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8화. 끊이지 않다 (1)
팽우재는 겉으로 동의하며 끄덕였다. 하지만 내심은 우유도의 조상까지 욕하고 있었는데, 천옥문이 그 일을 해야 할지, 안 해야 할지 아직 망설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직 발을 담글 준비도 안 된 상태였다. 그런데 우유도는 이미 몸까지 담근 후를 준비하고 있었다. 마치 이미 천옥문이 그런 행동을 한 것 같았다.
다만 이렇게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며, 팽우재는 도대체 우유도가 천옥문에게 어떤 당당한 명분을 줄지 고민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마쳤다. 우유도는 팽우재 같은 사람들은 바닷물을 먹어보기 전엔 짜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인 것을 알고 있었다. 당연히 자신 문파의 이익을 가지고 도박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나중에도 분명 이익을 따져볼 것이 분명했으니, 지금 당장 팽우재가 확답을 주지 않는다고 조급해하지 않았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팽우재가 확답을 했다 한들, 우유도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팽우재 같은 사람은 일단 보여주는 게 중요했다. 실제로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주면, 자신들이 차지할 이익을 계산해보고 재빨리 자신 편에 붙을 게 분명하다는 것을 우유도는 알고 있었다.
지금 우유도가 하는 모든 것은 판을 짜는 일이었다. 지금 기반을 다져 놓는다면, 나중에 자연스럽게 일이 성사될 것이다!
그 때문에 우유도는 다시 웃는 얼굴로 유쾌하게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팽 장문인의 지친 모습을 보니, 쉬지 않고 여기까지 달려오셨나 봅니다?”
팽우재가 눈치를 보며 같이 미소지었다.
“우 장로님이 부르시니, 어찌 감히 지체하겠습니까.”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응해 주시니, 제가 다 부끄럽습니다.”
우유도는 자책하고는 곧 뒤돌아 관방의를 불렀다.
“홍랑!”
“음?”
관방의가 대답했다.
“팽 장문인께서 떠나실 때 날짐승을 한 마리 드리도록 해. 팽 장문인, 이건 제가 천옥문에 드리는 선물입니다.”
관방의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우유도의 목을 움켜쥐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자신이 쓴 천검부가 몇 장인지 벌써 잊어버렸단 말인가? 속으로 우유도에게 집안 말아먹을 ‘망할 놈’이라고 욕을 퍼부었다. 하지만 결국, 꾹 참고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어!”
우유도의 통 큰 선물에 팽우재는 기뻐하기는커녕, 오히려 가슴이 ‘철렁’했다. 급히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같이 큰 선물은 천옥문이 차마 받을 수 없습니다!”
우유도는 그런 팽우재의 거절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말했다.
“객은 주인을 따라야지요! 이건 제 마음입니다. 그러니 팽 장문인은 받아 주십시오! 만약 거절한다면, 그건 팽 장문인께서 저와 나눈 이야기가 진심이 아니라서, 제 마음을 받아 주시지 않는다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허…. 어찌 이 귀한 것을…. 너무 과합니다. 정말로 과합니다!”
팽우재는 난처하다는 듯이 미소지었다. 이러한 때에 저런 물건을 선물로 주다니, 정말로 ‘거절하기 어려운 선물’이었다. 천옥문이 이런 선물을 받는 걸 다른 사람이 알게 된다면, 아마 오해하지 않기도 어려울 것이다. 참으로 난처한 선물이었다.
우유도가 손을 내저었다.
“사리사욕을 위해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연락을 위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만약 또다시 이처럼 팽 장문인께서 장거리를 어렵게 움직이신다면, 제 마음이 불편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받아 주십시오!”
결국, 팽우재는 거절하지 못하고, 매우 난처한 모습으로 선물을 받아들였다.
팽우재는 더는 우유도의 거처에 머물지 않았다. 더 있다가는 또 무슨 깜짝 놀랄 일을 당할까 두려웠다. 급히 일어난 그는, 혹시 다른 분부가 있는지 묻고, 없다면 떠나겠다고 이야기했다.
우유도는 팽우재와 같이 일어나 급히 떠나려는 그의 손목을 잡고 미소지었다.
“너무 정 없이 떠나시는 것 아닙니까?”
팽우재가 잠시 멈칫하더니,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우유도가 입술을 내밀어 밖을 가리키고는 말했다.
“아마 외손녀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셨겠지요? 어렵게 만났는데, 이렇게 말도 없이 떠나려고 하다니, 정말 인연을 끊으시려는 겁니까? 지금 당장 큰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 그리 급하게 움직일 것 있겠습니까?”
정신없이 압박을 당하는 통에 잊어버리고 있었다. 외손녀를 떠올리게 되었고, 팽우재가 연신 끄덕였다.
“장로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지금 바로 왕비 마마를 뵈러 가겠습니다.”
우유도가 크게 웃었다. 그리고 봉은태를 보고 말했다.
“좋습니다. 마침 저도 오랜만에 형님을 만났으니, 저희 둘이 회포를 풀겠습니다. 팽 장문인과 왕비께서는 따로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관방의에게 말했다.
“홍랑, 가서 왕비님을 모셔오도록 해. 그리고 팽 장문인과 같이 영검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꼭 둘러보도록 해. 이런 절경은 흔치 않거든.”
관방의는 제경에 오랫동안 장사를 했던 사람으로, 눈치가 비상했다. 우유도의 말에 다른 뜻이 있음을 깨닫고는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알겠어!”
“둘러볼 필요 없습니다. 그저 조용히 앉아서 대화할 곳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팽우재가 급히 막아섰다. 다만, 우유도는 여전히 팽우재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
“어렵게 발걸음을 옮기셨으니, 이 자금동의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한번 보셔야지요! 제가 만약 그 정도도 해드리지 않으면, 사람들이 저를 질책하지 않겠습니까?”
관방의는 빙그레 웃으며 그대로 몸을 돌려 치마를 휘날리며 빠르게 움직였다.
잠시 후, 문묵아를 따르는 한 여제자의 안내를 받아 팽우재와 봉약남이 초려별원을 빠져나갔다. 팽우재의 얼굴에는 봉약남을 본 반가움도 떠올라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 * *
정원 내부,
우유도는 봉은태와 같이 느긋하게 산책을 하고 있었다. 곧 우유도가 정적을 깨트리며 말했다.
“형님, 요즘 잘 지내십니까?”
봉은태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쁘지 않네. 다만 동생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지.”
“우리 형제 사이에 그런 걸 비교해서 뭐하겠습니까. 아 맞다. 혹시 둘째 형님과 연락이 닿으셨습니까?”
“가끔 서신을 주고받네만, 자주는 아니네.”
우유도는 검을 지팡이 삼아 걸으며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세가 수시로 변하고, 복잡하게 뒤섞여 있으니, 다만 우리 형제가 같은 마음이면 좋겠습니다. 형님은 저를 도와주셔야 합니다….”
* * *
자금동의 풍경은 역시 남달랐다. 산 중에서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는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감돌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팽우재는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자금동의 제자들이 수시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그 모습을 보고 내심 쓴웃음을 지었다. 이건 우유도가 작정하고 자금동의 사람들에게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아마 저들에게 봉약남과 그의 관계를 상기시키려는 것 같았다.
천옥문에게 자신을 도우라고 하더니, 날짐승을 선물로 주고, 또 구경을 시켜준다는 핑계로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보란 듯이 자신을 드러내게 했다.
하나하나 연달아 펼쳐지는 우유도의 수단이 아주 치밀하고 기세등등했다. 팽우재는 기에 눌려 숨도 편히 쉬기 어려웠다. 팽우재는 우유도가 마치 천옥문이 그를 돕는 일을 기정사실로 만들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양측의 신분이 달라졌다. 예전이었다면 우유도가 어찌 감히 팽우재를 이리 대하겠는가. 하지만 이제는 대놓고 팽우재에게 압박을 가했다.
어쨌든, 그렇다 해도 이대로 아무 말도 없이 계속 걸을 수만은 없었다.
“약남아, 세상일은 참으로 무상하구나. 시시비비와 은원은 모두 원해서 얻는 것이 아니다. 지나간 일은 지나가게 두도록 하자. 계속 마음에 담아두고, 잘잘못을 따져서 무엇하겠느냐? 마침 우유도가 그런 마음이니, 아마 상조종 또한 별다른 이견이 없을 것이다. 네 어미가 항상 너를 그리워한단다. 내게 경지가 폐하여진 후, 많이 늙었단다. 기회가 있다면 한번 만나보거라. 미래에 여한을 남기지 않는 게 난 좋을 듯싶구나….”
이왕 이렇게 된 거, 마음을 다잡은 팽우재가 먼저 침묵을 깨트렸다.
* * *
팽우재는 자금동을 떠나기 전, 자금동의 장문인 궁임책을 찾아갔다.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가는 것도 너무 예의 없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다 보니 우유도가 그를 왜 불렀는지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아직 일이 성사되기 전이다 보니, 팽우재는 뭐라 명확히 이야기하기 힘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도 있었다. 그저 우유도가 자신을 그편으로 끌어들이려 한다고만 이야기했다.
그에 대해서 궁임책은 그에게 우유도와 거리를 두라며 이래저래 암시하며 경고했다.
그 모습을 보고 팽우재는 지금 이 상황이, 우유도와 자금동 내부에 있는 다른 장로들 사이에 벌어진 투쟁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권력투쟁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차피 결과는 세 가지였다. 이쪽이 저쪽을 압도하든지, 저쪽이 이쪽을 압도하든지, 아니면 교착상태에 빠지든지.
사실, 사람이 있는 곳은 다 마찬가지였다. 천옥문 내부도 하나로 뭉치지 못했다. 생각이 있는 사람은 다들 자신의 이익을 쟁취하기 위해 움직였다.
자금동을 떠나 돌아가는 길은 훨씬 편했다. 우유도가 선물로 준 날짐승을 타고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이미 받은 것,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다만 이처럼 값비싼 선물을 받았으면서도 기뻐하지 못할 뿐이었다.
돌아가는 길, 어둑어둑해진 하늘만큼, 팽우재의 얼굴에도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천옥문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가득했다.
* * *
팽우재가 돌아가자, 우유도는 즉시 밀서를 작성했다. 밀서를 다 쓴 후, 지금은 대사공이 된 연국 경성의 고견성에게 보내, 북주 쪽의 일에 대해 협조를 구했다.
밀서를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손님이 찾아왔다. 만동천부의 장문인 사도요가 여정에 지친 모습으로 도착한 것이다.
그는 우유도가 초대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소식을 듣고 축하하기 위해 알아서 온 사람이었다.
그가 이처럼 알아서 온 것은 내심 불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만동천부와 우유도는 이미 너무 오랫동안 한통속으로 있다 보니, 나누어 생각하기도 어려운 지경에 처해있었다.
특히 상조종이 천군만마를 호령해 연국 삼대 문파에 대항할 당시. 중상을 입은 우유도를 보호한 일, 그리고 나중에 삼대 문파를 속이고 도망친 일이 다 폭로되었다. 이건 누가 봐도 삼대 문파와 대립하는 일이었고, 그들의 머릿속에 ‘우유도’라는 낙인이 깊게 박히게 되었다.
만동천부는 너무 깊게 개입되었다. 게다가 남주 세력이 바로 곁에 있었다. 그러니 우유도가 하루라도 살아 있다면, 만동천부는 이미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우유도는 만동천부가 쉽게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게 두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 우유도를 찾아온 것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일단 우유도의 상황을 보고, 우유도가 상황을 진정시킬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라 할 수 있었다.
이미 상황은 급변해 있었다. 우유도의 조언 없이, 만동천부는 변해가는 세상의 흐름을 다 파악할 수 없었다.
지금 조국이 멸망했고, 해여월이 가지고 있던 ‘공주’라는 칭호 또한 사라졌다. 그녀는 이미 아랫사람들에게 앞으로 그렇게 부르지 못하게 당부해놓은 상태였다.
오늘날의 금주는 연국의 영토가 되었다. 우유도 때문에, 아주 자연스럽게 자금동의 세력에 귀속되었으며, 만동천부는 연국의 문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