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6화. 밀서
우유도는 경거망동할 수 없었다. 표묘각 인원을 가장한 것 때문에 어떤 처지에 처하는 것은 둘째치고서라도, 최소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설사 우유도가 이번 일을 고발한다 해도, 배후자를 반드시 처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다는 것이다.
음식을 배달하는 사람은 배후가 아니었다. 그만한 능력이 없었다. 상대방이 감히 이런 일을 벌인다는 것은, 표묘각이 조사해도 뭔가를 알기 어렵다는 것을 뜻했다. 그 정도 능력도 없이 이런 짓을 한다는 것은 무덤을 스스로 파는 것이었다.
또 한 가지, 우유도가 오랫동안 계획하고 진행하고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 일을 고발하면, 우유도의 계획에 차질을 줄 수 있었다.
게다가 더욱이 우유도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지금 우유도에게 경고를 하고는 그에게 뭔가를 시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도와주겠다고 하니, 어안이 벙벙했다.
다들 표묘각이 천하의 수많은 비밀을 장악하고 있다고 했다. 오늘 우유도는 그걸 뼛속까지 깨달을 수 있었다.
사색에 잠겨있던 우유도는 어느 순간 자리에서 일어났고, 빠르게 방안을 배회했다.
간단하게 식사를 마친 진관과 가정걸은 그런 우유도를 방해하지 않았다. 그저 식기를 정리하고는 밖으로 가져갔다. 정리한 찬합은 입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 건네주면 됐다.
다만 진관과 가정걸조차도 우유도가 다소 비정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 장로님이 이렇게 불안해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우유도는 한참 동안을 돌아다니다, 결국 밖으로 나갔다.
깊은 밤,
마당에 서서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던 우유도가 갑자기 장탄식을 내뱉었다. 결심을 내렸다!
다음 날,
부화 일행이 다시 찾아와 우유도에게 혹시 어디로 갈지 선택했냐며 귀찮게 했다.
“아는 것이 없으니,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우유도는 난감하다는 듯이 사람들을 향해 어깨를 으쓱했다.
일행들이 돌아간 후, 식사 때가 되었을 때, 우유도가 기다리던 소식이 들려왔다. 입구에 있던 가정걸이 갑자기 몸을 돌려 보고했다.
“장로님, 어제 음식을 배달한 사람이 왔습니다.”
침묵하던 우유도의 두 눈이 번쩍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우유도는 두 사람에게 안에서 기다리라고 손짓하고는 입구로 나가서 살펴보았다. 과연 어제 왔던 그 사람이 다시 오고 있었다.
우유도가 입구에서 상대방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 사람은 각 방을 들리며 천천히 다가왔고, 결국 찬합을 들고 우유도가 있는 곳까지 왔다. 이후,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우유도를 보더니 웃으며 인사했다.
“우 장로님.”
“수고하십니다!”
우유도는 포권을 한 후, 상대방이 건넨 찬합을 받아 들며 지나가는 말투로 물었다.
“오늘은 제게 줄 것이 없습니까?”
그 사람이 조용히 말했다.
“없습니다. 하지만 도움이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씀만 하십시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할 수 없는 일이라면 상부에 보고해, 결정을 내리게 하겠습니다.”
우유도는 찬합을 열어 마치 무슨 음식인지 묻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소리를 하고 있었다.
“배후에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저라고 알고 있을 것 같습니까? 저도 그저 심부름꾼에 불과합니다. 사실 저도 누군지 궁금합니다.”
우유도는 찬합을 한단 들어내며 다시 물었다.
“성함이 어찌 됩니까?”
“상청산(常靑山)입니다.”
“성경의 지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각 부가 성경 내부에 분포되어있는 상황과, 각 부가 맡고 있는 직무들의 종류와 범위가 필요합니다. 가능합니까?”
“어렵지 않습니다. 내일 음식을 전할 때 가져다드리겠습니다.”
말을 마친 상청산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럼 맛있게 드십시요. 저는 이만.”
“멀리 나가지 않겠습니다.”
우유도가 찬합을 들고 다시 돌아왔다.
진관과 가정걸, 두 사람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두 사람이 입구에서 뭐라 뭐라 중얼거리는 것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지금 각 문파에서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마치 사육당하는 돼지 취급을 당하고 있었다. 하는 일 없이 가끔 서로 담소나 나누며, 서로 어디를 선택했는지 묻고는 했다. 그렇게 하루의 시간을 무료하게 보냈다.
다음날 식사 시간, 상청산이 다시 왔다. 여전히 우유도가 직접 찬합을 받았다.
진관과 가정걸 두 사람은 뭔가 알아낼 수 있는지 관찰했지만, 우유도와 상청산은 그저 만나서 몇 마디 인사를 나눌 뿐인 듯했다. 그렇게 별로 길게 이야기하지도 않았다.
탁자에 앉은 우유도는 천천히 식사했다. 두 사람이 대충 식사를 마친 것을 보고, 우유도가 말했다.
“잠시 나가서 망을 보아라.”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명을 받고 밖으로 나갔다.
탁자에 앉아 있는 우유도는 입구를 빤히 바라보더니, 천천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손을 뻗어 그 전에 찬합을 열었을 때 엎어 놓은 뚜껑을 잡고 뒤집었다. 그곳에는 여러 겹으로 접혀있는 밀서가 안쪽에 붙어 있었다.
우유도는 그대로 손을 뻗어 밀서를 잡아 뜯어 그대로 소매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탁자 위의 식기를 정리해 찬합에 넣고는, 들고 입구로 나가 진관에게 건네며 두 사람에게 당부했다.
“밖을 지키다 누군가 다가오면 늦지 않게 내게 신호를 보내라.”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대답했다. 비록 우유도가 뭘 하려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시키는 대로 했다.
문과 창문을 닫은 우유도는 침상에 가서 손을 휘둘러 침상을 평평하게 하고는 소매에 있는 물건을 꺼내 침상에 펼쳐보았다. 성경의 지도와 우유도가 요구한 각 부의 상황이 적혀 있었다. 우유도는 그 옆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천천히 내용을 살펴보았다.
마지막 날이었다. 당연히 우유도를 찾아와 귀찮게 하는 사람이 있었다. 마침 한참 내용을 확인하고 있을 때, 갑자기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 진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장로님, 부화 장로님이 뵙기를 청하십니다.”
“이 새로 만든 문이 참으로 눈에 거슬리는군.”
밖에서 홍개천의 유쾌한 목소리가 들렸다.
우유도는 신속하게 물건들을 대충 접더니, 몸을 틀어 다리 아래 이불 속에 집어넣고는 다시 자리를 잡고 앉은 후에 대답했다.
“모셔라.”
곧 문이 열리며 일단의 발소리가 들리며, 일단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평소 우유도와 어울리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들은 없었다.
다들 안에 들어오더니, 우유도가 침상 위에서 가부좌를 틀고 수련을 하는 듯한 모습을 발견했다. 부화가 그 즉시 물었다.
“동생, 어딜 갈지 골랐어?”
우유도가 다리를 내리고는 일어나 고개를 저었다.
“아직 정하지 못했습니다.”
부화가 놀라 물었다.
“그런데 지금 수련을 하고 있단 말이야? 오늘이 마지막 날이야.”
“일단 머리를 좀 비우고, 다시 고민해 보는 것도 나쁠 것 없지요. 누님, 형님들은 고르셨습니까?”
사람들은 뒷짐을 지거나, 팔짱을 끼고, 허리에 손을 올리고, 곤란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전태봉이 말했다.
“어찌할 텐가? 상황을 모르지 않는가. 표묘각 내부에 대해서 거의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니 대체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네. 이걸 골랐다가 문제가 생길까 두렵고, 저걸 골라도 문제가 생길까 두려우니,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정말로 모르겠다네.”
말을 마친 그는 사람들을 가리키더니, 다시 우유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우린 수시로 나와서 서로 의논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소식을 알아보기도 하네. 그런데 자네는 양가의 규수처럼 방 안에 숨어서 나오질 않으니, 지금 자네 모습을 보게, 아주 침착한 것이 혹시 무슨 생각이 있는 것 아닌가?”
홍개천이 말했다.
“그러게 말일세. 동생. 무슨 좋은 생각이 있으면 우리에게도 좀 알려주게나!”
계속 찾아오고, 시간만 나면 우유도의 의견을 물어왔다. 이는 사실상 우유도의 능력을 인정한 것과 다름없었다.
수많은 일들은 은연중에 스며드는 것이다. 하나하나 사건이 쌓이면서 사람들 마음속에서 서서히 위엄이 갖춰지는 것이다.
우유도는 항상 정말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어려움을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이번에도 사람들은 우유도에게 기대를 품은 것이었다.
우유도는 이번에는 질문에 대해 곧바로 거절하지 않고, 잠시 침묵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 가지 생각이 있기는 합니다.”
사람들의 얼굴에 기대가 가득했다.
“경청하겠네.”
우유도가 침음을 삼키며 말했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비록 다들 곤란한 문제를 피하고 싶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좋은 곳을 저희가 다 차지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만약 저희가 한 곳에 몰린다면, 분명 표묘각이 저희를 흩어 놓을 것입니다.”
전태봉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렇지. 아직 상황을 모르는 상태니, 아마 다들 천하전장으로 가고자 할 것이네. 전장의 장부는 구대지존의 사람들이 공통으로 감독하니, 수작을 부리기 어렵지, 또 싸우고 죽이는 일에 얽혀 있지 않으니 상대적으로 문제가 적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네. 하지만 만약 정말 전장을 선택하면 그쪽으로 몰리게 되니, 표묘각이 다시 사람들을 분산시키지 않겠는가.”
우유도가 끄덕였다.
“다들 좋은 곳으로 가고 싶지만, 한곳으로 몰리면 가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곳으로 가자니 문제가 생길까 봐 두렵고 말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지금 상황이 아주 명확하다는 것입니다. 다들 알다시피, 구대지존은 우리와 표묘각을 싸움 붙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실 다들 심사숙고해서 갈 곳을 고른다 해도 결과는 다르지 않을 겁니다. 그럴 거면 그냥 제비뽑기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제비뽑기?”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부화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어떤 식으로 말인가?”
“표묘각이 선택지를 준 범위 안에서 각 문파와 같은 수의 제비를 준비하고, 각 문파에게 뽑으라고 하는 거지요. 그리고 자신이 뽑은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각 부로 분산시키면 가는 곳이 좋든 나쁘든 운명을 하늘에 맡기는 것입니다.”
전태봉이 말했다.
“자네 말은 저 밖에 있는 사람들도 다 같이 불러모아 제비뽑기를 하자는 말인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을 분산시킬 수 있겠습니까?”
홍개천이 하하 웃었다.
“그렇게 하자고 한다고, 저들이 승낙하겠는가?”
“이건 승낙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들과 같이 의논해야 하는 일이지요. 각 문파 중 어느 한 곳이 감히 표묘각과 홀로 싸워 이길 수 있습니까? 다들 협력해야 합니다. 각 부로 분산되어 간 후, 서로 연락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협력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다들 이른 시간 안에 각 부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고. 좀 더 움직이기 편하고, 대응하기도 좋을 것입니다. 어쩌면 목숨을 구할 가능성이 좀 더 커질 수 있겠지요. 그것이 지금 우리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준비입니다.
그렇지 않고 각자 선택을 하고자 하면 분명 한쪽으로 쏠리는 상황이 나올 것이고, 결국에는 표묘각이 사람들을 분산시키겠지요. 그때가 되면 마찬가지로 운에 맡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래도 운, 저래도 운이라면 스스로 고르는 것이 그나마 낫지 않겠습니까. 또 사전에 협력도 하고 말입니다.”
사람들이 잠깐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