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4화. 장문인, 제 검이 어디 있습니까?
사람들은 우유도의 말을 듣고 다들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다들 이야기를 듣고 나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런 것도 알려져서 좋을 게 없는 내용이긴 했지만, 그래도 치명적인 내용은 아니었다. 표묘각과 성경의 역린만 건드리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부군량이 말했다.
“우 사제, 하지만 정위가 그리 만만한 인물은 아니네. 당연히 자네가 적은 내용을 본 이후, 자네에게 불만을 표시했을 가능성이 높아. 그런 빈약한 내용을 원한 게 아니었을 테니 말이야. 그런데 대체 어떻게 무사할 수 있었는가?”
우유도가 유쾌하게 웃었다.
“누가 아니랍니까. 정위는 제가 적은 것을 보더니 그 자리에서 저를 지목해, 제가 적어낸 그런 사소한 일에는 관심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논리적으로는 제가 앞섰습니다. 저는 자금동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자금동의 망할 장로 놈들이 의사결정에서도 저를 배제했다고 불평했습니다. 그러니 제가 자금동의 상황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정위는 딱히 뭐라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무사할 수 있었지요.”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우유도가 은근슬쩍 그들을 ‘망할 장로놈’이라고 욕했지만, 다들 그냥 못 들은 척했다.
다만 부군량은 참지 못하고 궁임책과 엄입을 힐끗 바라보았다. 내심 아주 우스웠다. 우유도는 성경에서 목숨을 걸고 자금동의 이익을 지켜냈다. 그런데 여기서는 우유도가 없는 틈을 타서 초려별원의 사람을 건들다니, 참으로 의리 없는 행동이었다. 이제 상황이 아주 볼만해질 것 같았다.
궁임책이 다시 물었다.
“단련이 그렇게 끝났는가?”
“당연히 아니지요. 이건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이틀 전, 그러니까 장문인이 성도를 떠난 지 두 번째 날, 새로운 단련 목표가 하달되었습니다. 우리보고 가서 요호를 사냥하라고 했지요. 성경에 있는 요호에 대해서 아마 다들 들어보셨겠지요?”
다들 들어보았다고 끄덕였다. 우유도가 이어 말했다.
“단련에 참여한 사람들을 여러 조로 만들어, 요호를 사냥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표묘각에서 같은 수의 사람을 선별해 역시 여러 조로 만들어, 시합을 시킨다고 했습니다.”
“표묘각의 사람과, 각 문파의 사람들을 경쟁시킨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마치 성경에서 표묘각을 목표로 삼은 것 같았습니다. 표묘각의 사람들은 요호를 사냥하는 것에 대해서 아주 익숙할 것입니다. 그러니 이기면 당연한 것이고 이득이 없지요. 하지만 만약 지게 된다면, 표묘각의 무능을 증명하게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책임을 지고 표묘각에서 쫓겨나겠지요. 이건 제 추측이지만, 아마 표묘각에서 사람들이 쫓겨나게 된다면 이후, 그 빈자리에 성경 단련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둔 문파의 사람들이 대신 들어갈 것 같았습니다.”
“성경에서 표묘각의 사람들을 교체한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원안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보니 이번 성경 단련의 목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은 것 같군.”
우유도가 의미심장하게 한마디 했다.
“우선 각 문파에 적어내라고 한 두루마리에, 다들 각 문파의 핵심적인 약점이나 문제점들을 어느 정도 적었을 겁니다. 아마 모든 사람이 저처럼 좋은 변명거리가 있어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 테니까요. 어쩌면 돌아가서 보고하기 어려운 것을 적어 낸 사람도 있겠지요.”
“아무튼, 이제 요호를 사냥하는 데 성공하고, 높은 성적을 거두게 되면, 표묘각에 들어갈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제 각 문파의 사람들은 더 이상 적어낸 것에 큰 신경을 쓰지 않겠지요. 표묘각에 들어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생긴 것이니 말입니다. 일단은 요호 사냥에 최선을 다하려 할 것입니다.”
“어쨌든 성경에서는 여러 가지 것을 준비한 것 같습니다. 먼저 자신들의 손에 문파의 약점을 쥐고, 좀 더 문파들이 반항하지 못하도록, 이번 기회에 더 철저히 문파를 붙잡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이번 기회를 통해 표묘각을 어느 정도 물갈이함으로써, 새롭게 기강을 잡을 수도 있습니다. 이번 단련은 아마 일찍부터 철저히 계획된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은 다들 깊은 생각에 잠겼다. 우유도의 말에 따르면, 어떠한 상황인지 그나마 밝혀진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성경 단련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도 추측하기 어렵지 않았다.
궁임책이 계속 물었다.
“그다음은?”
우유도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다음은 없습니다. 우리가 요호 사냥을 통보받았을 때, 나방비가 저를 찾아와 성경 밖으로 내보내 주었습니다. 그러니 나중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사람들이 서로서로 바라보았다. 확실히 공교로운 일이었다. 다들 이 일이 각 문파에게 좋은 일인지, 아니면 안 좋은 일인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아무튼 상황은 이렇습니다. 자, 할 말 다 했습니다. 숨기는 것 없이 모두 보고했습니다. 결정에 참여할 권한이 없으니, 나중 일은 여러분이 어떻게 할지 천천히 의논하십시오. 그럼 전 이만 먼저 돌아가 보겠습니다.”
우유도가 그 말을 하고 그대로 그곳을 떠나려 했다. 다만 이때, 궁임책은 마치 꿈에서 막 깨어난 듯 다급히 우유도를 불렀다.
“사제, 잠시만 기다리게.”
우유도가 다시 뒤돌아 말했다.
“무슨 분부가 있으십니까?”
“이번에 성경에 가서 참으로 잘해주었네.”
궁임책은 우유도에게 다가가며, 자리를 바꾸는 참에 그의 시선을 가리고 엄입에게 빠르게 눈짓했다.
엄입은 처음에 저게 무슨 의미인지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궁임책이 다시 한번 눈짓을 보내자, 궁임책이 뒷산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입은 그제야 궁임책이 무슨 의도로 저러는지 깨닫고는 조용히 대전을 나서 뒷산을 향해 움직였다.
원안, 부군량, 윤이덕, 막영설 네 사람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다들 다 알고 있다는 모습이었다.
자금동에서 원안과 부군량은 한통속이고, 윤이덕과 막영설이 비교적 가까운 사이였다. 윤이덕과 막영설은 그나마 중립에 가까웠고, 네 사람은 나름 서로를 지지하는 사이였다.
장로들은 가끔씩, 서로 뭉쳐서 온기를 나눌 수밖에 없는 때가 있었다. 이는 온 자금동에서 중요한 권한이 있는 자리를 거의 다 궁임책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연국 황궁에 있는 신보춘, 궁주에 있는 악연, 발주에 있는 교천광, 그들 모두 궁임책의 사람이었다.
자금동 내부에는 궁임책이 자리하고 있었고, 속세의 대권 또한 궁임책의 사람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이 유일하게 힘을 차지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하면, 그건 바로 종문 내부에서 정책을 결정할 때, 궁임책 쪽 사람이 부족한 때가 유일했다.
한편, 지금 궁임책은 그야말로 우유도를 붙들고 이런저런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고 있었다.
우유도가 어디 만만한 사람이던가. 원래부터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고, 그 즉시 이상함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인내심을 가지고 어느 정도 상대방에게 잠시 맞춰준 후에 물었다.
“장문인,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겁니까? 할 말이 있으면 단도직입적으로 하십시오. 이렇듯 제게 관심을 쏟으니 아주 비정상적으로 느껴지는군요.”
우유도는 조금도 돌려 말하지 않았다. 덕분에 원안과 부군량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내심 궁임책의 행태가 아주 우스웠다. 종문의 대권을 손에 쥐고, 종문의 일을 늘 아주 솜씨 좋게 처리하던 궁임책이 이처럼 난처한 상황에 처할 날이 오다니.
궁임책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자네 또한 자금동의 장로라는 것이네. 때로는 반드시 종문의 입장에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지.”
“다 알아들었습니다. 장문인, 성경에서 정위가 우리에게 종문의 치부를 적어내라고 했을 때, 만약 제가 종문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았다면, 목숨을 걸고 그런 사소한 것을 적어 낼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정말로 제가 자금동의 잘못을 못 찾아낸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그런 마음이면 충분하네. 어떤 일들은 사실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 마음을 넓게 가지면 정말로 별일 아닌 것이야. 그러니 자네도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게.”
우유도가 눈살을 찌푸리고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장문인, 제가 떠난 지 이제 며칠입니다. 그 짧은 사이에 초려별원에 문제가 생겼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시지요?”
우유도가 정확히 핵심을 찔러 들어왔다. 다만, 이제 와 숨길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궁임책은 진실을 토로했다.
“확실히 문제가 좀 있었네. 하지만 별로 큰일도 아니었지. 초려별원과 문중의 제자 간에 충돌이 있었네, 다만 이미 아무 일 없이 해결되었네.”
“충돌?”
우유도의 말투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초려별원의 사람이 죽었습니까?”
궁임책이 정색하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작은 충돌일 뿐이네, 사람이 죽을 정도는 아니지.”
죽지 않았다…. 우유도는 긴장된 마음을 다소 내려놓고 말했다.
“장문인,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단 말입니까. 확실히 말해 주시지요.”
“정말로 별일 아니네, 그저 한 제자와 홍랑 사이에 말싸움이 벌어졌고, 결국 충돌이…….”
궁임책은 사건을 대략 알려주었다. 물론, 갈등의 성질은 최대한 담담하게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혹시라도 듣는 사람이 화가 날까 봐 저어했기 때문이었다.
궁임책의 말을 모두 들은 우유도가 ‘하하’ 웃었다. 다만 그 두 눈은 조금도 웃지 않았다.
“참으로 재밌는 일이군요. 홍랑이 어떤 사람인지 제가 잘 압니다. 이 몸이 자금동에 있을 때조차 그런 오만방자한 말을 하지 않던 사람입니다. 이 몸이 떠났으니 더욱더 꼬리를 말고 있어야 마땅하지요. 그런데 그녀가 그런 말을 했다니, 어째 제가 알던 홍랑과 다른 사람 같습니다. 사람이 죽지 않았다니, 별일 아니군요.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맞다. 장문인, 제 검은 어디 있습니까?”
궁임책이 깜짝 놀라 물었다.
“무슨 검 말인가?”
우유도가 다소 험악한 얼굴로 말했다.
“성도에서 물건을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자, 제가 사람 죽일 때 쓰는 패검(佩劍)을 장문인께 맡겼지 않습니까! 제가 돌아왔으니, 제 물건은 돌려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고고한 장문인께서 제 물건을 탐내시지는 않으시겠지요?”
궁임책은 당연히 우유도의 물건을 탐내지 않았다. 다만 우유도의 말투가 뭔가 이상했다. 그냥 검을 돌려달라고 말하지 않고, ‘사람 죽일 때 쓰는 패검’을 돌려달라고 했다. 왜 하필 그렇게 말했을까?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궁임책이 경고했다.
“사제, 내가 말하지 않았는가. 다 지나간 일이네, 그러니 함부로 나설 생각하지 말게. 만약 문제가 심각해지면, 문규가 장식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야!”
“아니 장문인, 어찌 말을 그리 심각하게 하십니까? 설마 그 문규라는 것이 빌어먹게도 저를 상대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까? 저는 제 패검을 돌려달라고 했을 뿐인데, 제가 도대체 종문의 무슨 문규를 범했단 말입니까?”
원안과 부군량이 서로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했다. 저런 식으로 생트집을 잡다니, 확실히 우유도가 돌아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이 맛이었다!
궁임책이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말했다.
“자네 물건은 내게 없네. 돌아오자마자 초려별원에 돌려주었네.”
“그렇군요. 그럼 이만!”
우유도가 사람들에게 포권을 하고는 두말하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나버렸다.
궁임책은 돌아가는 우유도를 싸늘한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갑자기 굳은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사람을 모아 초려별원을 경계하라! 또 우 장로가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지켜보라고 일러라!”
말을 마친 궁임책은 즉시 밖으로 나갔고, 나머지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그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