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5화. 가고 싶은 사람이 가십시오
정신을 차린 엄입은 그제야 좀 전에 우유도가 괴이한 미소를 지은 이유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전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 함정이 있을 줄이야. 그 전에 우유도가 자신과 일대일로 싸우자고 하지 않았던가. 지금은 정말 우유도와 싸우고 싶었다. 우유도를 천참만륙(*千斬萬戮: 여러 조각으로 동강 내어 참혹히 죽임)하고 싶을 정도였다.
분노한 엄입이 소리쳤다.
“우유도, 여기서 그따위 헛소리를 내뱉지 말아라!”
우유도가 격하게 반박했다.
“내가 헛소리를 내뱉고 있단 말입니까? 당시 제가 사형을 끌고 귀면각에 함께 가서 따져보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장문인께서 나서서 막으셨습니다. 장문인께서 직접 보셨는데, 사형 마음대로 없었던 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사람들이 다시 궁임책을 돌아보았다. 춘신량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장문인, 엄입이 정말 그리 말했소이까?”
“만약 그전에 두 사람이 다툴 때의 일이라면, 제가 두 사람이 말싸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도착했을 때는, 두 사람이 딱히 무슨 말을 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 제가 어찌 감히 증인이 되겠습니까.”
궁임책은 확실히 듣지 못했다. 하지만 나중에 엄입이 그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했으니, 무슨 말을 했는지 대략 알고 있었다. 다만 지금 궁임책이 인정할 리 없었다.
간단한 이치였다. 엄입은 그와 같은 사부를 둔 사제였다. 엄입은 바로 그의 사람이었으니, 지금 우유도가 증거를 내놓지 못하는 상황에서 궁임책은 당연히 자신의 사람을 도와야 했다.
만약 기회가 있을 때 자신의 사람도 지키지 못한다면, 이 장문인이라는 자리에 더는 있을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춘신량이 다시 물었다.
“엄입, 사실대로 말해라.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느냐?”
엄입은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는 느낌이었다. 당시 충동적인 마음에 자신의 입을 관리하지 못한 자신이 미울 정도였다. 하지만 그 일이 이 일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그는 우유도가 참으로 간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도 그를 진흙탕에 끌어들일 수 있다니. 정말 그렇다면, 나중에 이놈이 엄입 자신에게 생트집을 잡아도 입 하나 뻥끗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
다행히 장문 사형이 그를 위해서 어느 정도 위기를 모면하게 해주었으니, 엄입은 즉시 부인하며 말했다.
“없습니다! 절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어찌 인정할까. 우유도에게 그런 말을 했다는 증거도 없었다. 당연히 부인할 수밖에. 만약 성경의 명단과 얽혀 있지 않았다면, 그냥 말다툼한 것에 불과하니, 그냥 인정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그 이야기를 하면 시비를 가리기 어려워졌다.
우유도가 ‘허’ 하며 냉소 지었다.
“좋습니다. 아주 완벽한 소인배군요. 양심에 손을 얹고 이야기해 보시지요!”
그와 동시에 궁임책을 흘겨보았다. 엄입이 분노해 소리쳤다.
“우유도, 다른 사람을 모함할 때는 증거가 필요한 법이다. 네가 말한다고 어찌 다 믿겠느냐!”
“엄 장로님, 아주 독하십니다. 오늘에서야 어떤 분인지 알겠습니다. 하는 말이 아주 바람과 같이 가볍군요. 앞으로는 절대 그쪽 말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말을 했는지 혹은 하지 않았는지, 만약 거짓이라면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 지금 당장 맹세를 할 수 있습니까!”
엄입은 두말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맹세했다.
“만약 이 명단이 바뀐 것과 관련하여 내가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다면, 만약 내가 거기에 수작을 부렸다면, 천벌을 받아도 마땅하다. 지금까지 쌓아온 수행이 모두 헛것이 되어도 인정할 것이고, 내가 마지막에 곱게 죽지 못할 것이라고 맹세한다!”
우유도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지만, 최대한 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엄입이 그렇게 만만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말을 아주 살짝 바꿨고, 아주 교묘하게 책임을 피해갔다. 그렇게 거짓말을 하지 않은 채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냈다. 제법 순발력이 있었고, 재치와 지혜도 있었다. 내심 즐거워한 우유도가 즉시 반박했다.
“내가 세 살배기 아이라도 되는 줄 아시오?”
“그만!”
춘신량이 호통쳤다. 만약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끝이 없을 것 같았다. 이렇게 계속 말다툼을 하게 놔두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았다. 혹시라도 정말 우유도가 그럴싸한 논리를 만들어 낸다면 그것도 문제였다.
성경의 명단은 이미 정해졌다. 우유도는 가기 싫어도 가야 했다. 이건 바꿀 수 없는 사실이었다. 종 사형도 뭐라 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이에 우유도를 지목하며 말했다.
“좌우지간, 자네의 의심에 증거를 내놓을 수 있는가?”
“소인배가 일을 행할 때, 당연히 배후에서 몰래 했겠지요. 저도 너무 갑작스럽게 당한 일이다 보니, 아직 증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사숙께서는 제게 증거를 찾을 시간을 주십시오. 독수리가 지나가면 소리를 남기고, 물이 지나가면 흔적을 남기기 마련입니다. 분명 단서를 남겼을 것이니, 제게 조사할 시간을 주십시오!”
춘신량은 더는 우유도와 드잡이질하지 않았다.
“조사하고 싶으면 알아서 조사하게. 하지만 성경에서 보내온 명단은 거역할 수 없으니, 정확한 증거가 없는 한 성경의 명단대로 집행할 것이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묵인했고, 엄입은 냉소를 지으며 우유도를 남몰래 바라보았다. 하지만 우유도는 전혀 들어먹지 않고, 여전히 고집을 부렸다.
“성경은 가고 싶은 사람에게 가라고 하십시오. 아무튼, 저는 안 갑니다. 저는 아직 여기서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일을 다 처리하기 전에는 절대 성경에 갈 수 없습니다.”
공개적으로 종문의 결정에 대항하다니! 춘신량도 더는 화를 참지 못하고 호통을 쳤다.
“무슨 큰일이길래 눈앞에 벌어진 성경의 일보다 더 중요하단 말인가?”
우유도가 가볍게 대답했다.
“이미 남주의 군대에 송국을 공격하라 명령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사람들은 모두 대경실색했다. 마치 죽은 것처럼 반응이 없던 종곡자조차 얼굴을 꿈틀거렸다.
장난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궁임책이 다급히 말했다.
“우 사제, 농담이겠지? 갑자기 송국을 왜 공격한단 말인가?”
궁임책은 제발 우유도가 농담이라고 말하길 바랐다. 우유도가 그런 궁임책을 힐끗 바라보더니 말했다.
“농담이 아닙니다. 장문인은 상조종을 찾아가 사실을 확인하셔도 됩니다. 이미 명령을 내렸으니, 아마 지금쯤 준비가 한창일 것입니다. 확인하면 진위를 알 수 있으니, 제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아실 겁니다.”
궁임책은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게 큰일을 어찌하여 내게 말해주지 않았단 말인가? 난 지금까지 그와 관련한 조금의 소식도 듣지 못했네! 자네는 자금동의 장로이면서 어째서 보고하지 않았는가?”
“장문인께서 어찌 소식을 못 들으셨습니까. 송국 황후가 폐위를 당했다는 소식을 모르십니까?”
궁임책이 분노했다.
“송국 황후가 폐위를 당한 것과 자네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자네가 그 송국 황후와 무슨 연관이라도 있단….”
하지만 궁임책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뭔가를 기억해 냈다. 과연, 우유도가 그의 의문점을 시원하게 해소해 주었다.
“송국 황후 혜청평은 저와 의남매를 맺은 누님입니다. 오공령이 원래는 그녀를 죽이려고 했다가, 아내를 죽였다는 죄명을 얻기 싫어 당분간 옥중에 가둬 놓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마 시간이 조금 지나면, 혜청평은 분명 옥중에서 예상치 못한 사고를 당할 것입니다. 저는 그걸 두 손 놓고 지켜보기만 할 수 없습니다.”
막영설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그게 무슨 헛소리인가. 자네와 그녀가 어떻게 의남매를 맺었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네. 정이라고 할 것도, 의리라고 할 것도 없지 않은가. 그런데 자네가 그녀를 위해 병사를 일으켜 송국을 공격한다는 말을 우리보고 믿으라는 말인가?”
“믿든 말든, 그건 여러분 마음입니다. 만약 믿지 못하시겠다면…. 좋습니다. 여기서 확답을 드리겠습니다. 혜청평을 구할 수만 있다면, 제가 성경에 가겠습니다.”
여기까지 질질 끌다가 우유도는 드디어 자신의 진정한 목적을 밝혔다.
사실 우유도는 의사대전에서 자신의 이름이 성경의 명단에 올랐다는 이야기를 들은 순간, 이번 재난을 피해갈 수 없게 됐다는 것을 이미 깨닫고 있었다.
우유도는 바보가 아니었다. 표묘각에서 결정을 내린 일에 대해 자금동이 왈가왈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러니 지금 우유도가 이렇게 소란을 피운 것은, 자신이 성경에 가는 일을 피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곳에 간다고 해도, 어쩌면 목숨을 건질 수도 있었다. 어쩌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위험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결국, 단련이니 뭐니 해도, 가서 정확히 뭘 하려는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몰랐으니 말이다.
하지만 가지 않는다면? 결과가 너무 명백했다. 그러니 가지 않으려고 시도할 사람이 없을 것도 너무나 분명했다. 그러니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사실 지금까지 가지 않겠다고 떼쓰고 고집을 피운 것도, 심지어 스스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혀 갈 수 없도록 하겠다고 난리를 친 것도, 전부 헛소리에 불과했다.
결국 모든 것은 이 말을 위해서였다.
자신의 안위를 내려놓으면서까지 사람을 구하겠다고 했다. 우유도의 말을 들은 현장의 사람들이 전부 고요해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이건 그저 우유도가 핑계를 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의남내는 무슨 얼어 죽을 의남매란 말인가?
이들은 막말로 말해, 여전히 우유도가 성경에 가는 것을 회피하려 한다고 여긴 것이다. 궁임책이 다시 말했다.
“만약 그 여인을 구하고 싶다고 해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그 여인을 구할 수 없다면, 계속 그렇게 고집을 부리며 성경에 가지 않을 참인가?”
“장문인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제게 충분한 조건만 만족시켜 준다면, 성경에 가기 전에 사람을 구해낼 자신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유도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궁임책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만약 구해내지 못하면 어쩔 참인가?”
우유도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저도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렇게 하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종문에서 제가 요구한 도움을 주기만 한다면, 성경에 가는 시간이 되었을 때, 구해내든, 구해내지 못하든 아무런 불만 없이 고분고분 성경으로 가겠습니다. 사부님 앞에서, 그리고 두 사숙께서 제 말의 증인이 되어주실 겁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고, 또한 절대 잡아떼지 않겠습니다.”
사람들이 서로서로 바라보았다. 두 태상 장로도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두 사람 마음속에 가득 차올랐던 화도 갑자기 이상할 정도로 진정이 되었다. 두 사람은 같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종곡자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종곡자는 여전히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