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6화. 황후에 어울리지 않는다
“밖에 무슨 소란이냐?”
문밖에 있는 동선각의 제자가 문을 한번 두드리고는 크게 소리쳤다.
“폐하, 황후마마가 오셨습니다.”
곧바로 방 안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또 의자가 서로 부닥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혜청평이 참지 못하고 안으로 밀고 들어가려 하자, 입구를 지키고 있는 동선각의 제자들이 그 앞을 막아섰다.
“비켜라!”
혜청평이 소리 지르며 강제로 밀고 들어갔다. 그녀의 신분을 두고, 어찌 그 앞을 계속 막아설 수 있겠는가. 결국, 혜청평은 입구에 이르러 발로 문을 뻥 걷어찼다. 하마터면 문이 떨어져 나갈 뻔했다.
방 안에 있는 오공령은 허둥지둥 옷을 입고 있었고, 침상은 한껏 흐트러져 있었다.
혜청평은 서늘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곧 방 안에 오공령 외에 다른 사람이 없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문란한 냄새는 그녀에게 낯설지 않았다.
옷을 입고 있는 오공령이 헤헤 웃으며 말했다.
“평평, 여긴 어쩐 일이오?”
혜청평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여기서 뭐 하고 있었지요?”
오공령이 한숨을 내쉬었다.
“밖에서 공무를 처리하느라 힘들어, 방금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었소. 방금 그대가 왔다는 말을 듣고 침상에서 일어난 참이오.”
혜청평이 천천히 압박하며 말했다.
“황궁이 이곳에서 멀지 않은데, 어째서 이곳에 숨어서 밤을 지새운단 말입니까? 그렇게 집에 돌아오지 않으니, 이곳에서 정말 좋은 일을 경험할 수 있는 게 아니면 무엇이란 말입니까?”
오공령이 천천히 뒷걸음질 치며 더듬거리며 말했다.
“내가 돌아가면, 황궁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번거롭겠소. 난 그런 것을 원하지 않소. 어차피 내일이면 다시 나가야 하니, 그냥 밖에서 쉬면 그만 아니겠소. 일도 줄이고 말이오. 또 장병들이 번거로운 것도 원하지 않고 말이오.”
오공령은 침상에 다가가는 혜청평을 빤히 바라보며, 다소 긴장하고 있었다. 사실, 이 방 안에서 사람이 숨어 있을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펑!
혜청평이 갑자기 침상을 걷어찼다. 곧 침상 아래서 뭔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혜청평이 빠르게 소매를 휘두르자 강풍이 휘몰아쳤고, 침상이 끼익 소리를 내며 한쪽으로 쭉 밀려났다. 그러자 그 아래에서 백옥같은 피부를 지닌, 벌거벗은 미인이 옷을 껴안고 바닥에 웅크리고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이 드러났다. 몸매가 아름답고 긴 장발을 하고 있었지만, 그 모습이 썩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지금 벌거벗은 여인도 사실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원래는 목탁진의 후궁이었다. 과거, 목탁진의 후궁들 중에 목숨을 건진 여인들이 있었고, 이 여인들 중에 대부분은 오공령이 논공행상하며 아래 있는 장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미모가 가장 뛰어난 여자들은 오공령이 자신을 위해 남겨놓았었다.
단지 원래 천녀교의 장로였던 혜청평의 기세에 눌려, 감히 황궁으로 데려가지는 못했다. 그렇게 생각이 날 때마다 이렇게 황궁 밖에서 즐겼던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밖에서 지낸 것은 확실히 바빴기 때문이었다. 단지 가끔 이렇게 즐겼을 뿐인데, 이렇듯 현장에서 잡힐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 광경을 보고, 설명할 필요가 있겠는가? 혜청평의 얼굴이 분노로 시퍼레졌고, 곧 여자의 목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악!”
여자는 목이 붙잡힌 채 몸이 통째로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목이 졸려오니 숨을 쉬지 못했고, 껴안고 있던 옷가지마저 던져 버리고 붉어진 얼굴로 발버둥 쳤다. 하지만 그 어떤 소리도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눈앞에 있는 혜청평의 두 눈에는 살기가 어려 있었다. 오공령은 자신이 그녀의 상대가 될 수 없음을 알기에 정말 매우 놀라고 말았다. 혜청평이 정말로 진노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곧 오공령이 크게 소리쳤다.
“여봐라! 여봐라!”
오공령은 미처 바지도 입지 못한 모습으로 깜짝 놀라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방 밖에 있던 동선각의 제자들이 급히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또 송국 삼대 문파에서 파견한 고수들도 급히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들은 눈앞의 광경을 보고 다들 매우 민망해했다. 발가벗은 여인이 혜청평의 손에 매달린 채 공중에서 휘적거리고 있으니, 황제의 여인을 보지 않기도 어려웠다.
혜청평은 두말하지 않고 냉소 짓더니, 그대로 손을 비틀었다.
‘우두둑’ 소리가 울렸다. 여자의 목이 부러진 것이다. 혜청평이 손을 놓자, 그 여자가 그대로 땅에 쓰러져 꿈틀거리더니, 입과 코에서 피를 흘렸다. 사람이라면 죽을 수밖에 없었다.
오공령이 두 눈을 부릅떴다. 이 여자는 미모로 보나, 아니면 다른 어떤 것으로 보나, 오공령이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여인이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이렇게 혜청평에게 목숨을 잃어버리다니.
그는 크게 분노하기 시작했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서서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수많은 고수가 자신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더는 두렵지도 않았다. 그가 갑자기 분노를 토해냈다.
“잡아들여라! 저 개년을 지금 당장 잡아들여 무릎을 꿇려라!”
호위들은 다들 매우 난처한 얼굴을 했다.
“누가 감히 나를 건드느냐?!”
혜청평이 소리쳤다. 그리고 그대로 오공령을 향해 쏘아져 갔다. 반드시 오공령을 단단히 혼내고자 하는 모습이었다.
호위들은 원래 그녀에게 쉽게 손댈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분노한 나머지 오공령을 공격하려고 하니, 어찌 가만히 내버려 두겠는가. 오공령은 송국의 안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만약 그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지금 자리에 있는 수행자들은 종문에 변명할 말이 없었다.
원래는 감히 손을 쓸 수 없었지만, 이번에는 혜청평의 행동 때문에 손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순식간에 양측에서 아주 격렬하게 싸움이 붙었고, 분노한 혜청평은 조금도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건물이 주저앉고, 기와가 부서져 사방으로 흩날렸다.
몇몇 고수들이 오공령을 보호하며 도망가려 했지만, 혜청평은 그 뒤를 끝까지 쫓았다.
결국, 양측은 모두 최선을 다하게 되었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오공령을 보호하기 위해 파견한 삼대 문파의 고수들을 혜청평 일행이 이겨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여기엔 혜청평의 제자들이 적극적이지 못한 것도 한몫했다. 그들이 최선을 다했다가, 만약 혜청평이 방어막을 뚫고 오공령을 해하기라도 한다면 어찌 된단 말인가? 일단 그들의 목이 달아나는 게 더 먼저가 될 게 분명했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도 혜청평은 조금도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호위하는 삼대 문파의 수행자를 몇 명이나 죽이기까지 했다. 결국 삼대 문파의 고수들은 오공령의 안전을 위해서, 같이 협력해 혜청평을 제압할 수밖에 없었다.
급한 마음에 사부를 구하기 위해 뛰어온 천녀교의 제자들도 하나둘 제압당했다.
혜청평이 제압당한 것을 보고 오공령이 갑자기 맨발로 뛰어나왔다. 덕분에 사방에 흩어져 있는 기와 파편을 밟고 고통에 펄쩍펄쩍 뛰었지만, 그런데도 분노한 얼굴로 혜청평에게 다가와 팔을 휘둘러 따귀를 후려갈겼다.
짝! 경쾌한 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오공령이 소리쳤다.
“개 같은 년!”
아무리 수행자가 아니라 해도, 평생 전장을 누비던 장수였다. 손속이 매우 독했다. 게다가 혜청평은 제압당한 상태였기에, 아무런 방비 없이 얻어맞아야만 했다. 그렇게 혜청평의 입가에 피가 새어 나왔고, 머리에 쓰고 있는 봉관도 삐뚤어졌다.
“나를 때려? 죽여 버릴 거야! 죽여 버릴 거야…!!”
혜청평이 입가에 피를 흘리며 난리를 피웠다.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녀를 제압한 사람들이 그녀가 쉽사리 오공령을 공격하게 놓아둘 리 없었다.
“나를 죽이겠다고? 좋아, 네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더는 부부의 정은 없는 것과 같겠지. 그러니 내가 무정하다 탓하지 못할 것이야!”
크게 분노한 오공령은 뒤돌더니 한 호위의 허리춤에 있는 검을 갑자기 ‘챙’하고 뽑아 들었다. 그리고는 다시 뒤돌아 혜청평의 가슴을 향해 검을 찌르려 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폐하!”
다행히도 곁에 있는 수행자들이 빠르게 움직여 오공령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렇게 불상사가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폐하, 황후마마께서 잠시 이성을 잃으신 것 같습니다. 진정하시기 바랍니다!”
장난하는가? 일국의 황후였다. 이처럼 죽이고 싶다고 맘대로 죽여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황제가 홧김에 하는 행동은 당연히 막아야 했다.
최소한 종문의 지시를 받고 움직여야 했다. 그렇지 않고 이 일이 퍼져나가면 그 영향이 너무 거대했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이 행동을 막지 않는다면, 또 그 책임을 피하기 어려웠다.
“나 몰래 다른 여자와 정을 통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나를 죽이려 하다니…!”
혜청평이 슬픈 얼굴로 절망했다. 그녀는 지금 오공령이 거짓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방금 정말로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 행동 때문에 혜청평은 정말로 크게 상심했다. 그녀는 비통한 비명을 토해냈다.
“오공령, 배은망덕한 개자식, 내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너도 없었을 것이야!”
“내가 몰래 정을 통했다고?”
오공령이 다시 앞으로 나서 따귀를 때리려 했지만, 곁에 있는 사람이 그를 저지했다. 어쩔 수 없이 혜청평에게 삿대질을 하며 분노를 토해냈다.
“혜청평, 지금 네 나이가 몇인지 한번 되돌아봐라. 겉으로 보기에는 주안술 때문에 젊어 보이지만 사실은 어떠하더냐? 네가 지금 아이나 낳을 수 있더냐? 짐은 과거의 짐이 아니다. 지금 짐은 대송의 황제다. 황제가 어찌 후사가 없을 수 있단 말이냐.
만약 후사가 없다면, 짐의 천하를 누구에게 이어받게 한단 말이냐? 짐이 대송의 천하를 위해서 한 일이다. 그런데 이 개 같은 년, 막돼먹은 년아, 너는 짐의 후손이 끊기기를 바라는 것이냐? 세상에 너 같은 황후가 또 어디 있단 말이냐? 너는 황후의 자격이 없다!”
그 말을 들은 혜청평은 펑펑 울었다. 송국의 황후이자, 과거 천녀교의 장로였던 그녀는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울며 저주를 퍼부었다.
“오공령, 네놈은 비명횡사할 것이다, 비명횡사할 것이야….”
“비명횡사? 좋아, 좋지! 하하…!”
오공령이 하늘을 보고 크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를 듣는 주위 사람들은 모두 오공령의 뜻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지금 혜청평에게 비명횡사할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주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수행자들은 종문의 허락이 떨어지기 전에 오공령에게 혜청평을 죽이게 할 수 없었다. 아무튼, 지금 수행자들은 오공령과 혜청평을 갈라놓은 채 서로 다가가지 못하게 했다. 어쨌든 오공령이든 혜청평이든 간에, 두 사람이 함부로 움직일까 봐 걱정됐기 때문이다.
관사가 아주 난장판이 되었다. 더는 거주하기 힘들어진 상태였으니, 오공령은 즉시 사람들을 이끌고 황궁으로 돌아갔다.
오공령이 돌아오고 적지 않은 소란이 일었다. 황후가 붙잡혀 끌려왔을 뿐만 아니라, 그대로 옥에 갇힌 것이다!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매우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황후가 황제를 암살하려고 했고, 황제가 황후를 붙잡아 가두었다! 그러니 어찌 소란이 일지 않겠는가?
오공령은 이 일을 숨길 생각이 없었다. 그는 살심이 일었다. 그는 혜청평을 죽이려고 했다!
예전에 혜청평을 어떻게 이용했든, 아무튼 지금은 혜청평에게 신물이 나 있었다. 오공령은 일군의 사령관이기도 하고, 황제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모두 차치하고, 심지어 사람이라는 이름표까지 떼어내면, 오공령은 그저 한 마리 수컷에 불과했다. 그것도 수컷의 특징이 아주 완벽히 두드러지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다. 그는 암컷과 교배하고자 하는 욕망이 아주 강렬한 그런 사람이었다.
물론, 그래도 그는 사람이었기에, 사람의 도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그를 이토록 견디지 못하게 하지만 않았다면, 자신의 아내를 죽이고 싶어 할 리 없었다.
하지만 혜청평과 만난 이래로, 그녀는 끊임없이 그를 감시했다. 처음엔 오히려 오공령과 동침하는 걸 싫어하고 아주 질색하더니, 나중에 가서는 오히려 그가 다른 여자하고 자는 것에 대해 아주 증오하고 분노할 정도로 질투하게 되었다.
게다가 오늘의 일은 이미 그가 참을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나는 일이었다. 반평생 전장을 전전하며, 맺고 끊는 것이 거의 본능이 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