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4화. 변명
소평파는 허리를 한번 숙여 보였다. 도략의 뜻을 알아들은 것이다. 황궁은 눈과 귀가 많은 곳이다. 조정의 세력이 여기저기 이목을 심어 놓았으니, 지금 이곳은 기밀을 이야기하기 좋은 장소가 아니었다. 일단 비밀이 새나가면, 그 결과가 아주 끔찍할 수도 있었다.
소평파는 마음이 다급했지만, 그래도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다. 또 도략의 태도를 보고 마음속에 어느 정도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아마 계획을 취소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다만 도대체 어떤 변고가 생긴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반 시진은 족히 기다렸을까. 저 멀리 세 명의 대신이 어서방을 나서는 것이 보였다. 그제야 도략이 손짓해 소평파를 데리고 어서방 안으로 들어갔다.
비록 소평파를 데리고 이미 어서방에 들어간 후였지만, 도략은 안을 향해 보고했다.
“폐하, 소 대인이 왔습니다!”
서탁에 앉아 있는 태숙웅은 손에 들고 있던 문서를 내려놓고 앞에서 예를 올리고 있는 소평파를 바라보았다. 그는 일어나 서탁을 둘러 앞으로 나서더니 말했다.
“바로 달려올 줄 알았네, 과인은 그대를 기다리고 있었어.”
소평파가 포권을 하며 말했다.
“폐하께서는 어찌하여 지금 와서 계획을 멈추라 하신 것인지, 소신이 폐하의 깊은 생각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태숙웅이 침음하며 말했다.
“과인은 위국의 정보조직 우부가 현미에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네. 그건 현미의 눈과 귀라 할 수 있지. 현미가 그처럼 쉽게 우부의 권력을 내놓은 것을 보면,과인은 어째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군, 자네는 아무 문제없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겨우 이 때문에? 소평파는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태숙웅은 우유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곧 장담하며 말했다.
“소신이 목숨 걸고 장담 드릴 수 있습니다. 아무 문제없을 것입니다. 지금껏 소신이 조심스럽게 현미를 관찰하며,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심 있게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니 여러 가지 정황을 보고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지금 현미는 남녀 간의 정으로 인해 자리에서 물러날 생각이 싹튼 것 같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현미가 위국을 수년간 경영한 것 때문에 그 뿌리가 깊고, 영향력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녀가 손에 놓았던 것들도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다시 되가져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모두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폐하, 우리는 여러 가지로 힘쓴 덕분에, 간신히 허점을 틈타 치명적인 일격을 가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러니 이제 와 망설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신은 알지 못하겠습니다!”
“폐하, 현승천을 이미 어느 정도 흔들어 놓았습니다. 언제든지 손을 쓸 수 있습니다. 이처럼 좋은 기회를 어찌 그냥 지켜만 보려고 하십니까? 폐하께서는 지금까지 이날이 오기만을 기다려 오지 않으셨습니까?”
태숙웅이 뒷짐을 지고 왔다 갔다 하며 말했다.
“과인이 좌시하는 것이 아니네. 자네 보고를 받고, 과인은 즉시 기운종에 연락했네. 전쟁이 일어나면, 기운종에서는 대량의 수행자를 조직해 우리와 협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당연히 기운종에서도 준비가 필요한 것이지. 하지만 기운종은 지금 이 시기에 손을 쓰는 것에 대해 석연치 않은 듯하더군. 지금 손을 쓰는 것을 반대하고 나서니, 과인도 멈추라 할 수밖에 없었네!”
기운종이 간섭했다고? 소평파가 대경실색하며 말했다.
“아니, 폐하, 어떤 연유에서 반대한단 말입니까? 기운종이 그럴 이유가 없습니다!”
태숙웅이 소평파 앞에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저번에 천도비경의 일을 잊었는가? 천도비경의 일 때문에 표묘각이 천하에 전쟁을 동결한 일이 있지 않았는가!”
소평파가 멈칫했다. 그 머릿속에 뭔가가 스쳐 지나갔다. 소평파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설마 성경의 일 때문입니까?”
태숙웅이 끄덕이며 미소지었다. 역시 똑똑한 사람과 이야기하면 편했다.
“그렇네, 바로 성경 때문이네! 이번에 단련이라는 명목으로 각 대문파의 사람들을 성경으로 보내라는 명이 떨어졌네. 만약 지금 전쟁을 일으켰다가, 표묘각이 다시금 전쟁을 동결시킨다면, 일이 아주 재미없게 돌아갈 것이네.”
“만약 이번에 우리가 위국을 공격해 들어간다면, 반드시 번개와 같이 속전속결로 처리해야 하네. 잠시도 머뭇거려서는 안 되지. 하지만 전쟁이 동결된다면, 위국과 제국은 내분을 처리할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게 되겠지. 현미도 상황을 수습할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고 말이야.
그렇게 되면 자네가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것이네. 우리 진국도 쓸데없이 국력을 낭비하는 것이 되겠지. 그리고 저들 두 나라가 손을 잡는다면, 결국 우리는 병력을 철수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네. 그러니 종문의 걱정이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네, 때문에 자네 계획을 급히 중단한 것이네!”
거기까지 말했을 때, 태숙웅은 참지 못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저번의 천도 비경과 같이 전쟁을 동결하는 일이 없을 수도 있지. 하지만 만약의 경우에 정말로 그런 일이 또 발생한다면? 저번에 각 문파에서 천도 비경에 들어가는 명단을 추천했는데, 전쟁 때문에 명단이 제대로 작성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전쟁을 동결했지, 심지어 이번에는 성경이 연관된 일이네.
표묘각조차도 대충할 수 없는 일이지. 그러니 이번에 다시 전쟁을 동결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네. 위국과의 전쟁은 그런 예상 밖의 사고가 있어서는 안 되네! 일단 그런 일이 생기면, 진국이 큰 손실을 볼 뿐만 아니라, 위국과 제국도 다시는 우리에게 이처럼 좋은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네.”
그렇다는데, 소평파가 뭐라고 한단 말인가. 그저 마음속에 난감함만이 가득했다.
“잘 알겠습니다, 폐하. 폐하께서 영명하시고, 기운종은 대승적인 차원에서 결정을 내린 것 같습니다. 소신이 미처 두루 살피지 못했습니다. 다만 묻고 싶습니다. 그럼 이대로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현승천은 부지런한 사람도, 그렇다고 의지가 굳건한 사람도 아닙니다. 소신은 현승천의 충동적인 마음이 식어버려 좋은 기회를 놓칠까 봐 두렵습니다.”
“과인과 기운종이 이미 이야기해보았네. 조금 기다리세, 하지만 너무 오래 기다리지는 않을 것이네. 일단 성경에 들어가는 명단이 결정되고, 그들이 모두 성경에 들어간다면, 그때 자네가 다시 솜씨를 발휘하면 되는 것이네.”
성경에 사람들이 모두 들어간 후라…. 소평파는 속으로 시간을 계산해 보았다. 확실히 멀지 않았고, 오래 기다릴 필요 없었다. 마음속에 있던 묵직한 바위를 드디어 내려놓을 수 있었다. 소평파가 포권을 하며 말했다.
“소신, 명을 받듭니다! 위국 현승천 쪽은 계획이 틀어지지 않도록 소신이 최대한 붙들고 있겠습니다.”
태숙웅이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만약 이번 일이 성공한다면, 과인은 자네의 공을 기억하겠네, 그때가 되면 논공행상도 명분이 서겠지.”
태숙웅은 소평파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는, 그것으로 그를 격려했다….
* * *
성경의 일은 천하 각 대문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수많은 사람이 이번에 말하는 소위 단련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추측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뜻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유도 또한 마찬가지로, 저 높은 곳에 있는 구대지존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천하 각지는 자기 할 일을 했고 겉으로는 아무런 영향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한편, 자금동의 노림수는 실패했다. 천화교는 그냥 곤림수를 포기해 버렸다. 자금동에서 적극적으로 천화교에 연락해 대가를 낮추고 다시 협상을 해보자고 했지만, 천화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때문에 자금동은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곤림수에게 천화교의 지고 비법을 내놓으라고 했더니, 곤림수는 죽어도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고 곤림수를 죽일 수도 없었다. 그건 천화교에게만 좋은 일이었다. 그냥 두 사람을 남겨놓고, 천화교의 속을 들들 볶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마치 두 사람의 몸값을 내고 데려가지 않은 것은 너희이지 않느냐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니 저들을 여기 남겨 천화교의 속이나 태우겠다는 의미를 내비쳤다.
그런 와중에 천화교는 따로 우유도에게 연락해, 곤림수가 성경에 가는 일을 의논한다는 명목으로, 사실상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금시를 남겨놓았다. 그렇게 우유도와 직접 소통 창구를 만들었다.
소통이라는 명목으로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금시를 남겨놓는 천화교의 행동을 보고, 우유도는 한참을 고민했다. 아마도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우문연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또 다른 한편,
후진(後秦)은 나라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수많은 재물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결국, 술을 만들어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 행동은 우유도를 곤란하게 했다. 자금동의 장로들이 우유도를 불러 어찌 된 일인지 따져 물은 것이다. 그 때문에 우유도는 또 한참을 설명해야 했다.
의사 대전에서 우유도는 엄입의 태도가 바뀌었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엄입이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은 것이다. 아무튼 우유도는 쉴 새 없이 사람들에게 질문을 받으며 매우 난처했다.
하지만 이 일에 우유도는 아주 결백했다. 자신과 아주 상관없다고 잡아떼면서, 아무튼 자신은 더는 술을 만들어 팔지 못하겠으니, 어찌 된 일인지 알고 싶으면 자금동 보고 알아서 사여래와 효월각에 가서 물어보라고 대답했다.
우유도는 자금동이 사여래에게 따져 물을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효월각 같은 경우는, 지금 자신이 독점하고 있는 돈줄이니, 당연히 우유도에게 협조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증거가 없으니, 자금동은 우유도를 어쩌지 못했다.
의사 대전을 떠날 때 엄입이 우유도를 따라와 우유도에 얼굴에 서신을 한 장 던졌다. 하마터면 그 종이가 우유도의 얼굴에 부딪힐 뻔했다.
우유도는 두 손가락으로 눈앞에서 휘날리는 종이를 붙잡았다. 서신의 내용은 별다른 것이 없었다. 엄입의 제자들이 보내온 소식으로 북주로 보낸 관리들이 또다시 목숨을 잃었다는 내용이었다. 북주의 사람들이 갑자기 손을 써서, 엄입이 보낸 사람들을 깔끔하게 죽여 버렸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우유도가 서신을 다시 엄입에게 던지고는 물었다. 엄입이 서신을 붙잡고 분통을 터트렸다.
“지금 내게 무슨 뜻이냐고 묻는 것인가? 내게 뭐라고 약속했었는가. 내 사람을 건드리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심지어 내가 그 명단까지 건네주었지. 그런데 지금 어찌 되었는가.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죽었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우유도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대답했다.
“제가 명령한 겁니다. 그게 어쨌다는 말입니까?”
“어쨌냐고? 오늘 합당한 변명을 해야 할 것이네!”
“내가 말입니까? 이 몸이 그쪽을 친구로 대하고, 사형으로 대하고, 망년지우로 대했습니다. 그런데 그쪽은 어떻습니까? 나를 도둑 대하듯이 방비하니, 종일 이걸 의심하고, 저걸 의심하고, 어떻게든 나를 거꾸러뜨리려고 하니, 양심이 개한테 먹혔습니까? 그런데 제가 무슨 변명을 해야 한단 말입니까?”
엄입이 멈칫하더니 변명하며 말했다.
“내가…. 내가 언제 자네를 거꾸러뜨리려고 했단 말인가?”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엄입조차 자신감이 없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