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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137화 (235/1,000)

1137화. 말도 안 되는 요구

우유도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깔끔하게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였다. 자금동 앞에서 책임을 회피하고, 마찬가지로 천화교 앞에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였다. 즉, 자금동의 세력을 빌려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 후, 그 불똥이 자신에게 튀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니 우유도가 이런 수작에 걸려들 리 없었고, 우유도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궁임책에게 공손하게 포권하고는 말했다.

“제 생각이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 저는 종문의 결정에 따를 뿐입니다.”

이 말은 듣기에는 간단하게 들렸지만, 사실은 물 샐 틈 없는 말이었다. 이 말은 자금동의 사람들이나 천화교의 사람들이 들었을 때도 참으로 합당한 말이었다.

하지만 이 말로 인해 우유도에게 책임을 떠넘기려던 궁임책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또 재밌게도, 엄입 등과 같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번에 우유도가 진지하게 약속을 지키려는 것 같았다. 정말로 두 부부에 대한 전권을 종문에게 맡긴 것 같았다.

사실 우유도는 이 협상 같지 않은 협상을 조금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금동이 자신에게 곤림수 부부를 달라고 한 것은, 작은 이득을 바라고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고, 분명 천화교조차 부담스러운 큰 액수를 입에 담으려 할 게 분명했다.

다만 천화교라고 해서 자금동이 하자는 대로 끌려가기만 하지는 않을 게 분명했다. 당연히 양측은 쉽게 의견 일치를 이루기 어려울 것이 확실할 터. 아마 자금동이 눈 딱 감고 천화교를 한 움큼 크게 베어 먹으려 한다면, 천화교가 자금동의 제안에 응할 리 없었다.

이는 천화교에게 이미 선택할 수 있는 다른 제안이 있기 때문이었고, 그 다른 제안은 우유도가 천화교에게 몰래 전한 서신이었다.

우유도는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그러니 우유도는 그저 기다리기로 했다. 자금동이 결국 욕먹을 각오를 하고 조건을 내거는 것, 그리고 천화교가 그 조건을 거절하는 것, 그래서 천화교가 몰래 자신에게 협상을 시도해오는 것, 우유도는 그 순간만을 기다렸다.

그렇기에 우유도는 지금 어떤 허점도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천화교의 의심을 불러일으킬 필요가 없었고, 물론, 자금동의 의심을 불러일으킬 필요도 없었다.

그러니 이 협상은 우유도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냥 듣고 흘려보내면 그만이었다. 물론, 직접 여기 참석한 것은 그의 계획을 벗어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일단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면, 우유도는 최대한 수정을 해서, 상황이 다시 그가 계획한 궤도에 정상적으로 올라오게 해야 했다.

우유도의 태도를 보고, 엄입은 드디어 안심할 수 있었다. 엄입은 우유도가 수작을 부리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우문연은 우유도를 힐끗 바라보았다. 내심 전에 받았던 서신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그 전에 그 서신이 우유도와 연관이 있음을 의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유도와 연관이 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었고, 그 서신을 꺼내 들이민다 해도, 우유도가 자신은 그런 적이 없다고 발뺌하면 그만이었다. 게다가 그런 성급한 행동으로 곤림수 부부를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도 있었기에, 절대 함부로 그 서신을 여기서 들추고 싶지 않았다.

특히 눈앞의 상황을 보면, 우유도에게는 결정권조차도 없어 보였다.

궁임책은 가슴이 답답했다. 평소에 오만방자하게 굴던 녀석이 갑자기 고분고분해지다니. 혹시 외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인가?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다니, 그렇다고 뭐라 질책할 수도 없었다. 지금 우유도의 발언은 전권을 종문에게 맡긴다는 말이니 그가 뭐라 하겠는가?

궁임책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고, 우유도는 다시 자신의 자리에 앉아, 조용히 경청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궁 형, 그 가격은 궁 형이 정해야 할 것 같소.”

우문연이 냉소 지었다.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고, 그가 노골적으로 말했다.

“에둘러 말하지 마시오. 그렇게 말하면 내가 못 알아듣겠소. 궁 형도 번거로울 것이고 말이오. 얼마를 원하시오. 아니면 다른 원하는 것이 있으시오? 어디 한번 말해보시오.”

우문연은 궁임책이 ‘협박’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정사실로 만들기 위해 몰아가고 있었다. 지금 이건 자금동이 ‘협박’하고 있다는 것을 사실로 만들려는 것이다. 이것만 사실로 만들 수 있다면, 천화교는 언젠가 이 원한을 갚을 수 있었다.

자금동의 사람들이 종문에만 모여서 살 수 있을 리 없었다. 결국은 밖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자금동이 하나를 하면, 천화교는 열로 갚아 줄 것이다.

다만 궁임책은 우문연의 말에 넘어갈 정도로 어리석지 않았다. 그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문 형, 그게 무슨 말이오. 가격을 말하라니? 만약 가격을 말한다면, 오히려 내가 묻고 싶소. 자금동의 체면은 얼마의 가치가 있소? 천화교의 체면은 또 얼마의 가치가 있소? 만약 이런 식으로 말하게 한다면, 더는 대화 나눌 것도 없소. 내기는 양측이 기꺼운 마음으로 한 것이고, 천하전장의 증인이 있으니, 내기에 명시한 대로 이행하면 그만 아니겠소. 더는 말싸움 하며 감정이 상할 것도 없는 말이오.”

궁임책이 이러는 것은 ‘체면’의 문제였다. 천화교의 제자가 자금동을 찾아와 행패를 부렸다. 그러니 자신들이 벌을 내리는 것은 아주 당연했다.

우문연이 보기에 자금동은 지금 창녀가 열녀비를 세우는 짓과 같은 짓을 하려고 하고 있었다. 덕분에 우문연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말했다시피, 잘못은 천화교가 먼저 했고, 지금은 상대방에게 부탁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우문연은 화를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 바꿔 말해보겠소. 어떻게 해야 자금동에서 사람을 풀어 줄 것이오.”

“사람을 풀어주는 것 그 자체는 어렵지 않소! 하지만 어려운 것은, 쉽게 풀어주면 우리 체면이 상한다는 것이오. 자금동이 아무나 와서 문제를 일으켜도 되는 곳이 될 수는 없지 않겠소. 문제를 일으켰다면 쉽게 떠날 수 없으니, 어느 문파든 마찬가지일 것이오. 쉽게 풀어준다면 아래 제자들을 볼 면목이 없을 것이오. 나도 우리 문파의 제자들에게 할 말은 있어야 하지 않겠소?”

“그래서 제자들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은 것이오?”

곁에서 듣고 있던 우유도는 내심 우스웠다. 돌고, 돌고, 돌아 다시 돌아왔다. 이건 모두 하나의 표현방식을 위해서, 계속 제자리걸음을 한 것이다.

“천화교가 사죄를 해야겠지.”

“내가 온 것이 바로 사죄를 하기 위해서요. 이걸로 부족한 것이오?”

“입으로 가볍게 몇 마디 하고 넘어간다면, 그걸 본문의 제자들이 용납하겠소?”

“인제 보니 실질적인 것을 원하는 모양이오.”

“우문 형은 그것이 마땅하다고 여기지 않는 것이오?”

“그래, 사죄의 의미로 무엇을 내어주어야 사람을 풀어 줄 것이오?”

여기까지 돌고 돌아왔으니, 궁임책도 더는 예의를 따지지 않았다.

“우리 두 문파가 지금의 위치까지 오르기는 참으로 쉽지 않았소. 문파의 얼굴은 그 가치를 매길 수 없지. 그러나, 우문 형을 난처하게 하진 않겠소. 그러니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떻소. 삼십만 필의 전마와 별도로 금 삼억 냥을 주시오!”

우유도의 두 눈이 꿈틀거렸다. 해도 해도 너무 높게 부른 것은 아닌가. 다만 이해 못 할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시작 가격은 높게 불러야 했다. 그래야 협상의 여지가 있지 않겠는가.

그 말을 듣고, 맞은편에 있는 천화교의 사람 중 적지 않은 사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들 크게 분노한 모습이었다.

우문연은 상황을 너무 악화시키고 싶지 않았고, 빠르게 손을 들어 사람들을 저지하며, 사람들에게 경거망동하지 말고 자리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궁 형, 너무 과하오. 전마는 알고 있겠지만, 제국에서 삼십만 필의 전마를 모으는 것은 이미 우리 천화교 한 문파가 결정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소! 그리고 금 삼억 냥, 그건 말도 안 되는 액수요. 그 돈이 어디서 나서 자금동에 준단 말이오. 날 난처하게 하지 않는다고 말했지 않소. 이게 난처하게 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오?”

우문연이 성난 목소리로 질문했다. 궁임책은 화내지 않고 오히려 반문했다.

“우문 형이 보기에 우리 자금동의 체면이 얼마의 가치가 있소. 어디 한번 말해 보시오?”

이는 상대방에게 가격을 제시하라고 허락한 것이다.

“여기에 체면을 끌어들이지 마시오. 이건 별개의 일이오. 우리 천화교가 사죄하는 것이 바로 자금동의 체면을 세워주는 일이오. 삼십만 필의 전마와 금 삼억 냥은 불가능한 일이오. 우리가 줄 수 있는 금액은 금 천만 냥이 다요!

천만 냥을 사죄의 의미로 내놓기만 해도, 이미 우리 천화교의 체면이 땅에 떨어졌다 할 수 있소. 이걸로 충분히 자금동의 체면을 세워줄 것이오! 만약 자금동이 정말 체면을 중히 여긴다면, 그냥 지금 곤림수 부부를 죽여 버리시오. 우리 천화교는 받아들이겠소!”

지금 곤림수라는 패를 죽이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다만 천만 냥은 자금동이 생각했던 금액과 너무 차이가 났다. 그러니 협상 결과가 어찌 되었을지 말할 것도 없었다.

양측이 곧 크게 다투기 시작했다. 궁임책과 우문연이 다툰 것이 아니라 양측의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투기 시작한 것이다.

우유도는 그곳에 앉아 서로 말싸움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앉아 있었다. 우유도는 가장 조용한 사람이었고, 곧 우유도는 우문연이 수시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한참을 싸운 끝에, 더는 협상을 진행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천화교의 사람들은 계속 자금동에 머물며 고민해 보기로 했다. 다툰 것은 다툰 것이고, 손님을 접대하는 부분에서는 조금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궁임책이 자금동의 사람들을 이끌고 잠시 그곳을 벗어났다.

귀빈을 접대하는 객청을 나선 후, 우유도가 그들과 헤어져 떠나려 했다. 그때 궁임책이 그를 불러 세웠다.

“우 사제, 같이 대전에 가서 의논하세나.”

우유도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저는 그냥 빠지는 것이 좋겠습니다. 제게는 결정권도 없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이 일은 이미 종문에 처리를 맡겼습니다. 저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천천히 대화 나누십시오. 저 먼저 돌아가 보겠으니, 나중에 다시 협상할 때 불러 주시면 됩니다.”

그렇게 포권을 한 우유도가 마치 재미없는 협상에 얽히기도 싫다는 듯이 떠나버렸다.

“우리는 힘들게 협상하고, 저놈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마지막에 그냥 누리기만 하는군.”

막영설이 다소 불만스러운 어투로 말했고, 엄입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저, 정말 우유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소. 우유도가 간섭하기 시작하면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르오. 그러니 내가 볼 때 우유도는 이 일에 손을 떼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소.”

우유도가 뒷모습을 보며, 일행은 별말 하지 않고, 종문의 의사대전으로 가서 의논했다.

우유도가 초려별원으로 돌아왔을 때, 우유도를 기다리고 있던 관방의가 즉시 다가와 어찌 되었는지 물었다. 우유도는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신경 쓸 것 없으니, 한두 번 해서는 의견 일치를 보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하며, 우유도는 그저 기다리자고 말했다.

저녁이 되었다. 산새들이 둥지를 찾아 돌아가고, 남산사의 승려들이 통경하는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고, 우문연이 사람들을 이끌고 초려별원을 찾았다.

자금동의 요구조건은 정말로 해도 해도 너무했다. 정말 크게 한입 베어먹지 않고는 쉽게 포기할 것 같지 않는 태도였다. 그러니, 천화교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봐야 했다. 우유도가 보낸 서신이 결국은 천화교 사람들의 마음속에 뿌리를 내린 것이다. 결국은 우유도를 찾아 한번 떠본 후에 상황을 보고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그런 결정을 당연히 자금동에 알려줄 리 없었다. 그저 곤림수 부부가 무사한지, 아직 살아 있는지 확인한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만약 그들이 없다면, 천화교는 더는 협상을 진행할 이유가 없었다.

저들의 요구를 자금동은 거절할 수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상대방에게 인질을 확인시켜 주어야 했다.

석양이 지고, 숲이 황혼에 물들었다. 엄입이 먼저 도착해 우유도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막 이야기를 마치고, 우유도의 동의를 얻었을 때, 우문연 일행이 도착했다. 궁임책도 일부 사람을 대동하고 동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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