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3화. 승낙 (2)
엄입은 어리석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말하는데 못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지금 이건 곤림수의 부인을 곤림수의 약점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확실히 우유도의 말이 신빙성이 있었다. 지금 자신이 몇 번 보지 않았음에도 곤림수가 얼마나 자존심이 강한지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저런 성격이라면, 정말로 우유도에게 졌을 때 어리석은 짓을 벌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 안에 있는 심오한 뜻을 깨달은 엄입은 곧바로 별다른 이견이 없어졌다. 그조차도 확실히 곤림수의 부인을 함께 손에 쥘 필요가 있어 보였다.
그렇게 엄입이 우유도를 놓아 주자, 더는 저지하는 사람이 없어진 우유도가 그대로 가던 길을 가려고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대화를 마친 그 순간, 한 사람이 크게 소리쳤다.
“하겠어요!”
우유도와 엄입이 뒤돌아보았다. 화봉황이었다. 화봉황은 곤림수를 돌아보며 말하고 있었다.
“사형. 그 내기를 승낙할게요!”
전복성은 입을 쩍 벌렸다. 화봉황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나설 줄 상상도 못 했다. 곤림수도 멈칫했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안 돼, 절대 안 돼.”
화봉황이 그의 손을 붙잡고 다소 힘겨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형이 이기기만 하면 저는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전 사형이 이길 거라고 믿어요.”
곤림수가 거절했다.
“안 돼.”
화봉황이 물었다.
“사형은 이길 자신이 없는 건가요?”
“그건….”
곤림수가 망설였다. 만약 자신이 이긴다면, 확실히 사매는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분명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사형이 이길 확신이 있는데 걱정할 이유가 없잖아요.”
사매의 그 말을 듣자, 곤림수는 정말로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다. 그는 정말로 우유도와 다시 한번 싸우고 싶었다. 오늘을 위해서 그는 십 년을 폐관하며 버텼다! 하지만 자신의 부인을 두고 내기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곤림수의 마음이 혼란스러워졌다.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곤림수가 전복성을 보며 물었다.
“장로님이 보시기에는 어떻습니까?”
전복성이 담담히 말했다.
“이 일은 내게 물어볼 것도 없다. 이건 너희 부부 사이의 일이니, 알아서 결정을 내리거라.”
“사형, 그만 하세요.”
화봉황이 곤림수를 저지하고는 전복성에게 웃으며 말했다.
“장로님, 이 일은 제가 사형을 대신해 결정을 내리겠습니다.”
화봉황의 미소가 얼마나 슬픈지 오직 그녀만이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내기의 제물로 내걸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또 이 일이 사형의 숙원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만약 우유도와 싸우지 않는다면, 사형의 마음은 영원히 그 고개를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마치 사형이 말한 것처럼, 성경에 간다면 살아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었다.
곤림수의 속마음은 복잡하기가 극에 달해 있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우유도는 이 조건을 물고 놓지 않았다.
전복성은 곤림수의 반응을 잠시 살펴보더니, 반대하지 않는 것을 보고 우유도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우 장로, 그 조건을 승낙하겠소.”
우유도는 엄입과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엄입은 전복성의 체면을 크게 세워준다는 듯이 그대로 우유도를 끌고 다시 돌아왔다.
“결정을 내렸습니까?”
우유도가 돌아오며 물었다. 전복성이 대답했다.
“십 년 동안 폐관한 채 수련에만 전념했소. 그건 모두 당신과 다시 한번 싸우기 위해서였지. 우 장로가 승낙하기만 하면, 우 장로의 조건을 받아들이겠소.”
“그렇군요. 저도 뱉은 말을 어기는 사람이 아닙니다. 다시 한번 싸우는 것은 어려울 것도 없지요. 하지만 그냥 말로 하는 것을 어찌 믿을 수 있겠습니까. 나중에 후회하면 어찌합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믿으시겠소?”
“글로 써서 남기시지요!”
“어려울 것 없소.”
우유도가 엄입을 보고 말했다.
“내기라고 하니, 중재인을 불러 증인으로 삼는 것은 어떻습니까. 엄 장로님께서는 근처에 있는 천하전장의 지배인을 초청해 주십시오. 천하전장의 사람이 증인이 된다면, 아마 그 누구도 발뺌하지 못할 것입니다. 천하전장의 사람은 그 입도 무거우니, 누가 이기든 외부에 말하고 다니지 않을 것입니다.”
전복성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소? 우 장로는 설마 우리를 믿지 못하는 것이오?”
그는 갑자기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 우유도에게 자신감이 넘치는 것 같았다. 우유도가 웃으며 말했다.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제 기억력이 좋지 못하다 보니, 나중에 제가 발뺌한다고 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물론, 만약 이렇게 하는 게 어렵다고 생각한다면, 제가 했던 말을 모두 잊어버리고, 이 대결에 대한 것도 이걸로 끝을 맺으시지요. 앞으로 다시는 언급하지 않기로 하고 말입니다.”
전복성은 다시 곤림수의 태도를 확인하고는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좋소, 중재인이 증인이 되어주면 더욱 좋지.”
우유도는 즉시 뒤돌아 물었다.
“엄 장로님, 그쪽 사람을 불러오는 것에 문제가 있습니까?”
엄입이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마 별문제 없을 것이네. 내가 직접 천하전장에 가서 최대한 지배인을 모셔오도록 하지.”
“그럼 이렇게 하시지요. 중재인을 모셔오면, 글로 증거를 남기고 진행하시지요. 여러분, 그럼 저는 볼일이 있으니 이만 먼저 물러가겠습니다.”
말을 마치고 우유도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곤림수 일행도 곧 객원으로 돌아갔다. 전복성은 그야말로 신중했다. 직접 엄입과 같이 중재인을 모시러 간 것이다.
이 부근 천하전장의 사람은 그가 잘 모르기 때문에, 엄입이 아무 사람이나 불러서 수작을 부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복성은 그 두 눈으로 천하전장의 사람을 확인하고자 했다.
전장의 지배인을 증인으로 모셔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부근에 전장이 있었고, 자금동은 자신들이 유통하는 자금을 대부분 그 전장을 통해 거래했다. 자금동은 그 전장의 가장 큰 고객이었다. 자금동의 장로가 직접 그곳에 가서 증인이 되어 달라고 요청하니,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닌 것을 보고 당연히 승낙했다.
그렇게 반나절이 지나자, 천하전장의 지배인과 같이 자금동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중재인이 왔다. 도전자와 그 도전을 받는 두 사람은 증서를 어떻게 적을지 합의하기 시작했다.
우유도는 여전히 그 조건이었다. 전복성 일행은 그 조건을 승낙했다. 하지만 전복성은 어떻게 대결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곤림수를 위해 힘을 써주었다.
그는 곤림수가 암중에 손해를 봐서 대결에서 지기를 바라지 않았다. 예를 들어 양측이 무슨 무기를 사용하는지, 어떤 물건을 사용할 수 없는지, 깐깐하게 규칙을 정했다.
우유도가 천검부를 사용해 마구잡이로 공격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아주 유명한 이야기였다. 그러니 당연히, 천검부에 대한 규칙 또한 세세히 넣어야 했다.
또 대결하는 도중에는 다른 사람이 도움을 줄 수 없으며, 일단 다른 사람이 끼어들면 그 즉시 판정패를 당하게 된다는 것을 명시했다.
그렇게 전복성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곤림수를 위해 신중하게 배려해주었다. 곤림수가 실력이 아닌 다른 부분 때문에 질 수 있는 가능성을 예방하고자 한 것이다.
합의를 마친 양측은 즉시 증서를 적었고,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그 위에 자신의 수결을 남겼다. 그리고 그 증서를 천하전장의 지배인에게 건넸다.
지배인은 증서를 세심히 살펴본 후, 별다른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고 그 위에 수결했다.
증서는 같은 양식으로 2부를 만들어 각자 한 부씩 보관해 증거로 삼았다.
쇠뿔도 단김에 뺀다고, 우유도는 시간을 질질 끌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대결이 당일 벌어지게 되었다.
곤림수는 이날을 오랫동안 기다려 왔다. 그 또한 시간을 끌고 싶지 않았고, 기꺼이 동의했다. 양측의 의견이 일치했다.
대결을 벌이는 곳은 자금동 뒷산의 연무장이었다. 자금동의 제자들은 평소 이곳에서 비무를 하곤 했다.
양측이 같이 그곳으로 향하는 가운데, 곤림수는 다소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십 년을 기다려온 숙원이었다. 오늘에서야 드디어 실현되었다.
관방의는 암중에 무조행 일행에게 당부하고 있었다.
“일단 긴급한 상황이 생기면 그 즉시 뛰어들어 저지하세요. 도야께 문제가 생기면 안 돼요.”
소식을 들은 자금동의 고위층들도 관전하기 위해 찾아왔다. 궁임책, 원안, 부군량, 윤이덕, 막설영, 엄입도 당연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귀면각,
거안이 안으로 들어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노인, 종곡자에게 다가가더니 조용히 대결에 대해서 말했다.
“장문인께서 혹시 사숙께서 대결을 보고자 하시는지 여쭈라 하셨습니다.”
종곡자가 살짝 눈을 뜨더니 담담히 말했다.
“네가 나 대신 가보거라.”
그리고는 다시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조용하기가 마치 나무로 만든 조각 같았다. 거안은 조용히 절을 하고는 일어나 그곳을 빠져나왔다.
춘신량, 도쾌, 두 태상 장로도 대결 이야기를 듣고 산문을 나서기 전에 찾아왔다.
자금동의 다른 사람들 같은 경우는, 소식을 들었든 못 들었든 간에 모두 연무장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사람이 많아 소란스러워질 것을 우려한 것이다.
비무장,
두 태상 장로는 다른 사람들처럼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산허리쯤에 있는 거목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다른 관전자들은 다들 현장에서 쭉 늘어섰다.
비무장 안에서 전복성은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직접 곤림수를 위해 혹시 주위에 다른 문제는 없는지 살펴보았다.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곤림수 곁으로 돌아간 그는 멀지 않은 곳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검을 짚고 서 있는 우유도를 힐끗 바라보고는 묵직한 어투로 말했다.
“우유도가 가장 잘하는 것은 싸움이 아니다. 하지만 수많은 폭풍과 파도를 헤쳐오면서 경험한 것들이 많으니, 그 시야의 깊이가 감히 너와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 대결을 우습게 보지 말고, 절대 우유도를 얕잡아 보지 말아라.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가르침을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곤림수의 안달 난 모습을 보고, 화봉황은 사형이 금지에서 나온 후 처음으로 이처럼 흥분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는 그를 위해 기뻐했고, 또 그를 위해 걱정했다. 그리고 곤림수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사형, 장로님의 말씀이 맞아요. 조심해야 해요.”
곤림수는 다소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
“사매, 걱정하지 마.”
그리고는 그대로 몸을 날렸다. 허공을 날아 연무장 정중앙에 내려선 그는 우유도를 향해 포권을 하고 우렁차게 말했다.
“우 장로님, 곤림수가 여기 있습니다. 올라오시지요!”
사람들이 시선이 순간적으로 우유도에게 몰렸다. 우유도가 막 한 걸음을 내디뎠을 때, 옆에 있던 궁임책이 말했다.
“사제, 조심해야 하네.”
“사제, 조심하게.”
장로들이 다들 입을 열어 응원했다.
지금 다들 우유도가 지길 바라는 사람이 없었다. 어쨌든지 간에, 다른 삼대 문파의 제자와 대결하게 된 것이었다. 이건 자금동의 체면이 걸린 일이었다. 만약 자금동의 장로가 천화교의 일개 제자에게 패배한다면, 다들 체면이 크게 구겨질 것이다.
우유도는 웃으며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인사하고는 담담하게 중앙을 향해 걸어갔다.
그는 곤림수처럼 날아가지 않고, 검을 지팡이 삼아 느긋하게 걸어갔다. 그 모습이 아주 차분하고 느긋해 보였다.
관방의는 자신의 손을 누군가 꽉 쥐는 것을 느끼고 옆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자신의 손을 붙잡은 상숙청이 있었다. 상숙청은 크게 긴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상숙청의 손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고는 다독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군주님, 그저 비무에 불과하니 별일 없을 거예요.”
상숙청이 알았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우유도가 상대방과 가까워질수록, 조금 느슨해졌던 손이 다시 꽉 쥐어졌다.
화봉황도 마찬가지로 긴장했다. 갈수록 긴장이 되었다. 그녀는 생각이 많아졌다. 만약 사형이 이번에도 패배한다면, 사형이 그 충격을 견딜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