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0화. 은희(銀姬) (2)
호선경 안에서 늙은 개자식들의 협공을 받는 와중에도 호족은 은희를 보호하기 위해서 줄곧 은희가 인간으로 변신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그녀가 인간계에 도착한 이후, 그녀는 줄곧 얼굴을 가리고 다녔다. 그녀는 인간계가 크게 낯설지 않았다. 어느 정도 인간계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상찬이 아직 이 세상에 있을 당시, 그녀는 상찬과 같이 인간계를 오간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인간계가 어떤 곳인지 알고 있었다.
인간계에 도착한 은희는 과거, 상찬과 갔었던 곳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이미 예전에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여기저기 상찬의 소식을 알아보았지만, 도대체 그가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더불어 인간계의 속세에서는 각국이 여기저기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상찬을 찾지 못한 은희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대로 아무런 수확도 없이 돌아갈 수 없었다. 호족의 백성들을 위해서 그녀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 당시, 마교는 인간계 수행계에서 가장 강대한 세력이었고, 은희는 마교와 연합하고자 했다. 이에 마교를 찾아간 그녀는 당시 마교 우사(右使)의 자리에 있던 오상을 만나게 되었다.
당시 마교는 마침 큰일이 있던 참이었다. 마교 교주가 죽었고, 오상이 교주의 양자로 마교에서 가장 큰 발언권을 가지고 있었다. 은희가 그를 찾아간 것은 오상과 친분을 맺고 마교의 세력을 빌리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친분을 맺고자 한다면 당연히 성의를 보여야 했다. 다만 은희는 자신이 호선경 호족의 족장이라는 것을 밝히지는 않았다. 최소한 상황을 보고 순차적으로 밝힐 생각이었고, 만나자마자 자신의 모든 것을 모두 보여줄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이것저것 숨긴다 한들, 친분을 맺기 위해서는 최소한 어떻게 생겼는지는 보여줘야 했다.
은희가 변장을 풀고 본모습을 보여주자, 오상은 그야말로 더없이 깜짝 놀랐다.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그는 은희처럼 아름다운 여인을 본 적이 없었고, 더군다나, 은희는 그 품격이 남달라, 그를 본 오상은 넋이 나가버렸다.
은희는 성의를 보여준 것이지만, 오상은 오히려 그 외모를 보고 딴마음을 품었고, 은희를 자신의 여인으로 삼고자 한 것이다. 그녀를 차지하고자 했다.
은희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었고, 당당한 호족의 족장이 다른 사람에게 어찌 쉽게 모욕받을까. 그녀는 자신을 강제로 범하려 한 오상에게 어쩔 수 없이 손을 쓸 수밖에 없었다.
다만 오상의 실력이 범상치 않아 은희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진정한 실력을 선보일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오상을 제압할 수 있었다.
그때 은희는 오상이 자신의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당시 오상은 진정한 실력을 숨기고 있었다. 후일 구대지존 중 한자리를 차지하고, 나머지 여덟 명이 오상이라는 그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만든 것을 보면, 후발주자인 오상이 얼마나 뛰어난 사람인지 충분히 추측할 수 있었다.
오상은 사실 일부러 자신의 실력을 숨긴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그 즉시 태도를 바꾸어 은희와 의남매를 맺길 청했다. 사실 오상이 그전에 보여준 태도로 인해서 은희는 오상에 대해서 반감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호족을 위해서 그녀는 그것을 승낙했고, 그렇게 은희는 오상과 의남매를 맺었다.
하지만 마교 교주의 죽음이 문제를 불러들였다. 마교는 당시에 수행계에서 표묘각 아래 가장 큰 세력이었고, 진작부터 표묘각이 주목하고 있는 세력이었기에 교주의 죽음이 표묘각 위에 있는 사람의 신경을 건드렸다. 그는 아랫사람들이 마교를 억제하지 못할 것을 우려해 직접 움직였으니, 그가 바로 대나성지의 성존 나추였다.
나추가 천위(天威)를 보이며 나타나니, 그 기세를 감히 누구도 막을 수 없었고, 당시 온 마교가 두려움에 전전긍긍했다.
오상도 크게 두려움에 떨었다. 당시 오상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었다. 오상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나추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해버렸다.
사실 사람은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가끔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지르고는 한다. 그렇게 오상은 은희를 나추에게 바쳤다.
당시, 은희는 오상이 이미 자신을 팔아넘겼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고, 은희는 자신이 나추와 만난 것이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나추를 만난 후, 은희는 대경실색했다. 그녀는 호선경에서 인간으로 변한 자신의 모습을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기 때문에, 나추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나추를 알고 있었다. 은희는 마교에서 나추와 만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 했다.
은희의 본모습을 본 나추는 순간적으로 넋을 잃었다. 그리고 곧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오상에게 이용당한 것도 모르는 은희는 당연히 자신의 의동생인 오상을 위해 좋은 말을 해주었다.
그녀도 자신의 말이 이처럼 쓸모 있을 줄 몰랐다. 그녀가 입을 열자, 벼락과 같이 거친 기세를 뽐내던 나추가 마치 부드러운 온풍과 이슬비처럼 바뀌었다. 마교를 처리하기 위해 손을 높이 들어 올렸는데, 내치지 않고 바닥에 살짝 내려놓은 것이다. 나추가 은희의 동생을 죽이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상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나추는 은희에게 잘 대해주었다. 그것이 마치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운 꿈이라고 여겨질 정도였다. 하늘에 달린 별을 제외하고는 은희가 원하고, 나추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도 거절하지 않았다.
나추와 만난 후, 은희는 그제야 이 남자가 단 한 번도 다른 여자에게 이렇게 한 적이 없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이 세상에서 유일했다.
은희는 사실 표리부동한 상태로 나추를 이용하려 했지만, 누가 알았을까, 결국에는 그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사랑이라는 구렁텅이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녀는 남자와 처음으로 이런 방식으로 어울렸다. 또 처음으로 남자에게 이런 대우를 받았다. 그녀는 책에 적혀있던, 인간계에 있다는 남녀 사이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걸 느낀 은희는 그 행복을 누리면서도 두려웠다. 이성이 사라진 것 같은 그 느낌이 두려웠다.
나추는 곧 그녀에게 청혼했고, 자신에게 시집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은희는 그에게 자신은 여우 요괴이고, 나추는 인간 수행자라며, 두 사람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추는 상관없다고 말했다.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기로 결정을 내렸으니, 그는 더는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처음에, 마음속의 두려움으로 인해 계속 거절하면서도, 또 한편으로 나추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나추의 애정 공세에 은희는 푹 빠져들었다.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다. 나추가 동원한 자원은 그야말로 방대했고, 세상에 불가능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그 힘으로 만들어낸 꿈처럼 아름다운 광경을 견딜 수 있는 여자는 없었을 것이다.
결국 은희는 타협했다. 은희는 이 모든 것이 호족을 위해서라며, 스스로 나추의 구애를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 주었다.
만약 나추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어쩌면 호족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나추가 그녀에게 너무나 잘 대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은희가 착각할 정도로 말이다. 은희는 나추와 혼인하면, 나추가 자신을 도와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은희는 나추의 구애를 받아들였고, 나추와 같이 호선경으로 돌아왔다. 두 사람은 대나성지에서 혼인을 올렸다.
그 시간 동안의 애정과 남녀 사이의 감정, 또 남녀 사이의 육체적인 교감까지, 여러 가지 아름다운 일이 있었고, 그야말로 신선도 부럽지 않은 부부로 살았다. 그 시간은 은희의 일생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런 아름다움 아래, 줄곧 남모를 걱정거리가 은희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으니, 은희의 신분에 관한 문제였다. 그녀는 진실을 전하고 싶으면서도, 또 지금의 행복을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했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그녀는 계속해서 끙끙 앓았고, 나추와 혼인한 후, 일부 문제의 진실을 접한 후, 문제가 그녀가 생각하는 그것처럼 간단하지 않다는 것도 깨달았다. 나추가 그녀와 부부가 되었다고 하여, 그녀를 쉽게 도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일들은 나추 혼자 결정을 내릴 수 없었고, 다른 사람들의 압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와 그녀는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를 할 적당한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나추의 아내가 된 후, 좋은 점도 너무나 명확했다. 그녀는 한 번도 자신이 짊어진 호족의 사명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녀는 나추의 부인이라는 신분으로 수차례 암중에서 호족을 도와주었다. 사전에 토벌에 관한 소식을 접하고 남몰래 암중에 호족에게 그 사실을 알려 심혈을 기울여 계획한 토벌 계획을 몇 번이나 피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물론, 호족도 기대하고 있었다. 족장이 나추의 부인이 된 후 호족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은희와 나추가 부부가 된 후, 둘은 행복하게 긴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 동안, 나추는 그녀를 처음과 같이 대했고, 단 한 번도 마음이 바뀐 적이 없었다.
높디높은 곳에 자리한 그는 쉽게 마음을 주지 않았지만, 일단 주면 모든 것을 내어주었다.
은희는 종종 남몰래 탄식하며, 만약 세상의 은원이 없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하고는 했다. 그리고 나중에 정말로 생각지도 못하는 일이 생겼다. 은희가 회임한 것이었다.
그 일은 은희조차도 상상도 못 한 일이었고, 사람과 요괴 사이에 새로운 생명이 탄생할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랑을 나눌 당시 어떠한 방비도 하지 않았다. 그전에 그 긴 시간 동안 아무런 방비를 하지 않아도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런데 이토록 갑작스럽게 이런 일이 생기다니.
나추도 매우 의외였다. 하지만 나추는 자신이 이 일을 마땅히 기뻐해야 하는지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나추는 은희와 대화를 나누면서, 은희가 그 아이를 지우길 바라는 뜻을 은근히 내비쳤다.
나추는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어떤 모습일지 알지 못했다. 사람일지, 요괴일지. 그것도 아니면 무슨 괴물일 수도 있었다. 만약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면 어찌할까?
하지만 은희는 자신의 배 속에 있는 혈육에게 독수를 쓸 수 없었다. 그녀 개인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최소한 호족은 자신 배 속에 있는 혈육을 죽이는 일이 없었다.
은희가 고집을 부리니, 나추는 어쩔 수 없이 그녀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두었다. 그렇게 은희는 아이를 낳았고,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아이는 완전한 인간이었다. 요괴인 엄마의 영향을 받지 않았으며, 괴물도 아니었다. 그저 귀여운 아이였다.
더는 걱정이 없어지자, 나추는 그야말로 미친 듯이 기뻐했고, 은희도 매우 기뻤다.
나추는 아이에게 애정을 쏟았으며, 은희에게는 전보다 더 잘 대해주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은희는 지금까지 기다리던 기회가 왔다고 착각했다.
하루는 나추가 아이를 품에 안고 놀아주고 있을 때, 은희가 드디어 그에게 진실을 알려주었다.
나추는 그야말로 크게 경악했고, 또 바로 그 순간, 은희의 아름다운 꿈이 드디어 종말을 맞이했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다투었고, 예전에 나추는 은희가 하는 말이라면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은희는 처음으로 나추 앞에서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