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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188화 (286/1,000)

1188화. 분풀이

궁임책이 깊은숨을 들이쉬고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결국은 뒷짐을 진 채, 뒤돌아서서 천천히 난간이 있는 곳에 갔다. 그는 화원의 활짝 핀 꽃들을 바라보며 양쪽 모두 진정하기를 기다린 후에 다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 일에 대해서 나도 유심히 고민해 보았다. 확실히 네게는 섭섭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아비도 남자이니, 너보다 남자를 더 잘 이해하고 있다. 네가 거안에게 시집가는 것은 정말로 나쁜 일이 아니다.”

“네가 만약 큰 권세를 가지고 싶다면, 거안은 거기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만약 믿을 만한 사람을 찾는 것이라면 거안은 절대 너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수시로 너를 찾아와 너를 유혹하는 기생오라비 같은 놈들이나, 달콤한 말을 하는 놈들보다 백배는 낫다.

네가 만약 정말로 권세를 앙모하는 여자였다면, 아마 지금까지 시집가지 않고 버티고 있지도 않았겠지. 묵아야, 걱정하지 말아라. 너를 대신해 결정을 내렸으니, 당연히 네게 책임을 다할 것이다. 이 아비가 살아 있는 한, 너는 자금동에서 평온한 나날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너희 부부를 곤란하게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부부? 문묵아의 두 눈에 눈물이 어른거렸다.

“혼인하지 않을 방법은 없습니까?”

“인륜지대사다. 부모의 명에 따르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 그런 방법은 없다! 이 일은 그렇게 처리하도록 하자. 다른 장문인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너는 이만 돌아가 보도록 해라.”

궁임책은 문묵아를 등지고 최후의 결정을 내렸다. 그의 말투에는 어떠한 여지도 남기지 않았다. 그런데도 뒤돌아 울고 있는 문묵아의 얼굴을 차마 직시하지 못했다.

이건 그가 우유도와 손뼉을 마주치며 맹세한 혼사였다.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닌 이상, 자금동 장문인의 신분으로 약속을 어찌 번복하겠는가.

문묵아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지금 그녀의 심정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문묵아는 눈물을 흘리며 몸을 돌리고 천천히 그곳을 벗어났다.

하지만 아직 누각을 다 빠져나가기도 전에 한 자금동의 제자가 빠르게 뛰쳐 들어왔다. 문묵아가 우는 것을 보고 잠시 멈칫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그 제자가 궁임책에게 다급하게 보고했다.

“장문인, 초려별원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초려별원의 사람들과 본문의 제자들 간에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신속하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그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던 문묵아도 참지 못하고 눈물을 닦아 내고는 놀란 얼굴로 뒤돌아보았다.

궁임책도 다소 의외였다. 우유도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어찌 이런 일이 생긴단 말인가. 그가 굳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상황을 진정시켰느냐?”

“막 장로님이 이미 사람들을 데리고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지금 양측이 서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막 장로님께서 장문인께 어찌해야 할지 여쭈라 하셨습니다.”

궁임책이 한 걸음을 내디디었다. 직접 가서 어찌 된 상황인지 확인하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곧 다시 발걸음을 멈추고 명령을 내렸다.

“너는 다시 가서 구체적으로 어찌 된 상황인지 확인하고 다시 와서 보고하거라!”

“알겠습니다!”

그 제자가 다시 빠르게 뛰어나갔다. 다시 눈물을 닦아 낸 문묵아도 빠르게 그곳을 벗어났다.

궁임책은 누각 내부에서 잠깐 배회하더니 근처에 있는 제자 한 명을 불러 말했다.

“너는 가서 옥창과 다른 장문인들에게 오늘 내가 처리할 일이 있으니, 나머지는 내일 이야기하자고 전해라.”

* * *

종문 내부에서 초려별원의 사람들이 함부로 손을 썼다! 이 소문은 작지 않은 소동을 일으켰다. 수많은 사람이 움직였고, 자신의 제자가 얽혀있다는 소식을 들은 엄입도 빠르게 달려왔다.

그가 도착했을 때, 소란을 일으킨 양측은 이미 서로 분리되어 있었다. 초려별원의 사람들은 후퇴해서 별원의 입구를 지키며 호시탐탐 자신들의 별원 쪽을 방비하고 있었다. 자금동 쪽도 이미 대량의 제자들이 모여들어 초려별원을 그야말로 포위하고 있었다.

장로 막영설이 직접 제자들을 데리고 도착해서 상황을 통제하고 있었다. 싸우든 죽이든, 일단은 종문의 결정이 있어야 했다.

초려별원 쪽에 있는 원강은 이미 상반신의 옷이 다 찢어진 상태였고, 온몸에 피를 흘리고 있어 유독 눈에 띄었다.

엄입은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원강과 우유도의 관계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일단 한 제자를 잡아 양측에 사상자는 없는지 물었다.

죽은 사람 없이 부상자만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엄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사람을 시켜 전방에 상대방과 대치하고 있는 관청애를 불러 상황을 물었다.

엄입에게 불려온 관청애는 당연히 자신의 논리를 펼쳤다. 그는 여전히 관방의를 비방했고, 그의 곁에 있는 두 제자도 옆에서 증인으로 나서며 거들었다.

엄입은 차가운 눈으로 그런 관청애를 바라보았다. 그 전에 엄입이 우유도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을 때, 엄입은 수시로 초려별원에 드나들었다. 당연히 초려별원의 사람들에 대해서 자금동에서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또 관방의와 적지 않은 대화를 나눴으니, 관방의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관방의는 사교성이 매우 좋아 보이는 여자로, 상황을 원만하게 만드는 좋은 말들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니 지금 우유도가 없는 상황에서 관방의가 그처럼 무도한 말을 했을 리 없었다. 엄입은 믿지 않았다.

또 자신의 제자가 가진 천성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관청애는 사부의 싸늘한 시선에 내심 제 발 저린 듯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본 엄입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따라오너라.”

엄입은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단독으로 대화를 나눠보고자 했다.

“알겠습니다!”

관청애는 고분고분 그를 따라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주변에 다른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엄입이 뒤돌아 관청애를 노려보며 말했다.

“내 앞에서 어수룩한 척하지 말아라. 도대체 어찌 된 일인지 사실대로 말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엄중하게 경고했다.

“거짓을 그 입에 담지 말아야 할 것이야!”

관청애는 다소 민망해하며, 고의로 서러워 보이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사부님, 그 초려별원이 참으로 오만하지 않습니까. 그 우유도가 뭐 하는 녀석이길래, 감히 사부님과 대적한단 말입니까. 연달아 두 번 북주에 있는 사부님의 사람을 죽이다니, 제자는 그 분함을 그냥 넘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저들에게 훈계하고자….”

관청애는 천천히 진실을 그에게 토로했다. 엄입의 얼굴이 흉악해졌다.

“그러니까 네 말은 나를 위해 분풀이를 한 것이렷다? 이런 문제를, 네놈 따위가 나서서 분풀이할 계제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내가 보니 지금 네놈은 문묵아를 잊지 못해 고의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관청애가 비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해이십니다. 맞습니다. 문묵아를 잊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제자가 저들 초려별원을 훈계한 것과는 무관합니다. 사부님께서 치욕을 받으셨으니, 제자 된 도리로 같은 치욕을 느꼈습니다. 제자는 정말 이 분함을 참을 수 없어, 사부님을 위해 분풀이를 한 것입니다. 설사 제자를 죽이신다 한들, 제자는 기꺼이 감수하겠습니다.”

“그러냐? 우유도가 있을 때 네놈이 손을 쓰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우유도가 없으니, 아주 좋아 날뛰는구나!”

관청애가 서럽다는 듯이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는 종문의 장로이지 않습니까. 제가 아무리 분을 풀고 싶다고 한들, 문규를 무시하고 장로에게 함부로 대하지는 못합니다.”

“무서워할 줄도 알았더냐? 아주 간덩이가 부었구나. 관방의의 따귀를 때리다니! 관방의와 우유도가 어떤 관계인지 들어본 적이 없느냐? 사람을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사람들 앞에서 따귀를 때려? 그리고, 저기 온몸에 피칠갑을 한 원강을 보아라. 저자는 우유도와 보통 사이가 아니다. 네놈들이 저자를 저렇게 만들었으니, 만약 이 일을 우유도가 알게 된다면 네놈의 껍질을 벗겨버릴 것이다!”

관청애가 중얼거렸다.

“성경에서 가서 살아 돌아올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설사 살아 돌아온다 해도 문규가 있는데, 감히 어찌 함부로 날뛰겠습니까!”

엄입이 하하 웃었다.

“문규? 네가 뭘 아느냐?! 문규로 그놈을 제약할 수 있었다면, 네놈이 손 쓸 것을 기다릴 것도 없이, 종문은 진작에 그놈 손에 있는 세력을 다 빼앗아 왔을 것이다. 네놈은 정말 그놈이 성경에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하느냐? 우유도가 천도비경에서 하는 짓을 내가 직접 보았다.

밖에 떠도는 소문은 하나도 정확한 것이 없다. 그놈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두려운 사람이다. 성경도 그놈의 목숨을 빼앗아 가지 못할 수도 있단 말이다. 나중에 정말 돌아온다면, 그놈은 분명 네놈을 찾아 대가를 받아낼 것이다!”

“평소에 참으로 영리하더니, 오늘은 어쩌다가 이렇게 멍청해졌단 말이냐. 설사, 분풀이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우유도가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 해야 하지 않겠느냐? 우유도는 자신이 떠나기 전에 이미 뒷일을 어느 정도 안배해 놓았다. 그의 사람을 쉽게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없단 말이다. 네놈은 그렇게 변명거리를 만들어 놓으면 네놈 하고 싶은 대로 다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냐? 천진난만하구나!”

“종문은 겨우 이 정도 일 때문에 우유도 손에 있는 저 거대한 이익을 넘겨받는 데 악영향을 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성경 단련이 어떤 상황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이런 일을 일으켜? 이 머저리 같은 놈!”

사부님의 말을 들은 관청애는 마음속에 내심 두려움이 생겨났다.

확실히 그가 알지 못하는 일들이 있었다. 그건 사부님과 종문이 아래 제자들에게 솔직하게 모든 것을 터놓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일부 일들은 종문의 고위층만이 알고 있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천도비경 내부에 있었던 일을 되돌아본 후, 사람들은 다들 우유도와 자금동이 손을 잡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우유도가 어떤 음흉한 짓을 했는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알게 할 리 없었다.

또 우유도가 떠나기 전에 어떤 준비를 했는지, 자금동과 어떤 이익 교환을 했는지, 자금동의 고위층들이 어떤 타협을 했는지, 이런 사항들은 아래 제자들에게 알려줄 리 만무했다.

하지만 이미 문제가 생겼다. 이제 와 관청애가 잘못을 인정할 리 없었다. 오히려 고집을 피우며 말했다.

“제자가 무지몽매했습니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습니다. 사부님을 위해 분풀이를 할 수 있다면, 죽음도 두렵지 않습니다.”

“어리석기는!”

엄입이 그 즉시 호통쳤다. 다만 제자의 그 한마디에 내심 뿌듯해졌다. 곧 좌우를 살핀 그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문제가 생겼으니, 너는 증인 두 명의 입을 잘 지키게 해라. 혹시라도 입을 잘못 놀리면 이 사부도 너를 지키기 어려울 것이다. 알겠느냐?”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데, 관청애가 무슨 의미인지 모를 리가 있겠는가. 이건 끝까지 관방의가 먼저 잘못했다고 잡아떼고, 두 증인이 입장을 바꾸지 않도록 잘 관리하라는 것이다.

사부님의 태도를 보고, 그는 크게 기뻤지만, 겉으로는 정색하며 말했다.

“잘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자가 잘 당부할 것이니, 그들은 입을 함부로 놀리지 못할 것입니다.”

엄입이 다시 당부하며 말했다.

“이번 일에 너는 더 이상 나서지 말아라. 나머지 일은 종문에서 처리할 것이다.”

관청애가 공손하게 포권하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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