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4화. 그가 온 것은 나 때문이다
몇 마리 날짐승이 허공에서 멀어져갔다. 등 뒤로 거대한 연경 경성이 펼쳐져 있었다. 관방의가 말했다.
“난 도야가 저들 두 모자를 반드시 죽이려는 줄 알았어.”
“뭐, 죽은 것과 다름없지, 어쩌면 죽는 것보다 더 괴로울 거야. 아마 얼마 살지도 못하겠지. 그 자리를 대신한 사람이 저들 모자가 다시 복귀해서 자신들을 위협하도록 내버려 둘 리 없으니 말이야.”
“그 황제를 어쩌지 못한 게 너무 아쉽네.”
“처음부터 황제는 내 목표가 아니었어. 삼대 문파가 내 사람에게 그 자리를 줄 리가 없지.”
관방의가 의아해했다.
“그럼 정말 단지 동백 때문이야?”
우유도는 웃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와서, 연경에 피바람을 몰고 온 우유도는 그냥 그렇게 떠나갔다.
* * *
황궁 내부,
폐허가 된 곳이 다시 건축되고 있었다. 대사도 고견성은 어서방에서 나와 무표정한 얼굴로 황궁을 나선 후, 마차에 올라탔다.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간 그는 정문을 통하지 않고 측문을 이용했다.
지금 고가의 입구는 과거와 살짝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수많은 관리가 모여든 채, 고견성을 뵙기를 청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과거 동백 쪽 사람도 있었다. 바람의 방향이 바뀐 것이다.
서재에 들어서자, 범전이 차를 끓여 왔다. 그리고 기대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물었다.
“폐하께서 노야를 부르신 것은, 혹시 비어있는 대사공 자리 때문인지요?”
고견성이 서탁에 앉아 끄덕였다.
“내게 그 자리를 채우라고 하시는군, 일단 조정을 안정시키기 위함이야. 내일 조회에서 이 일을 의논하시겠다고 하셨네.”
범전이 웃었다.
“명성을 보나, 경력을 보나, 지금 시기에 분명 노야께 사람들이 몰려들 것입니다. 중신들은 당연히 찬성할 것이니, 이건 그저 보여주기 위한 것에 불과합니다. 별다른 일 없을 겁니다.”
고견성이 웃었다.
“폐하의 눈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우유도와 짙은 원한을 갖고 있다는 것이지.”
범전이 동의한다며 끄덕였다. 차로 목을 축인 고견성이 다시 물었다.
“우유도가 떠났네, 혹시 남긴 소식이 있는가?”
“아무런 소식도 받지 못했습니다.”
고견성이 찻잔을 내려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연경에 와서 한차례 풍운을 일으키더니, 뒷수습은 다른 사람에게 시키고, 자신은 표홀히 떠나버렸군.”
범전이 웃었다.
“최소한 노야께서는 어부지리를 얻지 않으셨습니까.”
“어부지리?”
고견성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도 모르겠는가? 처음에는 나도 이해할 수 없었지. 하지만 나중에 그가 황후 모자를 물고 놓지 않는 것을 보고 이해할 수 있었네. 동백이 무너졌고, 태자는 끝장났지. 동백 쪽 세력이 철저하게 뿌리뽑혔네. 그가 여기 온 것은 나를 위해서네. 내가 더 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나를 막는 장애물을 치워버리기 위해서 온 것이야!”
“어….”
범전이 멍해졌다. 고견성이 천천히 의자에 기대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부지리가 아니네. 처음부터 그걸 노렸던 것이지. 사실 그는 상조종을 황위에 앉히려 하지 않았네. 그럴 의도를 비친 건 그저 눈속임에 불과했네. 아직 시기가 무르익지 않았다는 걸 그가 어찌 몰랐겠는가. 그저 그런 이야기를 꺼내 상건웅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든 다음, 서둘러 다른 화제로 돌리게 만든 것뿐이네.”
“그럼, 동백의 처단을 빨리 결정하게 만들기 위해….”
“그렇다네. 상조종의 이야기가 계속 나오니 어찌 상건웅의 맘이 편했겠는가? 그 이야기가 나오는 걸 막으려면, 이 사건을 최대한 빨리 종결시켜야 했네. 자연히 동백에 대한 사건 처리가 빨라질 수밖에 없지.”
“정말, 정말로 무서운 자군요.”
“그는 이미 미래를 위해 판을 움직이기 시작했네. 상조종 쪽, 그리고 지금 우리 쪽…. 그는 지금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연국 삼대 문파의 기틀을 뒤흔들고 있네! 우리조차도 만약 우리 자신의 상황을 몰랐다면, 아마 속아 넘어갔을 것이네! 이 도야는, 아주 대단한 사람이야. 삼대 문파는 결국 절대 우유도를 이기지 못할 것이네!”
“대장군, 동백이 처형당했습니다.”
북주 변경지역, 한 장수가 연경에서 온 소식을 건네며 보고했다.
간편한 복장을 하고 장도를 휘두르며 무술을 연마하던 소등운이 갑자기 장도를 거꾸로 들어 땅에 박아넣더니, 그대로 몸을 일으켜 서신을 받아 들고는 자세히 살펴보았다.
일전에 경성에 일었던 소란에 대해서는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일련의 소란이 일어난 후, 동씨 가문의 모든 재산이 몰수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만 늦게까지 동백이 어떻게 되었는지 결론이 나지 않아 계속 주목하고 있던 참이었다.
바로 지금, 동백이 능지처참을 당한 것이 확인되었다. 소등운이 하늘을 보고 장탄식을 내뱉었다.
“인과응보인 것이다. 간신이 처단되었으니, 과거에 학살당한 수많은 형제가 드디어 눈을 감을 수 있게 되었구나.”
* * *
연국과 조국이 싸우는 전방.
마찬가지로 동백이 능지처참당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쾅!
상조종이 주먹으로 서탁을 내려쳤다.
“아주 좋아! 그 간신이 죽지 않았다면, 저승에 있는 숙부와 백부들이 눈을 감지 못했을 것이다.”
“하아!”
몽산명은 감개무량했다. 과거, 동백의 세력이 너무 거대한 나머지, 은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늘이 돼서야 드디어 그를 처단할 수 있었다.
“이 동백이 건드려도 하필이면 도야를 건드리고 말았습니다. 천도비경에 도야를 죽이라고 자객을 보낸 바람에, 도야의 진노를 사고 만 것이지요. 아무튼, 도야는 정말 대단합니다. 이렇게 쉽게 동씨 가문을 뿌리째 뽑아 버리다니….”
상조종 또한 감개무량했다. 동백의 세력이 얼마나 거대했는가! 누가 넘어뜨리고 싶다고 쉽게 넘어뜨릴 수 있는 세력이 아니었다. 그런데 우유도는 경성에 도착하자마자, 썩은 나무를 꺾듯이 쉽게 불세출의 승상을 무너뜨렸다.
다만 상조종은 곧 냉소 지으며 말했다.
“도야가 그자를 죽이지 않았다 해도, 언젠가는 제 손에 죽었을 겁니다.”
“큰 원한을 갚았으니, 이 소식을 장호와 다른 선왕의 옛 부하들에게 전하시고, 다 같이 기뻐하시지요!”
“그러는 게 좋겠습니다.”
상조종이 찬성하고는 곧 이 소식을 널리 전파하라 명령했다.
* * *
제경, 골목길 깊은 곳에 있는 저택 내부.
안보여가 곁채에 있는 새장을 들고나와 햇볕 아래 늘어놓았다.
그녀는 이미 과거의 정상적인 용모를 회복한 상태였다. 또 화려한 의복을 벗어버리고, 소박한 청포를 입고, 머리는 간단하게 묶어 등 뒤로 늘어뜨린 상태였다. 화장하지 않은 민얼굴은 마치 과거의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무심을 위해 진심으로 봉사하는 것 같았다.
무심은 새장 안에 있는 새들의 반응을 관찰하였다. 그리고는 몇 가지 약을 물에 섞어, 새장 속에 있는 물통에 넣어주었다.
이때, 외부에서 곽만이 돌아와 대문을 닫았다. 곽만은 늘어서 있는 새장 밖에서 재잘재잘 외부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지금 천하에서 가장 뜨거운 소식은 당연히 연국 대사공이 처단당한 이야기였다.
동백이 우유도를 죽이기 위해 자객을 보낸 것을 확인한 우유도는 그 즉시 보복을 단행했다. 그렇게 손바닥 뒤집는 것처럼 손쉽게 동백의 구족을 멸했고, 동백을 갈기갈기 찢어 죽였다. 안보여는 이를 악물고 침묵했다. 혹시 우유도가 자신을 찾아올까 봐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혹시 그자가 찾아와 복수할까 봐 걱정하는 것이오?”
한 마리 생쥐를 빤히 바라보던 무심이 물었다.
“저는 선생님께 폐를 끼칠까 봐 걱정하는 거예요.”
무심은 생쥐를 계속 바라보며 침묵했다. 곽만은 여길 한번 보고, 저길 한번 보면서 두 사람을 얼굴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 * *
누각 내부.
조용히 앉아 있는 소평파가 천천히 손에 든 서신을 내려놓았다. 그의 얼굴에 미약한 의문이 서려 있었다. 한쪽에서 차를 따르던 소삼성이 말했다.
“우유도의 세력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일을 처리할 때도, 갈수록 자신을 크게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소삼성의 말투는 감개무량했다.
“과거, 우유도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공자님의 안색이 조금 굳어지자 깜짝 놀라 강을 타고 도망갔었지요. 그런데 이제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 된 것 같습니다. 일국의 승상조차도 손쉽게 무너뜨리니 말입니다.”
“높이 올라간 사람일수록 더 강하게 추락하는 법이지. 멍청이나 자신을 그리 드러내는 법이네. 우유도 같은 사람이 이처럼 자신을 내세우는 것은 분명 더는 자신을 숨기지 못할 지경에 처했기 때문이겠지…. 난 어째 이번 일이 이렇게 간단하게 끝나지 않을 것 같군.”
소삼성의 의아해했다.
“동백이 사람을 보내 그를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니 그가 경성으로 동백을 찾아가 보복한 것이지요. 일은 다 끝났는데, 아직 남은 게 있단 말입니까?”
“연국 조정은 여전히 그 연국 조정이지. 동백이 죽었다고는 하나, 아무튼 연국 조정에서 큰 소란이 일어났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어. 삼대 문파의 장문인들도 이제 우유도가 정말 대놓고 자신의 힘을 과시하게 됐다는 것을 알게 됐겠지.
그러니 우유도에 대한 견제가 심해질 수밖에 없어. 우유도가 이것을 몰랐을까? 그럴 리 없지. 어째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이건 평소 우유도의 행동과 맞지 않아.”
“대공자님, 우유도의 세력이 날이 갈수록 커지니, 자신이 하는 일에 자신감이 생긴 게 아닐까요? 게다가 조용히 처리하고 싶다고 한들, 소리소문없이 동백을 무너뜨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소평파는 한참 침묵하더니 갑자기 입을 열었다.
“얽힌 일이 갈수록 많아지고, 갈수록 커지는군, 예전처럼 단순하지가 않게 되었어. 우유도를 갈수록 이해하지 못하겠군. 하지만 모든 일에는 내적인 논리 법칙이 있기 마련이지. 복수라는 표면적인 요소 아래, 무언가 다른 게 있는 것 같아. 네가 보기에, 우유도가 이렇게 동백을 무너뜨렸을 때 가장 큰 이익을 보는 사람이 누구일 것 같은가?”
소삼성이 대답했다.
“당연히 그 자신입니다. 앞으로 연국 조정의 대신들은 감히 함부로 우유도를 적대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본보기를 보여줬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연국 조정의 사람들은 절대 경거망동하지 못할 겁니다.”
“다른 이익을 본 자라면 연국의 삼대 문파가 있습니다. 듣기로 연국 삼대 문파는 이번 동백의 집을 압류하면서 큰돈을 만졌다고 합니다. 또 고견성이 있습니다. 동백의 세력이 무너졌으니, 고견성은 마치 며느리가 버티고 버티다 시어머니가 된 격입니다. 드디어 연국 대사공의 위치에 올라선 것이지요.
또 태자가 무너졌습니다. 누가 태자의 지위를 이어받을지 알 수 없지만, 아마 태자의 지위를 이어받을 자가 가장 큰 이익을 얻게 되는 사람일 것입니다. 물론, 그 외에도 크고 작은 이익을 얻은 사람이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사실 수많은 일이 보기에는 복잡해 보이지만, 그렇게 복잡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제의 진정한 원인은 바로 눈앞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어쩌면 겉모습에 현혹되거나, 인위적으로 복잡하게 변한 것일 수도 있어. 다만 가장 큰 이익을 얻은 사람의 혐의가 가장 크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법칙이지!”
소평파가 손을 뻗어 붓에 먹을 묻혔다. 그리고 종이 위에 소삼성이 방금 언급한 사람들의 이름을 적었다. 우유도, 삼대 문파, 고견성, 태자.
“우유도에게는 당연히 이익이겠지. 그렇지 않으면 이런 일을 벌일 이유도 없다.”
나열된 네 이름을 보고 한참 고민하더니, 우유도의 이름에 선을 그어 배제했다.
“삼대 문파가 돈을 벌려고 이런 소란을 일으키지는 않았을 거야. 삼대 문파가 돈 때문에 굳이 동백을 무너뜨릴 필요는 없었을 테니 말이야. 돈은 그저 부차적 이유에 불과했을 터. 삼대 문파는 그저 우유도가 벌인 소란을 급히 수습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돈을 보고 눈감아준 것이겠지.”
그리고 삼대 문파에 다시 선을 그어 배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