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2화. 시비지간(是非之間)
다시 만난 세 사람과 우유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관청애의 두 눈에 원망에 찬 독기가 스쳐 지나갔지만, 신경도 쓰지 않았다.
물론, 지금 사죄하고 있는 이 장면은 자금동의 다른 제자들에게 너무 많이 보여주지는 않았다. 별로 좋은 광경도 아니기도 했다. 궁임책은 사전에 주위에 있는 수많은 제자를 우선 해산시켰다.
이렇게 지나갔다.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본 거안이 조용히 떠나갔다. 우유도는 그 모습을 보고 장로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가더니 말했다.
“쇠뿔도 단김에 뺀다고 거안과 문묵아의 혼사를 그냥 오늘 해치워 버리지요!”
궁임책이 대답했다.
“너무 대충대충 처리하는 것이 아닌가?”
“문묵아를 따라다니는 추종자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관청애 같은 자가 나타나 문제를 일으킨 것으로 부족한 것입니까? 전 더는 문제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 빨리 결정을 내려 주시지요!”
“너무 급하네. 아무리 그래도 거안은 종 태상 장로 곁에 있는 사람이 아닌가. 최소한 그분의 허락을 받아야 할 것이 아닌가.”
“사부님은 제가 설득하겠습니다.”
궁임책은 손을 꼽아보더니 말했다.
“사흘 후는 어떤가? 사흘 후가 길일이군. 종 태상 장로께서 허락하시면 사흘 후에 거행하도록 하지. 그렇다고 여자를 너무 섭섭하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느 정도 준비를 해야지.”
“좋습니다. 장문인의 말에 따르겠습니다!”
옆에서 이를 듣고 있던 관청애의 가슴이 처량해졌다. 지금 같은 처지에 처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오히려 자신의 행위 때문에 문묵아의 혼인이 빨라졌다. 오랜 기간 쫓아다니던 여자가 이제 조금 후면 다른 남자의 여자가 된다는 이야기를 듣자, 관청애는 속이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또 뭘 어쩐단 말인가? 그는 자신의 신분이 너무 낮아 아직 충분한 권력이 없음을 한탄했다. 그저 내심 앞으로 분발하여, 나중에 기회가 왔을 때 우유도에게 이 큰 치욕을 복수하고자 다짐할 뿐이었다.
다른 장로들은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그들에게 문묵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들이 그녀를 취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한차례 소나기가 지나갔다. 많은 일을 처리한 궁임책 일행이 떠나갔다.
석양이 천천히 사라졌다. 새들은 숲으로 돌아갔고, 우유도는 검을 짚고 별원 밖에 서 있었다.
관방의가 직접 비어 있는 세 개의 단지를 조사해 보았다. 내벽에 발라놓은 약들이 부서져 술 속에 녹아들었음을 확인했다. 저들 세 사람 뱃속에 들어간 것이 확실했다. 관방의가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궁임책이 확실히 손을 쓴 것 같아.”
약은 이쪽에서 준비했다. 하지만 술 단지를 건넨 후, 이쪽은 술 단지 내벽에 있는 물건을 건들 기회가 없었다. 오히려 궁임책 쪽 사람들의 손을 거쳐 갔을 뿐이다.
“결국은 거대한 이익이 걸려 있기 때문이지. 아마 그런 결정을 내리는 것이 어렵지 않았을 거야.”
“뱃속에 술이 가득 차 있으니, 당분간은 소화하기 어렵겠지. 세 사람이 나중에 토해내지 않을까?”
“궁임책이 손을 썼어. 저들이 그 안에 든 걸 토해낼 기회가 있을 것 같아?”
관방의가 남몰래 탄식했다. 세 개의 술 단지는 사전에 준비된 것이었다. 그걸 보면 우유도는 처음부터 궁임책이 타협할 것을 예측하였던 것 같았다.
한쪽에 있는 원강은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는 비록 관청애 세 사람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이런 저급한 방법은 그가 선호하는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그와 풍관아 또한 그 비슷한 수법에 당하지 않았던가. 상조종과 봉약남도 마찬가지였다.
도야는 정사지간에서 속세의 수단을 쓰는 느낌이 강했다. 덕분에 왕왕 별로 좋지 않은 수단을 썼다. 원강이 이에 대해 말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하지만 이와 마찬가지로, 원강의 부러질지언정 굽히지 않는 성격은 우유도가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었다. 우유도가 몸을 돌려 온몸에 붕대를 감은 원강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너를 협공한 사람들은 더는 어쩌지 못하겠어. 얽힌 사람이 너무 많으면 궁임책은 절대 승낙하지 않을 거야. 우리의 실력이 한계가 있다 보니, 머리를 숙일 때는 숙여야겠지. 어쩔 수 없이 여기까지 해야 할 것 같군! 그나마 본보기를 보였으니, 앞으로 자금동의 아랫사람들은 아마 초려별원에 경거망동하지 못할 거야.”
원강이 대답했다.
“그들은 다들 자신의 책임을 다했을 뿐이니, 이 일은 그들과 아무 상관 없어요.”
“너다운 말이군. 어쨌든 넌 일단 돌아가서 치료에 전념하도록 해. 나는 귀면각에 들려야겠군.”
우유도는 당부의 말을 전하고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금 성경에서 돌아왔으니, 도리를 따지면 당연히 귀면각에 가서 종곡자를 만나야 했다.
관방의가 허노육을 불러, 비어 있는 술 단지를 완전히 없애버리라 지시하고는 자신은 우유도를 따라 움직였다.
우유도가 귀면각에 도착하자, 아무 말 하지 않았는데도, 거안이 인사를 올리고 안으로 들어가 기별했다. 잠시 후 밖으로 나온 거안이 우유도를 안으로 들였다.
우유도가 안으로 들어가 맞은편에 무릎을 꿇고 앉았을 때 마치 석상처럼 앉아 있던 종곡자가 먼저 두 눈을 뜨고 물었다.
“충돌이 해결되었느냐?”
과정과 상황은 이미 거안을 통해 들은 바 있었다. 하지만 거안이 본 것은 표면적인 것뿐이었다. 이에 우유도에게 다시 물은 것이다. 사실상 확실히 거안이 본 것은 표면적인 내용일 수밖에 없었다. 그 배후에 어떤 과정과 타협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우유도는 배후에서 오간 더러운 목숨 교환은 언급하지 않고, 가볍게 설명했다.
“아마도 해결된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확실히 저쪽에서 너무 과했습니다. 덕분에 제자도 강경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절대 자금동에 해를 끼치려는 의도는 없었으니, 사부님께서는 제 마음을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종곡자는 그저 물어보았을 뿐, 이번 일에 간섭할 생각이 없었다. 처음부터 신경도 쓰지 않는 태도였다. 그는 자금동의 태상 장로이면서 명목상 우유도의 사부이기도 했다. 그러니 초려별원의 편을 들어도, 자금동의 편을 들어도 좋지 않았다. 종곡자 정도가 되면 공과 사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꼭 편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태도 또한 일종의 태도였으니, 그 누구도 종곡자를 원망할 수 없었다.
종곡자는 문제가 해결되었는지에 대해 관심이 있었을 뿐이다. 이미 다 지나간 일이라고 하니, 더는 할 말이 없었다. 곧 그는 화제를 돌려 물었다.
“성경 내부가 어떤 상황이길래, 며칠 만에 돌아온 것이냐?”
사실 이것이 종곡자가 가장 관심 있어 하는 문제였다. 또한, 그가 먼저 눈을 뜬 원인이기도 했다.
“그건 저도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유도는 숨기는 것 없이, 모든 일을 그에게 설명해 주었다.
종곡자는 두 눈을 번득이며 한참을 깊은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은 두 눈을 감으며 말했다.
“조심하거라.”
“알겠습니다!”
곧 또다시 한 가지 일을 보고했다.
“사부님의 동의가 필요한 일이 있습니다. 장문인과 의논한 일입니다. 거안과 문묵아의 혼사를 그냥 빨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사흘 후에 그들의 혼사를 치를 예정인데 사부님은 어찌 생각하십니까?”
종곡자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는 거안의 사숙이다. 이 일은 내게 물을 것 없이, 네가 알아서 하여라.”
“알겠습니다. 그럼 사부님의 청정을 방해하지 않고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우유도가 허리를 숙이고 몸을 일으켜 물러갔다.
우유도 또한 늙은이의 청정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쓸데없이 말을 늘어놓을 필요 없었다. 늙은이는 한마디 말을 금처럼 여기니, 말을 많이 하지도 않았다. 그처럼 융통성 없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별로 재미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저 예를 다하면 충분했다.
* * *
옥창이 우유도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송국 삼대 문파의 장문인은 옥창을 찾아가 어찌 된 일인지 물었다. 다만 옥창은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밝히려고 하지 않고, 별일 없었다고만 했다.
우유도가 돌아온 후, 옥창은 자금동과 협상하던 일을 더는 이어나갈 필요가 없어지고 말았다. 거기에 자금동과 무슨 일이 생긴 건지, 하필 자신에게 고신단을 받아갔다. 이게 문제를 일으킬지도 몰랐으니, 옥창은 의심을 피하고자 급히 작별하고 자금동을 떠나갔다.
송국 삼대 문파의 장문인들이 우유도를 만나고자 했지만, 궁임책이 대신해서 거절했다. 거의 막아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옥창뿐만이 아니라 궁임책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성경의 일이 너무 소문나기를 원하지 않았다. 모든 화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듯이, 혹시 문제가 생길까 저어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었다. 우유도가 돌아왔다. 그들도 옥창과 마찬가지로 자금동과 협상을 이어나갈 필요가 없었다. 그들 셋도 곧 작별을 고하고 자금동을 떠나갔다.
초려별원 내부에 잔칫상이 차려졌다. 도야가 돌아온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다들 크게 기뻐하고 있었다.
원방이 웃는 얼굴로 우유도 뒤에 서서 술 단지를 껴안고 부지런히 우유도의 잔에 술을 채워주었다.
그 옆에 앉아 있는 관방의는 활짝 핀 꽃처럼 웃고 있었다. 따귀를 맞은 일은 그녀의 찬란한 미소에 녹아 사라진 듯했다. 정말로 그 일을 마음에 두지 않는지는 몰랐다. 다만 습관이 된 것 같았다.
원강은 나타나지 않고, 혼자 방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는 붕대를 모두 풀어 버리고, 거의 발가벗은 몸으로 마보를 한 채, 두 손은 주먹을 그러쥐고 허리춤에 딱 붙여 놓았다. 복부는 반구형으로 튀어나와 위아래로 꿈틀거리고 있었고, 입과 코에서는 붉은 연기를 뱉어내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원강의 몸에 나 있는 상처들이 눈에 보일 정도의 속도로 서서히 치유되고 있었다.
한차례 당부를 마친 관청애 등 삼 인은 종문의 새로운 명령서를 들고 떠나갔다. 엄입이 그들을 직접 배웅했다. 그는 자신의 권한을 사용해 세 마리 날짐승을 동원했다.
엄입은 세 사람이 종문을 떠난 후, 우유도의 독수에 당할 것을 우려했다. 우유도의 세력이 방대했고, 어떤 살수조직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사해의 요마귀괴와 형, 동생 하는 사이가 아니던가. 동시에 또 거대한 이익을 틀어쥐고 있으니, 살수를 동원해 이들 세 사람을 죽이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과거, 우유도가 천도비경에 있을 때도 자객을 보내 소요궁에서 상조종과 연락을 담당하던 장로 곽청공을 죽일 수 있었다. 그것도 공중에서 처리한 것이었다.
그 일은 우유도가 한 일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있었다. 소요궁이 지금까지 증거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고, 또 우유도를 어찌할 기회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반면교사가 있으니, 엄입은 세 사람에게 우유도는 겉으로도 뻔뻔하고, 암중으로도 뻔뻔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하며, 과정보다는 결과를 신경 쓰고, 원하는 결과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우유도는 이런 일을 할 수도, 그럴 능력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 때문에 엄입은 우유도가 끼어드는 것을 경계하며, 괜히 우유도에게 발견되기 전에 직접 그들 세 사람을 비밀리에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세 사람에게 반복해서 무변각에 도착하면 그곳을 떠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렇지 않으면 우유도가 보낸 자객에게 기회를 줄 수도 있었다. 밖에서 혹시라도 무슨 문제가 생기면, 우유도에게 이 책임을 묻기가 극히 어려웠다. 증인도 없을 테고, 모든 것이 은밀히 처리될 것이니, 이들은 그저 개죽음을 당하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니 반드시 조심해야 했다.
이들 세 명은 엄 장로의 말을 듣고 나서야, 우유도가 자신들을 쉽게 놓아주지 않을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 말을 들은 그들 세 사람은 그야말로 오금이 저렸다.
곽묘승과 안태화는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그들은 애초에 관청애를 위해 위증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다만 그들은 자신들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었음을 알고 있었다. 만약 다시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다 해도,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관청애를 돕지 않으면, 그들은 마찬가지로 아주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관청애 일파의 사람들이 그들을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 사람이 비밀리에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주연을 끝낸 우유도가 초려별원을 떠나 다시 궁임책을 찾아갔다. 그리고 종곡자의 태도를 전달해, 궁임책이 빠르게 혼사를 추진하게 했다.
그렇게 우유도가 궁임책과 헤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공중에 몇 마리 날짐승이 나타나 곧바로 자금동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