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4화. 고해는 끝이 없으나
그렇게 공터의 중앙에 도착한 우유도는 한 손에 검을 들고, 다른 손으로 공터 가장자리에 있는 화봉황을 가리켰다.
관방의는 즉시 몸을 날려 화봉황 옆에 내려서더니 웃으며 말했다.
“섭 낭자, 가시지요!”
화봉황은 이를 악물고는 전복성에게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관방의와 같이 움직였다.
곤림수는 두 눈 뜨고 자신의 사매를 다른 사람이 데려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곤림수의 입술이 굳어졌다. 이건 사전에 이야기된 일이다. 곤림수가 승리하기만 하면, 우유도는 즉시 사매를 놓아줄 것이다.
화봉황이 통제하에 놓인 것을 보고 우유도가 앞에 있는 곤림수에게 말했다.
“인생의 고해는 끝이 없으나, 고개만 돌리면 혜안이라는 말이 있네. 내가 마지막으로 자네에게 기회를 주지. 지금이라도 후회한다면 이 대결을 취소해 주겠네.”
이제 와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한들 곤림수의 귀에 들어가겠는가. 그전에는 사매 때문에 양심상 고민을 했다면, 이제는 그런 것도 이미 모두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그러니 이제 와 그를 일깨운다 한들, 그런 말이 마음에 박힐 리 없었다. 이미 대결을 취소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곤림수가 반문했다.
“이제 와 그런 말씀을 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의미가 없는가? 고해는 끝이 없으나, 고개만 돌리면 혜안이라네. 어째서 불필요한 일에 그리 집착하고, 자신을 괴롭히는가!”
“우 장로님은 두려우십니까?”
우유도가 웃었다.
“두려우냐고? 내가 두려울 것이 무엇인가? 나는 자네와 달라. 한순간의 승부에 연연하지 않지. 나는 자네가 앞으로 오랜 시간 동안 후회 속에 살게 되길 바라지 않는 것뿐이야. 나는 내 주위에 있는 사람이 영원히 후회 속에 살기를 원하지 않아. 이래 봬도 나는 인정이 있는 사람이야. 나와 인연이 생긴 사람들이 후회하는 삶을 살게 되는 걸 바라지 않는 것이지. 그러니 지금이라도 자네에게 당부하고 싶었다네. 난 지금 자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 것이야.”
“필요 없습니다. 우 장로님,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그는 필요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우유도는 여전히 말을 이어갔다.
“내가 처음 수행계에 발을 들인 이후, 늘 싸우는 것을 피해왔지. 하지만 언젠가는 한 번씩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오더군. 그리고 나는 일대일로 싸워서 아직 한 번도 진 적이 없네. 자네는 내가 두렵지 않은가?”
“두렵지 않습니다. 우 장로님이 지지 않은 것은 진정 대단한 고수를 만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틀렸네, 내가 얼마나 강한지 사람들이 알지 못했기 때문이지. 그리고 나와 싸운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네와 같이 자신감이 가득했지.”
곤림수의 안색이 다소 굳어졌다. 우유도의 말이, 대놓고 과거의 자신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는 우유도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내가 정말로 허풍을 부리는 것 같은가? 난 지금 자네에게 호의를 베풀고 있는 것이네. 지금 후회해도 늦지 않았다고 말이야. 물론, 자네는 내 말이 들리지 않겠지. 그래도 나는 말해야겠네.”
곤림수가 깊은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우 장로님의 호의,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이제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기어이 이렇게 하겠다면, 나도 더는 강요하지 않겠네. 다만 내가 방금 자네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길 바라네. 이 길은 자네가 선택한 것이니, 나중에 내가 자네를 함정에 빠트렸다는 말은 하지 않길 바라네. 모든 것은 자네가 기꺼이 선택한 것이고, 자네는 이에 대해 절대 후회하지 않아야 하네. 책임은 자네 몫이라는 것이네! 내 말이 맞는가?”
“그렇습니다. 화복영욕, 모든 것은 제가 선택한 것이니, 제가 책임질 것입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겠습니다!”
우유도가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더는 할 말이 없네. 싸우고 싶다면 언제든지 시작해도 되네. 어울려 주도록 하지.”
공터 밖에 있는 사람들은 중앙과 거리가 있었고, 두 사람의 목소리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두 사람이 중얼중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있을 뿐이다.
관방의는 다소 흥미롭게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도야가 또 상대방을 말로 흔들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결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건 손속을 겨루는 것인가, 아니면 입으로 겨루는 것인가. 저 두 사람은 뭘 저리 중얼거리는가?”
궁임책이 옆을 보며 물었다. 엄입은 뺨을 긁적이며 답답한 마음에 말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어…. 시작하려는 것 같습니다!”
궁임책이 보니 곤림수가 극도로 경계하는 모습으로 천천히 후퇴하며 안전거리를 벌리는 모습이 보였다. 반면 우유도는 여전히 흔들림 없는 모습으로 원래 자리에 서 있었다.
우유도의 담담한 기세를 보고, 곤림수는 조금, 그리고 또 조금 후퇴하며 손을 쓸만한 안전거리를 확보했다.
방금 우유도의 이야기를 듣고, 곤림수는 크게 경계하기 시작했다. 자신감이 신중함으로 바뀌었다. 그 마음속에 꺼리는 마음이 자리 잡은 것이다. 과거처럼 패배하고 싶진 않았던 것이다.
웅!
한 줄기 짙은 화염이 갑자기 곤림수의 몸속에서 터져 나왔다. 그의 몸에서 터져 나온 화염은 순식간에 곤림수를 뒤덮었고, 곤림수의 몸은 하나의 거대한 화구(火球)로 변했다.
이글거리는 화구는 갑자기 하늘로 불길을 내뿜었고, 이 커다란 불길은 하늘에서 방향을 바꿔 다시 땅으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 불길은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며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셋으로 변하더니 순식간에 서른여섯 개의 화구로 변해, 땅에 착지했다.
사람들이 경악했다. 대체 이 서른여섯 개의 화구 중에 어떤 게 본체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땅에 떨어져 내린 화구들이 갑자기 허공으로 천천히 떠올랐고, 번개처럼 우유도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화매둔영, 천화무극술이다!”
나무 꼭대기에 서 있던 태상 장로 춘신량이 경악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다른 태상 장로 도쾌도 한껏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래서 도전을 한 것이군!”
“천화교에서도 천화무극술은 오랫동안 연성한 사람이 없었던 전설의 지고비법이거늘…!”
변두리에서 관전하고 있던 궁임책 또한 사태를 깨닫고는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금동의 사람들은 천화무극술을 직접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역대 자금동의 선인들이 ‘자금잡기’에 기록한 것이 남아 있었기에, 다들 처음 봤음에도 단서를 발견하고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한편, 연무대 위에서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있던 우유도 또한 그 모습을 보고 내심 중얼거렸다.
설마 천화무극술?
천화교의 사람들이 찾아왔을 때, 우유도는 그들을 피해 처마 밑에서 여유롭게 책을 읽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읽었던 자금잡기에 역대 자금동의 선인들이 천화교에 대해 기록한 것이 있었다. 마침 천화교의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왔겠다, 우유도는 천화교의 천화무극술에 대해 설명한 부분을 관심 있게 읽었었다.
자금잡기뿐만이 아니었다. 일찍이 상청종에서 읽었던 상청습유록에도 상청종의 선인들이 기록한 것이 있었다. 상청종의 사람들이 습유록에 천화무극술에 대해서 기록한 것이 있었던 것이다.
과거, 상청종의 제자들은 아주 대단했다. 당연히 천화무극술을 본 적이 있었다.
각 대문파의 선인들이 이런 것들을 기록한 이유는 바로 선인들의 경험이 전승되어, 후인들이 이를 통해 얻는 것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이것이 바로 이런것이 문파의 좋은 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런 문파에 가입하게 되면, 문파 제자들이 수행계에서 겪은 풍부한 경험을 이토록 쉽게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사실 우유도가 자금동에서 자금잡기를 확인한 가장 큰 이유는 그 안에서 건곤결에 대한 기록이 있는지, 그걸 확인하고자 함이었다. 하지만 상청습유록이든, 자금잡기든, 그 안에는 건곤결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었다.
너무 오래되어서인지, 아니면 당시 수행계가 쇠미해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지금의 문파들이 당시 상찬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볼 자격이 안 돼서 그런지 알 수 없었다.
아무튼, 딴생각하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변화막측한 데다가, 빠르게 움직이는 화구였다. 조금이라도 안목이 있는 사람이라면, 설사 역대 선인들이 전승한 기록을 읽지 않았다고 해도, 이것이 극도로 뛰어난 눈속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연무장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또한 곤림수가 어느 화구 안에 있는지 파악할 수 없었다. 서른여섯 개의 불덩이가 모두 진짜와 같았으니, 곤림수가 어느 불덩이에서 튀어나올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 대체 어디서 치명적인 공격이 들어올지 알 수 없는 극히 위험한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자금동 사람들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관방의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슬슬 우유도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상숙청은 더욱 그랬다. 이 불덩이들은 실제 불과 같은 성질을 지니고 있었기에, 법력이 없는 그녀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상숙청은 지금까지 이렇게 격렬하고 대단한 장면을 본 적이 없었다. 수행자들의 싸움이라는 게 이렇게 엄청나고 무서운 것인지, 전혀 몰랐었다. 이 흉악한 화구들이 연신 우유도를 향해 쏘아져 가니, 그녀의 심장이 당장이라고 입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불안하고 초조했다.
사형이 이처럼 고명하고 대단한 술법을 전개하는 것을 보고, 화봉황의 두 눈에 가릴 수 없는 자부심이 떠올랐다. 저 사람은 그녀의 사형이자, 그녀의 남자였다.
전복성은 고개를 돌려 자금동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고는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전에 자신을 비웃고 조롱하던 상황이 떠올랐다. 이제는 아마 천화교가 얼마나 대단한지 깨달았을 것이다.
격렬하게 불타오르는 화구가 순간적으로 우유도에게 쏘아져 왔지만, 우유도는 원래 자리에 서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사람들이 법안을 열어 살펴보니, 우유도는 움직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두 눈을 감고 있기까지 했다. 마치 상대방에게 마음대로 하라는 모습이었다.
저건 포기한 것인가, 아니면 거만하게 굴고 있는 것인가? 불덩이를 피하지도 않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조마조마했다.
천화무극술인 줄도 알았고, 눈속임이라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안력으로 분간할 수 없으니, 우유도는 눈을 감아 버렸다.
건곤결을 운용하며 두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아무리 불덩이가 눈앞에서 천변만화한들, 무아의 경지에 들어가 천지와 하나가 되면 그만이었다.
바람 소리, 화염이 이글거리는 소리, 먼지가 움직이는 소리, 강풍이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천지건곤의 미묘한 변화가 우유도의 마음속에 새겨졌다.
우유도는 폭포 아래에서 수련할 때를 떠올렸다. 아무리 폭포 소리가 커도 폭포가 몸에 떨어질 때, 우유도는 그 미묘한 파문과 떨림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가 산 정상에 앉아있을 때, 그는 바람과 비를 느끼고,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 아래 만물이 성장하는 미묘한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쾅!
가장 첫 번째로 날아온 화구가 우유도의 몸에 부딪히며 터져나갔다. 우유도는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그대로 화구를 받아들였고, 사람들은 모두 경악했다.
상숙청은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화구의 위력적인 공격력 때문에 주위로 불꽃이 터져나가고 있었고, 돌과 흙이 사방으로 흩날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