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5화. 요호 소굴 (2)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아무튼, 뒤를 쫓은 지 한참이 지났을 때, 법력이 상당히 많이 소모되었다고 느꼈을 때, 갑자기 전방에 매우 단단한 것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거대하고 견고한 무엇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 같았고, 상대방이 움직이는 방향도 바뀌었다. 그 앞 지하에 있는 동굴 같은 곳에 기어들어 간 것 같았다.
우유도는 우선 일검을 내질러 보았다. 그리고는 흑호가 들어간 곳을 향해 움직였다. 그곳에 가까이 다가가니 과연 이곳은 석벽 아래 나 있는 동굴이었다.
그 동굴에 들어간 우유도는 다시 흑호의 뒤를 쫓아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진흙의 압력이 갈수록 약해지기 시작했고, 우유도는 갑자기 검을 휘둘러 검기를 쏘아 보내고는 그 위를 따라 진흙에서 뛰쳐나갔다. 그곳은 지하에 있는 공간이었다. 전방에는 마치 동부(洞府)의 대문 같은 것이 있었다.
동부의 대문 위에는 세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그건 우유도가 알 수 없는 글자로, 그 형태가 아주 괴이했다.
동부 위에는 야명주 같은 보석이 달려있어, 동부를 밝히고 있었고, 덕분에 동부는 마치 대낮과 같이 밝았다. 우유도는 흑호가 동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우유도는 처음 동부에 들어왔을 때만 주위를 빠르게 훑어보았을 뿐, 단 한 순간도 움직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그대로 빠르게 흑호를 뒤쫓아 동부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앞에서 달려나가고 있던 흑호가 사람 목소리로 크게 소리 질렀다.
“강적이다. 빨리 노족장께 알려라!”
눈 앞에 펼쳐진 곳은 거대한 지하궁전 같았고, 여기저기 수많은 석굴과 통로가 뚫려 있었다. 족장의 목소리가 석굴을 울리자, 갑자기 주변의 통로에서 수많은 요호들이 뛰쳐나왔다. 하지만 이 요호들은 우유도에게 얻어맞고 나가떨어졌다.
이때, 여섯 마리 각기 다른 털색을 가진 요호가 주변에 있는 통로에서 동시에 뛰쳐나와 여섯 명의 늙은 남녀로 변신했다. 그들은 손에 가지각색의 무기를 들고 있었는데, 민첩하게 우유도를 협공했다.
우유도는 매우 놀랐다. 그 전에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는 세 마리 요호를 보았을 때 이미 크게 놀란 상태였다. 그런데, 지금 여기 또 여섯 마리가 더 있다니.
우유도는 자신이 혹시 잘못해서 혼자서 황택사지 안에 있는 요호 일족의 소굴에 쳐들어온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게다가 자신에게 포위 공격을 하는 이 여섯 요호들의 실력이 만만치 않았다. 다들 각 문파의 뛰어난 제자들과 비교해도 결코 부족하지 않을 실력이었다. 그러니, 결국 우유도는 더는 흑호를 뒤쫓을 수 없었다.
이제 더 이상 흑호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우유도는 다른 결정을 내렸다. 지금 눈앞에서 사람으로 변신한 요호들은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이에 우유도는 일단 눈앞에 있는 요호들을 한두 마리 붙잡기로 했다.
우유도는 마침 새롭게 깨달은 건곤결의 효과가 어떠한지 시험해 보고 싶었다. 조금씩, 여섯 요호를 상대하며 사용해보기 시작했다. 과연, 효과는 정말로 뛰어났다. 여섯에게 포위 공격을 받았지만, 이화접목의 수법을 사용하니, 적들이 감히 우유도에 대항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눈앞에 살아 있는 인질을 붙잡으려는 그 순간, 동혈 안쪽에서 갑자기 청량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물러나라!”
우유도를 협공하던 여섯 사람도 그 목소리를 듣고 다들 빠르게 물러났다. 우유도가 돌연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나는 곳을 보니, 은백색의 털을 가진 요호가 나타나 있었다. 그녀는 은빛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털을 가진 매우 아름다운 은호(銀狐)였다. 다만 그녀의 이마에 상처가 있는 것 같았다.
아직 자세히 살펴보기도 전에 은호가 움직였다. 그 속도, 그 기세가 그야말로 번개와 같았다.
우유도는 대경실색했다. 상대방의 공세는 감히 그전에 사람으로 변한 요호들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황급히 공격에 반응한 우유도는 그대로 검을 휘둘러 검강을 쏘아 보냈다.
쾅! 은호는 앞발을 휘둘러 검강을 가볍게 파훼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우유도 앞에 나타나 또다시 앞발을 휘둘렀다.
우유도는 다급한 가운데 미처 피하지 못하고 검을 가로로 눕히고는 공격을 막았다.
쾅! 검신이 완만하게 구부러지며 우유도의 가슴을 후려쳤다. 우유도가 시전한 건곤결의 술법이 그녀의 강맹하고 신속한 공격을 미처 해소하지 못했다. 우유도의 머릿속에 과거 은아에게 공격받았던 순간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 그와 같은 느낌을 받은 것이다.
쾅!
우유도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대로 날아가 석벽에 강하게 부딪혔고, 견고하고 딱딱한 석벽이 무너질 정도로 강한 충격이었다.
“컥!”
우유도가 피를 토했다.
이건 원영기의 경지와 비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요호가 있다니! 우유도는 내심 대경실색했다. 이들 요호의 소굴에 이처럼 두려운 고수가 숨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물론, 사실 정확히 말하면, 우유도는 확실하게 원영기 고수와 손속을 겨루어 본 적은 없었다. 수행계에 알려진 원영기 고수는 오직 구대지존뿐이었다. 그러니 우유도는 은아를 원영기 고수로 볼 수 있는지 확실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은아의 힘이 무척 강하긴 했지만, 은아는 그 힘을 다루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힘을 제어하지 못하고 폭발시켰으니, 구대지존처럼 그 힘을 자유자재로 통제할 수 있는 자들과, 은아의 힘이 같다고 여길 수는 없었다.
다만 순전히 공격력만으로 보면, 은아의 공격력은 지금까지 우유도가 강호에서 만난 고수들 중에 가장 강했었다.
그리고, 지금 우유도의 눈앞에 있는 은호의 힘은 가히 은아와 비교할 만했다. 결국, 우유도는 눈앞에 있는 은호가 원영기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이 은호가 은아만큼 강하다는 것은 쉬이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우유도는 금단방에서 이 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안보여와 싸워보기까지 하지 않았는가. 안보여의 공격력조차, 지금 이 은호와 비교하면 우스운 수준이었다. 그러니 이 은호가 금단기의 수행자일 리 없었다.
어쨌든 정말로 아무런 기교를 발휘하지 않고, 단순히 정직한 공격만으로 이처럼 사람을 놀라게 했다.
우유도는 건곤결로 대부분의 위력을 해소한 상태였다. 하지만 해소하지 못한 그 여력만으로도 우유도는 중상을 입었다.
상대방의 공격력이 너무 강했고, 공격 속도가 너무 빨랐다. 우유도는 다만 겨우겨우 대응할 뿐이었고, 건곤화력지법으로도 상대방의 공격력을 다 해소하지 못할 정도로 빨랐다.
우유도의 경험에 따르면, 이건 절대로 금단경지의 수행자가 발휘할 수 있는 위력이 아니었다.
만약 우유도가 평범한 금단기 수행자였다면, 지금 눈앞에 있는 은호의 공격력에 조금도 대항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야말로 도마 위의 물고기와 다를 바 없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우유도가 만약 건곤결로 대부분의 위력을 해소하지 못했다면, 처음 한방에 아마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이런 실력은, 원영기 고수를 제외하고,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더욱더 우유도를 놀라게 한 것은 그다음이었다. 이같이 대단한 고수가 자신에게 숨돌릴 시간도 주지 않고, 어찌 된 일인지 물어보지도 않고, 마치 다급히 우유도를 죽이려는 것처럼, 한 방에 검강을 파훼하고, 바로 우유도를 후려쳐 중상을 입혔다. 곧이어 부서진 석벽이 먼지를 일으킨 가운데, 또다시 번개 같이 여우 그림자가 나타났다.
번개같이 쏘아져 온 발톱이 우유도의 심장을 향해 왔다.
입에 피를 머금은 우유도는 무슨 말을 할 시간도 없었다. 상대방을 진정시킬 기회도 주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다급하게 다시 검을 들어 공격을 막아섰다.
이때, 순간적으로 두 가지 방법이 우유도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한 가지 방법은 상대방의 힘을 자기 뒤쪽에 있는 석벽으로 옮겨, 상대방의 공격력을 이용해 이곳 지하궁전을 무너뜨리고 기회를 틈타 이곳에서 도망치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 방법은 강제로 전도건곤지법을 펼쳐 이화접목을 이용해서 상대방의 힘으로 상대방을 공격한 후 다시 도망치는 것이다.
첫 번째 방법은 확실하지 않았다. 상대방의 실력을 보면, 설사 지금, 이 지하궁전이 무너진다 해도 도망칠 수 없을 것 같았다. 설사 지하궁전을 벗어난다 한들, 늪에서는 상대방에게 따라잡혀 죽임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두 번째 방법에 희망을 걸어야 했다. 모험이었다. 이처럼 강한 공격력을 이화접목의 술법으로 얼마나 돌려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또한, 자신이 이 힘을 감당할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우유도 또한 적지 않은 생사의 위기를 겪어온 사람이었다. 늘 칼날 위를 거닐며 목숨을 거는 사람은, 위급상황에서 어느 정도 저항할 수 있는 경험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니 극한 상황에서도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아주 냉철한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그렇게 과감히 결단을 내렸다. 이대로 그냥 앉아서 맞아 죽을 수는 없었다.
입가에 핏물을 흘리던 우유도는 흉악한 얼굴로 가로로 뉘인 검을 두 손으로 강하게 밀어냈다.
은호의 공격력이 그야말로 맹렬했다. 은호가 끌어올린 기세만으로 주위를 가득 채우고 있던 먼지가 물결치는 것처럼 흩어져갔다. 주위를 감싸고 있던 먼지가 사라지자 한 명과 한 마리가 서로 마주하게 되었으며, 상대방의 얼굴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상대방의 얼굴을 확인한 그 아주 짧은 순간, 어쩌면 착각일 수 있지만, 우유도는 상대방의 두 눈에 경악이 스쳐 지나간 것 같다고 느꼈다.
곧이어 일어난 일은 더욱더 의외였다.
팅!
청아한 소리가 울렸다. 검신에서 울리는 소리였다.
은호가 갑자기 휘두르고 있던 발톱을 늦지 않게 거둬들이며 공세를 멈춘 것이다. 날카로운 발톱이 우유도가 들고 있는 검신을 그저 살짝 밀어내더니 그 작은 힘을 빌려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당연히 그건 우유도가 가장 명확하게 느끼고 있었다. 상대방이 공격이 적중하기 전에 공격을 멈췄으며, 살초를 거둬들였다.
그 결과를 앞에 두고, 두 손을 검을 밀고 있던 우유도는 멍해졌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한쪽에 물러나 관전하고 있던 호족의 장로들도 다들 멍해졌다. 아주 의외였다. 노족장의 실력은 분명히 호족의 중지에 침입해 들어온 외적을 한 방에 죽일 수 있어 보였다. 그런데 어째서 갑자기 공격을 거둬들인단 말인가.
땅에 내려선 은호가 꼬리를 흔들며 검을 들고 경계하고 있는 우유도를 빤히 바라보더니, 곧 청아한 여인의 목소리로 물었다.
“너는 누구냐?”
그녀가 처음에 검강을 파훼할 때는 아무 느낌도 없었다. 하지만 두 번째 공격으로 우유도를 공격했을 때, 그녀는 이상을 감지했다. 자신의 공격력이 우유도에게 전부 적중되지 않고, 힘이 다소 흩어짐을 느낀 것이다.
바로 그 순간, 그녀는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과거 그와 비슷한 공법을 쓰는 사람과 손속을 겨룬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처음 겨룰 때부터, 그녀는 우유도의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 곧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먼지가 흩어졌을 때, 우유도가 여전히 버티고 선 채로 자신에게 대항하려는 것을 보았다. 겨우 상대방의 경지로 자신의 일격을 얻어맞고도 버틸 수 있을 리 없었다. 은호는 그 익숙한 느낌이 무엇인지 깨닫고는 즉시 공세를 멈춘 것이다.
우유도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신중하게 대답했다.
“저는 우유도라고 합니다. 이번에 이곳에 온 것은 절대 나쁜 뜻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건 모두 귀 일족의 족장의 오해로, 저는 호족과 친구가 되고 싶었을 뿐입니다.”
“친구?”
은호가 반문했다.
“너는 상찬과 무슨 관계더냐?”
“상찬?”
우유도가 멍해졌다. 또다시 의외인 일이 나타났다. 그때 은호의 몸이 갑자기 휘청이더니, 결국 두 눈을 감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헉!”
주위에 있는 장로들이 경악성을 내뱉으며 분분히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