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5화. 경종장명(警鐘長鳴)
거안은 관청애가 관방의의 말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자신이 그에게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만 문제를 일으킬 순 없으니, 그와 계속해서 쓸데없는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이제 가봐도 되겠소?”
“떳떳하지 못한 일이라도 했나? 왜 나를 피하는가?”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하지도 않았고, 그대를 피하는 것도 아니오. 지금 당신은 내가 귀면각으로 돌아가는 것을 저지하는 것이오?”
“그냥 담소나 나누자는 것이지, 이게 자네가 말하는 것처럼 심각한 일인가?”
관청애는 같잖다는 듯이 막고 있던 팔을 내려놓았다. 비록 그가 거안을 안중에 두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는 종곡자를 위해 귀면각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아직 종곡자가 살아 있는 한, 자금동의 그 누구든 간에 거안에게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그는 말할 것도 없고 그의 사부 엄입조차도 감히 그를 경솔하게 대하지 못했다. 그래 봤자 별 대수롭지 않고, 별로 듣기 좋지 않은 말, 그러니까 나중에 추궁해도 별다른 책임을 질 필요 없는 쓸데없는 말이나 늘어놓을 뿐, 차마 정말 손을 쓸 만한 배짱은 없었다.
거안은 별말 하지 않고, 그대로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관청애는 멀어지는 거안을 바라보더니 다시 좌우에 있는 사람들에게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은 나중에 귀면각을 지키는 동문들에게 그곳을 잘 감시하라고 이르거라. 앞으로 잡스러운 외부인들이 귀면각에 가서 종 태상 장로의 청정을 방해하지 말게 하라고 전해라.”
“알겠습니다!”
좌우에 있는 두 사람이 웃으며 대답했다.
거안의 발걸음이 멈칫했다.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관방의는 말할 것도 없고, 거안조차 분명히 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외부인? 여기에 외부인이 어디 있단 말인가? 초려별원의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이 분명했다. 이건 초려별원의 사람들이 귀면각과 연락을 주고받는 것을 저지하려는 것이었다. 거안은 자신이 직접 움직이지 않고는 아마 앞으로 초려별원의 사람들에게 연락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는 이에 대해 뭐라고 할 권한이 없었다. 거안은 계속해서 가던 길을 갔다.
관청애가 다시 뒤돌아 거안의 등을 보며 냉소 지었다. 그리고는 다시 앞에 있는 관방의를 보며 그녀가 밟고 있는 땅을 가리키고 경고했다.
“누가 당신보고 여기 나오라고 했소. 초려별원의 사람들은 허락 없이 자금동 내부에서 함부로 돌아다닐 수 없소. 그 규율을 모르시오?”
관방의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당연히 알고 있지요. 그리고 함부로 돌아다닌 것도 아니에요. 여긴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 안이지요.”
자금동이 비록 초려별원의 사람들이 활동할 수 있는 범위를 제한했지만, 그렇다고 초려별원에서 나오지도 못하게 제한한 것은 아니었다. 정말 그 정도로 큰 제약을 했다면, 과거에 우유도가 승낙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초려별원을 둘러싼 큰 영역은 충분히 돌아다녀도 상관이 없었다. 그리고 초려별원 뒤에 있는 산도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관청애에게는 남다르게 들렸다. 방금 자신이 거안과 이야기를 나눌 때 끼어든 것을 보고 이미 매우 불쾌해진 상태였다. 관청애는 거안을 어쩌지 못했다. 그렇게 거안에게 화를 풀 수 없으니, 이 순간 참지 못한 화가 터져 나오며 그대로 손을 휘둘렀다.
짝! 따귀 소리가 울렸다.
관방의는 이 자식이 정말로 손을 쓸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당연히 어떠한 방비도 되어있지 않았고, 생으로 뺨을 얻어맞을 수밖에 없었다. 따귀를 맞은 관방의는 비틀거리며 입가에 피를 흘렸다. 관청애가 조금도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기회를 찾아 초려별원의 사람들을 곤란하게 해서 사부를 위해 분풀이를 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별원 내부,
관방의가 불순한 의도를 가진 사람과 대면하고 있는 것을 보고 허노육과 다른 사람들은 일찍부터 주목하고 있었다.
관방의가 따귀를 맞은 그 순간, 허노육, 오노이, 진 아저씨 등 사람들이 빠르게 뛰쳐나가 관방의의 복수를 하려 했다.
이 신속한 반응 속도에 관청애는 크게 경악하며, 좌우에 있는 두 사람과 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법력을 이용해 크게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이냐! 어딜 감히 나에게 손을 쓰려 하는….”
“멈춰! 다들 당장 멈춰!”
관방의는 빠르게 소리치며, 손을 흔들어 진 아저씨 등의 사람들을 저지했다. 혹시라도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일단 이쪽에서 손을 쓰면, 이득을 취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어쩌면 큰 손해를 볼 수 있었다. 또 별원에 있는 모든 사람이 같이 그 책임을 감당해야 할 수도 있었다. 그건 도야의 안배를 물거품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관방의의 말을 듣고 멈춰선 허노육 등 일행은 이를 갈고 있었다. 다들 화가 치밀어 올라 견디기 어려워하고 있었다.
돌아가며 주변을 순찰하던 자금동의 사람들은 관청애가 지르는 아우성에 급히 날아왔다. 그리고 그 선두에 선 사람이 소리쳤다.
“이게 무슨 소란이요?”
허노육이 즉시 관청애를 가리키면서 분노를 토해냈다.
“저자가 사람을 쳤소!”
그리고는 선홍빛 손자국이 진하게 찍힌, 부풀어 오르고 있는 관방의의 얼굴을 가리켰다. 그 선두에 있는 자가 즉시 굳은 목소리로 물었다,
“관 사제, 감히 종문 안에서 자네가 이처럼 마음대로 손을 써도 된단 말인가?”
상황이 안정되고, 관방의 쪽이 경거망동하지 못하는 것을 보자, 관청애가 오히려 더욱 배짱을 부리며 적반하장으로 대들었다.
“방금 제가 저자에게 규율을 지키라 했습니다. 당신들은 외부인이니, 자금동에서 쓸데없이 돌아다니지 말라고 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저 여자는 이곳은 자신들의 영역이니, 돌아다니든 말든 자신들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말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곳은 저들의 영역이 아니라, 단지 저들에게 허락된 땅일 뿐입니다.
하지만 저 여자는 자금동의 영역이 마치 자기들의 땅이라도 된 것처럼, 건방진 말을 내뱉었습니다. 자금동의 영역이 언제 저들의 영역이 되었단 말입니까? 자금동의 제자로서 저 여자의 무도함을 참을 수 없었기에 뺨을 때렸을 뿐입니다. 입 간수 잘하라고 말입니다!”
허노육 등 사람들은 관방의가 맞는 것을 보았지만, 뭐라고 하는지는 듣지 못했다. 그러니 뭐라고 변명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다만 관방의는 어찌 된 일인지 알고 있었다. 상대방이 잘못을 자신에게 덮어씌우는 것을 보고 그 즉시 눈을 치켜뜨고 말했다.
“관청애, 뚫린 입이라고 마음대로 지껄이는구나. 내가 언제 여기를 두고 우리 영역이라고 말했느냐?”
관방의가 입을 열자, 그 즉시 좌우에 있는 두 사람이 분분히 나서며 증인이 되었다.
“제가 직접 들었습니다. 관 사형은 분노한 나머지 저 여자를 훈계한 것에 불과합니다.”
관방의가 크게 분노하며 말했다.
“아주 헛소리를 늘어놓는구나. 네놈들이 다 한통속이 되어 내게 죄를 뒤집어씌우는구나!”
싸움을 지켜보던 다른 제자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이런 일은 대문파 사이에서 나름대로 자주 보이는 일로, 아래 있는 제자들이 서로 경쟁하면서 평소 비슷한 일이 많이 발생하곤 했었다. 단지 우유도 정도 되는 위치의 자금동 고위층은 이런 식으로 사소하게 싸우는 경우가 별로 없을 뿐이었다. 예를 들어 문묵아 같은 경우에도 과거에 이런 식으로 적지 않은 고초를 겪었었다.
“누가 헛소리를 한단 말이냐?”
관청애가 분통을 터트리며, 관방의에게 삿대질을 하며 조롱하듯이 말했다.
“아무 남자나 지아비로 모시는 천한 년, 수많은 사람이 올라탄 창녀 같으니! 아마 거짓말도 수없이 했겠지. 그러면서 여기서 자신의 말을 믿으라고 하니, 그야말로 우스운 일이군!”
“개자식, 그 입을 찢어 버리겠다!”
허노육이 대노하며 뛰쳐나가려고 했다. 관방의는 그런 허노육의 팔을 꽉 붙잡음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이 경거망동하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해 막았다.
이렇게 면전에 대고 쌍욕을 했으니, 그녀도 당연히 분노했다. 하지만 홍랑은 처음부터 자신의 명성이 그리 깨끗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제경 홍랑의 평판을 가진 자신이 결백을 말하는 것이 우습게 들린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 길은 자신이 걸어온 길이고, 모두가 알고 있는 길이다. 가리고 싶어도 가릴 수 없는 길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분노한다 한들 더는 문제를 키울 수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수습하기 매우 어려워질 것이 분명했다.
이때, 단호가 갑자기 나타나 문지기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냐?”
그는 관청애가 그전에 아우성치는 소리를 듣고 나와본 것이다.
“저 사람이 홍랑의 따귀를….”
문지기는 자신이 본 것을 그에게 설명해 주었다. 단호는 그 즉시 별원 심처로 뛰어갔다. 그곳은 원강이 거주하는 거처였다.
원강은 웃통을 벗은 채, 다소 간격이 넓은 두 개의 철봉을 양팔로 붙잡은 채, 그 중간에 몸을 띄우고 있었다. 덕분에 원강은 마치 십(十)자 모양으로 허공에 뜬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원강은 철봉을 붙잡은 채로 공중에 몸을 띄운 채, 두 눈을 감고는 호흡하고 있었다.
다만 독특한 것은, 원강의 호흡 소리가 마치 은은한 우레가 치는 것처럼 매우 우렁차다는 점이었다. 동시에 원강의 입에서 붉은 기운이 나와 코로 들어가며 계속 붉은 기운이 원강의 몸을 순환하고 있었다.
원강의 몸은 정말로 단단해 보였다. 마치 돌을 깎아 만든 것 같은 근육이 상반신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남다른 아름다움을 보이고 있었다.
“원야, 홍랑이 자금동의 사람에게 맞았습니다….”
이때, 단호가 급히 다가와 자신이 들은 상황을 빠르게 알려 주었다.
원강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순간 눈이 번쩍 띄었고, 그 두 눈에 싸늘함이 차올랐다. 입과 코를 오가던 붉은 안개 같은 기운이 코를 향해 빨려 들어갔고, 호흡을 통해 볼록해졌다가 줄어들던 복부가 금세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공중에 매달려 있던 원강이 두 손을 살짝 튕겼다. 그러자 원강의 몸이 하늘로 퉁겨져 날아올랐다. 허공에서 한 바퀴 빙그르르 돈 원강은 곁에 있던 나무 근처에 착지하며 나뭇가지 위에 걸쳐 놓은 외투를 낚아챘다. 안정적으로 바닥에 내려선 후, 곧 상반신에 외투를 걸쳤다.
허리띠를 졸라매 외투를 맞게 입은 원강은 성큼성큼 걸어 삼후도 쪽으로 다가갔다. 땅에 꽂혀 있는 삼후도를 뽑아 든 원강은 빠르게 밖으로 달려가며 단호에게 한마디 했다.
“누군가 쳐들어왔다. 종을 울려 사람을 모아라!”
“알겠습니다!”
단호가 대답하고는 그 즉시 몸을 날렸다. 곧 초려별원 내부에서 남산사의 중들이 걸어 놓은 대종이 ‘댕댕댕’하며 긴 울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경종이 길게 울렸다. 밖에서 다투던 사람들과 관방의 일행이 돌연 뒤돌아보았다. 그곳에는 한 남자가 정문이 아니라, 담을 뛰어넘어 손에 칼을 들고 마치 표범처럼 쏘아져 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또 그 뒤를 뇌종강 등의 일행이 뒤따르고 있었다.
곧, 무조행과 운희 등 일행이 몸을 드러냈다. 혜청평조차도 큰 소란에 누각 위에 모습을 드러내고 이를 관망할 정도였다.
관방의는 내심 실수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가장 건드리고 싶지 않은 사람이 움직였다. 원강은 그녀가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큰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