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3화. 저는 신용이 있는 사람입니다
원방이 장담하더니 계속해서 물었다.
“도야, 술은 주위 어디서 담그는 것이 좋겠습니까. 저쪽에 있는 산에 동굴을 뚫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산을 가리켰다.
“술은 이제 그만하도록 하지.”
“어…. 그만하다니요?”
원방이 두 눈을 부릅떴다.
“대신해줄 사람이 있지! 일을 안 해도 돈을 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이야. 몸도 훨씬 편해질 거야.”
“괜찮습니다. 이 일은 저희가 하면 충분합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은 필요 없습니다.”
원방은 다급해진 듯 빠르게 말했다. 바로 이때 문묵아가 날아와 보고했다.
“도야, 장문인이 표묘각에서 돌아오셨습니다. 또 효월각의 옥창 선생님도 계십니다. 옥창 선생님께서 오셨습니다.”
“곰탱아, 너 대신 일할 사람이 왔구나.”
우유도는 그렇게 한번 놀리고는 멀어져갔다.
“도야, 도야……!”
뒤에서 원방이 아무리 불러도 소용이 없었다. 우유도는 뒤돌아보지 않았고 결국 원방은 자신의 대머리를 문지르며 발만 동동 굴렸다. 원방은 일단 손에 들어온 것을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결정은 우유도가 하는 것으로, 원방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우유도가 하라면 해야 했다.
궁임책은 자금동에 돌아온 후, 우유도를 만나기 위해 직접 오지 않았다. 그 대신 엄입을 보내 옥창을 데리고 초려별원으로 가게 했다.
엄입은 갑자기 나타난 수많은 사람이 초려별원 안팎을 오가며 소란스럽게 구는 것을 보고 내심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여기는 자금동이었는데, 자금동이 아닌 사람이 너무나 많았다.
하지만 이미 우유도에게 허락한 일이었고 번복할 수 없었다.
우유도는 빠르게 별원으로 들어가 먼 곳에서부터 검을 들고 포권을 하며 말했다.
“옥창 선생님이 직접 방문해 주셨는데 멀리 마중 나가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하하하, 동생, 우리 사이에 그게 무슨 말인가.”
옥창도 포권을 하며 말했다.
“축하하네! 급히 움직이다 보니 큰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군. 기분 나빠하지 말게.”
그리고 뒤에 있는 제자 독고정에게 상자를 건네라고 손짓했다.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우유도는 예의를 차렸지만, 몇 번이나 거절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손을 내밀어 받았다. 관방의에게 선물을 건네준 우유도는 곧바로 말했다.
“선생님 얼굴이 밝은 것을 보니, 아마도 성공적으로 표묘각의 일원이 되었나 봅니다?”
옥창이 어색하게 말했다.
“다들 양해를 해주셨고, 표묘각이 허락해준 것이지.”
“이거 정말 축하드립니다.”
우유도가 포권을 하며 축하했다. 그리고 또 손을 뻗어 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안에 들어가서 말씀하시지요!”
일행은 안으로 들어갔다. 차가 나오자, 우유도는 차를 권하고는 웃으며 말했다.
“마침 잘 오셨습니다. 천도비경에서 저를 도왔던 사람들을 슬슬 보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이야기를 하자, 찻잔을 내려놓은 옥창이 허벅지를 ‘탁’ 치며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마침 그 일에 대해 동생에게 설명할 참이었네, 며칠 전, 그들을 미리 이곳으로 보냈었네. 하지만 중도에 습격을 받아 모두 목숨을 잃어버렸어. 이건 내 안배가 부족했던 탓이네, 실망하게 해서 정말 미안하네!”
정말 공교롭군! 우유도의 두 눈에 서늘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우유도는 깊은 눈으로 상대방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옥창은 안색 하나 바뀌지 않고, 여전히 매우 가슴 아파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옆에 같이 앉아 있던 엄입은 여길 한번 보고, 저길 한번 보고는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즉시 알아차렸다.
한참이 지나, 우유도가 천천히 물었다.
“누가 손을 썼는지 파악하셨습니까?”
옥창이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네! 하지만 추측은 가능하지, 열에 아홉은 조국의 여당이 독수를 썼을 것이네.”
“호오.”
우유도는 끄덕이고는 천천히 찻잔을 들어 입술을 축였다.
조국의 여당은 개뿔, 처음부터 믿지도 않았다. 열에 아홉은 효월각 자신들이 한 짓일 것이다.
과거, 천도비경에서 효월각이 심어 놓고 그를 돕게 했던 밀정들은 우유도를 돕기 위해 신분이 폭로되었다. 효월각의 법도에 따라 신분이 폭로된 사람은 자유를 얻을 수 없었다.
게다가 그렇게 신분이 폭로된 사람들은, 윗선과 아랫선을 보호하기 위해서 살인멸구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건 효월각의 전통이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과거, 우유도는 계옥덕 등의 사람들에게 남주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약속했었다.
천도비경을 나선 후, 우유도는 이 일을 옥창에게 이야기했고, 그 당시에 옥창은 감히 우유도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옥창은 일이 성사된 후에 그들을 풀어주기로 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을 풀어주었다.
하지만 육신의 자유만 풀어주었을 뿐, 그 사람들의 목숨까지 놓아준 것은 아니었다!
천천히 잔을 들어 차를 마신 우유도는 내심 자책했다. 이 일은 효월각을 탓할 수 없었다. 그저 자신이 너무 경솔했음을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되돌아보면 우유도는 이 일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당연히 별다른 대비를 하지 않았고, 때문에 식언하게 되었다. 그들이 누군가에게 목숨을 잃은 것이다.
어찌 보면 우유도가 그들을 죽인 것이라 할 수도 있었다. 만약 우유도가 그런 요구를 하지 않았다면, 효월각은 그들에게 어느 정도의 통제를 가할 뿐, 이처럼 죽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옥창은 우유도가 겨우 이 정도 일로 그와 반목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만하는 것이 분명했다.
“안타깝군요.”
잠시 고민하던 우유도가 담담히 말하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옥창도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네, 참으로 안타깝지. 하지만 걱정하지 말게, 우리 효월각은 절대 이대로 그냥 두고 보지 않을 것이네, 끝까지 수색해서 진범을 찾아내 복수할 것이야!”
“음!”
우유도가 끄덕이더니 다시 엄입을 바라보고 말했다.
“엄 장로님, 일이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일? 엄입이 멈칫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단 말인가?
하지만 엄입은 우유도의 말을 알아들었다. 우유도는 지금 그가 옥창과 사적으로 대화를 해야 하니 자리를 비켜달라 당당하게 말하고 있었다.
엄입은 그 정도 눈치가 없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옥창에게 포권을 하며 말했다.
“옥창 선생님, 저는 일이 있어 먼저 물러가겠습니다. 나중에 다시 이야기 나누시지요.”
“좋습니다. 편하실 대로 하시지요!”
옥창이 일어나 같이 포권을 했다. 그리고 독고정에게 배웅하라 손짓했다. 엄입은 괜찮다고 사양하고는 우유도에게 말했다.
“한 번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왔으니, 나중에 제자를 시켜 각자의 신분을 기록하게 하겠네. 협조해주게나.”
당연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갑작스럽게 이렇게 많은 사람이 들어왔으니, 이들이 어떤 사람인지, 무슨 신분인지 확인하지 않고 놓아둘 수 있을 리 없었다. 만약 나쁜 마음을 먹은 사람이 자금동에 섞여 들어왔다가 문제가 생기면 누구에게 하소연하겠는가?
“좋습니다! 홍랑, 협조하도록 해.”
우유도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엄 장로님.”
관방의가 끄덕였다. 엄입이 떠난 후, 우유도가 다시 빙그레 웃으며 옥창에게 물었다.
“여기까지 온 것을 보면 단순히 축하하기 위해서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러면서 독고정을 바라보는 것이 마치 이런 일이라면 제자만 보내도 충분하다는 뜻이었다. 옥창은 이제 궁임책과 같은 등급의 신분이 되었으니, 직접 찾아올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
옥창은 말을 돌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온 이유를 밝혔다.
“폐하께서 은사를 잊지 않고 있네. 심지어 그리워하고 있지!”
폐하? 우유도는 순간 누구를 이야기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곧 옥창이 말하는 폐하가 우유도 자신의 학생이었던 하영패를 지칭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유도가 하하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참 그립습니다. 생각지도 못했지요. 제 학생이 갑자기 후진의 황제가 되다니. 다만 지금은 일이 많아 바쁘니 나중에 기회를 봐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옥창이 은근슬쩍 이어 말했다.
“그나저나 자금동이 동생을 정말 같은 동문으로 대하겠는가? 외부인은 결국 외부인일 뿐이네. 저들이 자네를 정말 믿을 수 있을지, 난 잘 모르겠군.”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군요. 하실 말씀이 있으면 그냥 하시지요.”
“우리 후진은 지금 인재에 목말라 있네. 동생 같은 능력을 가지고 어찌 여기서 이리도 몸을 웅크리고 있는가. 후진에 오기만 하게, 우리 후진에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동생이 능력을 마음껏 뽐낼 수 있도록 절대 방해하지 않겠네! 폐하도 자네가 와서 도와주기를 바라고 계시네.”
다소 의외라고 생각한 우유도가 반문했다.
“제가 승낙할 거라고 생각하신 겁니까?”
“일단 말해 둔 것이네. 동생이 원하기만 하면, 후진은 언제나 환영이네!”
우유도는 거절하지도, 승낙하지도 않았다.
“여기까지 직접 찾아온 이유가 이것입니까?”
자신이 찾아온 이유를 계속해서 물으니, 옥창은 진지하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표묘각에 있을 때 궁임책이 갑자기 나를 불러 비법에 관해서 물어보았네. 자네가 정말 비법을 사여래에게 주었느냐고 말이네.”
우유도는 참으로 우스웠다. 궁임책이 정말 알아볼 줄이야. 물론, 우유도가 처음에 옥창을 끄집어낸 것 자체가 사실 그런 의도를 지니고 있던 것이긴 했다. 다만 정말로 알아볼 줄은 몰랐다. 우유도가 물었다.
“뭐라 대답했습니까?”
“자네가 밝히지 않고는 그들이 알 수 없는 일이었으니, 당연히 그런 일이 있다고 대답했지, 어째? 자금동이 자네에게 비법을 내놓으라고 하던가?”
우유도가 눈살을 찌푸렸다.
“저들이 내놓으라고 하면 제가 내놓아야 합니까? 꿈 깨라지요! 이 일은 이미 어떻게 처리할지 계획을 다 세워 놓았습니다. 우리 쪽에서 주조(酒造)를 멈출 것입니다. 저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서 이 일은 선생님이 전면에 나서 주셔야겠습니다.”
옥창이 멈칫했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일이? 옥창은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진심인가? 정말 그 큰 살코기를 이리도 쉽게 포기하겠단 말인가?”
우유도가 반문했다.
“설마 선생님이 저를 홀대하기라도 하겠습니까?”
그리고는 손가락을 하나 세우며 말했다.
“금 천만 냥!”
옥창이 깜짝 놀라 물었다.
“뭐가 천만 냥인가?”
“우리 쪽에서 더는 술을 담그지 않을 테니, 앞으로 온 천하에서 그 술은 오직 효월각에서만 판매될 것입니다. 그 대가로 효월각은 매년 제게 금 천만 냥만 주면 됩니다!”
옥창이 찻잔을 들며 말했다.
“동생, 하나도 재미없는 농담이군, 이미 내 손에서 적지 않은 돈을 갈취해 가지 않았는가. 어째 통이 갈수록 커지는군.”
“갈취라니요. 그건 협력입니다. 우리 모두 원해서 한 일이 아닙니다. 그걸 갈취라고 하면 안 되지요!”
“그리고 방금 한 말은 농담이 아닙니다. 깊이 고민한 결과입니다. 이건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다시 술을 담그거나, 이 비법을 자금동에 주게 되면, 양쪽에서 같은 술을 판매하게 될 것이니, 어떤 상황이 될 것인지 잘 아실 겁니다. 하지만 한 곳이 시장을 독점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 수량을 효월각에서 통제할 수 있고, 가격도 효월각에서 정할 수 있습니다!”
“과거, 남주에 있을 때는 자원이 제한되어 있었기에 많은 양을 만들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효월각은 후진이라는 나라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몇 배를 만들어 팔아도 온 천하에 수요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온전한 독점입니다!
경쟁하는 사람이 없으니, 매년 제게 천만 냥을 주는 것이 많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정말 경쟁자가 나타나 서로 가격을 낮춘다면, 그 손실은 많이 팔면 팔수록 늘어날 것이고, 그게 겨우 천만 냥에 그치겠습니까? 계산을 어떻게 할지 제가 알려드릴 필요 없겠지요?”
옥창이 눈살을 찌푸렸다. 곧 한동안 두 눈을 반짝이더니 물었다.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야. 하지만 만약 내가 자네에게 돈을 주고 자네가 후회하면 내가 자네를 어찌한단 말인가?”
“쓸데없는 걱정입니다. 저는 신용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하시지요. 일단 술을 파십시오. 매년 수익을 낸 후에 거기에서 돈을 주십시오. 만약 제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술을 판다면 돈을 줄 필요 없습니다. 이렇게 하면 걱정할 필요 없으시지요?”
“음….”
옥창이 침음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정말 아무 문제없어 보였다. 그렇게 시장을 독점할 수 있다면, 이건 정말로 손해라 할 수 없는 장사였다.
천만 냥! 그 정도 돈은 효월각이 온 나라에 술을 판다면 우습게 메울 수 있는 돈이었다.
다만, 그렇다 해도 옥창은 당장 승낙하지 않았다. 비록 좋아 보이는 일이긴 하지만 고민할 필요가 있었다. 혹시라도 무슨 꿍꿍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