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0화. 죄를 시인하다
오공령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로 타일렀다.
“관 장문인, 지금 나를 압박해도 어쩔 수 없소. 상황이 이러니, 이길 수 없는 것은 이길 수 없는 것이오. 아무리 나를 압박해도 이길 수 없단 말이오! 엉망진창이 좀 되면 어떻소. 재건하면 그만 아니오. 푸른 산이 남아있다면, 땔 나무 걱정은 없을 것이오. 아무리 그래도 송국이 없어지는 것보다는 낫지 않소?
실력을 보존하고, 한국과 시간을 끌기만 하면 승리할 수 있소!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우리가 두려울 것이 무엇이오. 그냥 그렇게 최선을 다해 시간을 끌어야 하오. 내가 머리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기지도 못하는 전투에 나설 이유가 어디 있겠소!”
관극태가 이를 악물었다.
“당신이 그렇게 하면, 무수한 사람들이 패가망신을 당할 것이오. 송국의 백성이 당신을 욕하고 원망할 것이 걱정되지 않소?”
“목숨이 중요하오, 아니면 욕먹는 것이 중요하오? 백성들은 과거의 일을 쉽게 잊을 것이오. 사람의 마음은, 전쟁이 끝나고 다시 수습하면 될 일이지. 우선은 뿌리내릴 수 있는 기반을 지키는 것이 상책이오!”
* * *
송경,
송국 경성은 아수라장이 되어있었다. 송국 황제 목탁진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조서(詔書)를 선포하고는 도망쳤기 때문이다.
그 조서에는 자신의 무능으로 인해 일이 이렇게 되었으며, 송국 백성에게 미안한 마음에 황위를 오공령에게 양위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경성의 관리들은 곧 가족을 데리고 분분히 남쪽으로 향했다. 떠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오공령의 전략에 따르면, 경성 또한 결국 한군이 점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소란이 일자, 경성에 있는 백성들과 귀족 중, 여건이 되는 사람들은 분분히 남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끝없이 이어진 마차 대오(隊伍) 안.
흔들리는 마차 하나, 그 내부에 정신을 놓고 기대앉아 있는 목탁진이 있었다. 그의 두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그는 아직 자신의 이름으로 조서가 공표된 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삼대 문파와 저들 몇몇 역신들이 마음만 먹으면 어떠한 어명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이었다. 무슨 말을 쓰든지, 그 위에 목탁진의 인장을 찍어내면 그만이었다.
황후는 수시로 눈물을 닦아냈으며, 그들과 동행하며 마차 안에 같이 타고 있는 대내총관 막고는 침묵했다.
삼대 문파는 원래 목탁진을 죽이려고 했었다. 하지만 오공령이 그들을 말렸다. 오공령이 그들에게 일단 목탁진의 목숨을 살려 놓으면, 쓸데가 있을 것이라고 설득한 것이다.
지금 줄지어가는 마차 대오에는 수많은 궁녀와 내시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심지어 마차가 모자라, 일부 후궁들은 짐 마차에 몸을 실은 상태였다. 이들은 바람과 햇볕에 그대로 노출되었지만 어떠한 원망도 하지 않았다. 목숨을 잃지 않은 것만 해도 행운이었다. 이제 자신들이 곧 어떤 처지에 처할지 몰랐기 때문에 다들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었다.
마차 대오에는 백관들도 동행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마차 안에서 공무를 처리했다.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업무를 처리하다 보니, 눈이 피로해진 자평휴가 고개를 돌려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마차 밖에는 가무군이 걸터앉아 마차의 흔들림에 맞추어 다리를 흔들고 있었다. 마차 입구 쪽에 기대앉아 있었는데, 그는 수시로 마부가 마차를 모는 것을 지켜보거나, 여유롭게 주위 풍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자평휴가 갑자기 입을 열어, 목탁진의 상황에 대해 물었다. 목탁진이 조용히 있다는 이야기를 듣자, 그는 참지 못하고 탄식을 내뱉었다.
원래 삼대 문파는 목탁진을 그렇게 갑작스레 황위에서 끌어내리는 것을 꺼리고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관리가 협조하는 것을 보고, 또 그 아래 있는 모든 군정 업무가 평소와 같이 정상적으로 처리되는 것을 보자, 마음을 굳히게 되었다. 황제가 없어도 어떠한 혼란도 발생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하자, 그렇게 위아래에서 협력해서 빠르게 황제 목탁진을 배제해 버렸다.
전방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송군 같은 경우는, 사령관이 조지환으로 바뀌어 전면적으로 퇴각을 실시하고 있었다.
한군은 그 뒤를 한동안 뒤쫓았지만, 상황이 이상한 것을 눈치채고는 혹시라도 함정일까 우려하는 마음이 들어 군대를 멈춰 세웠다. 그건 모두 금작의 신중한 성격 때문이었다.
금작은 휘하 장수들을 불러 지금 상황에 대해서 열띤 의논을 펼쳤다. 하지만, 그 누구도 도대체 나조가 무슨 생각으로 퇴각하고 있는지 속 시원하게 말할 수 없었다.
한군은 아직 나조가 사로잡혔고, 사령관이 조지환으로 바뀐 것을 모르고 있었다.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누가 전방의 사령관을 이처럼 장난스럽게 수차례 바꾼단 말인가?
이토록 상황이 혼란스럽다 보니, 금작은 도저히 상대방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평생 겪어본 적 없는 상황이었다.
이때, 군막 밖에서 병사가 뛰어들어와 소리쳤다.
“급보입니다.”
아직 송군의 상황도 다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송경의 소식이 먼저 도착했다. 송국 황제 목탁진이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황위를 오공령에게 양위했다는 것이다.
“황위를 오공령에게 양위한다고?”
금작은 서신을 빼앗듯이 가져가 내용을 살펴보고는 입을 쩍 벌렸다. 오공령이 송국의 황제가 되었다고?
장수들은 서로 어리둥절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보고입니다.”
또다시 급보가 도착했다. 전방에 일부 부상 당한 송군 병사를 붙잡았는데, 그들의 말을 들어보니, 사령관이 다시 조지환으로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그 후, 계속해서 들어오는 정보로 인해서 드디어 어떻게 된 것인지 상황을 대략 파악할 수 있었다. 송국 삼대 문파가 송국 황제 목탁진을 폐위시키고, 오공령을 황제로 만든 것이었다.
그 후에 계속해서 들어오는 정보를 분석했다. 그들은 북부 송군이 지금 남쪽을 향해 퇴각하고 있으며, 오공령의 남부 병력이 지금 집결해 북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말은, 송국 남북이 드디어 철저히 하나로 뭉쳤다는 것을 뜻했다. 즉, 송국의 병력과 오공령의 병력이 연합을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건 한국이 송국을 집어삼키는 데 큰 걸림돌이 될 것이 분명했다.
과거, 금작이 오공령에게 압박을 가해 송국 후방에서 소란을 피우게 한 이유가 무엇인가? 좀 더 쉽게 송국을 공략하기 위해서였다. 혹시라도 송국과의 전쟁으로 인해 한국의 국력이 크게 소모되는 것을 우려한 것이다.
쾅!
금작은 탁자를 내리치며 분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지금 즉시 조정에 소식을 전하고, 천녀교에게 어찌 된 일인지 추궁하라 전해라!”
어찌 된 일이냐고? 천녀교가 알 리 없었다. 단지 혜청평이 오공령과 결탁하고 사문을 배반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렇지만, 참 애매한 것이, 혜청평이 사문을 배신한 것이라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천녀교는 제자의 혼인을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혜청평은 오공령에게 시집가지 않았는가? 그러니 사실은 혜청평이 이미 천녀교를 나간 것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일은 뭐라 명확히 변명하기 어려운 일이었으니, 변명할수록 다른 사람에게 웃음거리가 될 뿐이었다. 그렇다고 변명하지 않자니, 혜청평이 천녀교를 나간 이유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니 혜청평의 일은 천녀교 내부에서 별로 떠들기 좋은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냥 몇몇 제자들이 사문을 배신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이 일은 어찌 보면 예정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천녀교 내부는 모두 쉬쉬하는 분위기였기에 그나마 괜찮았지만, 외부는 상황이 달랐다. 다들 쉼 없이 천녀교를 압박했다. 한국 조정은 크게 진노했고, 백천곡, 무상궁도 분노했다. 다들 천녀교에게 죄를 물었다.
과거, 만약 천녀교가 자신들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면, 오공령은 어쩔 수 없이 한군을 도와 송국을 앞뒤로 공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전쟁이 동결되기 전에 송국을 대부분 처리할 수도 있었다.
처음에 오공령은 이렇게 큰 세력이 아니었기 때문에, 만약 그때 말을 듣지 않았다면 손쉽게 처리하면 그만이었다. 다만 천녀교가 중간에 끼어들어 백천곡과 무상궁이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을 뿐이다. 송국은 전선을 양쪽으로 늘리지 않기 위해 오공령을 건들지 않았다. 그렇게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해서, 오공령은 세력을 발전시킬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아무튼, 이 모든 것은 천녀교가 사익을 추구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송국 삼대 문파의 지지를 등에 입은 오공령은 이미 과거와는 입지가 완전히 달라지고 말았다. 이젠 자신들이 처리하고 싶다고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 이미 오공령을 처리할 기회를 완전히 잃어버린 것이다. 천녀교가 이 원한을 갚고 싶어도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런 문제를 일으킨 천녀교는 하루하루가 힘겨울 지경이었다.
* * *
군막의 입구가 열리자, 그 안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수련하고 있는 우유도가 보였다. 그 모습을 본 관방의는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천도비경에서 나온 우유도는 처리해야 할 일이 수없이 많았다. 하지만 우유도는 두 눈을 뜨면 일을 처리하고, 눈을 감으면 마치 세상과 격리된 듯, 아무리 바빠도 수련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이처럼 깔끔한 전환은 관방의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처럼 복잡한 일이 많은데, 어떻게 한순간에 이렇게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도야!”
관방의가 불렀다. 우유도가 천천히 두 눈을 뜬 후에 다시 다가가 말했다.
“송국 쪽 상황이 급변했어.”
“급변?”
우유도가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송국이 벌써 한국에게 무너지기라도 했단 말이야?”
관방의가 밀서를 우유도에게 건네주었다.
“목탁진이 자신의 죄를 시인하는 조서를 내리고, 황위를 오공령에게 양위했어!”
“…….”
우유도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우유도는 밀서를 받아 내용을 살펴보았다. 비록 밀서에는 적혀있지 않은 내용도 있었지만, 어리석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 안에서 어떤 단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직 궁지에 몰리지 않은 목탁진이 양위를 할 리가 없었다. 우유도가 중얼거렸다.
“송국 삼대 문파가 목탁진을 폐위시키고, 오공령을 지지하기로 했나 보군. 오공령이 송국 황제가 된다니….”
이 일은 정말로 예상외의 일이었다. 하지만 자세히 생각해보면,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우유도는 아무리 생각해도 황당했다. 다만 그렇다고 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관방의가 한숨을 내쉬었다.
“각지의 제후들이 평생을 노력해도 근처에도 못 가는 일을, 그 뻔뻔한 놈은 조금의 힘도 들이지 않고 손에 넣었어. 송국 황위가 하늘에서 떨어져 그놈 머리에 떨어졌으니, 아주 제대로 어부지리를 취했어.”
우유도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황위 같은 것이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면, 맞아 죽을 수도 있어. 누구나 다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야. 하지만 오공령은 감당해 냈지. 왜 그럴까?
뻔뻔하든 말든, 반란군에 불과한 그가 연국 제후의 포위를 뚫고 도망쳤고, 세 나라 사이에서 자리를 잡았지, 또 자신의 세력을 빠르게 발전시켰어. 그는 여기저기 힘을 끌어들여 이용하는 능력이 보통이 아닌 사람이야.”
“그런 상황에서 만약 그가 체면을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면 지금까지 살아남지도 못했겠지. 만약 뻔뻔하게 혜청평을 아내로 맞이하지 않았다면 천녀교의 세력을 등에 업지 못했을 것이니, 지금 아마 숨 쉴 공간도 없었을 거야. 어쩌면 이미 죽어서 시신이 되어있을 가능성도 있지.”
“창주에서 반란을 일으켰을 때, 수십만의 병력이 힘든 것을 마다하지 않고 그를 따랐지. 머물 곳도 없고,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하니 얼마나 힘들었을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어. 하지만 오공령이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 빠졌다 한들 그 수십만의 병력은 도망치지 않았어.
그 많은 병력의 지지를 받는 것만 보아도,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지. 만약 그전에 하나하나 쌓아온 기반이 없었다면, 오늘날 황위가 그에게 돌아오지도 않았을 거야. 사전에 준비가 되어있었기 때문에 기회를 얻을 수 있던 것이지.
만약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면, 이번 기회는 그와 인연이 없었을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 그 기회가 돌아갔겠지. 그러니 오공령이 단순히 어부지리를 취했다고 볼 수는 없어. 그 황위는 오공령이 자신의 능력으로 쟁취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