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2화. 영원히 나가지 못하게 할 것이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황반이 갑자기 안으로 들어와 두 손으로 정위에게 서신을 건네며 말했다.
“선생님, 성존께서 지금 즉시 대원성지로 귀환하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돌을 만지작거리던 정위의 손이 허공에서 멈칫했다. 심지어 힘을 주어 돌을 움켜쥐기까지 했다. 그는 돌연 크게 긴장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지금 이것이 세 번째 보고와 연관이 있을 수도 있었다. 이런 시기에 갑자기 자신을 불러들이다니, 어쩌면 자신과 얽힌 무슨 일이 있을 수도 있었다.
첫 번째 서신은 현요를 노렸고, 두 번째는 용범해를 노렸다. 그러니 세 번째 서신이 정위 그를 노리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는 서신을 받지 않고, 담담하게 바둑판을 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냐?”
“서신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정위는 손에 든 바둑알을 내려놓고 담담히 대답했다.
“알았다.”
황반이 물러났다. 그는 물러나면서 용범해를 죽인 남명을 몇 번 더 살펴보았다.
남명은 방금 스쳐 지나간 정위의 비정상적인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정위와 몇 번 수를 주고받은 후에 웃으며 말했다.
“정 형, 기로(棋路)가 혼란스러워졌소. 혹시 무슨 고민이 있으시오?”
“우유도가 이곳에 와서 삼 일 동안 연달아 세 번의 보고를 올렸소.”
“세 번째?”
남명이 매우 놀라 좌우를 보더니 상체를 앞으로 살짝 숙이며 조용히 물었다.
“또 무슨 일이오?”
상대방의 반응을 확인한 정위는 역시나 남명은 세 번째 보고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고 확신했다. 그럼 더는 대화를 이어나갈 필요가 없었다. 바둑통에 손을 넣어 돌을 한 줌 쥔 정위가 그대로 바둑판 위에 우르르 올려놓고는 말했다.
“성존께서 나를 보자고 하시니, 지체할 수 없지. 그만합시다. 남 형은 편하실 대로 하시오. 나 먼저 가보겠소.”
그리고는 일어나 그곳을 걸어나갔다.
남명은 뒤돌아 떠나가는 정위를 한참 보더니, 다시 바둑판을 바라보며 두 눈을 빛냈다….
* * *
용범해의 죽음, 특히 그 시신이 내걸린 일은 문천성의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각 문파의 감찰 인원들도 표묘각 인원이 이상하다는 걸 감지했고, 소식을 알아본 후, 분분히 성 중앙에 있는 공터로 조심히 다가갔다. 이후, 그곳에 목이 매달려 걸려 있는 시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요호사의 집행자 용범해가 사형을 당하다니? 모두 경악했다. 사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 감히 이곳에서 표묘각 사람들을 이리 함부로 대할 수 있겠는가.
그때, 각 문파 사람들의 머릿속에 뭔가가 문뜩 떠올랐다. 용범해가 먹을 것을 싸 들고 우유도를 만나러 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하고 크게 낙담했던 모습이었다. 아마도 우유도는, 그리고 용범해 또한 사전에 뭔가를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생각할 것도 없었다. 다들 이 일이 우유도와 연관이 있다고 추측할 수 있었다. 다만 무슨 일인지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 * *
대원성지,
그곳엔 투명한 비단이 표홀히 휘날렸고, 달콤한 과일 향이 가득했다. 가희의 노랫소리가 사람을 취하게 하고 있었는데, 무희의 자태 또한 지극히 아름다웠다.
그 중심에, 거대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뚱뚱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마치 축 퍼진 고깃덩이처럼 뒤뚱뒤뚱거리며 움직였는데, 중앙에서 실컷 연회를 즐기던 그는 중앙 외곽에 있는 화려하고 큰 의자로 돌아가 털썩 앉았다. 다만 의자에 앉은 후에도 입으로는 앞에 있는 상에서 끊임없이 과일을 집어 먹고 있었다. 또한, 빙그레 웃는 얼굴로 아름다운 몸매로 춤을 추고 있는 무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바로 구대지존 중 한 명인 원색이었다.
밖에서 빠르게 안에 들어온 정위는 사부의 흥취를 방해하지 않았다. 무희들이 춤추는 곳을 빙 둘러 큰 의자 옆으로 다가가더니 포권을 했다.
“사부님!”
원색은 시선을 무희에게서 때지 않고, 과일을 들고 있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보여줘.”
원색 옆에는 거의 벗은 듯 보이는 여인이 있었는데, 그녀는 중요 부위만 아슬아슬하게 가린 채였다. 그 아름다운 여인은 두 손으로 서신을 정위에게 건네며 설명하기를, 우유도가 남도림에게 보낸 서신인데, 남도림이 그 서신을 이곳으로 보냈다고 했다.
정위는 서신의 내용을 확인하고,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원색은 손에 든 과일을 베어 먹으며 물었다.
“네가 표묘각을 관리하고 있으니, 네 의견을 물어보아야겠지. 우유도가 말한 것들을 어찌 생각하느냐?”
일개 수행계 문파의 장로 따위가 언제 사부의 입에서 오간 적이 있던가? 정위는 무희들을 바라보고 있는 원색을 살짝 보고는 급하게 대답하지 않았다.
서신의 내용을 확인한 그는 안도했다. 자신을 저격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분노했다. 이 우유도는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고 갈수록 기어올랐다. 요호사를 감찰하는 권력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부사에도 관여하고 싶다고 하다니, 또 이것저것 원하는 것도 많았다.
“음?”
원색이 살 속에 파묻혀 목이 보이지 않는 얼굴을 돌려 그를 보았다.
“왜 말이 없느냐? 그 말은 우유도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냐?”
요호사 하나에서만 해도 이처럼 수많은 소란을 일으켰다. 정위는 당연히 우유도가 더 큰 권력을 얻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우유도의 의견을 즉각 반박하기도 어려웠다. 확실히 우유도의 서신에 일리가 있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유도가 연달아 보고한 두 가지 일이 그의 사람과 연관되어 있었다. 지금 정위는 우유도에게 불만을 표하기 좋은 시기가 아니었다. 괜히 우유도의 의견을 반박했다가, 정위 또한 현요의 일에 본의 아니게 얽혀들어갈 수 있었다.
생각을 정리한 정위가 침음을 삼키며 말했다.
“사부님,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이 우유도의 의견에는 확실히 좋은 부분이 있습니다. 다만, 이렇게 흔쾌히 승낙하는 것이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을 뿐입니다.”
원색이 웃었다. 유쾌하게 웃은 그가 말했다.
“좋지 않다고 생각하면 그냥 말하면 그만이다. 너는 믿을 만하지, 할 말이 있다면 해보거라.”
정위는 거의 벌거벗은 몸으로 팔다리를 움직이며 매혹적인 춤을 추고 있는 여인들을 훑어보았다. 그는 이런 환경에서 공사를 의논하는 것을 싫어했다. 하지만 사부님은 하필 이런 퇴폐적이고 음란한 것들을 좋아하셨다. 당연히 그가 뭐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정신을 차린 정위가 대답했다.
“사부님, 다른 부사에 감찰 권한을 추가로 주는 것은 별것 아닌 일입니다. 단지 표묘각은 성경 안팎에 걸쳐 있어, 만약 성경 외부의 사람들에게 마음대로 성경에 드나들 수 있는 권한을 준다면, 시간이 흘렀을 때, 성경 내부의 상황이 수행계에 퍼져 더는 비밀이 없을까 걱정이 됩니다. 그리된다면, 수행계에는 더는 어떤 신비도, 경외도 없을 것입니다.”
“네 말이 일리가 있구나. 그러니까 거절하라?”
그렇다고 우유도의 말에는 일리가 없는가? 정위는 우유도의 말도 일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위는 사부를 오랫동안 모셨다. 자신의 사부가 어떤 사람인 줄 모를 리가 없었다. 얼핏 보기에는 말이 잘 통하는 사람 같고, 그 체형이 뚱뚱해서 둔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안에 날카로운 바늘을 품고 있어 의심이 아주 심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부드럽게 대할수록 더욱 경계해야 했다.
정위는 속으로 조심스럽게 줄타기를 하며 포권했다.
“사부님, 최소한의 경계는 정해야 합니다. 다른 부사를 감찰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외부에 있는 자들은 외부만을 감찰하게 하고, 성경 내부에 있는 자들은 내부만을 감찰하게 해야 합니다. 이로써 사람들이 함부로 성경에 드나들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한다면, 어느 정도는 각 문파의 감찰 인원들이 서로 모이지 못하게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정위는 우유도가 이번 기회를 틈타 성경을 자유롭게 드나들려 한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러니 그는 우유도에게 그 기회를 주고 싶지 않았다. 정위는 우유도의 뜻대로 일이 진행되게 놔두고 싶지 않았고, 그는 우유도를 성경 내부에 붙잡고 영원히 나가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밖에 있는 우유도의 세력이 작지 않았다. 우유도가 일단 성경 밖으로 나가게 되면, 구대지존의 허락을 받고 나가게 되는 것이니, 지금보다 더욱 표묘각을 향해 매서운 손길을 내밀 게 뻔했다.
그러니 그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겠는가? 성존의 윤허를 받고, 두려움이 없을 테니, 표묘각을 아주 이 잡듯 뒤질 게 뻔했다. 아무리 표묘각이 지금의 상황을 대비해 급히 먼지들을 털어냈다곤 하지만, 먼지가 아예 없을 순 없었다. 우유도가 지금까지 해온 모습을 봤을 때, 그가 표묘각의 먼지를 털어 구대지존에게 그 먼지를 보여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았다. 그러니 우유도가 성경에서 나가지 못하도록 하는게 좋았다.
그러니 우유도를 성경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만 한다면, 우유도의 운명은 정해져 있는 것과 같았다.
원색이 끄덕이며 말했다.
“네 말이 일리가 있구나.”
그가 손짓했다. 정위는 즉시 허리를 숙여 원색 옆에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원색은 과즙이 가득 묻은 손으로 정위의 어깨를 두드렸다. 마치 이 기회에 정위의 옷에 손을 닦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다.
“너희 사형제 중에 나는 너를 가장 신임하고 있다. 이 사부는 여기서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이 좋지, 사실 그런 잡스러운 일들을 신경 쓰고 싶지 않구나. 이 사부는 진즉부터 자리에서 물러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네게 무량과를 줄 것이니, 그때가 되면 대원성지의 중임을 네게 줄 것이다. 나는 먹고 마시고 놀 것이고 말이야. 그러니 나를 실망시키지 말아라!”
정위는 만면에 감격한 얼굴로, 마치 너무 감동한 나머지 말문이 막힌 모습을 했다. 하지만 내심으로는 원색의 말을 그저 흘려듣고 있었다. 그는 비슷한 말을 수없이 들어왔다. 과거에는 정말로 그를 동경했었고, 또 그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크게 기대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는 그 말을 전혀 진심으로 여기지 않았다….
* * *
수결산장,
황반이 돌아왔다. 정위가 돌아오라 전서를 보냈기 때문이었다. 정위가 급히 성경을 떠나야 하니, 당부할 것이 있다며, 황반에게 빨리 자신을 찾아오라 했다.
정위의 당부를 들은 황반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표묘각의 모든 사람에게 용범해가 사형당한 이유를 밝히란 말씀입니까?”
황반은 용범해를 잘 알았다. 용범해는 정위의 사람이니, 이번 일을 공개하면 정위의 체면이 상할 수 있었다.
정위가 끄덕였다.
“그것이 성존의 뜻이다. 표묘각뿐만 아니라, 모든 감찰 인원에게 알려라.”
황반이 침묵했다. 성존의 의도를 깨달은 것이다. 지금 성존은 사람들에게 성존의 서찰을 염탐한 최후가 어떠한지 알리고자 하는 게 분명했다. 또, 이와 동시에 감찰 인원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산 정상에 있는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침묵했고, 정위가 갑자기 물었다.
“내가 문천성을 떠나고 남명이 혹시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더냐?”
“괜찮았습니다. 선생님이 떠나시고, 얼마 후에 그도 떠났습니다. 하지만 떠나기 전에 요호사에 들려 우유도를 만났습니다.”
“우유도를?”
정위가 뒤돌아 아주 의외라는 듯이 바라보았다.
“우유도를 만나 뭐하단 말이냐?”
“모르겠습니다. 그가 우유도를 만나러 갈 때 따라갈 수도 없고 말입니다.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잠시 머물고는 그대로 문천성을 떠났습니다.”
정위가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황반은 서둘러 상부의 뜻을 집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위를 배웅하고 문천성으로 돌아온 황반은 집행자들을 모아 정위가 당부한 일을 시행했다.
표묘각의 통보를 받은 태숙산해 등 사람들은 그제야 용범해의 사인을 알 수 있었다. 또 그제야 문천성에 도착해 아직 상황을 다 파악하기도 전에 우유도가 이미 성존께 고발을 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그 말은 우유도가 용범해를 죽였다는 말이다. 우유도는 도대체 뭘 하고 있단 말인가?
같은 감찰 인원이었던 각 문파 사람들은, 우유도의 속내를 파악하고 싶어 마음이 다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