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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086화 (184/1,000)

1086화. 선황이 영명(英明)하시어 (2)

장만루는 물론이요, 좌승풍조차 한방에 목숨을 잃는 것을 보고, 대경실색한 미만은 즉시 품에서 천검부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그때 제갈지는 이미 미만 코앞에 나타나 있었다.

마지막으로 죽어가던 월접의 날개 빛이 사라지기 직전이었다. 해무극은 제갈지가 미만의 손을 잡고, 그대로 부러뜨리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이윽고 마지막 월접의 날개 빛이 완전히 사라져버렸고, 지궁 안은 완전한 어둠으로 변해버렸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들은 알 수 없었다. 해무극 또한 이젠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상유란은 자신의 옷깃을 붙잡고 여전히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소란스러운 소리가 몇 번 나더니 지궁이 곧 조용해졌다. 그저 공기 중에 피 냄새만 가득했다.

잠시 후, 제갈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아대야, 문은 반만 열어라, 그리고 가서 입구에 있는 삼대 문파의 태상 장로들을 안으로 모셔오거라. 안에서 장문인들이 찾는다고 전하면 될 것이다.”

그 후, 문 한쪽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열렸고, 곧 한 사람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단의 발소리가 지궁 밖에서 들려왔다.

나갔다 돌아온 장님 내시는 가장 먼저 상유란의 곁으로 돌아갔다.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지 않는 어두운 환경은 그에게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피비린내?”

지궁의 대문 밖, 안으로 들어온 한 사람이 의아한 목소리로 말했다. 곧이어 월접이 빛을 뿌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바닥에 피가 뿌려진 것을 보자, 삼대 문파의 여섯 태상 장로가 경악하며 급히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리고 바닥에 쓰러진 시신을 확인했다. 삼대 문파의 장문인들이 모두 피바다 위에 죽어 있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한 태상 장로가 굳은 목소리로 호통쳤다. 상유란과 해무극은 마치 귀신을 본 것처럼 제갈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습격이 있었습니다.”

제갈지가 느릿하게 대답했다. 그 순간,

쿵.

바람이 없음에도 지궁의 문이 혼자 움직이더니 닫혔다.

여섯 태상 장로가 황급히 뒤돌아 닫힌 문을 확인했을 때, ‘퍼퍼퍽’ 소리를 내며 세 마리 월접이 허공에서 터져나갔다. 마치 어떤 무형의 물건에 강타당한 것 같았다.

지궁이 또다시 어둠에 잠겨 들기 시작했다. 어둠 속, 해무극은 월접이 죽어가는 동안, 희미해지는 불빛을 따라 움직이는 하나의 인영을 볼 수 있었다. 이 인영은 믿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며 어둠 속에서 짧은 허상만을 남기고 있었다.

그 허상이 나타났다 사라질 때마다, 비명과 울부짖음이 지궁 내에 울려 퍼졌다. 상유란이 두려움에 울부짖었고, 혼란스러운 소란이 일었다. 뭔가 바닥에 쓰러지는 소리가 계속해서 지궁 안에 울려 퍼졌다.

훅!

지궁 내부에 강기가 몰아쳤다. 모자는 곁에 있는 장님 내시가 그들을 보호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만약 보호하지 않았다면, 두 사람 또한 큰 상처를 입었을 게 분명했다.

잠시 후, 기 폭풍이 잔잔해졌고, 조금 전까지 소란이 일어났던 지궁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완전한 침묵 속으로 잠겨 들게 되었다.

훅,

빛이 생겨났다. 제갈지가 땅에 떨어져 있던 등롱 하나를 들어 불을 붙인 것이었다. 등롱은 제갈지의 얼굴과 손을 비추었는데, 손은 온통 피로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고, 제갈지의 얼굴에도 적지 않은 피가 묻어 있었다. 제갈지의 옷도 피로 젖어 있었다. 그건 정말이지, 너무나 공포스러운 모습이었다.

제갈지가 손에서 강기를 내뿜자, 손에 묻어 있던 피가 안개로 변해 천천히 허공 속으로 증발해버렸다. 이윽고 제갈지의 온몸에서 강기가 퍼져 나왔고, 제갈지의 얼굴과 옷에 묻어 있던 피조차 모두 허공으로 증발해 날아가 버렸고, 제갈지는 완전히 깨끗해진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았다.

상유란도 이 모습을 보고 있었다. 다만 상유란과 해무극은 강기를 볼 수 없었기에, 그저 제갈지의 몸에 묻은 피들이 알아서 핏빛 안개로 변해 사라지는 것으로 보일 뿐이었다. 그런 풍경은 매우 음산하고 괴이해 보였다.

상유란은 더 이상 눈을 감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바닥을 봤고, 방금 들어왔던 삼대 문파의 태상 장로들이 모두 죽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모두 피바다에 몸을 눕히고 있었는데, 머리가 터져나간 것이 아니면, 목이 찢어지거나, 아니면 심장 위치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아직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장문인들과 태상 장로들을 모두 합해도, 겨우 아홉입니다. 밖에 아직 다른 사람들이 있으니, 만약 나중에 만난다면, 태후마마와 폐하께서는 저들이 이미 원하는 것을 얻어 떠났다고 하십시오. 노신이 등롱을 들고 우선 태후와 폐하를 모시고 돌아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뒷일은 노신이 잘 처리하겠습니다.”

제갈지는 그렇게 이야기하고는 등롱을 들고 길을 열었다.

“두 분께서는 조심하십시오. 혹시라도 피를 밟는다면 다른 사람의 의심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두 모자의 얼굴에 두려움이 가득했고, 한참 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등롱을 들고 있는 제갈지가 뒤돌아 두 모자를 바라보고 창노한 목소리로 탄식을 내뱉었다.

“이곳에 오래 머무르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가시지요.”

결국, 상유란이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제갈지, 자네가 이들을 모두 죽인 것인가?”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노신은 죽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들은 이곳에 오지 말아야 했지요. 노신도 어쩔 수 없이 이리한 것입니다.”

해무극이 끼어들었다.

“선황께서 임종하시기 전에 짐에게 말하기를 짐에게 그대를 선대 하라고 했지. 그대가 짐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이야. 그러면서 이곳의 문을 열 수 있는 절반의 비밀을 그대에게 주었다. 자네가 정말 나를 보호할 수 있는지, 그 당시에 짐은 이해할 수 없었네. 나중에 짐은 그대에게 물어본 적도 있었지만, 그대는 입을 열지 않았지. 이제 짐은 어찌 된 일인지 알겠군.”

제갈지는 다소 곤란하다는 듯이 말했다.

“선황께서는 매우 영명하셨기에, 이곳에 들어올 수 있는 자가 황제와 삼대 문파의 장문인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다른 자들이 들어오는 걸 삼대 문파의 장문인들이 허락할 리 없으니까요. 그러니 만약 누군가 진국신기를 빼앗고자 한다면, 열에 아홉은 바로 삼대 문파일 수밖에 없다고 황제는 추측하셨지요.

그 때문에 선황께서는 절반의 비밀을 저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렇기에, 그 사람이 누구든 이곳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저를 찾아올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선황께서는 노신에게 폐하를 지키라 하셨습니다!”

두 모자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때 제갈지가 다시 말을 이었다.

“노신에게 이 절반의 비밀을 가지고 있게 하신 것은 삼대 문파가 쉽게 조국의 하늘을 바꾸지 못하게 하려고 만든 안배였습니다. 단지 선황께서는 상황이 이런 지경에 이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신 것 같습니다. 삼대 문파는 하늘을 바꾸려고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조국이 스스로 전쟁을 일으켰고, 이 때문에 조국이라는 거대한 나라가 망국을 향해 가게 되었습니다. 이에 삼대 문파의 장문인들은 자신들의 몸을 보존키 위해 이곳으로 쳐들어왔습니다. 노신 하나의 몸만 가지곤, 보고를 지킬 순 있어도, 이 거대한 조국을 지키지는 못합니다.”

만약 그전에 제갈지가 이런 말을 했다면, 분명 해무극의 분노를 불러 왔을 것이다. 지금 이건 대놓고 해무극에게 전쟁을 일으키지 말았어야 했다고 질책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제갈지의 능력을 직접 목격한 후였다. 그의 힘이 눈앞에 있으니, 해무극은 제갈지를 문책하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지금 해무극은 눈앞에 있는 다른 사실에 대해서 파악하고자 했다. 지금 눈앞에 수많은 시신이 있었다. 죽은 사람은 모두 삼대 문파의 절정 고수들이었다. 삼대 문파의 장문인들은 물론이요, 태상 장로들까지 있었다. 이들은 조국 삼대 문파의 가장 강한 힘이었다. 그런데 찰나의 순간에 대내총관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당연히 그가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때, 해무극이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물었다.

“황증조부께서 황조부께 당부를 하고, 부황께서 짐에게 당부했지. 다들 자네를 선대 하라고 했어. 그걸 보면 그분들 모두 자네의 능력을 알고 있었다는 말이네, 오직 짐만 모르고 있었지. 자네는 의도적으로 그 사실을 숨긴 것인가, 아니면 짐이 선대들보다 부족해 알 자격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인가?”

제갈지가 늙고 쇠약한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그런 것을 따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일단 여기를 벗어나시지요.”

해무극은 다소 흥분하며 말했다.

“당연히 의미가 있지. 만약 그대에게 이런 능력이 있음을 알았다면, 분명 우리 조국의 군대를 곤경에서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니, 우리 조국이 지금 같은 상황에 처하지 않을 수 있었어!”

제갈지가 고개를 저었다.

“쓸데없는 생각입니다. 노신이 그런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차치하고, 노신은 밖에서 절대 손을 쓸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노신뿐만 아니라, 폐하도 무사하지 못할 것입니다. 제 정체가 드러나는 것보다, 지금 같은 상황이 오히려 나은 것입니다. 지금이라면 폐하와 태후마마께서도 어쩌면 살아남을 방법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외부 사람들이 노신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조국이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폐하와 태후도 같이 목숨을 잃을 것이 분명합니다. 표묘각이 절대 우리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고, 이 천하에 우리가 머물 곳은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이 일은, 폐하의 황조부도, 부황께서도 감히 외부로 누설하지 못하신 일입니다. 만약 그분들께서 저에 대한 이야기를 밖에 꺼냈다면, 조국과 우리에게 재난이 되었을 것입니다!”

해무극이 다소 비통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짐에게도 숨긴 것인가?”

확실히 이야기하지 않으면 절대 움직이지 않겠다는 모습이었다. 그것을 보고 제갈지는 곤란하다는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일찍이 노신이 아직 어릴 때였습니다. 노신은 그때, 폐하의 마음에 들어 그 옆에서 시중을 들었습니다. 그나마 노신에게 타고난 자질이 있어 수행자의 길을 가게 되었지요. 그 당시, 폐하께서도 노신이 오늘날의 경지에 오를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폐하께서는 노신을 경히 여기지 않으시고, 반쯤 아들로 생각하시고 저를 귀히 여겨주셨습니다. 그 덕분에 제가 이렇게 성장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폐하의 은혜를 잊지 않았고, 그분께서는 임종하시기 전에 당시 태자이시자 폐하의 황조부되시는 분께 저를 잘 돌보라 당부하셨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그 말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자네가 받은 은혜가 무엇인가?”

“폐하, 황궁에는 천하의 온갖 진귀한 물건이 모두 모입니다. 제가 성장하고 있을 당시, 어쩌다가 세상에 흘러나온 표묘각의 금물(禁物)을 황궁에서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황궁은 그 물건을 황궁 안에 숨기기로 결정했고, 당연히 그 비밀을 알고 있는 자는 모두 죽임을 당했지요.

노신의 경지가 금단기의 끝에 도달해 더는 발전이 없을 때, 당시 폐하께서 저를 몰래 부르시어 그 금물을 복용하게 하셨습니다. 그 후, 저는 어찌 된 일인지 한방에 경지를 돌파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폐하든 노신이든 이 일에 대해서는 비밀을 엄수했고, 감히 단 한마디도 누설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분께서 임종하실 때, 노신의 상황을 폐하의 부황께 알려주셨지요.”

“하지만 선황께서 임종하실 때에는,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노신은 이미 세 분의 황제를 모셨습니다. 이대로 황궁에 머무는 것은 나이 때문에 큰 문제가 될 것이 분명한 상황이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계속 지금의 신분을 유지하게 된다면 금단기 수행자의 수명을 넘어서게 될 것이고, 필연적으로 표묘각의 관심을 불러오게 되었을 것입니다.”

“사실 저는 이미 대대로 이어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선황께서 폐하께 알리지 않은 것은, 당연히 선황의 안배가 있는 것입니다. 또 이것은 폐하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노신이 의도적으로 폐하께 숨긴 것이 아닙니다. 단지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해서, 결국 어쩔 수 없이 노신이 폐하 앞에 정체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을 뿐입니다.”

“폐하와 태후마마께서는 반드시 잊지 마셔야 합니다. 만약 노신의 일이 폭로된다면 절대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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