 한번 살펴보고는 말했다.
“오늘 아침에 갈아입으신 옷이에요. 아직 깨끗하니 갈아입을 필요 없어 보여요.”
“편하게 입은 것이 아니더냐. 혹시 신령을 모독하는 것은 아닐까?”
곽만이 입을 내밀고는 살짝 미소지었다.
“신령이 어디 있겠어요. 그래 봤자 무지한 백성들을 속여먹는 곳이지요. 설마 선생님은 그런 것을 믿으시나요?”
하지만, 곽만의 말에도 무심은 망설였다. 곽만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껏 어떤 일에도 정말로 이름처럼 무심하던 자가, 이 순간만큼은 큰 고민에 휩싸인 것 같았다.
신묘에 가서 그 사람을 만나야 할까?
무심의 마음속에 의문이 가라앉질 않았다. 제경에 온 지 오래되었다. 지금까지 그 사람을 만나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영왕이 곁에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렵게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입구에 도착한 무심은 다시 망설이고 있었다.
무심이 별다른 말이 없자, 곽만이 문을 열었다. 무심은 자신이 어떻게 그 뒤를 따라 나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두 사람이 막 골목 입구를 나설 때, 벽에 기대앉아 있던 노인이 갑자기 소리쳤다.
“무심 선생님과 곽만 아가씨인가요?”
노인은 바로 안보여였다. 그녀는 당연히 무심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곽만이 오가는 것은 보았었다. 그러니 무심의 신분을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지금 곽만 옆에 있는 자는, 장원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적이 없는 자였다. 그러니 장원에서 항시 머물던 자일 터. 그렇게 오래 머물 수 있는 자가 무심 외에 누가 있겠는가?
무심과 곽만이 같이 돌아보았다. 곽만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당신은 누구죠?”
그 전에 골목 입구에 이 노인이 있는 것을 보았었다. 다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상대방이 갑자기 두 사람의 이름을 부르자, 즉시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저는 산수 안보여에요. 무심 선생님, 저를 살려주세요.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것이 너무 무모해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도 벼랑 끝에 몰려 다른 방법이 없었어요. 이번 천도비경에서, 저는 우유도의 독수에 걸려….”
비록 귀의의 제자를 건드릴 간 큰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런 이상 상황은 많은 사람의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안보여조차도 골목 입구 쪽에서 이미 누가 다가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보여는 더는 거리낌 없이 빠르게 자신이 어떤 처지에 처했는지 설명했다. 그녀는 하나도 숨기지 않았다.
안보여는 무심이 이처럼 집 밖으로 나온 것이 매우 드문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고 그녀가 어떤 오해도 일으키지 않고 장원에 다가가거나, 장원에 난입할 수 없으니, 이렇게 무심과 한번 만나기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도 잘 알았다.
또한, 눈앞에 있는 무심 선생이 야속하게도 그 사부와 닮아 다른 사람을 쉽게 돕지 않는다는 말도 들었다.
또 자신이 이렇게 나서면, 나중에 즉시 누군가가 그녀를 붙잡아 신분을 확인하려 할 거라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신분을 밝힐 기회가 한 번뿐이라는 것도 알았다. 일단 안보여의 신분이 폭로되면 곧바로 중립 세 문파가 알게 될 것이고, 추격을 받게 될 것이 분명했다.
신분을 밝히고도 무심의 허락을 받지 못하면, 이제 남은 길은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성과 이름을 숨기고 평생 숨어 살면서 다시는 세상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무심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어떠한 것도 숨기지 않았다. 또 무심을 앞에 두고 감히 거짓을 말할 수도 없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또 다른 문제를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안보여는 진심으로 호소해 볼 수밖에 없었다. 만약 상대방이 거절하면 지금 즉시 도망쳐야 했다.
안보여는 당연히 주위에서 자신을 탐욕스럽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손에 붙잡힐 생각이 없었다. 금단방 이 위라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각 세력의 견제를 버티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우유도는 말할 것도 없고, 중립 세 문파 중, 아무 곳이나 한마디 하면 아마 그녀를 데려갈 수 있을 것이다.
곽만은 다소 놀란 얼굴로 상대방을 자세히 살폈다. 눈앞에 이 사람이 바로 금단방 이 위의 고수 안보여라고? 어쩌다가 저렇게 지저분한 노인으로 변장하고, 이처럼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단 말인가?
그리고 곧 우유도와 원한을 맺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곽만의 두 눈이 번뜩였다.
안보여가 뭔지, 금단방 이 위가 뭔지, 무심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를 찾는 사람은 너무 많았다. 하나하나 다 상대할 수도 없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을 알았고, 비슷한 일을 수없이 겪은 그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이미 머리를 돌려 더는 듣고 싶지도 않다는 듯이 자리를 떠나려 했다.
하지만 그때, 우유도라는 이름이 들렸다. 그녀가 우유도에게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무심의 발이 멈춰 서더니 그녀를 돌아보았다.
간절한 눈빛의 안보여가 모든 말을 마쳤을 때 무심이 담담히 물었다.
“당신의 말이 진짜인지 어떻게 증명하겠소?”
안보여가 급히 말했다.
“선생님의 영향력으로, 이 일을 알아보고자 하신다면 손쉽게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 거예요. 제가 어찌 감히 선생님을 속이겠어요.”
무심이 고개를 돌려 성을 나가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 두 눈에는 고민이 가득했다. 결국은 다시 몸을 돌리며 말했다.
“안 가련다.”
“어….”
곽만이 멈칫했다. 그리고 자신들을 간절히 바라보는 안보여를 한번 보고는 다시 무심의 뒤를 쫓아 움직였다.
안보여가 간절히 불렀다.
“선생님, 저를 살려주시면, 견마지로를 다하겠어요.”
무심은 뒤돌아보지도 않고 담담히 한마디 했다.
“저 여자를 데려와라.”
곽만의 두 눈에 놀람이 스쳐 지나갔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무심을 찾아왔는가. 아무리 간청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사실 여부도 확실하지 않은 안보여가 입을 열자마자, 허락하다니.
“움직이세요. 선생님이 오라고 한 소리를 못 들었나요?”
곽만이 안보여를 부르며 말했다.
“아!”
안보여조차 믿기 어려웠다. 듣기로 말이 안 통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승낙한단 말인가?
하지만 곧 크게 기뻐하며 황망히 그 뒤를 쫓았다.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도 던져버렸다.
주위에 숨어있는 밀정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어리둥절했다.
“얼굴에 있는 걸 씻어내 보시오.”
장원에 들어가자마자, 안보여를 한번 흘겨본 무심이 한마디 했다.
무심은 한 번 보고 안보여의 피부가 가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언가를 바른 것 같았다.
곽만이 움직이기 전에, 안보여는 먼저 우물물을 길어 얼굴을 씻었다. 그렇게 다시 무심과 마주했을 때, 화용월태(*花容月態: 꽃 같은 용모와 달 같은 자태)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다만 여전히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 용모가 아름답더라도, 무심은 아무 느낌 없었다. 무심이 물었다.
“고신단에 중독되었다고 했소?”
안보여가 긴장하며 물었다.
“치료하실 수 있나요?”
“모르오.”
무심의 대답이었다. 동시에 곽만에게 물건을 준비하게 했다. 곧 무심이 평소 사용하는 치료 물품이 준비되었고, 세 개의 깨끗한 잔 안에 맑은 물을 채웠다.
무심이 말했다.
“손을 주시오.”
안보여의 고운 손을 잡은 무심은 검지를 잡고 은침을 찔러 피를 냈다. 그리고 검지에서 흐르는 피를 물이 채워진 세 개의 잔 속에 각각 몇 방울씩 떨어뜨렸다. 안보여의 손을 치운 무심은 수많은 병이 모여있는 곳에서, 각각 백, 녹, 흑 세 가지 색상의 분말을 수저로 떠서 각각 잔 속에 풀어 넣었다.
무심은 세 개의 잔을 흔들며, 잔 속 색상의 변화를 아주 진지하게 관찰했다.
안보여는 간절한 모습으로, 감히 숨 한번 크게 내쉬지 못하고 바라보았다. 혹시라도 방해가 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
손에 든 마지막 잔까지 확인한 무심이 잔을 내려놓고 안보여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은 거짓말을 했소!”
안보여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멍한 얼굴로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모든 것이 정상이오. 당신은 중독된 적이 없소!”
그 즉시, 안보여는 넋이 나갔다. 그리고 크게 동요하는 얼굴로 말했다.
“정말입니까?”
무심이 무표정한 얼굴로 안보여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이미 말했소. 중독되지 않았소!”
안보여의 안색이 수시로 바뀌었다. 곧 천천히 상황을 파악한 안보여의 표정이 무너지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더니 비통한 소리를 내뱉었다.
“우유도, 그 개자식이 나를 속였구나!”
중독이 아니었다. 우유도가 자신에게 강제로 먹인 건 고신단이 아니었다. 그 말은 처음부터 안전하고 순조롭게 천도비경을 나올 수 있었다는 말이었다. 쓸데없는 짓은 할 필요도 없었고, 중립 세 문파와 원한을 맺을 필요는 더욱더 없었다.
안보여는 자신이 고신단을 먹지 않았다면, 중립 세 문파도 아마 우유도를 도와 영종을 옮기지 않았을 거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우유도는 판을 깔고 그녀를 갈림길로 몰아세웠다. 하나는 안전무사한 길이고, 다른 하나는 만장단애(*萬丈斷崖: 끝없이 길고 가파른 절벽)였다. 선택은 그녀에게 달려 있었다.
그리고 안보여는 만장단애를 선택했다. 그러니 지금 안보여의 심정이 어떠하겠는가?
* * *
자금동, 용휴와 맹선이 또다시 찾아왔다.
효월각이 기병한 이후, 세 문파는 서신으로 긴급하게 연락을 취했었다. 하지만 자세한 이야기를 서신으로 나누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중대한 결정은 여전히 세 문파의 장문인이 만나서 의논해야 했다.
만약 예전과 같은 상황이었다면 연국의 실력이 걱정되어 조국과의 싸움에서 그저 적당한 전략적 목표를 이루고자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삼대 문파의 태도가 크게 변해 있었다.
그전에는 우유도가 일으킨 전쟁에 대해서 분노하고 있었다면, 지금은 전력으로 이번 전쟁을 지원하고자 하고 있었다!
원인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이익! 거대한 이익이 눈앞에 보였다.
연군과 효월각이 손을 잡으면, 조국은 곧 멸망할 것 같았다. 주위 정세도 조국에게 극도로 불리했다. 연국을 견제할 세력이 없었다.
이건 거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였다. 이건 가히 천우신조(*天佑神助: 하늘과 신령이 도움)의 기회라 할 수 있고, 이런 기회를 놓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세 문파는 의견을 통일했다. 중요한 이야기를 마친 용휴가 갑자기 물었다.
“그런데 우유도가 어디 숨어있는지, 여러분은 들은 소식이 있소?”
궁임책도 마침 그 일 때문에 답답하던 참이었다. 엄입을 보내 찾도록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어디 숨어있는지, 대량의 인원을 동원해 그물망을 만들지 않고는 아마 찾기 어려워 보였다. 다만 지금은 연국과 조국이 전쟁을 벌이고 있으니, 그렇게 많은 인원을 차출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전에는 우유도를 찾아 도대체 전쟁을 일으킨 목적이 무엇인지 확인하고자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그 목적을 알았다. 효월각과 손을 잡기 위해서였다.
궁임책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 소식이 없소.”
맹선이 말했다.
“그래도 계속 찾아야 하오. 어떻게든 찾아야지.”
궁임책은 내심 우스웠지만, 입으로는 담담하게 말했다.
“지금 우유도가 숨어있는 것은 정상이오. 소요궁의 곽 장로 일행의 죽음에 우유도의 책임이 없을 수 없지, 영검산은 또 천도비경에서 우유도 때문에 일부 인원이 죽기까지 했지 않소.
그러니 나라도 당신들의 보복이 두려워 숨었을 것이오. 한 마디로, 당신들 때문에 놀라 도망친 것이오. 우리가 이렇게 찾을수록, 우유도는 더욱더 숨어들어 나타나지 않을 것이오.”
궁임책이 대놓고 남의 아픈 곳을 찌르고 들어왔다. 용휴와 맹선은 참지 못하고 동시에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내심 짜증이 가득했다.
이들은 그 전에 우유도를 죽이고자 했다. 하지만 지금은 누가 우유도를 건드리려고 경거망동하면 나서서 보호해 줘야 할 판이었다.
바로 이익 때문이었다. 거대한 이익!
그 전에 연국 삼대 문파가 조국과의 전쟁을 반대했던 것은, 연국에게 조국을 삼킬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연국에게 거대한 입과 위장이 생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이대로 조국을 그냥 꿀꺽 삼켜도 배탈이 날 걱정이 없었다. 그저 삼킬 날만 기다리면 그만이었다.
물론, 조국이 반항하지 않을 리 없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그런 건 걱정할 필요 없어 보였다. 조국의 멸망이 코앞인데, 뭘 더 걱정하겠는가?
지금 정말 걱정되는 것은 오히려 효월각 쪽이었다. 전후 이익분배가 걸려 있으므로 양측은 선을 확실히 그어놓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었다.
이쪽에서 전후를 생각하며, 즉시 효월각에 사람을 파견했다. 그러나 효월각은 그들을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렇다고 효월각을 협박할 수도 없었다. 지금 연국은 허약한 상태다 보니, 그만한 실력도 없었고, 남을 탓할 수도 없었다. 효월각의 도움 없이는 조국이라는 살덩이를 삼킬 수도 없었다.
그러니 효월각 쪽에 누가 가야 가장 적당하겠는가? 우유도밖에 없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소요궁과 영검산은 이제 깨달았다. 아마 이후로 계속해서, 우유도를 건들기 어려울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두 사람의 반응을 보고 남몰래 미소지은 궁임책은 내심 탄식을 내뱉었다. 누군가 나중에 보복을 당할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 사람은 이미 모든 계획을 세워놓고 움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