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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048화 (146/1,000)

1048화. 급변 (1)

한참이 지나, 자평휴가 돌아보며 물었다.

“혹시 선생님은 진작부터 이런 생각이 있었으면서, 지금까지 말씀하시지 않은 것입니까?”

가무군은 다시 붓을 들어 그 이유를 알려주었다.

‘사실 이건 하책 중에 하책에 불과합니다. 미리 말해서 좋을 것이 없습니다. 바람 소리와 학의 울음소리에도 깜짝 놀랄 시기입니다. 지금 황제 폐하에게는 초목이 다 적병으로 보이며, 주위를 크게 경계하고 있으니, 이런 시기에 이상 행동을 보이는 것은 저희에게 재난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마지막이 아닌 이상 경거망동해서는 안 됩니다. 승상께서도 허점을 보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이 되면, 송국 삼대 문파의 등을 가볍게 떠미는 것만으로도, 저들이 망설이지 않고 승상을 도울 것입니다.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겠지요. 삼대 문파의 보호가 있으니, 승상도 안전할 것입니다.’

자평휴가 씁쓸히 웃었다. 깨달았다. 자신이 가볍게 떠미는 것으로 목 씨 황권은 마치 아침의 안개처럼 사라질 것이다. 탄식을 내뱉은 그가 말했다.

“정말로 좋은 방법이군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정말로 난감할 지경입니다. 선생님께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 계책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십니까?”

가무군이 글을 써 내려갔다.

‘대세를 움직이는 자는 사라지지 않고, 규칙은 바뀌지 않습니다. 싸우고 빼앗는 일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누가 황제가 된들 저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저는 그저 승상의 가문이 평안하기를 바랄 뿐, 천하를 누가 차지하는지는 관심이 없습니다.’

“소장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한군, 중군의 군막 내부.

흐트러진 갑주를 입고 있는 낭패한 모습의 장수가 털썩 무릎을 꿇고 식은땀을 흘리며 죄를 청하고 있었다.

이 장수는 휘하에 있는 십만의 병력을 이끌고 적을 쫓아 협곡으로 들어갔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협곡이 무너지는 바람에 퇴로가 끊기고 말았고, 전방에서 적의 매복을 받았다.

후방 병력이 급히 지원하기 위해 움직였지만, 퇴로가 막힌 바람에 후방에서도 제대로 돕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송군은 이미 지원군에 대한 대비도 되어있었다. 그렇게 대군이 패배하고 말았다.

심지어 후퇴할 때마저도 또다시 매복에 걸렸다.

그렇게 연신 패배를 하며, 십만의 대군이 대부분 전멸당했다. 돌아온 병력이라고 해봐야 겨우 수천 명에 불과했고, 지금 무릎을 꿇고 있는 장수 또한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다행히 종군 수행자가 목숨을 걸고 장수를 구했기에 화를 피할 수 있었다.

군막 안에 있는 사람들의 안색이 굳어졌다. 지금까지 한국과 송국이 전투를 벌이면서, 한국이 이처럼 큰 손실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금작은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을 잠깐 지긋이 바라보더니 감개무량하다는 듯이 탄식을 내뱉었다.

“이번 전투의 패배는 자네의 잘못이 아니네. 내가 적을 경시했어. 자네는 이만 가서 쉬도록 하게.”

“죄를 물어 죽이지 않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 장수는 눈물 콧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이고는, 곧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 금작은 뒤돌아 지도 앞에 가서니 침음했다.

“이번에 지원군을 공격하고, 또 돌아오는 길에 매복한 전법은 모두 우리의 눈을 속인 고명한 전술이라고 할 수 있네. 그 움직임이 아주 치밀했고, 병력의 움직임이 절도가 있었어. 이건 지금까지 우리가 싸우던 조지환(趙之煥)의 능력 같지 않군. 오히려 나조의…. 설마 나조가 돌아온 것인가?”

금작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밖에서 병사가 들어오며 급히 보고했다.

“사령관님, 밀정이 보내온 소식에 따르면, 송군의 사령관이 조지환에서 나조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허, 나조가 돌아왔다고?”

군막 내부가 순간 소란스러워졌다.

송군은 금작의 압박으로 인해서 숨도 쉬기 어려웠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나조는 지금껏, 물어도 이빨 자국 하나 나지 않는 막막한 상대였다.

나조를 상대할 때 한국은 한발 한발 천천히 움직여야 했다. 속전속결로 전쟁을 끝낼 수 있을 만큼 나조는 만만하지 않았다.

과연 나조가 돌아왔구나!

금작은 천천히 두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모두 다 내가 적을 경시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송군의 사기가 크게 오르겠구나!”

* * *

송군 군영은 축제 분위기였다. 하지만 중군의 군막에서 명령을 내리고 있는 나조는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그는 금작과 오랜 시간 겨루어 왔기에, 이번 전투의 승리는 그저 운이 따라줬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한군이 경솔하게 움직였기 때문에 나조가 손을 쓸 수 있는 여지가 있었던 것이다.

그가 후임 사령관으로 취임했을 때 다소 의외인 부분이 있었다. 전쟁의 동결이 풀린 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금작의 별명이 갑자기 신중 대사마에서 대담 대사마로 변한 것 같았다.

사실 나조는 금작이 지금 어떤 마음인지 잘 모르고 있었다. 우유도에게 위협을 받은 후, 금작의 마음속에 큰 걱정이 생긴 상태였다.

금작의 마음속에는 연국과 조국의 전쟁이 끝나기 전에 송국을 해결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생겨 있었다. 연국이 조국을 물리치면 여유가 생길 터였고, 그러면 한국의 후방을 공격할 수도 있었다. 금작은 여전히 신중 대사마였기에, 그걸 걱정하고 있었다.

덕분에 나조는 이번에 운 좋게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었다. 오히려 나조는 그전에 연신 패배했던 송군의 전임사령관, 조지환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일 정도였다. 그가 큰 손실로 금작의 감각을 마비시켰기 때문이었다.

승전 소식이 송경에 전해진 후, 송국은 기운이 나기 시작했다. 백성의 사기를 고취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선전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기뻐하지는 않았다. 나조는 단지 잠깐 한군의 맹렬한 진격을 억제했을 뿐, 한군이 계속해서 밀고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나조에게 크게 기대하고 있던 송국의 조정 신하들은 또다시 서서히 실망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갈수록 안 좋아졌다. 자평휴는 결국 내리기 싫은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가무군이 직접 나서서 비밀리에 송국 삼대 문파에 연락을 취했다.

송국 삼대 문파는, 황가를 지킬지, 송국을 지킬지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송국 삼대 문파는 황가 또한 지키려고 했을 것이다. 송국 내부가 혼란스러워지면 그들의 이익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남쪽 오공령이 점령한 지역을 수복할 방법은 이것 외에는 없었다. 거기에 자평휴가 송국 내부를 안정시켜 혼란을 최소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지금은 송국을 지키는 것이 바로 삼대 문파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었다. 국외 같은 경우는, 다들 제 코가 석 자였기 때문에, 연국이 병력을 보내줄 것이라는 기대는 일찌감치 접은 상태였다.

가무군은 아주 손쉽게 송국 삼대 문파를 설득했다.

그 후, 송국 삼대 문파는 신속하고, 은밀하게 가무군을 호위해 송국 남쪽에 있는 오공령과 밀회를 가졌다.

양측이 만났고, 가무군이 떠났다. 오공령은 몇 번이나 가무군이 대화하기 위해 사용한 종이를 보고 또 봤다. 오공령이 식은땀을 닦아냈다. 그 두 눈은 맹수와 같은 흥분으로 가득하였다.

“하늘이 나를 돕는구나, 아주 손쉽게 손에 들어왔어!”

* * *

복도 한편에 있는 난간에 풍관아가 앉아 있었다. 그 두 눈에는 우려가 가득했고, 과거와 비교하면 매우 말라 있었다.

나조가 다시 전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전세를 역전 시킬 수는 없었고, 그 소식을 들은 풍관아는 혹시라도 나조가 불의의 사고를 당할까 봐 걱정했다.

“부인, 장문인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나조의 장원을 지키는 수행자가 달려와 보고했다. 풍관아는 멈칫하더니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장문인께서요?”

“관아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풍관아가 돌아보니, 정말로 귀빈의 갑작스러운 방문이었다. 능소각의 장문인 관극태가 직접 자신을 찾아온 것이다.

풍관아는 급히 일어나 마중을 나갔다. 그녀는 상당히 의외였는데, 장문인이라는 존귀한 신분으로 그녀의 집에 직접 찾아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두 사람은 객청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관극태는 다른 사람들을 모두 물리고는, 자신이 찾아온 이유에 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풍관아가 나조를 설득해 삼대 문파의 행사에 협조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지금 나조는 전방의 병권을 쥐고 있었다.

황제를 바꾼다고? 풍관아는 대경실색하며 급히 말했다.

“그건 불가능해요. 나조는 아주 자부심 강한 사람으로, 절대 폐하를 배신하지 않을 거예요. 심지어 그는 폐하의 양자이기도 하잖아요. 장문인께서는 다시 생각해 주세요!”

“만약 쉽게 설득이 되었다면, 너를 찾아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너와 그는 오랫동안 부부로 지내오지 않았느냐? 최대한 설득해 보았으면 좋겠구나.”

풍관아가 고개를 저었다.

“장문인, 제가 설득해도 소용이 없어요. 그는 제 말을 듣지 않을 거예요. 심지어, 지금 그와 저는….”

“너희 부부에 대해서는 나도 들었다.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 겪어보지 못한 패배를 당했고, 그 우울한 감정을 네게 분풀이하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또 다르지 않으냐. 그가 얌전히 협조하기만 하면, 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네 체면을 봐서 능소각은 계속해서 그의 든든한 배경이 되어줄 것이라고 전해라!”

풍관아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수치스러움에 이를 악물었다. 만약 나조의 안전을 고려하고, 송국이 무너졌을 때 나조가 도망갈 수 있도록 도우려는 생각이 없었다면, 진즉에 목을 매어 자진했을 것이다.

“장문인, 소용없어요. 그는 승낙하지 않을 거예요!”

“소용없다고 확신하느냐?”

“정말 소용없어요. 절대 승낙하지 않을 거예요!”

관극태는 고민하는 표정을 짓다가, 두말하지 않고 그대로 일어나 떠나갔다.

풍관아는 갑자기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나조가 만약 황제파를 두둔하려고 마음먹는다면, 삼대 문파가 황제를 바꾸려는 계획과 정면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나조가 죽어도 고집을 꺾지 않으면,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장문인, 장문인….”

풍관아가 연신 관극태의 뒤를 쫓아 달려갔다. 그때, 두 수행자가 날아와 그녀를 막아서며 말했다.

“부인, 저희와 같이 가주셔야겠습니다.”

* * *

관극태가 급히 황궁으로 향했고, 이미 황궁에 도착해 있는 혈신전과 열천궁의 장문인을 만나, 같이 황제 목탁진을 찾아갔다.

“상검(商劍) 말이오?”

목탁진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삼대 문파의 장문인이 이런 시기에 어째서 송국의 진국 신기를 검사하겠다는지 알 수 없었다. 이에 의문이 들어 물어보았다.

“어째서 반드시 지금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오?”

혈신전의 장문인 문구번이 말했다.

“진국 신기가 사라졌다는 소문이 돌고 있소. 그 때문에 살펴보려는 것이오.”

목탁진은 뭔가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상검을 보여 주려 하지 않았다.

“세 분 장문인께서는 걱정하지 마시오. 진국 신기는 비밀금고 안에 잘 있소. 짐 외에는 그 누구도 문을 열 수 없으니, 절대 잃어버릴 일 없소이다.”

열천궁의 장문인 오승우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 한번 열어서 보여주라는 것이오. 설마 우리가 상검을 확인해 보지도 못하는 것이오?”

목탁진은 세 사람의 반응을 빤히 바라보더니, 갑자기 말했다.

“그 소문은 사실이오. 잃어버렸소!”

관극태가 손짓하자, 그 뒤에 서 있는 제자가 쏜살같이 뛰어나가 목탁진을 제압하고 장문인들 앞에 무릎 꿇렸다. 대내총관 막고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이게 뭐 하는 짓이오? 여봐라!”

곧 내시 수행자들이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 순간, 서늘한 한광을 뿌리는 검 한 자루가 목탁진의 목에 드리워졌다. 뛰어들어온 내시들은 그 모습을 보고 움직일 수 없었다.

황궁 내부와 외부가 크게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삼대 문파의 제자들이 갑작스럽게 손을 썼고, 목탁진의 자녀들을 모두 잡아 황궁에 감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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