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8화. 성경의 주인
결국, 사여래는 나방비가 건네는 종이를 건네받았다. 그는 달빛을 빌려 우유도가 적어 놓은 것을 확인하고는 계속해서 다른 사람이 적은 것들도 살펴보았다.
사형이 유심히 살펴보는 것을 보고, 나방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사형은 자신 앞에서도 표정이 변하는 일이 매우 드물었다.
그러니 자신이 사형을 기쁘게 한 것은 그야말로 드문 일이었다. 여러 가지 일을 겪어왔지만, 항상 사형 앞에서는 자신감이 바닥을 기었다. 그런데 그녀의 눈앞에서 사형이 자신이 한 일을 이처럼 중시하니, 나방비는 크게 들뜬 마음으로 몸을 옆으로 살짝 움직여 사형의 비어있는 술잔에 술을 가득 따라주었다. 그리고 자신은 옆에 조용히 앉아 달빛에 비치는 사형의 얼굴 윤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쓴 글을 모두 본후, 사여래는 다시 한번 우유도가 쓴 것을 살펴보았다.
확실히, 사람들은 모두 그 문파의 핵심적인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독 우유도만은 자질구레한, 쓸데없는 것들을 적어 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우유도를 책망할 수 없는 것이, 정말로 우유도의 변명이 교묘했기 때문이었다. 우유도는 종이에서 말하기를, 자금동에 가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데다가, 자신이 자금동 내부의 핵심적인 상황에 대해 일절 접근하지도 못했다고 불만을 표하고 있었다.
항상 자신은 정책 결정에 참여할 권한도 가지지 못한 채 쫓겨나기만 했다고 되어있었으니, 자금동의 내막에 접근하지 못했다는 그의 변명은 신빙성이 있다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이렇게 남다른 내용을 적어 낼 수 있었다.
사여래는 종이 뭉치를 술상 위에 올려놓고는 물었다.
“정위가 시킨 것이야?”
나방비가 웃었다.
“성경 단련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성존들께서 결정하신 거예요. 당연히 정위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요. 아마도 어느 성존의 뜻인 것 같아요.”
“이제 저들에게 무엇을 시킬까?”
나방비가 고개를 저었다.
“저도 몰라요. 이번에 저들에게 적게 한 이것도 사전에는 그 누구도 몰랐어요. 아마 정위가 가장 먼저 명령을 받았겠지요.”
사여래가 잠시 침묵하더니 갑자기 물었다.
“네가 명단을 수정해서 우유도를 성경 단련에 참여시켰다고 하던데?”
나방비가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유도가 명단에 있는지 물어보았던 일을 기억하세요? 사형이 흥미 있어 하는 것을 보고, 여기 데려오면 어떨까 싶었어요. 솔직히 말해서,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사형이 관심을 가지는지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내가 우유도에 대해 물어본 것은, 혹시나 그가 자금동에서 압박을 당해 성경 명단에 포함된 건 아니었는지, 그게 궁금했을 뿐이었다. 우유도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해서, 강제로 그를 여기로 데려오라는 말이 아니었다.”
나방비의 미소가 순간 굳어졌다. 하지만 곧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만약 그가 온 것이 마음에 안 드시면, 지금 바로 쫓아내겠어요.”
사여래가 천천히 나방비를 돌아보았다. 지금 성경의 일은 대나성지 한 곳에서 마음대로 결정해도 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마치 자기 마음대로 성경의 일을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함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정말로 자신의 지위가, 무슨 성경의 일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지금 장난치는 건가?
하지만 결국 사여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말 말이 안 통하는 상대였다.
* * *
수결산장 내부,
한 표묘각 인원이 문을 두드렸다. 곧 문이 열리자, 그가 안에 있는 사람에게 보고했다.
“황 집사님, 정 선생님이 돌아오셨습니다. 선생님이 부르십니다.”
방 안에 있던 황 집사는 감히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즉시 그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나섰고, 빠르게 산장의 중심부를 향해 움직였다.
황반(黃班)은 대원 성지의 사람이었는데, 임시로 표묘각에 뽑혀온 자였다. 과거, 적성성의 요월객잔에 있는 백옥루가 그 당시에 있었던 천도비경의 일 때문에 천도봉에서 일을 도왔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정위가 표묘각을 관리하게 된 이후, 그를 불러와 표묘각을 도와달라 말한 것이었다.
산장의 주 건물 내부, 정위가 뒷짐을 지고 창문 앞에서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황반이 안으로 들어와 그 뒤에 서서 공손히 포권하며 말했다.
“정 선생님을 뵙습니다.”
정위는 여전히 그를 등진 채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저들의 다음 단련 일정을 자네가 준비하게. 서탁 위에 있는 건 내가 방금 가져온 것이니, 가서 각 문파의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황반은 대답하고 서탁으로 다가갔다. 서탁 위에는 수많은 소책자가 쌓여있었다. 그는 우선 하나를 들어 내용을 살펴보았다. 그에게 준비하라고 했으니, 일단은 무슨 일인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소책자의 내부에는 그림이 하나 그려져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과거에 성경을 차지하고 있던 요호(妖弧)의 그림이었다!
상찬이 또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공간을 가른 후, 많은 사람들이 이 성경에 오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 성경에는 이미 다른 주인들이 있었다. 그들이 바로 요호라고 불리는 이들이었는데, 이들은 성경의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사실 성경의 원래 이름은 호선경(狐仙境)이었다. 이는 요호들이 성경의 주인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어렵사리 새로운 세계로 갈 수 있게 되었건만, 그 안에 있는 요호들 때문에 자유로이 지내지 못하자, 결국 지존들은 요호를 토벌하고자 했다.
그렇게 구대지존이 힘을 합쳐 요호들을 공격했다. 구대지존은 수많은 수행자들을 이끌고 요호들을 공격했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요호들이 지키고 있는 금물(禁物)이 요호들의 힘을 이루는 핵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 구대지존은 그 금물을 차지하게 되었으며, 요호들은 몰락하고 말았다. 그렇게 구대지존이 요호의 자리를 차지했고, 호선경의 이름은 성경으로 바뀌었다.
그렇지만 성경은 정말로 거대한, 하나의 세계였다. 그 규모가 너무 크고, 환경 또한 매우 복잡했다. 당연히 모든 요호를 죽이는 것은 불가능했고, 금물을 차지한 이후, 요호들이 힘을 잃고 많이 죽긴 했지만, 여전히 구대지존을 피해 숨어 사는 요호들이 적지 않았다.
다만 지금까지 구대지존은 요호에 대한 사냥을 멈춘 적이 없었다. 그렇게 원래 이 세계의 주인이었던 요호들은 어쩔 수 없이 세상의 외진 곳에서 몸을 숨기고 구차하게 목숨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황반은 계속 그림을 살폈다. 요호 그림 뒤편에는 대략적인 지역 지도가 그려져 있었는데, 요호족이 대략적으로 숨어있는 범위가 적혀 있었다.
그걸 보고 황반은 다소 의외라는 듯이 뒤돌아 물었다.
“선생님, 설마 앞으로의 단련 내용이 요호를 사냥하는 것입니까?”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정위가 끄덕이고는 여전히 등진 채로 느긋하게 말했다.
“맞네, 그것이 바로 저들의 다음 단련과제이지. 저들뿐만이 아닐세, 표묘각에서도 저들과 같은 수의 인원을 선발해 엽살대(獵殺隊)를 만들 것이네. 우리는 이 두 무리를 서로 경쟁하게 할 것이네.”
황반이 멈칫하고는 곧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 경쟁할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지형과 환경, 그리고 요호에 대한 이해도를 놓고 보아도, 저들에게는 너무나 낯선 장소이고, 또 낯선 존재들입니다. 같은 인원이라는 전제하에 저들이 어찌 표묘각을 이기겠습니까?”
정위가 담담히 말했다.
“만약 표묘각이 진다면?”
“예?”
황반이 ‘하하’ 웃으며 말했다.
“어찌 지겠습니까.”
정위가 뒤돌아 그를 보며 말했다.
“만약 그처럼 우위를 차지하고도 진다면, 그건 표묘각의 사람들이 저들보다 능력이 부족하다는 증명이 되는 것이네. 그 결과가 무엇일지 생각해 보았는가?”
황반이 깜짝 놀라 감히 말을 잇지 못했다. 정위가 차분히 말을 이었다.
“표묘각의 사람들이 교체될 수도 있다는 것이지.”
“설마…. 정말이십니까?”
“각 문파의 사람들에게 전해. 표묘각의 사람들과 경쟁해야 할 거라고 말이야. 경쟁해서 이기면,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말해둬.”
“…알겠습니다!”
정위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황반 또한 두려워 더는 묻지 않았다.
정위는 급히 왔다가, 빠르게 떠나갔다. 표묘각이 관리해야 하는 일은 수없이 많았고, 이 일만 신경 쓸 수 없었다. 지금 정위는 단지 단련의 다음 단계를 진행하기 위해 잠시 방문한 것에 불과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번 일은 적지 않은 파란을 일으킬 수 있었으니, 개인적으로도 준비가 필요했다.
* * *
맨 처음, 사람들에게 강제로 문파의 비밀을 적게 했던 건물 내부,
이곳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 채, 계속 머무르고 있었다. 따분하거나 지겹진 않았다. 다들 대체 무슨 일을 시킬 건지 몰라 오히려 긴장하거나,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성경의 사람들이 그들을 불렀다. 각 문파의 사람들은 긴장하며 문파의 비밀을 적었던, 그 넓은 곳으로 다시 모였다. 하지만 별것 없었다. 그저 황반이라는 사람이 앞에서 표묘각의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렸고, 문파의 사람들에게 소책자 하나씩을 나눠 주라 했다. 그게 끝이었다. 문파의 사람들은 각각 책자 한 권을 받았을 뿐이었다.
황반은 그렇게 정위가 맡긴 일을 처리하고는 그곳을 떠났다.
정위의 말을 들은 황반 또한 지금 마음이 어느 정도 조급해진 상태였다. 그는 정위의 말을 잊지 않았다. 정위의 말을 생각해보면, 구대지존은 표묘각에 불만이 있는 것이 확실했다. 즉, 구대지존이 표묘각을 정돈할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자신 또한 이에 상응하는 준비를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성경의 수행자들로부터 소책자를 각각 받아든 사람들은 다시 숙소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잠시 후, 부화, 낭량공, 홍개천, 단무상 등이 즉시 우유도의 방으로 향했다. 곧이어 심일도도 거기에 끼어들었다.
조경은 맞은편 처마 밑에서 그 모습을 두 눈 뜨고 지켜보았다. 그도 가고는 싶었지만 차마 보는 눈이 많아 그럴 수 없었다.
“물어보지 마십시오. 저도 정말 어찌 된 일인지 모릅니다.”
방 안,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우유도는 연신 앓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우유도가 끝까지 인정하지 않으니, 다들 다른 방법이 없었다. 부화도 동요하는 모습으로 말했다.
“설마 정위가 일전에 말했던 좋은 일이 이걸 말하는 건가?”
황반은 앞서 소책자를 나눠주며 정위의 말을 충실히 따랐다. 황반이 말하길, 이들에게 이번 단련은 표묘각과 시합을 해야 할 것이라 이야기해줬다. 만약 이들이 이기면 표묘각의 관련 사람들은 표묘각에서 퇴출당하고 지금 이들이 대체하게 될 것이라 했다.
그 말은, 이번 단련에 참여한 사람들은 다들 표묘각의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어떤 활약을 하느냐는 것이다.
우유도가 말했다.
“그만 쳐다보십시오. 전 아무것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