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6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왔습니다
삼대 문파의 장문인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궁임책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그는 뭔가를 깨닫고는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맹선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우유도가 위험에 처했는데, 왕야는 어째서 구하지 않는 것이오?”
“저곳에 장병들을 몰아넣는 것은 무의미한 희생에 불과합니다. 각 문파의 수행자들이 이미 자객을 치기 위해 움직이지 않았습니까?”
대군은 즉시 명령에 따라 우유도의 군막이 있는 곳에서 벗어났다. 우유도의 군막은 이미 파괴되어 흔적도 보이지 않았고, 그 안에서 삼대 문파의 수행자들과 흑의 복면인들이 나름 치열한 모습으로 싸우고 있었다.
그 전에 다가가지 못했던 삼대 문파의 수행자들은 병사들이 뒤로 빠지자 가까이 다가갈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적을 죽이기 위해 움직인 그들이었으니, 자객을 보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싸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복면을 한 자객들은 신속하게 현장에서 철수했다. 상조종의 군령이 있기에 아무도 그들을 저지하지 않았고, 그렇게 자객들이 떠나도록 내버려 두었다. 다만 그들과 싸우던 수행자들이 그 뒤를 쫓아 움직일 뿐이었다.
상조종이 싸움이 있었던 현장에 도착해 보니, 장병들의 수많은 시신이 바닥에 깔려있었다. 핏물을 밟으며 현장을 살펴보는 그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져 부들부들 떨렸다. 상조종은 돌연 삼대 문파의 장문인을 돌아보고,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객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 아군의 중추를 습격했습니다. 설마 법사님들이 아군을 위해 구축한 공중 방어 배치는 그냥 장식에 불과한 것입니까? 그렇다면 본왕이 보기에, 전쟁을 치를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맹선이 대충 말했다.
“이번 일에 대해서 반드시 왕야께 만족스러운 대답을 해 줄 것이오!”
맹선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유도의 시신이 있는지 찾는 것이다.
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우유도는 말할 것도 없고, 우유도를 따라다니는 사람들의 시신도 찾을 수 없었다.
우유도 곁에 있는 무조행 등의 인원이 손을 쓰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러니 맹선 일행은 이미 상황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고 있음을 감지하고 있었다.
잠시 후, 일단의 수행자들이 뛰어와 세 장문인에게 조용히 보고했다.
“저희가 군막에 뛰어들어갔을 때, 이미 우유도는 없었습니다. 그 안에는 이미 도망친 ‘자객’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우유도는 처음부터 안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없다고? 세 장문인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궁임책이 돌연 뒤돌아보더니, 상조종을 보고 소리쳤다.
“왕야, 우리 세 문파의 제자들이 우유도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어갔을 때, 그 안이 비어 있는 것을 발견했소. 우유도가 처음부터 그 안에 없었다고 하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이오?”
상조종이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확실히 비어 있었습니다. 어제 도야가 깨어났고, 그 후에 즉시 이곳을 떠났습니다. 떠났기에 망정이지, 아직 남아있었다면 어찌 되었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군요.”
도망쳤다고? 용휴와 맹선의 안색이 그 순간 아주 볼만해졌다. 궁임책이 소리쳤다.
“이미 떠났으면서, 어째서 병력이 여전히 저곳을 지키는 척한 것이오?”
륜의에 앉아 있던 몽산명이 입을 열었다.
“그건 노부의 의견이었습니다. 설마 그게 잘못되었단 말입니까?”
문제가 생겼다. 몽산명은 우선 그 책임을 자신에게 돌렸다. 혹시라도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면 상조종에게 화가 미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궁임책이 분노하며 바닥에 있는 시신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몽 사령관님의 말은 장병들이 이렇게 의미 없이 죽은 것이 잘한 일이란 말이오?”
“도야는 남주 군대에 큰 영향을 가진 분입니다. 이처럼 병력을 배치한 것은, 도야가 아직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 군심을 안정시키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잘못되지 않았습니다. 단지 자객이 있을 줄 생각지 못한 것이지요. 심지어 그 자객이 도야의 위치를 이토록 정확히 찾을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노부가 보기에, 이 일은 뭔가 이상합니다.”
맹선이 말을 받았다.
“설사 이상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외부인은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 내가 보기에 자객의 목표는 우유도가 아니라, 왕야였던 것 같소. 대병력이 물 샐 틈 없이 보호하고 있으니, 누가 봐도 저곳을 연군의 중추라고 생각했겠지.”
양쪽이 그렇게 서로 잘잘못을 따졌지만, 어떤 결과도 도출해 내지는 못했다. 우유도의 신변에 문제가 없는 상황에서 상조종도 이들과 철저하게 반목하고 싶지 않았다.
한편, 삼대 문파는 자객을 추격했지만, 단 한 명의 자객도 잡아들이지 못했다.
그 후, 현장에 있던 장병들의 말을 듣고, 자객이 조국 쪽 사람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삼대 문파에서도 이 같은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변명을 내놓았다. 그들은 두 마리 날짐승을 조국에게 탈취당했고, 그 때문에 자객이 연국의 중추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조군이 포위망을 뚫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고 말하고는, 조국의 이간질에 속아 넘어가면 안 된다고 말했다.
만약 우유도의 사전 당부가 없었고, 거기에 누가 보낸 것인지 모를 밀서의 당부가 없었다면, 상조종은 정말로 저들의 말을 믿었을 수도 있었다.
이제 양측 모두 상대방의 속내를 알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그 사실을 대놓고 밝히지 않았다.
연국 삼대 문파는 우유도가 어떻게 도망쳤는지 추측할 수 있었다. 이들 삼대 문파 모르게 도망친 것을 보면, 아마도 운희의 둔지술을 사용한 것 같았다.
적과 결탁하여 치밀하게 준비한 암살 계획이었다. 하지만 원하는 결과는 얻지 못했고, 오히려 상조종의 신임을 더욱 잃어버리는 결과를 맞았다. 용휴, 궁임책, 맹선은 아주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사부님을 만났을 때 신길규는 그저 ‘몸을 잘 추스르거라’라는 말만을 들었다. 그는 매우 실망한 모습으로 사부님의 군막에서 나왔다.
실패라니!
어두운 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불빛에 의지해 잘려나간 자신의 팔을 바라보았다. 지금 신길규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심경이었다.
실패했으니 무슨 공로를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이같이 체면 구기는 일은 누구도 언급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그도 자신의 공로가 물거품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 * *
산세가 아름다운 곳에 위치한 자금동은 마치 선경에 있는 것 같았다!
엄입은 의아한 얼굴로 산을 내려갔다. 산문에 그의 오랜 친구가 방문했다는 보고를 들었기 때문이다.
방문자는 신분을 밝히지 않았고, 그저 서신 한 장을 전달하게 했으며, 엄입이 서신을 보면 자신이 누구인지 알 것이라는 말만 전했다.
하지만 엄입은 서신을 보고도 상대방이 누구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서신에는 대략적인 날짜와 엄입의 충고를 듣지 않아 매우 후회한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서신에 적힌 날짜는 엄입이 이미 천도비경에 들어가 있었던 날로,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였다.
당시 엄입은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 충고를 한 것 같지 않았다. 그는 신분과 지위가 있는 사람으로 아무 사람에게나 충고하지 않았다. 만약 충고한 일과 그 충고를 듣지 않았던 사람을 굳이 한 명 꼽자면 우유도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 당시, 엄입은 영검산의 저풍평이 제안한 일에 대해서 우유도에게 대충 둘러대라고 충고했지만, 결국 우유도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정말 우유도가 왔단 말인가? 하지만 들려온 전장의 소식에 따르면, 우유도는 중상을 입고 아직 깨어나지 못했다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정말로 우유도라면, 만나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마음속에 의문을 가진 채, 엄입은 빠르게 산문을 향해 움직였다. 그곳에 도착하고 본 것은 누가 봐도 변장을 하고 산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엄입이 내심 경계하며 천천히 산문을 벗어나 물었다.
“어느 분께서 본인에게 서신을 보내셨소?”
그중에 한 사람이 포권을 하며 말했다.
“엄 장로님께서 건망증이 있으신가 봅니다.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그 익숙한 목소리를 듣고, 엄입이 두 눈을 치켜떴다. 다시 상대방의 체형을 확인하고, 상대방이 허리춤에 매달린 보검을 의도적으로 흔들며 보여주는 것을 보고는, 우유도를 못 알아볼 수 없었다.
마침 크게 웃으며 우유도를 환영하려 할 때 우유도가 조용히 하라고 손짓했다. 그 모습을 보고 엄입은 미소를 거두고 조용히 물었다.
“동생, 전방에서 크게 다쳤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어찌 여기 나타난단 말인가?”
“제가 왜 여기 나타났는지, 나중에 궁 장문인께 여쭤보시면 될 것입니다.”
“그래, 갑자기 찾아온 것은 내게 볼일이 있는 것인가?”
“무슨 일로 왔겠습니까. 바로 자금동에 대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왔습니다. 제가 자금동에 가입하기로 한 일을 설마 잊으신 겁니까?”
“아?”
엄입이 대경실색하며 말했다.
“지금 말인가? 동생, 농담하는 건가? 만약 지금 자금동에 가입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다른 두 문파가 가만히 있겠는가? 그렇게 되면 이 전쟁을 어찌 계속하겠는가?”
“그러니 제가 변장을 하고 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큰 자금동에 제가 숨을 곳 하나 없겠습니까? 자금동이 비밀을 지키기만 하면 외부에서 어찌 알겠습니까.”
“아니….”
엄입이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고는 말했다.
“동생, 눈앞에 전쟁이 끝나가는데, 어찌 그리 급하게 움직이려 하는가?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하, 정말 재미있습니다. 저는 제가 약속을 지키지 않을까 봐 자금동이 걱정하리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나중에 목적을 이룬 후에 배신할까 봐 말입니다. 그래서 전쟁이 끝나기 전에 급히 달려온 것입니다. 이건 제 성의를 보여드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직접 찾아와 자금동의 손에 인질이 되어 드리겠다고 하는데, 자금동은 오히려 이걸 싫어하다니요.
엄 장로님, 한가지 확실히 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지금 이런 상황은 제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장로님이 저를 쫓아낸 것입니다. 이렇게 환영하지 않는다고 하시니, 여기서 작별을 고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우유도가 포권을 했다. 그렇게 우유도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몸을 돌렸다.
우유도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엄입의 마음이 급해졌다. 급히 손을 뻗어 우유도의 팔을 붙잡고는 말했다.
“무엇이 그리 급한가! 동생, 이왕 여기 왔으니 일단 올라가서 잠시 차나 한잔하는 게 어떤가. 나중에 내가 인정이 없다느니 하는 소리가 나올 수 있으니, 집주인으로서 최선을 다하게 해 주게나.”
“괜히 여기서 시간 끌지 말고, 올라갈 거면 빨리 가시지요. 다른 사람이 저를 알아보지 못하게 하려고 변장을 한 것입니다. 이런 행동을 다른 사람이 보면 오해하지 않겠습니까…….”
두 사람은 그렇게 쑥덕거리더니, 산을 오르게 되었다. 관방의 등 다른 사람들은 그 뒤를 쫓았고, 올라가는 도중에 우유도는 엄입에게 뒤에 있는 사람들의 신분을 일러 주었다. 엄입은 뒤돌아 인원을 한번 살펴봤다.
그렇게 한적한 곳에 있는 객원에 도착한 엄입은 우유도의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일단은 얼굴에 쓴 그 면구를 벗고 진짜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 어떤가. 그래야 내 마음이 더 놓일 것 같군, 혹시라도 가짜일 수 있으니 말이야.”
우유도는 그 말을 듣고 그대로 면구를 벗고 진짜 얼굴을 보여주었다. 우유도는 사실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아직 안색이 창백했고, 부상이 다 낫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인질을 구한 일에 대해서 엄입도 전방에서 보내온 소식을 통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아직 힘들어 보이는 우유도의 모습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다.
천도비경에서 같이 협력한 적이 있었기에, 우유도의 수단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고 있었다. 그런 우유도가 이토록 크게 다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