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9화. 삼 일 삼 연보
발소리가 들려왔다. 우유도는 탁자 위에 있는 지도를 들어 올렸고, 손에 들고 있던 문서를 지도 아래 넣었다.
탁자 위에 있던 지도는 문천성의 상세 지도였다. 이건 곁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보아도 상관없었다. 서재에 있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표묘각과 관련된 상황들이 적혀 있는 문서를 보게 할 수는 없었다. 이런 물건이 서재에 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우유도는 아직 자신이 표묘각 내부에 있는 누군가와 결탁했다는 것을 다른 사람이 알길 바라지 않았다. 우유도는 아직 그 일에 대해 한창 고민하고 있었다.
우유도는 문서의 내용을 확인한 후에 태워 없애버렸다. 진관이 정자로 들어와 웃으며 말했다.
“장로님, 다들 떠났습니다.”
우유도는 지도를 빤히 보며, 고개도 들지 않고 알았다는 듯이 살짝 끄덕였다.
진관은 별말 하지 않고 정자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정원 내부에 유리한 지형을 점거하고 경계를 서고 있는 가정걸에게 다가갔다.
두 사람은 정자 안에서 진지하게 지도를 살펴보고 있는 우유도를 확인하고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미소지었다.
예전에도 우 장로님은 둘이 보기에 확실히 뛰어난 능력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벌어지는 일들처럼 피와 살로 체감할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 저기 일곱 문파의 꼴을 보면, 그 전에 어떤 모습이었는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이틀 전만 해도 자신들을 따돌렸던 사람들이, 지금은 어떻게든 우 장로님의 얼굴이라도 한번 보려고 난리였다.
그리고 또 저기 요호사의 집행자 용범해를 보면, 이미 장로님께 고분고분하기가 성질 한번 부리지 않을 정도였다.
저기 정원에 허리를 숙이고 있는 사람은, 얼핏 보기에 거의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밖의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태산 같은 파도가 몰아쳐도 평안한 모습으로 낚시를 즐기는 신선의 풍모와 같아 보였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사부를 얕잡아 보는 것이 아니었다. 자금동의 장로들을 그들은 꽤 많이 만나보았다. 하지만 이런 배짱과 수완을 가진 사람은, 아마 자금동에 없을 것이다. 두 사람은 시간이 날 때마다 우유도에 대해서 감탄을 내뱉고는 했다.
두 사람은 정말로 탄복했다. 이번 일을 통해서 마음 깊이 우유도를 따르게 되었다. 마음도 서서히 안정되었다. 두 사람이 보기에, 우 장로님에게는 그냥 옆에만 있어도 안전감을 느낄 수 있는 특수한 매력이 있는 것 같았다. 둘의 마음은 그렇게 천천히 불안이 사라지고 안정되기 시작했다.
* * *
수많은 별이 빛나는 밤하늘 아래,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에 장막이 씌워진 것 같았다.
정자 안에 있는 사여래는 정자 주위를 감싸고 있는 비단 사이로 천천히 빠져나가 노대에 섰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옆에 있는 사람이 건네는 것을 받았다.
물건을 건넨 사람은 정자의 기둥 뒤에 숨어 있었다. 그 몸이 거의 기둥의 그림자에 가려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건네받은 종이를 펼쳐 별빛을 빌려 내용을 확인한 사여래는, 줄곧 별다른 표정이 없었건만, 그 얼굴에 한줄기 미소가 떠올랐다.
“정말로 조용히 있지를 못하는구나. 연달아 두 번 보고서를 올리고, 그 정위를 그토록 불안하게 만들다니. 이제 보니 내가 사람을 잘못 보지 않았어. 대단한 놈이야. 배짱도 아주 두둑하군!”
고개를 돌린 사여래가 말했다.
“도울 수 있는 것이라면, 최선을 다해 돕도록 하게. 자네가 처리하게나.”
“알겠습니다!”
그림자 속에 숨어 있는 왕존이 대답했고, 곧 머뭇거리며 말했다.
“다만, 우유도가 배후의 인물에 대해 매우 석연치 않아 하는 것 같습니다. 연달아 수차례 만나고 싶다고 요구했습니다.”
“그놈이 만나고 싶다고 내가 만나줘야 하는 사람인가? 우유도는 절대 좋은 놈이 아니야. 이대로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아직 모르지, 지금 그놈을 만나면, 자신이 살기 위해 나를 진흙탕으로 끌고 갈 수도 있어. 나를 만나고 싶다면, 만날 수 있는 자격이 있어야겠지. 지금은 아직 우유도를 만날 때가 아니야. 그러니 자네는 이 일을 아주 신중히 처리해야 하네. 자네를 의심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나와서는 안 되네.”
왕존은 그 말을 알아들었다. 만약 자신의 신분이 밝혀진다면, 눈앞이 있는 이분의 신분도 밝혀질 것이다.
비록 도대체 이분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 없지만, 그런데도 그는 명령을 받들었다.
“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선생님. 아무 문제 없습니다.”
순간 왕존의 두 눈이 힐끗 옆을 돌아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매혹적인 몸매의 여인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딱 봐도 선생님께 붙어 있길 좋아하는 여인이었다. 왕존이 조용히 말했다.
“전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사여래가 끄덕였다. 왕존의 신영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 * *
“장로님!”
한밤중이었다. 문밖에서 진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우유도는 서서히 법력을 회수하고는 천천히 두 눈을 뜨고 말했다.
“들어와라.”
진관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와 다시 문을 닫았다. 그는 빠르게 우유도 앞에 다가와 두 손으로 서신을 건넸다.
“장로님, 성존의 회신입니다.”
우유도는 즉시 받아들고 곧바로 내용을 확인했다. 그 안에는 여전히 단 네 글자만 적혀 있었다. 성열이지(聖閱已知: 성존께서 내용을 확인하셨다)!
“먹을 갈아라!”
우유도는 그 말을 하고 침상에서 내려왔다. 곧 방 안을 배회하며 뭔가를 고민했다.
진관은 탁자에 다가가 탁자 위에 있는 등을 밝히고는 지필묵을 준비했다.
내용을 어찌 적을지 정리한 우유도는 탁자로 다가와 붓에 먹을 적시고 우선 성존께 예를 올리는 인사말로 종이를 채워갔다.
옆에서 이를 지켜본 진관은 할 말을 잃었다. 설마 또다시 성존께 올리는 진정일까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게 맞았다!
다만 진관은 이해할 수 없었다. 여전히 고발할 것이 남아 있단 말인가?
진관은 머리를 쥐어 짜내도 마땅히 고발할 만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우유도가 적어 내려가는 것을 보니, 진관을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이번에는 고발이 아니었다.
내용을 자세히 확인해 보니, 장로님은 지금 성존에게 의견을 제시하고, 이것저것 요구를 하고 있었다.
장로님은 지금 현재 감찰 방식에 함정이 있다고 했다. 사람들이 각 부사로 나뉘어 감찰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별문제는 없었지만, 하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조사에 제한이 있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는 현재 감찰 인원에게 어려움을 줄 수도 있다고 우 장로님은 성존께 말씀드리고 있었다.
이후, 장로님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었다. 우 장로님은 각 부서에 감찰 인원을 파견한 것은 그대로 두되, 가장 좋은 것은 감찰 인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때, 다른 부서에서도 이에 대한 조사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좀 더 움직이기 용이하도록. 장로님은 각 부에 할당된 감찰 인원들에게 각기 대형 날짐승을 사용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었다.
마지막 한 가지 요구는, 장로님 곁에 믿을 만한 사람이 부족해, 천화교에 있는 곤림수를 자신 곁에 두고 부리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물론 이유는 있었다. 곤림수는 천화교 쪽에서 환영받지 못했고, 또 다른 문파들에게 당연히 환영받지 못했다. 이에 사람들의 억압을 받고 있으니, 곤림수를 천화교 곁에 놔두면 내분을 불러일으킬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렇게 하여 천화교의 감찰 업무에 지장을 줄 바에야, 곤림수를 자신이 데려오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다면 자신이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두 번째는 곤림수가 원래 자신과 비무를 해서 패배한 후로, 그의 사람이 되었음에도, 어쩔 수 없이 지켜야 하는 약속 때문에 곤림수는 계속 천화교의 이름으로 단련에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장로는 성존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십사 청하고 있었다.
내용을 모두 적은 우유도는 종이를 들어 옆에 있는 진관에게 건네며 말했다.
“성존께 보내라!”
진관은 종이를 건네받아 먹을 말리고는 다소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이런 이유를 장로님께서는 어째서 한 번에 보고하지 않으신 겁니까. 이렇게 연달아 성존의 청정을 방해해도 되겠습니까?”
“하나씩 하는 것에는 하나씩 하는 이치가 있는 법이다.”
우유도가 간단히 대답하고는 진정한 의도를 알려주지는 않았다.
어떤 일들은 핵심을 짚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깨달을 수 있으면 깨닫는 것이고, 깨달을 수 없으면 아무리 확실하게 알려주어도 소용이 없었다. 그런 자질이 없다면, 말로 설명해 주어도 배울 수 없었다.
진관은 생각에 잠긴 채 끄덕였다. 그리고 안의 내용을 확인한 그는 참지 못하고 탄식을 내뱉었다.
“곤림수를 위해서 장로님께서 정말 심혈을 기울이시는 것 같습니다.”
진관은 이제 장로님이 어째서 곤림수에게 그런 당부를 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나를 따르기로 한 사람이다. 지금 그의 처지를 내가 어찌 그냥 좌시할까.”
진관의 눈빛이 다소 복잡해졌다. 퍽 감동한 모습이었다. 장로님이 곤림수를 위해서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이는지 느낀 것이다.
곧이어, 우유도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진인사대천명이라 하지 않더냐. 사람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다했으니, 나머지는 하늘에 달린 것이다. 성존이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다. 가라. 빨리 성존께 보내거라!”
“알겠습니다!”
진관이 명령을 받고 뛰어나갔다.
* * *
“뭐라고 했느냐? 세 번째 보고가 올라갔단 말이냐?”
방 안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정위가 그 소식을 듣고 돌연 자리에서 일어나 물었다.
용범해가 연신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수하의 보고를 듣고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선생님께 달려온 것입니다.”
정위의 얼굴이 비틀렸다. 그 자리를 천천히 맴돌았다.
“삼 일 삼 연보(連報)라! 도대체 무슨 생각인 것이냐. 또 진정을 올릴 일이 무엇이 있단 말이냐?”
“저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람을 시켜 그 금시를 중간에 가로채 내용을 읽어 볼까도 싶었지만, 저 금시가 가진 것이 성존의 서신이니, 감히 건들 수 없었습니다.”
정위가 잠깐 사색에 잠기더니 한참이 지나 입에서 고함이 튀어나왔다.
“순 문제만 일으키는 놈이 성경에 들어왔구나!”
정위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하자, 용범해가 연신 다급하게 물었다.
“선생님, 그럼 이제 어찌해야 합니까?”
그는 사건에 변수가 생기길 바랐다.
정위가 그를 째려보았다. 뭘 어찌하긴? 기다려야지! 일단은 상황을 보고 결정을 내려야 했다.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 좋았다.
물론, 그도 용범해의 심정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이 바라보는 시야는 무게감이 달랐다. 정위는 일이 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그분들 눈에 남몰래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들의 우두머리로 여겨지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은 일단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정위는 아직 우유도가 보고한 것이 용범해의 일인지 확신을 할 수 없었다. 어느 정도는 자신이 너무 과민반응한 것이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기다리는 시간은 길지 않을 터였다. 만약 문제가 생긴다면, 그건 오늘 안에 일어날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