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6화. 뼈는 끊어져도 힘줄은 이어져 있다
비장류, 하화, 정구소는 객원에 있는 한 정자로 이동해 자리에 앉았다. 다들 얼굴에 흥분한 기색이 적지 않게 남아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자, 결국 우유도가 심은 첩자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남주를 다스리게 됐으니, 분명 큰 권력을 가졌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거운 책임감이 그들의 어깨를 짓눌러왔다.
이들 셋은 서로에게 묻고 싶었다. 하지만 우물쭈물하며, 결국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들 셋은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고 있었다. 다들 문파 내부에 도야의 밀정이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걸 안다고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우유도에게서 벗어날 것이 아니라면, 문파 내부에 있는 배신자를 밝혀낼 생각을 감히 하지 못했다. 정말 그렇게 한다면, 우유도에게 뭐라 변명한단 말인가.
이건 마치 공손포가 표묘각의 밀정임을 알고도 건들지 못하는 우유도와 완전히 같은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배신자가 누구일까, 그 지위는 어느 정도일까? 이 문제가 이들 세 사람을 불편하게 했다. 그걸 확실히 알기 전에는 이들 세 문파는 앞으로 우유도 앞에서 감히 거짓을 말하지 못할 것이다…….
* * *
방금 관방의와 같이 주위 구경을 나갔던 봉약남이 또다시 돌아왔다. 어쩐 일인지 궁금해하던 찰나에 우유도가 그녀를 보며 밖을 향해 고갯짓했다.
봉약남이 우유도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한 사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그 사람을 보고 잠시 멍해졌다. 그는 바로 그녀의 외할아버지인, 천옥문의 장문인 팽우재였다.
두 사람은 이미 수년 동안 만나지 못했다. 과거 팽우재는 자신의 외손녀인 봉약남을 비교적 이뻐했다. 단지 대세에 따른 결정을 내릴 때, 대국을 중요시했고, 결국은 후회만이 남았을 뿐이다.
팽우재는 여정에 지친 모습이었다. 확실히 우유도가 자신을 찾아오라고 보낸 소식을 듣고,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밤낮으로 달려 자금동으로 달려왔다.
우유도가 갑자기 자금동의 장로가 되었다. 또 갑자기 자신을 불러들였다. 지금 우유도는 남주과 금주뿐만 아니라, 북주에 가지고 있는 영향력 또한 적지 않았다. 자금동의 장로라는 위치는 그런 것이었다. 더욱이 양측에 적지 않은 과거의 은원이 있다 보니, 그 때문에 그는 감히 우유도의 부름에 지체할 수 없었다.
다만, 이곳에 도착한 팽우재는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이제 와 우유도가 자신을 어떻게 대할지 조금 불안했던 것이다. 지금 그의 몸에는 먼지가 가득했다. 이렇게 급히 달려온 것은 우유도에게 자신이 성의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렇게 우유도를 만난 후, 팽우재는 그의 여유 있는 모습에 속으로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과거, 우유도는 천옥문이라는 지붕 아래 기생하는 한 마리 개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제는 누가 더 개에 어울리는 처지가 됐단 말인가?
팽우재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씁쓸했다.
이때, 우유도가 멀리 보고 고갯짓을 했고, 팽우재는 무의식적으로 우유도가 바라보는 곳을 고개를 돌려 함께 보았다. 우유도가 바라보는 곳에 있던 여자가 자신에게로 시선을 돌리는 것을 보았다. 그 익숙한 얼굴을 본 팽우재는 자신도 모르게 몸이 굳은 듯,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멍하니 그 여인을 바라보았다.
봉약남은 체형이 다소 부드러워졌다. 피부도 과거보다 훨씬 고와졌고, 예전보다 더 여성스러워진 모습이었다. 과거, 여장군의 기개는 조금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반가워할 수 없었다. 이미 과거의 일로 인해 서로가 소원해진 지 오래였다. 그러니 이제 와 갑자기 반가워하는 게 서로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 일에 대해 오랜만에 떠올리니, 팽우재는 참으로 유감스러울 뿐이었다.
“우 장로님, 정말 축하드립니다.”
팽우재는 빠르게 심신을 수습하고 우유도에게 고개를 돌리고는 인사했다.
“하하하, 그 말은 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팽 장문인의 집안에 자손이 한 명 늘었습니다.”
봉약남은 어느새 우유도와 팽우재의 곁으로 온 후였다. 우유도가 봉약남과 팽우재를 함께 바라보며 말했다. 팽우재는 외손녀를 바라보며 억지웃음을 지었다. 결국,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약남아, 축하한다.”
봉약남이 조용히 말했다.
“외할아버지!”
‘외할아버지’라는 말을 듣고 팽우재의 가슴이 살짝 따뜻해졌다. 그는 탄식을 내뱉었다.
“소식을 들었다. 아들을 낳았다지?”
“네.”
“좋다, 좋아. 아주 수고했다. 좋은 일이다. 정말 좋은 일이야!”
팽우재가 연신 끄덕였다. 가식적인 말이 아니었다. 봉약남이 자신에게 내뱉는 말이 결코 차갑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자, 팽우재도 반가운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진심으로 봉약남과 아이를 위해 크게 기뻐했다.
간단한 이치였다. 용친왕의 적장자였다. 왕위의 제일 계승자가 태어난 것이니, 앞으로 상조종이 자신의 외손녀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어미는 자녀로 인해 귀해진다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었다. 상조종이 자기 아들조차 내치지 않는 이상, 일단 무슨 일이 생기면, 그 아들은 언젠간 자신의 어미를 위해 이치를 바로잡을 터였다.
아들이 생겼다는 것은, 자신의 외손녀가 결국은 상조종 쪽에서 자리를 잡았다는 말과 같았다. 남주의 사람들도 이제 더는 봉약남을 괄시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건 소왕야에게 대적하는 짓이었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을 들었다. 그 목소리에서는 과거와 같은 따스함이 여전히 느껴지고 있었다. 다만, 과거에 비해 흰 머리가 다소 많아져 있었다. 그것을 본 봉약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다시금 수년간 부모님을 만나지 못한 것이 떠올랐다.
그 모습을 보고 우유도가 미소지었다.
“왕비, 제가 먼저 집주인으로서 도리를 다하게 해주십시오. 그다음, 나중에 두 분이 따로 회포를 푸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봉약남이 끄덕였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상숙청이 다가와 그녀의 팔을 껴안았다. 한 가족이 서로 비극적인 일 때문에 갈라지고 말았다. 이런 처지에 놓인 봉약남의 심정이 어떠할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내심 함께 가슴 아파한 것이다.
과거, 그때는 권력 쟁탈이 극에 달한 때였다. 그 당시에 새언니 집안의 사람들은 그녀의 오라버니를 죽이려 했고, 그녀의 오라버니는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결국 새언니의 친형제를 죽이게 되었다. 그렇게 골육상쟁을 벌이는 것을 상숙청은 그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 후, 새언니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도 아주 확실히 보았다.
팽우재는 뒤돌아 봉은태의 손에서 선물함을 건네받아 우유도에게 내밀며 말했다.
“우 장로님, 급하게 오느라 준비가 미흡합니다. 작은 성의에 불과하니, 거절하지 말아주십시오.”
우유도는 선물을 받고, 옆에 빙그레 웃고 있는 관방의에게 건네주었다. 동시에 봉은태를 보고 미소지었다.
“형님도 오셨습니까.”
봉은태는 처지가 난처했다. 순간 우유도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다만 마음속으로 참으로 감개무량한 것이, 우유도가 이렇게 한 번에 자금동의 장로가 될 줄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우유도는 지금의 지위에 오른 후에도 봉은태를 의형으로 불러주었다. 사실 봉은태는 익히 그러리라 추측하고 있었다. 영호추와의 일을 통해서, 우유도가 의리 있는 사람인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봉은태는 팽우재가 특별히 데려온 것이었는데, 혹시라도 우유도와의 사이에서 문제가 생기면, 봉은태와 우유도의 관계로 무마시킬 수 있길 바라고 함께 온 것이었다.
“자, 이럴 것이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시지요!”
우유도가 손을 뻗어, 안으로 들어가길 청했다.
일행이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아랫사람들이 차를 올렸고, 팽우재는 그때까지도 조심스럽게 우유도의 비위를 맞출 뿐, 말 한마디 경솔하게 내뱉지 않았다. 그는 우유도가 그를 부른 이유를 밝히길 기다리고 있었다. 우유도가 아무 이유 없이 그를 불렀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하아!”
그렇게 간단한 담소를 나눈 후, 우유도가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
“팽 장문인과 왕비가 이렇게 만나는 것을 보니, 과거 일이 더욱더 아쉬울 뿐입니다. 하지만 가족은 결국 가족이지요. 뼈는 끊어져도 힘줄은 이어져 있다는 말이 있듯이, 핏줄은 바꿀 수 없습니다! 팽 장문인, 그렇지 않습니까?”
팽우재는 우유도가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 때문에 그저 어색하게 끄덕이며 말했다.
“우 장로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어차피 한 가족이라면, 또 우리가 모두 남이 아니라면, 저도 그냥 직설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혹시 기분이 상하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귀를 쫑긋 세우고 밖에서 걸어들어온 관방의가 우유도 뒤에 섰다. 그녀는 우유도가 또 무슨 기발한 음모를 꾸미는지 모르겠다면서 두 눈을 반짝였다.
“우 장로님의 금구옥언(*金口玉言: 천자의 말처럼 귀한 말이라는 뜻)을 귀담아듣겠습니다.”
팽우재가 하는 말을 듣자, 관방의조차 감개무량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어렴풋이 기억하기로, 과거에 우유도와 같이 청산군에 도착했을 때, 천옥문이 우유도에게 행패를 부리는 모습을 많이 목격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상황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당당한 천옥문의 장문인이 우유도에게 굽신거리고 있었다.
한쪽에 있던 봉은태 또한 과거를 생각하며 조금은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우리 사이에 그런 예의 차리는 말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유도가 손사래를 쳤다.
“이번 팽 장문인께 한번 방문해 달라고 한 것은, 북주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입니다. 듣기로 지금 북주가 조금 혼란스럽다고 하던데, 정말로 그렇습니까?”
혼란? 혼란스러웠던가? 팽우재는 내심 의아해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 장로님께서는 어느 부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북주 각 군현의 통치 상황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듣기로 과거, 소평파가 관리했을 때와 비교하면 아주 안 좋아졌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흠, 그것은….”
팽우재는 다소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과거, 소평파가 있을 때보다 상황이 안 좋아진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우 장로님께서도 알고 계시겠지만, 원래부터 북주는 자립한 곳이었고, 이 때문에 한국과 연국의 통제를 받지 않았습니다. 북주 경내의 있는 관리들은 모두 소평파의 통제를 받았지요.
그리고 소평파는 엄격한 법률과 제도로 난세를 다스려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철저히 감시하고 관리했으며, 잘못된 것에 대해 벌을 내릴 때는 아주 단호하게 손을 썼습니다. 이 때문에 북주의 모든 것이 빈틈없이 아주 치밀하게 돌아가고 있었다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현재의 북주는 과거와 많이 달라졌습니다. 일단 연국에 귀순하게 되었고, 연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됐지요. 이 때문에 북주의 행정과 내각을 돌보는 관리 중에 연국 신하들이 적지 않게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대부분 어느 정도 삼대 문파와 관련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그들을 엄하게 통치할 수 없게 됐다는 겁니까?”
“우 장로님의 말이 맞습니다. 그들이 조정의 권력을 등에 업고 있고, 또 삼대 문파의 힘을 믿고 있으니, 그들이 부정부패를 조금 저지른다 해도 우리가 딱히 뭐라 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아마 소평파가 했던 것처럼 엄히 처벌한다면, 오히려 곤란해지는 것은 우리 천옥문이 될 것입니다. 우리뿐만이 아닙니다. 당연히 북주 자사 소등운도 못 본 척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이건 북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수많은 지역이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것을 우유도가 모를 리 없었다. 상대적으로 삼대 문파가 직접 장악한 곳은 그나마 나았다. 예를 들어 자금동이 직접 관리하는 곳은 다른 세력의 개입이 없으니, 현지 관리들도 한 세력에만 충실하면 되니, 당연히 어려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북주와 같은 곳은 여러 세력의 이득이 얽혀있었기에, 그 관계가 매우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각 세력이 이리저리 얽혀있었으니, 한쪽이 이득을 취한 후, 다른 쪽에서 또 와서 이득을 취하려 했다.
천옥문도 골치가 아팠다. 이쪽에게 성의를 표한 후, 저쪽에도 성의를 표해야 했다. 현지 관리들은 당연히 자신의 주머니에서 그 돈을 충당할 리 없으니, 결국 고달픈 사람들이 누구일지 말할 필요 있겠는가.
게다가 삼대 문파 중 어느 한 곳도 이득을 포기하려 들지 않았다. 왜 자신들의 수행자들을 희생하면서까지 영역을 차지하려 하겠는가? 왜 수천의 수행자들이 희생되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조국의 영토를 삼키려 했는가? 이런 이득이 그 핵심이었다. 그러니 포기할 리 없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우유도가 유선종, 부운종, 영수산에게 남주에서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라고 엄중하게 경고한 이유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