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8화. 졌습니다 (2)
곤림수가 고개를 들어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매를 보았고, 우유도가 다시 말했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하고 싶군. 고분고분 자신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좋을 거야. 지금 너는 내 사람이고, 네가 언제 죽을지 정하는 것은 나야. 만약 약속을 어기겠다면, 오늘 저녁, 네 사매에게 장정 대여섯 명을 선물로 주지. 아마 네 사매는 오늘을 평생 잊지 못할 거야.”
곤림수가 분노한 얼굴로 돌연 뒤돌아보며 말했다.
“당신…!!”
우유도가 곤림수를 흘겨보며 말했다.
“내가 말했었지. 길은 네가 선택한 것이니 후회하지 말라고 말이야. 또 너도 말했었지, 모든 화복영욕을 네가 책임지겠다고 말이야. 인제 와서 후회하기에는 너무 늦었어! 곤림수, 이번 일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성장하길 바라지. 오늘 내가 했던 말을 잘 기억해야 할 거야. 앞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란 말이지. 네가 살면, 네 사매도 살고, 네가 죽으면, 네 사매는 죽는 것보다 더 큰 고통 속에서 살게 될 거야. 난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
곤림수는 크게 비통한 얼굴을 하며 분노해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우유도를 어찌하지는 못했다. 곤림수는 그제야 자신이 우유도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났음을 조금씩 깨달을 수 있었다.
바로 이때, 우유도의 서늘한 눈빛이 주위를 훑어보더니 갑자기 손을 휘두르며 곤림수의 앞을 막아섰다.
전복성이 날아온 것이다. 우유도의 손짓을 확인한 무조행도 급히 날아오기 시작했다.
운희는 제압한 화봉황을 관방의에게 넘기고 우유도에게 날아갔다. 그렇게 무조행과 운희가 우유도의 좌우에 내려서 호법을 섰다.
전복성은 이를 악물었다. 패배의 후유증에게 깨어난 그는 그 즉시 결단을 내렸다. 곤림수를 죽이더라도, 그가 우유도의 손에 떨어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종문에 할 말이 없었고, 어차피 곤림수를 성경에 보내려고 했던 것도, 곤림수를 죽음으로 내몰기 위해서가 아닌가.
하지만 지금 그 앞을 막아서는 우유도를 보고는 자신의 의도가 실패했음을 깨달았다. 우유도의 경각심과 반응이 너무 빨랐다.
“전 장로님, 무슨 일이십니까?”
우유도가 차가운 눈빛으로 물었다.
“비키시오. 곤림수와 할 말이 있소.”
“지금부터, 이 자는 내 사람이니, 할 말이 있으면 이대로 하시지요.”
우유도 쪽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궁임책 일행도 뭔가 이상함을 감지하고는 우유도 곁에 모여들었다. 덕분에 우유도가 기세에서 우위를 차지했다.
전복성은 다 끝났다는 것을 깨달았고, 여긴 그가 마음대로 날뛸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물론 그럴 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다.
자신이 만든 결과였고, 당연히 그가 감당해야 했다. 전복성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우유도 일행 뒤에 있는 곤림수에게 소리쳤다.
“곤림수, 만약 이 결투에 무슨 문제가 있었다면 지금 이야기하거라. 내가 너를 대신해 나서주겠다.”
지금 전복성은 트집 잡을 기회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우유도는 이미 상대방의 퇴로를 모두 끊어 놓은 후였고, 이어 우유도가 냉소 짓고는 그 즉시 입을 열었다.
“곤림수, 사람은 자신의 말에 책임을 져야 하는 법이다. 나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다.”
그러면서 천천히 저 멀리 잡혀있는 화봉황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곤림수는 어리석지 않았다. 전복성이 무슨 의도로 저리 말하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유도의 시선을 따라 바라본 곳에는 울고 있는 사매가 있었고, 그 모습을 본 곤림수는 참으로 처참한 마음이 들었다. 우유도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엄입도 그 모습을 확인하고는 내심 기분이 좋아졌다. 역시 묘수였다. 사제가 곤림수의 마누라를 꽉 붙들고 놓지 않더니, 역시 여기서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과연 아주 용의주도하고 고약한 사람이었고,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고 있었다.
“장로님, 제가 졌습니다.”
곤림수가 고개를 숙이고 패배를 시인했다.
곤림수의 반응을 본 후, 전복성은 멀리 붙잡혀 있는 화봉황을 바라보았다. 입꼬리를 씰룩거린 그가 고민하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가까이 다가와 전복성을 바라보았다. 천하전장의 지배인이었다. 감히 여기서 무슨 수작을 부리려 한다면, 자신이 이를 두고 보지 않을 것이라는, 그런 서늘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전복성은 천천히 곤림수를 바라보았다. 침묵만이 가득했고, 그의 속마음이 서서히 침잠되어 갔다.
자금동의 장문인 궁임책이 그를 지긋이 바라보더니 천천히 말했다.
“전 장로님은 혹시 이번 대결에 어떤 의문이 있는 겁니까?”
전복성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마음속에 후회만이 가득했다. 그는 갑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우유도가 그리 각박한 요구조건을 내걸었는데, 자신이 무슨 약을 잘못 먹었단 말인가. 대체 어찌, 왜 그런 것을 승낙했단 말인가. 천화교의 장로로서 어찌 그런 조건에 승낙했단 말인가?
중요한 것은, 곤림수가 수련한 것이 천화교의 지고비법인 천화무극술이란 점이었다. 대체 어떻게 우유도에게 패배한단 말인가?
전복성이 별말 하지 않는 것을 보고, 궁임책이 다시 한쪽에 있는 전장의 지배인에게 말했다.
“항(杭) 지배인, 대결이 끝났습니다. 중재인으로서 이번 대결 결과에 대해 이견이 있으십니까?”
항 지배인은 곤림수를 턱으로 가리키고 말했다.
“당사자가 패배를 시인했습니다. 승패가 명확한 한판이었지요. 이견이 없습니다. 전 장로님, 패배를 시인하시지요!”
전복성의 얼굴이 부들부들 떨렸고, 장발을 어깨에 늘어뜨린 우유도가 살짝 돌아보며 말했다.
“저들을 데려가라.”
진 아저씨와 오노이가 곤림수에게 다가갔다. 곤림수는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았고, 체내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기에 반항할 힘이 없기도 했고, 화봉황이 다른 사람의 손에 인질로 잡혀있었기에 감히 반항하지 못하기도 했다. 그렇게 끌려간 곤림수는 결국 눈물범벅이 되어 있는 화봉황과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원강은 비무장 안에 있는 도야를 한번 보았다. 도야가 고개를 끄덕이자, 원강이 사람들과 함께 화봉황과 곤림수를 데리고 먼저 그곳을 떠났다.
비무장 안에 있는 사람들은 말없이 전복성을 잠시 바라보았다. 곧 우유도는 궁임책 등 일행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그대로 비무장을 떠나갔다.
무조행과 운희도 그 뒤를 따랐다. 일행이 연무장을 벗어나 밖으로 나갔을 때, 관방의를 보았고, 관방의는 부채질하며 빙그레 웃는 얼굴로 우유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갈 사람은 갔고, 떠날 사람은 떠났다. 그중에는 천하전장의 지배인도 있었다. 남은 궁임책 일행은 그곳을 떠나지 않고, 날아올라 산허리에 있는 두 태상 장로를 찾아갔다. 춘신량이 말했다.
“어째 이번 대결은 참으로 이상한 것투성이요. 우유도의 실력이 어찌 우리 두 사람보다 더 뛰어나 보인단 말이오. 우유도를 자금동에 끌어들인 사람은 그대들이니, 어찌 된 일인지 설명해 보시겠소?”
궁임책 일행은 서로 눈치를 보았다. 그렇게 잠시 망설이더니 결국 궁임책이 입을 열었다.
“우유도가 사전에 수작을 부린 것 같습니다.”
“수작?”
춘신량과 도쾌가 서로를 돌아보았다. 도쾌가 의아해하며 말했다.
“노부가 눈이 어두워 알아보지 못했소. 무슨 수작을 부렸단 말이오?”
궁임책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대결 전의 여러 가지 상황을 보고 판단해 보자면, 우유도가 곤림수에게 약을 먹인 것 같습니다.”
궁임책은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 당당한 자금동의 장문인으로서, 우유도가 그런 추잡한 짓을 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말할 수 없었다.
약? 두 태상 장로는 멈칫했다. 도쾌는 여전히 의아해하며 말했다.
“약을 썼다면, 대결할 때 곤림수가 모를 수 있겠소?”
궁임책이 한숨을 내쉬었다.
“구체적으로 어찌 된 일인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제 알아보아야 하겠지요. 하지만 이미 사숙께서도 눈치채셨겠지만, 곤림수의 부인이 이미 우유도에게 제압당해 인질이 되었습니다. 아마 몸이 이상한 것을 눈치챘어도 어쩌지 못했을 겁니다.”
두 태상 장로는 다시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춘신량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종 사형의 제자가 좀 요사스러운 사람인 것 같군….”
두 태상 장로가 떠난 후, 막영설이 말했다.
“장문인, 아마 전복성은 이대로 물러서지 않을 겁니다. 그에게 원한을 샀으니, 전마를 구매하는 일에 혹시 문제가 생기지는 않겠습니까?”
궁임책이 냉소 지었다.
“분노에 눈이 멀어 우유도의 조건을 승낙한 게 누군데,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있겠소? 이대로 돌아간다면, 그가 장로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고나 보시오?”
사람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탄식하며 고개를 저었다.
* * *
귀면각,
거안이 조용히 안으로 들어와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종곡자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가 조용히 보고했다.
“사조님, 대결이 끝났습니다. 사숙이 천화교의 제자에게 승리했습니다…….”
그는 두 사람의 대결을 자세히 보고했다. 모두 들은 종곡자가 두 눈을 뜨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천화무극술….”
살짝 뜨인 두 눈이 깊어졌다. 곧 종곡자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거안아.”
“여기 있습니다.”
무릎을 꿇고 있던 거안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종곡자는 창로한 목소리로 말했다.
“과거, 일이 너무 갑작스러웠지. 그 일이 있고 난 뒤, 내 뒤를 이을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다시 제자를 들이기도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사람이 떠나고 나면 차는 식는 법이다. 그 이치를 아느냐? 내가 떠날 날도 멀지 않았구나. 내가 없다면, 너는 어찌할 것이냐?”
거안이 입술을 삐죽하며 고개를 숙이고 침묵했다.
“너희가 말하지 않아도 나는 알고 있단다. 마음속에 걱정이 있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구나. 우유도…. 배분으로 보면 네 사숙이 되지. 내가 아직 있을 때, 좀 더 가깝게 지내도록 해라. 다만 어느 정도 거리는 두어야 한다. 너무 가까워도 문제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 승부를 보니, 그가 어떠한 사람인지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구나. 그자를 적당한 거리에서 깊이 살펴보며, 정말로 어떠한 사람인지 너 스스로 판단해 보도록 하거라. 내가 떠난 후에는 사숙을 따를지 말지, 너희들이 상황을 보고 결정하거라.”
거안이 그대로 머리를 땅에 대고 절을 했다.
* * *
화장대 앞,
우유도가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상숙청은 그를 위해 흐트러진 머리를 빗겨주고 있었다.
관방의가 안으로 들어와 보고했다.
“도야, 엄입과 전복성이 왔습니다.”
“우선 엄 장로님을 안으로 모셔.”
관방의가 상숙청을 보고 미소 지어 보이고는 몸을 돌려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입이 들어왔다. 그리고 안에서 머리를 빗고 있는 우유도를 보고는 한동안 유쾌하게 웃으며 팔짱을 끼고 지켜보았다.
상숙청은 속도를 높였다. 곧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 빗는 것이 끝났고, 그곳에서 물러갔다.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던 우유도가 일어나 말했다.
“그 전 씨 성을 가진 사람은 뭐하러 찾아 왔다고 합니까?”
“잘 모르겠네, 자네와 만나서 얘기하겠다고 하더군.”
“그래 봤자 곤림수를 돌려보내 달라는 것이겠지요. 이야기할 것도 없습니다.”
“성경과 연관 있는 이야기라고 하더군.”
“성경?”
우유도가 다소 의외라는 듯이 바라보았다. 이때, 엄입은 갑자기 장난스럽게 웃으며 우유도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동생, 대체 곤림수에게 쓴 약이 무엇이길래, 다른 사람이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인가?”
우유도가 천천히 뒤돌아보더니 다소 경악스러워하는 얼굴로 말했다.
“약이라니, 무슨 약을 말하는 겁니까?”
엄입은 다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자네가 전에 말하지 않았는가. 곤림수에게 약을 먹이면 질 수가 없다고 말이야. 과연 오늘 손쉽게 승리를 쟁취하더군. 그래서 무슨 약이길래, 이렇게 효과가 좋은가. 어디 좀 알려주게나.”
우유도가 그런 엄입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아주 엄숙하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엄 장로님, 지금 장난하시는 겁니까? 정정당당한 자금동의 장로가 어찌 그런 추잡스러운 방법을 사용한단 말입니까? 약을 써야 이긴다니요. 전 정정당당하게 싸워서 이긴 겁니다. 알겠습니까?”
“…….”
엄입은 입을 벌리고 손을 들어 천천히 우유도를 가리켰고, 우유도는 그런 엄입의 손을 내리누르고는 천천히 몸을 돌려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