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8화. 문전박대
정위가 용범해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만약 보고를 올린 것이 이 일이 아니라면 그냥 없었던 일로 치부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만약 보고한 것이 이 일이라면, 뭐라고 해야 할지 알겠느냐? 내게 꼭 해야 할 말이 있다. 일단 현요에게 문제가 생기면, 그의 지시를 집행한 너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용범해는 크게 긴장했다. 상대방의 말을 알아들은 것이다. 설사 자신이 현요의 일을 자백한다 해도, 자신의 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설사 목숨을 건진다 해도, 눈앞에 있는 정위가 자신을 살려줄 리 없었다.
용범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일은 현 집사님과 상관이 없습니다. 다 제가 한순간의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그런 것입니다.”
정위는 매우 흡족한 모습으로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만약 이번 일이 무사히 지나간다면, 네 출셋길을 보장해 주겠다. 만약 최악의 상황이 온다 해도, 걱정하지 말아라. 속세에 있는 네 가족은 내가 보살펴 주도록 하겠다.”
용범해는 돌연 깜짝 놀라, 두 눈을 부릅떴다. 속세에 가족이 있는 일은 자신밖에 모르는 비밀인 줄 알았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이분은 이미 진작 알고 있었다!
하긴 다시 생각해보면, 정위가 이번에 표묘각을 넘겨받으면서, 만약 통제할 자신이 없었다면, 자신을 들어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눈앞에서 가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정위를 보며, 용범해가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수하가 잘못했습니다. 현 집사님이 우유도 그놈이 만만한 놈이 아니라고 할 때, 대비해야 했습니다. 우유도가 제게 꼬리표를 달았을 때 경계하고, 그놈을 먼저 죽여버렸어야 했습니다. 이런 짓을 벌일 기회를 주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지금 그런 말은 아무 소용이 없다. 지금 그를 건드리면, 성존의 진노가 강림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유도와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놈이 매번 너희보다 한발 앞서가니, 한발 느린 너희는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하지만 어쩌면, 내가 너무 과민 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너는 일단 정신을 가다듬고, 뭔가 허점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 또 함부로 움직이지 말아라.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정위가 손을 내저었다. 용범해가 포권을 하고 뒤로 한발 물러나더니 그대로 몸을 돌려 떠나갔다.
정위는 천천히 걸어 대청의 처마 밑으로 나갔다. 처마 밑에 선 그는 홀로 중얼거렸다.
“밖에서 난리를 피우는 건 상관없다만, 감히 성경 안에까지 와서 소란을 피우다니, 간덩이가 부었구나. 내가 너를 얕잡아 보았어.”
한편, 그곳을 떠난 용범해는 매우 낙담한 모습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린 그는 속도를 높였다….
* * *
요호사,
우유도가 기거하는 작은 장원 입구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곤림수가 왔다. 문이 살짝 열렸고, 그 사이로 진관이 고개를 내밀어 밖을 살펴보았다. 그곳에는 익숙한 얼굴을 하고 있는 태숙산해 일행이 서 있었다.
곤림수가 말했다.
“도야를 봐야겠으니, 기별을 넣어주시오.”
태숙산해 일행은 우유도의 ‘곧 죽을 사람’이라는 한마디 때문에, 정말로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안절부절못하다가, 이들은 곤림수에 생각이 닿았고, 그를 압박해 선두에 서게 한 것이다. 사실 곤림수는 이런 식으로 오고 싶지 않았다. 다만 노요가 천화문 장로의 신분으로 곤림수를 압박하니, 곤림수는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진관은 밖에 있는 사람들을 보다가, 다시 곤림수에게로 시선이 돌아오더니 웃으며 말했다.
“곤 형, 이거 정말 미안하오. 장로님께서는 지금 중요한 일 때문에 손님을 만날 수 없으시오. 이만 돌아가시오.”
곤림수는 뒤에 있는 사람들을 한번 보더니 다시 말했다.
“그저 얼굴 한 번만 보게 해주시오. 오래 방해하지는 않을 것이오.”
진관이 조용히, 하지만 빠르게 말했다.
“지금 장로님이 방법을 생각하고 있으니, 힘들더라도 조금만 더 참으라고 하셨소.”
사실 진관은 우유도가 이 말을 전한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저 우유도가 하라니 하는 것일 뿐이다. 곧 다시 정상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 돌아가시오!”
그리고는 쾅 하고 문을 닫아 버렸다.
곤림수는 멍청한 얼굴로 굳게 닫힌 대문을 보고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 노요 앞에서 섰다.
“장로님, 도야께서 저를 보지 않겠다고 합니다. 저도 별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도야, 도야. 참으로 친근하게도 부르는구나.”
노요가 코웃음을 쳤다.
“이 우유도라는 자가 바로 네 주인이더냐? 지금 보니 네 생사는 관심도 없는 것 같구나.”
그는 그대로 뒤돌아 다른 사람에게 말했다.
“저처럼 허세를 부리고 있소. 더는 이곳에 남아봐야 무엇하겠소. 설마 무릎이라도 꿇으려는 것이오? 돌아갑시다.”
그리고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힘없는 모습으로 그 뒤를 따랐다.
곤림수는 침묵했다. 중간에서 고통받는 것은 이미 습관이 되었다. 그는 묵묵히 사람들의 뒤를 쫓았다.
하지만 몇 발자국 걷지 않았을 때, 앞에 있는 사람들이 멈춰 선 것을 보고 고개를 들어보았다. 그곳에는 요호사의 집행자 용범해가 두 개의 찬합을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사람들이 길 한편으로 비켜서자, 용범해가 지나가며 물었다.
“여기서 길을 막고 뭐 하고 있으시오?”
이번에 그는 한 사람도 데려오지 않고, 직접 자신이 물건을 들고 왔다.
사람들은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용범해는 으름장을 놓으려다가, 우유도라는 반면교사가 있었기 때문에 이들 감찰관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그렇게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냥 그들을 지나쳤다.
그는 우유도 거처의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는 닫혀있었다. 용범해는 포권을 하는 곡령곤에게 턱짓했다.
곡령곤이 즉시 위로 올라가 문을 두드렸다.
“우 장로님, 우 장로님. 집행자가 오셨습니다. 문을 열어주십시오!”
잠시 후, 문이 열렸다. 진관의 머리가 다시 나타났다. 그는 미소지으며 사죄를 했다.
“곡 형, 방금 듣지 않으셨습니까. 장로님은 손님을 만나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곡령곤이 뒤돌아 용범해를 바라보았다. 이제 어쩌냐는 의미가 묻어나는 모습이었다.
용범해가 직접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우 형제에게 내가 왔다고 전해주게. 좋은 술과 안주를 준비했으니, 우 형제와 진탕 마셔보고 싶다고 말이야.”
그리고 그는 자신의 손에 들린 찬합을 보여주었다.
그는 이대로 죽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단 문제가 생긴다면, 이번 일을 일으킨 사람에게 해결의 열쇠가 있어 보였다. 이에 그는 우유도에게 공을 들이기로 했다.
진관이 입을 열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장로님이 아무도 들이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머리가 쏙 들어가더니, 쾅, 하고 문이 다시 닫혔다.
곡령곤은 넋이 나갔다. 또 놀랍기도 했다. 우유도가 이토록 광오할 줄은 몰랐다. 요호사의 영역에 있으면서 요호사의 집행자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는다니, 겨우 나무문이 어찌 요호사의 집행자를 막겠는가?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마시려 하다니, 그는 이제 용범해가 크게 발작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용범해의 낯빛이 아주 안 좋아지더니, 서서히 맥빠진 얼굴로 마치 부모라도 죽은 것 같은 얼굴로 천천히 뒤돌아, 또 천천히 떠나갔다.
곡령곤은 그야말로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경악했다. 지금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그는 지금 정위의 당부가 있었음을 몰랐다. 용범해가 감히 어찌 함부로 소란을 피울까, 감히 어찌 저 안으로 쳐들어간단 말인가.
반면 용범해는 문전박대를 당하고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두 번째 금시가 가져간 보고는 분명 열에 아홉은 자기 일일 것이 분명했다. 그의 마지막 희망이 사라졌다.
그 모습을 더욱 경악스러운 얼굴로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태숙산해 등 일행이었다. 그들은 두 눈 뜨고 침울한 모습으로 의기소침해서 멀어져 가는 용범해를 보고, 그야말로 극도로 경악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위풍당당한 요호사의 집행자였다. 그런데 그런 집행자가, 자신의 영역에서 문전박대를 당하다니?
특히 용범해의 낙담한 모습을 보면, 자신들에게 보라고 연기를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솔직히 그럴 필요도 없었다.
지금 눈 앞에 펼쳐진 장면은 그야말로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여기 요호사가 도대체 누구의 영역이란 말인가. 어째 이 요호사는 뭔가 뒤죽박죽인 것 같았다.
대문이 굳게 닫힌 장원을 한번 보고, 다시 쓸쓸히 멀어져 가는 용범해의 뒷모습을 보던 일행은 한참이 지나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여전히 계단 위에 있는 곡령곤 또한 마찬가지로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길가에 좌우로 갈라진 채 서 있는 사람들은 곧이어 서로를 어리둥절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다들 우물쭈물하는 것이 뭔가 말을 하고 싶지만,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모습이었다.
자신들은 표묘각 인원들에게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가. 그 자신이 가장 잘 알았다. 그나마 웃는 얼굴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나쁘지 않을 정도였다. 어디 여기 요호사의 용범해처럼 직접 술과 안주를 들고 찾아오겠는가. 자신들의 머무는 곳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전에도 용범해가 직접 술상을 봐서 우유도를 위해 연회를 열어주었다고 곤림수가 말한 적이 있었다. 그 후, 정위가 우유도를 독대해주는 것을 장로들이 모두 목격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놀랍게도 우유도가 용범해의 체면을 짓밟는 것을 다들 보았다. 그것도 아주 잘근잘근 말이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 도대체 무슨 상황일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우유도는 자신들보다 먼저 활로를 개척했다는 것이다.
‘곧 죽을 사람’이라는 한마디는 이미 이들의 가슴속 가시가 되어있었다. 이들은 당장이라도 우유도를 찾아가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 체면이 무엇인지 내려놓지를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우유도가 자신들을 만나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용범해의 체면조차 세워주지 않은 우유도였다. 심지어 용범해를 난처하게 만들기까지 했다. 이럴 때 우유도에게 만나 달라고 매달려 봐야 아무 의미 없었다. 그저 난처함을 자초할 뿐이다.
“큼큼.”
태숙산해가 주먹을 입에 대고 헛기침 두 번을 하더니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말했다.
“지금 당장 급할 것이 없으니, 일단 돌아가서 다시 의논해봅시다.”
사람들은 물러날 구실을 찾았다. 다들 동의했다. 하지만 아직도 미련이 많이 남았는지 다들 우유도가 있는 곳을 수시로 돌아보며 멀어져 갔다.
일행의 맨 뒤에서 따라가고 있는 곤림수도 내심 매우 놀란 상태였다. 덕분에 바로 전에 진관이 자신에게 조용히 당부한 말이 떠올랐고, 그를 고민에 빠지게 했다. 그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한편, 우유도는 사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다. 장원에 있는 정자 안에서 자연광 아래 종이를 한 장 들고, 곡령곤이 준 관련 상황을 살펴보고 있었다.
곡령곤이 제공한 정보에 따라 그는 대략 표묘각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고 있었다. 구대성지가 돌아가면서 표묘각을 장악한다고 했다. 그렇게 표묘각을 장악한 사람이 바뀌면 각 부사(部司)의 책임자를 모두 자신의 사람들로 바꾼다고 되어있었다. 예를 들어 정위가 표묘각을 관리한 뒤로, 각 부사의 사람들이 모두 정위의 사람들로 교체되었다. 여기 요호사의 집행자 용범해는 사실 집행자의 위치에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자였다.
이에 대해서 우유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겨우 표묘각의 각주를 역임하는 것으로는 소용이 없었다. 정위가 아래 있는 부사의 책임자들을 모두 자신의 사람으로 바꾸지 않으면, 호령하기 힘들 것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