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군-1107화 (205/1,000)

1107화. 고진감래

곧 혼란스럽게 움직이던 화염 분신들이 우뚝 멈춰섰다. 그리고는 갑자기 하나의 화염 분신을 향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이 화염 분신들은 썰물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질서정연하게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고, 하나의 화염 분신 안으로 들어가 천천히 합쳐졌다. 결국, 무광동 입구 쪽에 하나의 화염 덩어리만이 남게 되었다. 그제야 사람들은 그 안에서 곤림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화염 속에 있던 곤림수가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그를 감싸고 있던 화염이 갑자기 물이 된 것처럼 그의 몸 아래로 흐르며 무너져 내렸다. 화염 속에 있던 곤림수의 모습이 드러났는데, 마치 불 껍질을 한 겹 벗은 듯한 모습이었다.

한 손을 등진 그의 모습은 마치 거대한 산줄기처럼 단단해 보였다. 놀랍게도 그의 주변으로 물처럼 흘러내린 화염들은 어느새 연꽃 형상이 되어 곤림수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곤림수는 마치 화염으로 이뤄진 연꽃 위에 서 있는 신선 같아 보였다.

이후, 곤림수가 부드럽게 발로 땅을 한 번 구르자, 갑자기 그의 주변을 감싸고 있던 화염 연꽃이 사라지더니 땅속으로 가라앉았다. 화염은 순식간에 지하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곧 지면의 온도가 상승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흔들림 없이 서 있던 곤림수가 갑자기 한발을 들었다가 부드럽게 다시 내디뎠다. 그러자 지면 속으로 흡수되었던 불꽃이 열기를 일으키기 시작했고, 땅 위로 무형의 아지랑이가 흔들리며 솟아올랐다. 동시에 붉은 안개가 지면에서 솟아올랐다.

곤림수가 또다시 한발 내디디자, 붉은 안개가 더욱 빠르게 솟아올랐다.

한 발, 또 한 발, 온통 허공에 붉은 안개가 가득하게 피어올랐다. 이 붉은 안개는 허공을 가득 채우고 있다가, 갑자기 불길이 되어 주변을 휩쓸었다. 불길로 만들어진 화운(火雲)이 사람들의 머리 위를 가득 뒤덮었고 곤림수가 화운 위로 뛰어올랐다. 사람들은 고개를 들어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공중을 휩쓰는 화운 위에 오른 곤림수는 화운 위에 탄 채, 공중에서 종횡무진 날아다녔다. 그는 발로 복잡한 움직임을 그리며 화운의 조각을 떼어 허공으로 날리곤 했는데, 이 화운 조각은 허공에서 각종 맹수와 날짐승이 되어 포효하며 주변을 날아다녔고, 그 모습이 아주 장관이었다.

“화리무상(火離無相)….”

우문연이 눈을 가늘게 뜨고 중얼거렸다.

화운 위에서 천천히 허공을 걷던 곤림수가 돌연 허공으로 손을 뻗어 내저었다. 그러자 맹수와 날짐승들로 변했던 화운의 조각들이 그 즉시 포효하더니 제각각 한 자루 화검(火劍)이 되어 마치 쏟아지는 비처럼 지면을 향해 날아갔다.

사람들은 대경실색하며 법력을 이용해 급히 몸을 보호하고자 했다. 하지만 지면을 향하던 화검은 갑자기 중간에 방향을 틀어 오히려 곤림수에게 쏘아져 갔다.

퍽퍽!

화검이 곤림수를 태우고 있던 화운에 꽂혔다. 화검이 맹렬히 화운을 강타하는 소리가 격렬하게 터져 나왔으나, 그 위에 타고 있는 곤림수의 표정은 매우 태연했다. 이때, 곤림수가 손을 들어 지면을 가리키자, 화운에 꽂혀있던 화검이 다시 빠져나와 지면을 향해 날아들었다.

퍽! 수많은 화검이 지면에 빼곡히 박혀 들었다.

딱! 작은 자갈들과 바위들이 화검의 열기를 이기지 못했고, 결국 딱딱 소리를 내며 수없이 터져나갔다.

그렇게 바닥에 수많은 검이 꽂혀있는 가운데, 곤림수가 화운 위에서 뛰어내렸다.

화광이 주위를 가득 물들인 가운데, 곤림수가 천천히 걸으며 다시 장로들 앞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바닥에 꽂혀있던 화검이 하나둘 뱀과 같은 화염으로 변하더니 곤림수의 몸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허공에 떠 있던 화운 또한 연기처럼 변해 천천히 곤림수의 몸속으로 흡수되고 있었다.

마지막 한 마리 화염 뱀이 사라졌을 때, 곤림수는 우문연의 앞에 서서 허리를 깊숙이 숙이고 있었다.

“미천한 재주입니다!”

화봉황은 놀랍고도 기쁜 얼굴로 자신의 사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눈은 반짝반짝 생동감 있게 빛나고 있었고, 두 눈에는 살짝 눈물이 고여있었다. 너무 기쁜 나머지, 감격하여 흘리는 눈물이었다.

방탁의 두 눈에 떠오른 경악도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제자는 절대 허튼 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장로들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제자가 마침내, 오래전부터 연성한 사람이 없었던 천화교의 천화무극술을 연성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제야 비로소 그는 청출어람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진정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좋아!”

우문연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미소지었다.

“과연 우리 천화교 불세출의 인재로군. 우리 천화교의 뒤를 이을 사람이 나타났어. 이건 하늘에 계신 선사들께 고할 만한 일이다!”

다만, 한쪽에 있는 장로들은 기쁘다고 할 수만은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방탁은 원래 견제할 필요가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의 제자가 커다란 업적을 세웠으니, 방탁 또한 천화교 내에서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결국, 견제해야 할 세력이 하나 더 늘어났다고 느끼게 된 것이다.

방탁은 그 모습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한편, 곤림수가 공손하게 말했다.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단지 이제 입문했을 뿐입니다. 미천한 재주이니, 장문인의 찬사를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겸손할 필요 없네. 아무튼 좋네. 이로써 자네의 말이 모두 증명되었네. 일단 지금은 깨끗이 씻고, 몸을 정갈히 한 다음에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세.”

“장문인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곤림수가 허리를 숙이고 대답했다. 우문연은 더는 별말 하지 않고 그대로 손을 내저으며 천화교의 고위층을 이끌고 날아서 떠나갔다.

현장이 조용해졌다. 지면은 이미 여기저기 깨지고 터져나가 낭패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곤림수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방탁이 화봉황을 보고 말했다.

“네 사형을 데리고 가서 좀 씻기거라.”

“알겠습니다!”

화봉황은 기뻐하며 알았다고 대답하고 곤림수와 같이 떠났다.

두 사람이 멀리 떠나간 후, 방탁이 빠르게 전인안 앞으로 가더니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같은 사부 밑에서 수학한 사이 아닌가. 어째서 저 아이가 천화무극술을 익힌다는 사실을, 이 큰일을 내게 말해주지 않았는가?”

전인안이 으쓱하며 매우 곤란하다는 듯이 말했다.

“왜 말해주지 않았느냐고? 내가 만약 알려 주었다면, 분명 나서서 막았겠지.”

“당연히 막았겠지!”

전인안이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이것 보게나. 내가 말해주지 않았으니 다행이지. 만약 알았다면, 저 아이가 지금 같은 성과를 어찌 이룰 수 있었겠나?”

방탁이 안면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저 아이가 죽는 것은 상관없고?”

전인안은 엉뚱한 소리를 그만두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보게. 설마 내가 자네에게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생각해 보게. 자네 생각에 저 아이가 그리 쉽게 고집을 꺾을 아이처럼 보이는가? 자네가 막아섰다면, 그럼 저 아이를 막아설 수 있었을 것 같은가? 만약 자네가 정말로 저 아이를 강경히 막아섰다면, 그래서 저 아이가 천화무극술을 배우지 못하게 됐다면, 저 아이는 스스로 자진했을 수도 있네.

젊은 나이에 폐관에 들어 자신의 청춘, 십 년이라는 긴 시간을 오직 수련에 바치기로 결심한 아이네. 심지어 그걸 해낼 각오와 고집, 오기까지 갖춘 아이였지. 그러니, 자네에게 말해봤자 무엇하겠는가? 내가 알려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니네. 알려줄 수 없었던 것이네……. 어차피 죽기를 각오했던 아이니, 기왕이면 시도라도 해보고 죽게 하는 게 나은 것 아니겠는가?”

* * *

천화교의 의사대전 밖,

우문연 일행이 빠르게 안으로 들어갔다. 대전 내부 각자의 위치에 앉은 후, 우문연이 사람들을 보고 말했다.

“본 문파, 삼 대 이후 연성한 적이 없는 천화무극술을 드디어 연성한 사람이 나타났소. 하늘에 계신 사조들께서 우리를 보살피심이니, 이는 우리 천화교의 큰 행운이라 할 수 있소.”

장로들이 서로서로 바라보았다. 다들 안색이 각기 달랐는데,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 모습을 보고 우문연이 말했다.

“이건 절대 사소한 일이 아니오. 여러분은 하고 싶은 말이 없으시오?”

한 사람이 물었다.

“장문인께서는 무슨 계획이 있으십니까?”

“곤림수가 천화무극술을 연성했으니, 도리를 따진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대우를 해주어야 할 것이오. 일반 제자 대하듯이 할 수는 없지, 하지만 어떤 대우를 해주어야 할지는 여러분들과 같이 결정해야 할 것 같소.”

“장문인, 정말 도리를 따진다면 먼저 법도를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장문인, 곤림수가 십 년 폐관했으니, 그사이 먹은 것은 종문의 음식이요, 수련에 필요한 자원은 종문에서 무상으로 제공해 준 것입니다. 심지어 그가 수련한 천화무극술도 종문이 제공해 준 것입니다. 십 년 동안,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종문의 자원을 누리기만 했습니다. 또 십 년 동안 그를 위해 동굴을 지킨 제자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폐관을 깨고 나오자마자 특별한 대우를 해준다면, 다른 제자들이 승복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법도에 따르면 금지에서 종문의 자원을 장기간 사용한 제자는, 출관 후에 종문을 위해 보답을 해야만 합니다. 이 또한 수련의 성과를 검증하기 위한 일환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맞습니다. 만약 이번에 안 좋은 선례를 남긴다면, 다른 제자들이 너도나도 곤림수를 모방하려 들 것이고, 맡은 바 임무를 다 하지 않고, 다들 무광동 안에 들어가 폐관을 하려 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누가 힘들고 어렵게 종문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려 하겠습니까? 그가 천화무극술을 연성했다고 한들, 법도를 어길 이유는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해졌다. 다만, 좋은 의도로 말하는 사람이 그다지 없는 것 같았기에 우문연의 눈살은 점차 찌푸려졌다.

* * *

십 년 동안 제대로 씻어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보통방식으로는 깨끗이 씻을 수 없었다.

곤림수는 결국 산 중에 있는 작고 깨끗한 연못 하나에 들어가, 불의 기운을 발휘해 연못을 따뜻하게 데웠다. 그렇게 무려 한 시진 가까이 뜨끈한 연못물 속에서 몸을 불린 후에야 지저분한 몸을 온전히 닦아낼 수 있었다.

그는 목욕하고 깨끗한 의복으로 갈아입은 후, 그제야 산에서 나왔다. 때마침, 화봉황이 산의 입구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원래의 단정한 모습으로 돌아온 사형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사형, 사부님이 기다리고 계세요.”

두 사람은 서로 예의를 차리며 마주 보고 웃었다. 그렇게 둘이 같이 움직일 때, 화봉황의 마음속은 달콤함으로 가득했다. 고진감래라는 말처럼 화봉황은 십 년의 기다림을 보상받은 것 같았다.

방탁의 거처에 도착하자 그가 이미 둘을 기다리고 있었다. 곤림수가 도착한 것을 보고 방탁은 별말 하지 않고 평소 그가 수련하는 조용한 밀실로 곤림수를 데려가려 했다. 그곳은 다른 사람이 쉽게 훔쳐볼 수 없는 곳이었다.

다만 화봉황이 따라오고자 했고, 결국 방탁은 화봉황까지 함께 밀실로 데려갔다. 밀실의 석문을 닫은 방탁은 곤림수를 등지고 벽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