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9화. 은희(銀姬) (1)
“그렇게 나추의 딸을 바로 건드려서 되겠소? 좀 더 간단하고, 쉬운 상대를 고르는 것이 더 좋지 않겠소? 말했다시피, 나는 그저 당신의 일이 순조로웠으면 좋겠소.”
“어쩔 수 없소! 나는 성경에 아는 사람이 없지 않소. 다른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 않지. 족장도 나방비가 직접 나를 찾아온 것을 알지 않소. 당연히 그녀와 접촉해, 손을 쓰는 것이 좀 더 쉽지 않겠소. 또 한 가지, 아무 사람이나 죽이면 별다른 효과가 없을 것이오. 나방비의 신분이 마침 적당하지. 다른 곤란한 문제를 피하려면 그녀를 죽이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오!”
“…….”
흑의 남자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우유도는 나방비를 무조건 죽이려고 하는 것 같았다. 아무리 봐도 진작부터 나방비를 죽이려고 이미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만약 오늘 그녀에 대해 묻지 않았다면 이런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도 모를 뻔했다.
흑의 남자는 천천히 뒤에 있는 장로들을 바라보았다. 눈빛으로 서로 의견을 나눈 것이다. 우유도는 싸늘한 눈으로 그들을 살피며 기다렸다.
잠시 후, 장로들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흑의 남자가 다시 고개를 돌려 말했다.
“우유도, 만약 가능하다면 나방비를 살려주었으면 좋겠소.”
우유도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족장, 왜 그녀를 죽여야 하는지 이미 내가 확실하게 설명해 주지 않았소. 지금 와서 그녀를 죽이지 말라니, 지금 이건 고의로 날 난처하게 하려는 것이오?”
흑의 남자는 한참을 망설이더니 어렵게 입을 열고는, 탄식하며 말했다.
“나방비는 노족장의 딸이오!”
“아?”
우유도가 깜짝 놀랐다. 처음에는 자신이 잘못들은 줄 알았다.
“방금 뭐라고 했소? 노족장의 딸이라고 했소? 그전에 나와 싸운 그분을 말하는 것이오?”
흑의 남자가 끄덕이며 무척이나 난감하다는 듯이 말했다.
“맞소!”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이야기였다. 우유도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나방비는 나추의 딸이 아니오? 어찌 노족장의 딸이 된단 말이오? 설마 나방비는 나추가 수양딸로 삼은 호족이란 말이오?”
흑의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야말로 곤란해하는 얼굴이었다.
“나도 그녀가 호족인지 아닌지 확언하기 어렵소. 하지만 최소한 절반은 호족이겠지! 노족장이 평생 호족을 수호하며, 평생 그 딸을 하나 낳았으니…. 나방비가 무슨 짓을 했건, 도리를 따진다면 호족은 그녀를 곤란하게 할 수 없소.”
“이런 일이….”
우유도는 할 말을 잃었다. 그는 나방비와 만난 적이 있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방비의 몸에서 그 어떠한 요족의 기운도 느낄 수 없었다.
절반은 호족이라는 것이 대체 무슨 말인가? 나추의 딸이 절반은 호족이라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그 진실을 들은 우유도는 그야말로 매우 놀랐다. 상대방의 말에서 그 뜻을 깨달은 우유도가 다시 흑의 남자에게 물었다.
“족장, 설마 지금 나방비가 나추와 노족장 사이에서 낳은 딸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믿소!”
하지만 결국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흑의 남자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오!”
“…….”
우유도는 정말로 깜짝 놀라 말문이 막혔다. 방금 상대방이 나방비를 언급할 때, 뭔가 이상한 나머지 진실을 알아내고자 상대방을 떠본 것이다. 다만 이런 종류의 진실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우유도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그야말로 불가사의했다. 우유도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그것이 어찌 가능하단 말이오?”
확실히 불가능해 보였다. 우유도는 차마 믿을 수 없었다.
최소한 우유도가 보기에, 나추는 호족이 입만 열면 내뱉는 아홉 개자식 중 한 명이었다. 누가 봐도 양측은 원한이 깊어 보였다. 나추의 손에 얼마나 많은 호족의 피가 묻어 있는가. 반면 여자 쪽은 호족을 수호하는 족장이었다.
만약 그저 둘이 애정 때문에 붙어먹은 것이라면 그나마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애초에 높은 지위를 갖고 있었고, 게다가 그들이 속해 있는 사람들은 서로 으르렁대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당연히 둘이 붙어먹으면 말이 많아질 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러니 철저히 비밀에 부칠 게 분명했다. 그런데 비밀에 부치기는커녕, 심지어 아이까지 만들다니? 대체 무슨 생각이란 말인가?
나추는 설마 호족과 자식을 낳는 것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줄 모른단 말인가? 게다가 이 호족의 노족장 또한 설마 모른단 말인가?
두 사람 모두 모를 수 없었다. 그런데 어찌 그리 충동적으로 행동한단 말인가?
우유도의 경악한 표정을 보고, 흑의 남자가 탄식을 내뱉으며 말했다.
“확실히 불가능한 일이지, 그저 악연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소.”
“아니….”
우유도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손사래를 쳤다.
“족장, 지금 정신이 하나도 없소. 내게 생각할 시간을…. 아니, 나추가 어찌 노족장과 같이…. 그것도 아이를 낳는단 말이오. 불가능한 일이오!”
한쪽에 있는 장로들이 다들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발생한 일이네, 그런데 뭐가 그리 불가능하다는 건가. 만약 나추 그 양심을 팔아먹은 개자식이 아니었다면, 노족장이 지금같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네, 노족장이 겨우 그대에게 제압당할 실력인가?”
우유도가 멍해졌다. 그리고 바로 전에 은호가 보여준 이상한 상황을 되돌아보았다. 부상을 입은 것도 아니었다. 처음에는 공포스러울 정도로 강한 공격을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한순간 쓰러지다니, 정말로 너무 이상하긴 했다. 설마 그것이 나추와 연관이 있단 말인가? 우유도가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이오. 알려줄 수 있으시오?”
흑의 남자가 말했다.
“딱히 더 말할 것도 없소. 당신들 인간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집안 망신은 외부에 알리는 것이 아니라고 들었소! 사실을 알았으니, 더는 쓸데없는 질문을 하지 마시오.”
그게 무슨 말인가. 이런 일을 우유도가 어찌 확실히 파악하지 않고 그냥 지나간단 말인가. 그것도 상황을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이 눈앞에 있지 않은가. 만약 확실히 파악하지 않으면, 앞으로 우유도는 계속해서 이 일에 대해서 고민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 확실히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만약 이들이 알려주지 않으면, 나중에 나추라도 찾아가란 말인가? 나추가 퍽이나 잘 알려주겠다.
우유도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이보시오들. 지금 나보고 나방비를 살려주라고 말하면서 상황은 설명해 주려고 하지 않으니, 나보고 어찌 믿으라는 것이오? 당신들은 나를 믿지 않으면서, 지금 나보고는 그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그냥 믿으라고 하는 것이오? 그리고 그를 위해서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계획을 포기하라고 한단 말이오?”
“아홉 개자식이 어떤 사람인지, 당신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오. 그들을 상대하는 것이 장난 같소? 조금만 잘못해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일이오! 내가 당신들을 협박하는 것이 아니오. 이런 일을 확실히 파악해 놓지 않은 상황에서, 내가 갑자기 계획을 바꿀 모험을 할 것 같소? 당신들은 모험하려 하지 않으면서, 나보고는 위험을 무릅쓰라고 하니, 지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오?”
사람들이 한동안 망설였다. 결국, 낫을 든 늙은이가 나섰다.
“족장, 이미 여기까지 알았으니, 더는 자세한 상황을 숨기는 것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소.”
흑의 남자가 침묵했다. 우유도가 다시 보충설명을 했다.
“그것뿐만 아니라, 당신들이 한 말을 나는 믿을 수 없소. 내가 비록 나추의 일은 잘 모르지만, 너무나 많이 알려져 별다른 비밀이 아닌 일은 들어 알고 있소. 나방비는 나추와 그의 부인 은희(銀姬) 사이에서 낳은 아이요. 소문에 따르면 은희는 매우 아름다워….”
흑의 남자가 갑자기 입을 열어 우유도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은희가 바로 노족장님이시오! 노족장이 인간으로 변신하면 확실히 아주 아름다우시지. 당신들 인간의 말을 빌리면 선녀처럼 아름답다고 하더이다.”
“…….”
우유도는 입을 쩍 벌렸다. 한참이 지나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 그…. 소문에 따르면, 은희는 나추와 꽤 오랫동안 살았다고 했소. 노족장이 대나성지에서 나추와 그리 오래 살았단 말이오? 다른 여덟 개자식이 그걸 그냥 두고 보았겠소? 나추도 다른 여덟이 같이 몰아붙이면 어쩔 수 없었을 것이오!”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들이 나추의 부인이 호족의 족장인 것을 몰랐기 때문이오. 사실 변고가 생기기 전까지, 나추 본인조차도 모르고 있었소. 물론, 나추는 노족장이 여우 요괴인 것을 알고 있었소. 하지만 그분이 호선경의 호족인지는 몰랐고, 족장인 줄은 더욱 몰랐소.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어찌 알았겠소?”
“하! 이곳 나추가 노족장이 여우 요괴인 줄은 알았지만, 호족인 줄은 몰랐다고? 그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말인지 모르겠소? 이 호선경에 있는 여우 요괴가 호족 외에 누가 있단 말이오. 설마 나추가 그 정도로 멍청하단 말이오?”
흑의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나추와 노족장은 호선경이 아니라, 당신들 인간계에서 만났소.”
우유도가 의아해하며 말했다.
“두 세계의 경계가 얼마나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소. 노족장이 이곳을 어찌 떠났단 말이오?”
귀두대도를 들고 있는 늙은이가 말했다.
“그 일은 어느 정도 자네의 사부 상찬과 연관되어 있네.”
“사부님과 말이오? 그게 무슨 말이오?”
흑의 남자가 과거를 회상하는 얼굴로 말했다.
“당연히 그대 사부와 관련이 있지. 왜냐하면, 그대 사부가 인간계와 호선계의 통로를 뚫었고, 그렇게 하여 노족장이 당신들 인간계의 사물을 접하게 되었기 때문이오. 그분은 당신들 인간계의 서적을 접하게 되었고, 또 상찬과 이향이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보고, 남녀 사이의 애정을 동경하게 되었소.
선배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노족장은 그 때문에 왕왕 무언가를 그리워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고 했소. 노족장은 그 때문에 우리 호족에게 인간의 말을 배우게 했소….”
말을 하던 그가 한동안 침묵하더니 곧 다시 천천히 이어 말했다.
“아직도 기억나는군. 당시에는 지금 호선경에 있는 천마성지(天魔聖地)의 오상이 아직 인간계의 마교에 몸을 담고 있었지. 그땐 개자식들이 아직 항렬에 오르지 못했을 때였소. 이때, 여덟 개자식이 우리 호족을 반복해서 토벌했고, 우리 호족은 그에 대항할 힘이 없었소.
우리 일족이 늪지대에서 구차한 삶을 이어가는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 노족장은 중대한 결정을 내렸소. 인간계에 가서 상찬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 흔적을 찾기로 한 것이오. 비록 그 희망이 크지 않았지만, 노족장은 최선을 다해 시도해보기로 한 것이오….”
대략적인 이야기는 이러했다. 호족은 노족장인 은희를 인간계로 보내기 위해 일족을 모아 성경의 출입구를 습격하기로 했다. 다만 당시 계획이 순조롭지 않아 그때 적지 않은 호족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호족은 자신들의 비참한 운명을 바꿀 수만 있다면, 무수한 일족의 후인들을 위해 그 희생을 감수할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렇게 해서 노족장을 밖으로 내보내는 것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비록 적지 않은 호족 고수들이 희생당했지만, 은희는 몰래 인간계로 나갈 수 있었다.
어째서 몰래 내보내야 했을까? 왜냐하면, 혹시라도 은희가 인간계에서 주위에 아무런 도움이 없는 상태로 습격을 받을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호족은 은희에게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를 위해서 성경을 벗어날 때 은희는 감히 실력을 선보이지 못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호족이 그렇게 많이 희생당하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