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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268화 (366/1,000)

1268화. 수작질

한참이 지나 정위가 천천히 말했다.

“전장! 다들 전장에 흥미가 있나 보군. 하긴, 천하의 모든 부가 천하전장으로 모이지. 그런데, 그대들은 도대체 천하전장에 가서 돈을 강도질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뒷돈이라도 챙기려는 것인가. 천하전장의 돈을 그리 쉽게 건드릴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감히 전장의 재화를 함부로 건드리면 목숨을 잃을 것이야!”

현장이 조용해졌다. 각 문파의 제자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정위가 저런 말을 하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각 문파의 장로들은 뭔가 마음에 찔리는 표정으로 조용히 좌우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홍개천이 참지 못하고 불쑥 말했다.

“정 선생님께서 무슨 의도로 그리 말씀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희에게 주신 명단에 천하전장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 명단에 있긴 했지.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전장에 갈 수는 없는 노릇이네. 성존께서 그대들에게 표묘각의 각 부를 감찰하라 하셨는데, 그대들은 전부 다 천하전장으로 몰려가려 하니, 대체 무슨 의도를 가진 건가? 장부검사? 천하전장의 구멍이 아무리 크다 해도, 장부를 검사하는 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필요할까?”

“몰려가다니요?”

홍개천이 대경실색하며 급히 변명하며 말했다.

“스물여덟 개의 제비 중에 오직 두 개의 제비만이 전장으로 가는 것입니다. 어찌 몰렸다고 하십니까?”

“두 개?”

정위가 눈살을 찌푸렸다. 곧 앞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훑어보더니, 다소 안절부절못하는 각 문파의 장로들을 보고는 어찌 된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그는 냉소 지으며 말했다.

“전장이 적힌 제비가 두 개뿐이라고? 그런데 어찌 내 눈에는 스물여덟 개 모두 전장으로 보이는 거지? 내가 헛살아 글자도 못 읽는 것일까? 내 눈이 삔 것이군. 이것들이 두 개로 보이나? 나중에 나보고 공평하지 못하거나, 나중에 수작을 부렸다고 하지 말고, 그대들이 직접 와서 확인해 보지 그러나.”

홍개천이 가장 먼저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총총 달려왔다. 서탁 앞에 멈춰선 그는 그 위를 보더니 그 즉시 넋이 나갔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스물여덟 개 모두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전장’이라고 적혀 있었다.

전부 다 전장이라고? 각 문파의 제자들은 다들 휙휙 고개를 돌려 각자의 장로들을 돌아보았다. 장로들이 얼마나 약았는지 알 수 있었다.

각 문파의 장로들도 다소 의외였다. 어쨌든 이들 또한, 자신이 무슨 수작을 부렸든 다들 자리에서 분분히 일어나 서탁에 다가와 살펴보았다. 상황을 확인한 사람들은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해도 해도 의견이 너무 통일된 것이 아닌가. 사람들은 또 다들 조용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법불책중(法不責衆)이라, 법을 어기는 사람이 많으면 처벌하기 어려운 법이었다. 다들 똑같은 생각을 한 덕분에 어느 정도는 다들 안도할 지경이었다. 또 오히려 마음이 담담해졌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 우유도 또한 마찬가지로 어이가 없었다. 현장에 있는 각 문파의 장로 중에 착한 사람이 정말로 한 명도 없었다.

우유도가 제비의 내용을 바꾼 것은, 단지 성경 내부에 남아 뭔가를 이루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사람들이 다들 이렇게 할 줄은 몰랐다. 사실 우유도는 일부 사람들이 규칙을 지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단지 모든 사람이 규칙을 어길 줄 몰랐다. 각 문파에서 보낸 장로들 중 한 사람도 정직한 사람이 없었으니, 다들 만만치 않았다.

우유도는 자신이 사전에 혹시 몰라 한 가지 준비를 더한 것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지 않고 이런 상황에 처했다면, 이놈들 때문에 계획에 차질이 생길 뻔했다.

각 문파 장로들의 반응을 보고, 각 문파의 제자들은 정위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들은 이번 기회에 정말 안계를 크게 넓혔다.

어제 그처럼 열정적으로 제비뽑기하던 상황을 되돌아보면, 그야말로 가식의 극치였다. 기회만 있다면, 장로들이 수작을 부렸으니, 단 한 사람도 예외가 없었다. 다들 제비뽑기를 빌미로 다른 사람의 눈을 가리려고, 자신은 그 기회에 남몰래 이득을 취하려 했다.

물론, 본문의 장로를 질책할 제자는 없었다. 장로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그 아래 제자들을 위해, 더 나아가서는 종문을 위해 그리한 것이다.

또 그런 ‘대의(大義)’가 눈앞에 있기 때문에, 각 문파의 장로들은 더러운 수작질을 벌이면서도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이 없었다. 일단 성공하기만 하면, 그건 공로였다.

참 재미있는 놈들이군!

정위의 입가에 한껏 조롱이 가득했다. 그는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등받이에 기댄 그는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서탁 앞에 서서 차마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얼굴이 아주 볼만했다. 남해의 홍개천과 천녀교의 제벽상이었다.

전장이 적힌 제비는 두 개라고 했던가? 정위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두 사람이 아마도 제비뽑기에서 전장을 뽑은 두 사람 같았다. 아마 지금은 피해자가 되어서, 분통을 터트리고 있을 것이다.

정위의 판단이 맞았다. 홍개천과 제벽상은 바로 전장을 뽑은 두 사람이었다.

이제 눈앞에 수없이 많은 가짜가 나타났으니, 두 사람은 분노했다. 어제 전장을 뽑았을 때만 해도 매우 기뻐했었다. 당시 있던 사람들은 모두 보았으니 가짜가 나오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은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에, 다른 쪽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자기가 얻을 것은 모두 얻었으니, 당연히 다른 사람에게 없는 것을 신경 쓸 필요 없었다.

두 사람은 그제야 자신들이 너무 천진난만했음을 알 수 있었다. 시커멓군, 그것도 보통 시커먼 것이 아니야. 주위가 온통 시커멓기가 머리털이 곤두설 지경이야!

현장이 조용해진 후, 정위가 말했다.

“이것이 바로 그대들이 사흘 동안 고민한 결과인가? 삼일의 시간을 주었더니 겨우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군. 이것도 제비뽑기하고 다들 동의했던 것인가?”

한껏 비웃는 말투였다. 자리에 앉아 있던 장로들은 침묵했다. 다들 얼굴이 두꺼웠고, 아주 뻔뻔했다.

어두운 얼굴을 한 홍개천이 주먹을 불끈 쥐고 갑자기 뒤돌아 사람들에게 삿대질하며 호통쳤다.

“개자식들, 이게 무슨 짓이오?”

제벽상도 천천히 뒤돌아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도 마찬가지로 썩 좋지 않았다.

지금 와서, 눈앞에 있는 개놈들이 이렇게 한 의도를 모를 리 없었다. 전장에 가는 제비는 두 개뿐이었다. 그때 다들 동의했던 일이었다. 그리고 그 두 개를 이들 둘이 뽑았으니, 다른 사람은 할 말이 없어야 맞았다.

제비를 바꾼 목적은 간단했다. 전장이 적힌 제비가 하나 더 많아져, 인원이 초과된다면, 표묘각에서 인원을 조정할 것이고, 다른 곳으로 배치되는 사람이 원래 전장을 뽑은 사람이라는 법은 없었다.

그러니 만약 운이 좋아 전장에 가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또 만약 재수 없어 다른 곳으로 가게 된다 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처음부터 뽑은 것이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장사였으니 멍청이가 아니고서야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다만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은 생각으로 이럴 줄 몰랐다.

소수 인원이라면, 폭로될 일도 없었다. 나중에 표묘각이 인원을 조정해서 결과를 내놓는다면, 모든 책임은 표묘각이 짊어질 것이니, 누가 이견을 말할까? 당연히 추궁할 사람도 없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장을 신청한 인원이 많아지면 인원조정이 있을 것이고, 오히려 전장을 뽑은 두 사람이 다른 곳으로 인원조정이 되어 떨어져 나갈 수도 있었다.

한쪽에 있던 황반도 뭔가 깨달았다. 정말 눈앞에 있는 놈 중에 제대로 된 놈이 하나도 없었다. 다들 감히 표묘각에게 죄를 떠넘기려 하다니!

결국, 다 나쁜 놈들이기 때문에 황반은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들이 정말 표묘각에 개입하게 된다면,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정말 무슨 짓이든 할 것 같았다. 이놈들은 경험이 없는 보통 수행자들보다 상대하기 골치 아팠다. 다들 각 문파의 능구렁이들이었고, 다들 최소한의 자기방어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다들 벙어리라도 되었소? 양심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시오! 아니면 어디 늑대들한테 양심이 파먹히셨소? 개자식들…….”

홍개천은 크게 분노해 쌍욕을 퍼부었다. 다만 욕먹는 사람들은 다들 입을 다문 채, 홍개천이 욕을 하든 말든 그냥 내버려 두었다.

홍개천이 정말 끝없이 욕하는 것을 보고, 황반이 호통을 쳐서 저지하려 했다. 하지만 마치 정위가 그 마음을 읽은 듯 먼저 손을 들어 황반을 저지했다.

황반은 정위를 보고 대략 그의 의도를 깨달았다. 홍개천이 이 뻔뻔한 사람들을 좀 더 욕하는 건 상관없으니, 그냥 계속 욕하게 내버려 두라 한 것이다.

하지만 쌍욕은 효과가 별로 없었다. 아니 효과가 아예 없었다. 욕먹는 사람들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는 사람도 있고,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 장난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천천히 소매를 쓰다듬는 사람도 있었다. 그중에는 그냥 눈감고 명상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다들 제비뽑기를 하기로 약조하지 않았소. 약조한 일에 어찌 이리 남몰래 수작을 부린단 말이오. 당신들이 정말 사내요?”

제벽상도 옆에서 홍개천을 도왔다.

정위는 한참을 기다렸다. 오늘 그야말로 무엇이 뻔뻔함인지 절절히 깨달을 수 있었다. 홍개천의 욕설로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욕해도 소용이 없고, 그렇다고 이런 일 때문에 이들을 모두 죽일 수도 없었다. 더 이상 이놈들 때문에 시간을 낭비할 필요 없어 보였다. 정위가 입을 열었다.

“자리로 돌아가라.”

제벽상이 뒤돌아 포권을 하며 말했다.

“정 선생님께서 억울함을 풀어주십시오!”

“돌아가라는 말 안 들리나?”

홍개천과 제벽상은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둘은 뒤돌아 원한이 가득한 얼굴로 사람들을 훑어보고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소란이 가라앉은 후, 정위가 말했다.

“이 나무 제비는 누가 만든 것이며, 제비뽑기는 누가 주관한 것이냐?”

홍개천이 즉시 한 사람이 가리키며 분노한 목소리로 말했다.

“태숙산해입니다!”

태숙산해는 다소 긴장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정위에게 포권을 했다. 나름 인정한 것이다.

정위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대단하군. 제비는 네가 만든 것이고, 제비뽑기는 네가 주관한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에 가서는 너도 규칙을 지키지 않았군.”

태숙산해는 할 말이 없었다. 후회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나서지 말아야 했다.

사실, 이건 어쩔 수 없는 기운종의 버릇이었다. 타 문파와 모였을 때, 모든 일에 다른 사람들보다 잘나 보이고 싶어 하는 버릇이 있었다. 호승심이 너무 강했다!

정위는 손을 서탁 위에 올리고, 손끝으로 서탁을 툭툭 치더니 싸늘한 눈으로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고민할 시간을 사흘 동안 준 것만으로 이미 관대한 처사였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우리는 그대들에게 선택할 시간을 주었다. 하지만 다들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우리 표묘각이 대신 수고할 수밖에 없겠군.”

말을 마친 그는, 곧 일어나 그곳을 떠났다. 제비뽑기에 수작질을 한 사람 그 누구에게도 처벌을 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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