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8화. 생사가 달려있다 (1)
“노야, 일단 상황이 바뀌면, 언제 철수하시겠습니까?”
동명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동백이 한숨을 내쉬었다.
“난 갈 수 없네. 가서도 안 되지. 내가 만약 도망친다면, 육국 사신을 죽인 죄명을 인정하는 꼴이 되네. 일단 그 죄를 뒤집어쓰게 된다면, 연국을 벗어난다 한들 어디로 도망치겠는가? 육국의 사신을 되돌릴 수 없는 판에 끌어들인 자가 우유도라 아무리 소리쳐도, 나 또한 쉽게 도망치지 못할 터.”
“우유도의 수법이 정말로 악독하군! 철저하게 노부의 퇴로를 끊은 것이야. 내가 만약 도망친다면, 이 천하가 크다 한들 노부를 품을 곳은 찾을 수 없겠지.”
“육국의 원한을 사고, 권세를 잃어버렸으니, 이 늙은 몸을 이끌고, 어디를 가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네. 지금 상황에서 연국을 어쩔 수 있는 세력은 없다네. 그러니 나를 희생양으로 내세우면, 삼대 문파는 대충 사건을 무마할 수 있겠지. 일국의 대사공이라면 희생양으로 충분하지!”
“그러니 노부는 떠나선 안 되네. 떠나면 철저하게 지는 것이야. 남아 있으면 아직 기회가 있지만, 일단 도망치면 어떠한 기회도 얻을 수 없어. 칠국은 끝까지 노부를 찾아 죽이려 할 것이니, 그때가 되면 온 가족이 말려들 것이네. 노부가 남는다면, 설사 실패한다 해도, 이미 노부를 잡았으니, 각국 세력에 합당한 변명을 할 수 있을 것이고, 각국도 더는 세력을 동원할 필요가 없다 할 수 있네. 그러니 어쩌면 가족들이 살아남을 수도 있네. 하지만 노부가 도망치면, 그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겠지.”
“노야…….”
동백은 갑자기 헛웃음을 지었다. 어젯밤만 해도 평안히 잠을 이루었건만, 하룻밤 사이에 동백 가족의 온 생사가 달라지게 된 것이다.
동백은 지금과 같은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어제까지 아무 일 없었다. 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에, 연경에서 권세가 하늘에 닿은 동씨 가문이 이렇게 벼랑 끝에 몰릴 수 있단 말인가?
동씨 가문을 향한 폭풍우는 아무런 전조 없이 들이닥쳤다. 줄곧 숨어지내던 사람이 갑자기 경성에 나타났고, 갑자기 황궁에 쳐들어왔으며, 사건이 갑작스럽게 이 지경까지 진전되었다. 그 속도와 갑작스러움에 어찌 대처할 겨를이 없을 지경이었다.
동씨 가문의 세력으로도 그전에 어떠한 징조를 확인할 수 없었고, 어떠한 예방과 준비를 할 수 없었다. 당연히 수많은 상황에 대해 완벽하게 고려할 수 없었고, 짧은 시간 동안 다급하게 대응할 뿐이었다.
물론, 이는 삼대 문파에서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동백은 한숨을 내쉬고는 손을 이마에 갖다 댔다.
* * *
몇십 장의 천검부가 하늘에서 연기처럼 화한 후, 전투는 아주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즉시 암습한 자객들이 다시 사신들에게 날아들기 시작했다. 이제 양측 모두 천검부가 없어졌으니, 몸으로 싸우는 혈투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었다.
다만 사신단 측이 불리한 것은 확실했다. 이는 암습한 자객들이 어둠에 좀 더 익숙한 자들인 데다가, 숫자 또한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양측이 가장 격렬하게 싸우려 하는 중요한 순간에, 갑자기 주변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놀라 주변을 둘러보니, 대군이 대대적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이때,
쾅!
사방팔방에서 저택의 벽을 향해 쇠망치와 같은 통나무가 부딪혔고, 순식간에 벽을 무너뜨렸다.
벽이 무너진 곳을 바라보니, 수레에 실린 거대한 통나무가 있었다. 한 수레를 수십 명이 붙잡고 있었는데, 수레를 뒤로 밀었다가 있는 힘껏 벽을 향해 돌진시킨 것 같았다. 통나무 앞에는 거대하고 뾰족한 철 뚜껑이 덮여 있어, 과연 벽이 무너지지 않을 수 없었다.
수레가 물러나자, 벽이 무너진 빈자리를 공성노가 신속하게 차지했다. 곧 망치가 휘둘러지고, 공성노가 수평으로 발사되었으며,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쓸어 버렸다.
컥!
공성노에서 발사된 강철창에 수없이 많은 사람의 몸이 힘없이 뚫려버렸다. 아무리 수행자들이라 해도, 나무를 꿰뚫고 벽을 뚫어버리는 강철창의 힘을 내력만으로 막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심지어 이들은 1차 선두 부대일 뿐이었다. 선두 부대가 기습을 가한 지 얼마 안 있어, 대량의 병사와 함께 공성 병기, 대량의 공성노, 대량의 투석기가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이처럼 수많은 병력이 빠르게 자리 잡는 것을 보면, 사전에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최소한 작전계획을 완벽하게 숙지한 상태로 보였다.
사실, 변고가 생긴 장원은 처음부터 군영과 멀지 않은 곳이었다. 천검부가 두 진영 사이에서 펑펑 터지고 있는 동안, 병사들은 이미 필요한 준비를 군영 안에서 마친 상태였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급히 이곳으로 달려온 것이었다.
공성노가 곧바로 화살을 장전하고는 발사 각도를 조정했다. 대량의 투석기가 발사 준비를 마쳤으며, 수많은 궁수가 화살을 걸었다.
경기 사대 장군 중 한 명이자, 과거 우유도의 사형인 송연청의 장인이기도 한 왕횡이 칼을 뽑아 들고 소리쳤다.
“감히 경성에서 소란을 일으키다니,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공격!”
쾅!
공성노에서 굉음이 들렸고, 셀 수 없이 많은 강철창들이 휙휙 쏘아져 나갔다. 전방에 있는 지붕을 넘어 마치 강철비처럼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저택 내부로 쏟아져 들어갔다.
강철창 주변으로는, 마치 아주 가느다란 이슬비처럼 보이는 어두운 화살들이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일대에 쏟아져 내렸다. 저택 주위의 골목은 물론이고, 심지어 다른 사람의 저택까지 화살이 마치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심지어 그중에는 불화살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훙훙!!
무서운 소리를 내며 투석기에 실린 바위들도 끝없이 목표지점을 향해 날아갔다. 또 그 사이사이에는 기름을 가득 담아 불을 붙인 기름통도 섞여 있었다.
이 모든 공격은, 암습하는 자객과 수행자들, 사신들을 가리지 않았다.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을 가리지 않았다. 철을 뚫고 바위를 부수었으며, 벽을 붕괴시켰고, 지붕과 문을 산산조각냈다.
수십 명의 몸이 강철창에 꼬치구이처럼 뚫려버렸고, 수없이 많은 화살들에 벌집들이 돼버린 시체도 적지 않았다.
떨어져 내리는 바위는 저택의 모든 건물을 무너뜨렸다. 화살비는 쏟아져 내려, 정원의 모든 공간을 삼켰다.
불화살은 기름에 담가 불을 붙였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큰 불길을 만들었고, 곧 저택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불빛이 서서히 거대해지며, 하늘을 밝혔다.
“악!”
자객들의 두목이 비통한 고함을 내뱉었다. 그나마 가장 강한 자였기에, 온 힘을 다해 쏟아지는 화살과 강철창을 막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잠시뿐이었다. 눈앞에 있는 것을 잠시 동안은 막아낼 수 있었지만, 공격은 끝이 없었다. 마치 집 안에 홍수가 들이닥쳤는데, 바가지로 물을 퍼내는 꼴이었다.
이들을 포위한 대군은 체계적인 공격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공격담당자도 있었고, 보급을 책임지는 병사도 있었다. 당연히 반 시진 동안 쉬지 않고 공격하는 것에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그렇게 대군의 원거리 공격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미친 듯이 공격했고,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다.
이처럼 방대한 공격을 겨우 한 점에 집중적으로 공격했으니 그 파괴력이 얼마나 놀라운지 눈으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사방팔방에서 동시에 공격을 감행했다. 한 범위를 벌떼보다 많은 화살과 강철창과 바위, 불이 뒤덮었다. 게다가 모든 일이 신속하게 발생했기에, 바닥에 구멍을 뚫고 몸을 숨길 시간조차 없었다. 그러니 그저 최선을 다해 방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들 모두 자객 두목과 같은 꼴이었다. 내력이 남아 있을 동안은 화살을 막아내기도 하고, 강철창을 있는 힘껏 강타해, 강철창의 궤도를 비틀 수도 있었다.
그러나 홍수가 계속 집 안에 들이닥치는데, 바가지 몇 개를 동원한다 해서 이를 어찌 막는단 말인가!
점점 지쳐갔다. 점점 죽음의 기운이 짙어졌다. 모든 이의 얼굴에 절망이 어렸다. 손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고, 한두 명씩, 몸에 천천히 작은 화살들이 꽂히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서서히 고슴도치가 되어갔다. 그렇게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짙은 연기와 불빛 가운데, 마침내 자객의 두목마저 눈을 부릅뜬 채, 허공에서 떨어져 내렸다. 강철창 몇 개를 몸에 꽂은 채,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아직 땅에 닿기도 전에 비처럼 쏟아지는 화살에 의해 고슴도치처럼 변했다.
목표지점에 이미 움직임은 없어진 듯했다. 그러나 대군은 계속해서 공격을 계속했다. 반 시진을 넘어 이미 한 시진이 가까워질 정도였다. 목표지점의 불길은 갈수록 거대해졌고, 연기는 더욱더 짙어졌다. 마치 모든 것을 태우려는 것 같았다.
군영에서는 말과 수레를 통해서 계속해서 강철창과 화살을 공급했다.
변장한 오노이 등 일행은 멀리 떨어져서 이 미친듯한 광경을 바라보았다. 온몸의 솜털이 곤두설 정도였다. 다행히 미리 몸을 뺏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지하도까지 무너져 내렸을 것 같았다.
* * *
고견성의 저택, 대군이 맹공을 가하고 있다는 것을 수하들을 통해 들은 고견성의 얼굴이 씰룩거렸다.
“대군까지 동원하다니, 경성 안에서 그것도 공성 병기를 사용하다니,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도 문다더니, 미쳤구나!”
“동씨 가문에서 일단의 사람들이 남몰래 나뉘어 경성을 벗어났습니다. 이미 우유도의 사람들에게 연락을 주었습니다.”
고견성이 살짝 끄덕였다.
* * *
덕친왕부 내부.
누각 위에 서 있는 연국 대사마 상영충은 불길이 하늘 높이 치솟고 있는 곳을 보며 얼굴을 굳히고 있었다.
“왕야, 밖에서 갑자기 병사들이 날뛰고 있어요. 이게 어찌 된 일인가요? 왕야, 소첩은 너무 두려워…….”
젊고 아름다운 첩이 옆에서 두려운 목소리로 계속해서 중얼거리자, 결국 상영충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그대로 몸을 돌린 상영충이 뺨을 치며 소리쳤다.
“당장 꺼져라!”
비틀거리며 바닥에 쓰러진 첩이 깜짝 놀라 넋을 잃었다. 사실, 불안에 떠는 건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밤하늘 아래 불안에 떠는지 몰랐다. 온 경성이 거대한 공황에 빠져들었다.
* * *
황궁 내부에 있었던 반란은 진정되었다. 하지만 석요, 신보춘, 낙명검은 쉽게 상건웅의 곁을 벗어나지 못한 채, 그저 일부분의 제자를 지금 문제가 생긴 곳에 급히 보냈을 뿐이었다.
그 제자들이 도착했을 때, 우유도가 머무는 장원은 폐허가 되어있었다. 제대로 서 있는 건물이 없었고, 나무 한 그루 멀쩡한 것이 없었다. 그저 불길에 잿더미로 변해가고 있었으니, 지하 몇 장(丈) 아래까지 불에 구워질 것 같았다. 살아 있는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삼대 문파의 제자가 강제 명령을 내렸고, 대군은 군영으로 철수했다.
갑주를 입은 왕횡이 자신의 방에 들어서자, 흑색 피풍을 뒤집어쓴 한 사람의 뒷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왕횡이 곧 포권을 하며 말했다.
“한 공공, 말씀하신 일을 잘 처리했습니다. 감히 소장이 장담하건대, 그 장원에서 살아나올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아주 좋습니다. 바로 돌아가 폐하께 보고 올리겠습니다.”
흑색 피풍을 뒤집어쓴 사람이 그대로 몸을 돌려 왕횡의 곁을 지나갈 때, 피풍 안에서 서늘한 빛이 번쩍였다.
왕횡의 목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왕횡은 두 손으로 목을 붙잡았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고, 그렇게 천천히 바닥에 쓰러졌다.
흑색 피풍을 입은 사람은 떠나가기 전, 손으로 왕횡의 검을 잡아 뽑아내었다. 그리고 검을 왕횡의 손에 쥐여주고는, 그 손을 위로 향하게 하여 자신의 목을 향하게 했다. 이제 바닥에 쓰러진 왕횡은 자신의 검을 뽑아 든 모습이었고, 검에는 피가 가득 묻어있는 채였다. 누가 봐도 마치 스스로 자신을 해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