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6화. 가로막히다
어둑어둑해지는 저녁,
우유도가 붓을 내려놓았다.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그림을 모두 그린 것이다.
완성된 그림을 살펴보았다. 정말로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였다. 곁에 있는 세 사람은 그림을 그릴 줄 몰랐다. 다만 우유도가 그린 그림이 아름답다는 것은 장님만 아니라면 모두 알 수 있었다.
“장로님, 왜 갑자기 이런 흥취가 일어나신 겁니까?”
진관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옆에 있는 종이로 손을 닦던 우유도가 그림을 빤히 보며 말했다.
“그런 것이 아니다. 이것은 빙설각 각주님께 드리는 축하예물이다.”
예물? 곤림수는 다소 의아해했다. 그는 아직 이 일을 모르고 있었다.
진관과 가정걸은 뭔가 깨달은 것 같았다. 어차피 자기들이 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설락아에게 부족한 것도 없고 말이다. 그러니 좋은 그림과 글귀를 선물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이제야 자신들의 우 장로님이 참으로 재능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것을 뚝딱뚝딱 그려내니 말이다.
그림을 확인한 우유도는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는 다시 지시를 내렸다.
“가져가서 조심스럽게 표구를 만들어라.”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대답하고는 각각 좌우에서 그림을 들고 조심스럽게 돌돌 말았다.
* * *
며칠 후, 식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다. 우유도가 다시 황반을 찾아갔다. 그리고 자신의 계획을 보고했다.
문서를 확인하고 있던 황반은 서탁 뒤에 앉아 고개도 들지 않고 단호하게 말했다.
“안 되네!”
그러자 우유도가 소매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황반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제가 성존께 보고 드렸고, 성존께서 제게 답장을 보내주셨습니다!”
황반이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들어 확인하니 그곳에는 네 글자가 적혀 있었다. 성열이지!
황반은 시선을 종이에서 때고 우유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황반의 두 눈이 다소 어두워졌다. 하지만 별말 하지 않았다. 우유도가 성존의 답장을 가지고 거짓을 말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우유도는 날짐승을 손에 넣었다. 그는 요호사에 있는 자신의 거처로 먼저 갔다. 진관의 등에는 죽통이 하나 추가되어 있었다.
자금동의 세 사람이 날짐승을 타고 날아올랐을 때, 곤림수는 두 눈 뜨고 천천히 사라지는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장원에는 그 혼자만 남아있었다.
문천성에서 우유도를 따른 후, 안전하기는 안전해졌다. 여유로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 때문인지 마음속에는 막연함이 가득했다.
* * *
하늘이 높고 넓었다. 중간에 휴식을 취할 때 진관과 가정걸은 또다시 우유도에게 버림받았다. 두 사람은 이미 습관이 되었다. 다만 어디 가서 뭘 할지 알 수 없었을 뿐이다.
나중에 우유도가 돌아왔을 때, 새장이 하나 들려 있었고, 그 안에는 금시가 두 마리 들어있었다.
새장을 두 사람에게 넘긴 우유도가 당부했다.
“잘 관리해라.”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대답하고는 참지 못하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성경 내부에서는 금시가 엄격한 관리를 받고 있다. 두 사람이 알고 있는 성경의 상황으로는 이 일대에 표묘각의 주둔지가 없었다. 그렇다면 우유도는 도대체 어디에서 금시를 얻어 왔을까?
하지만 두 사람 또한 바보가 아니었다. 우유도가 계속해서 두 사람을 떠나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이제 두 사람 또한 우유도가 자신들을 잠시 떠나는 것이 그냥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 배후에 분명 뭔가가 숨겨져 있었다. 아마 두 사람의 예상으로는, 암중에 누군가가 자신들의 장로님과 연락을 하는 것 같았다.
* * *
천지가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일행의 눈앞에 높은 설봉이 나타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두 마리 날짐승이 빠르게 다가왔다. 그 위에는 몇 명의 백의인이 올라있었다. 그 복장은 빙설성지의 복장이었다.
우유도 일행은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그곳을 맴돌았다. 도착한 사람들은 우유도 일행을 중앙에 두고 교차하며 주위를 맴돌았다.
“누구냐!”
우유도가 큰소리로 대답했다.
“자금동의 장로 우유도입니다. 빙설각 각주님의 혼인을 축하하기 위해 왔습니다.”
“우유도….”
그들을 앞을 가로막은 사람들도 다소 의외라는 듯이 한참을 서로 중얼거렸다.
진관과 가정걸은 우 장로님의 명성이 대단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성경 어디를 가든지 일단 이름만 대면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상대방은 한참 자기들끼리 말을 주고받은 후, 가장 선두에 있는 사람이 크게 소리쳤다.
“마음을 받았으니, 우리가 전달해 주겠소. 이곳은 그대들이 올 곳이 아니니, 돌아가시오!”
상대방의 말투가 그나마 예의 있었다. 어찌 되었든 상대방은 축하를 해주기 위해 온 손님이었기 때문이다.
“각주님께 드릴 예물이 있습니다.”
선두에 있는 자가 말했다.
“우리에게 주시면 되오. 그대로 전달해 드리겠소. 걱정하지 마시오. 이 중에 감히 예물에 손대는 자는 없을 것이고, 각주님께서도 그대의 마음을 알아주실 것이오.”
하지만 우유도는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저는 각주님의 친구입니다. 각주님의 혼인 때문에 먼 거리를 달려왔습니다. 당연히 만나서 축하를 드려야지요.”
친구? 진관과 가정걸은 매우 의외였다. 우 장로님과 빙설각 각주가 친구라고? 정말일까?
그들뿐만 아니라, 우유도를 가로막은 사람들도 퍽 의외인 것 같았다. 그들은 서로를 돌아보기만 했다.
우유도는 그 침묵을 기회 삼아 계속 이어 말했다.
“각주님의 혼인이니, 마땅히 만나서 축하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저를 막으신 것이 각주님의 뜻인 겁니까? 만약 그렇다면 저도 할 말이 없으니, 이대로 돌아가겠습니다.”
우유도는 자신이 각주의 친구라고 한 이상, 이들이 독단으로 그를 쫓아내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그건 분명 설락아의 뜻이 아닐 것이다. 어느 여자가 시집가는 날에 그런 짓을 할까. 나쁜 손님도 아니고, 이런 날에는 설사 길을 지나는 거지에게도 따뜻한 밥 한 그릇 나누어 주기 마련이었다.
한마디로,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그건 빙설성지가 설락아의 혼인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과 같았다.
우유도를 막아선 사람들이 다시 한참 동안 의논하더니 선두에 선 사람이 말했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기별을 넣어 보겠소.”
동시에 그는 우유도에게 한쪽에 내려서기를 청했다. 우유도는 끄덕이고는 즉시 날짐승을 이끌고 한쪽에 내려섰다.
우유도의 앞을 막아선 사람들도 그곳에 내려서고는 그중에 한 사람만이 날짐승을 타고 기별을 넣기 위해 빙설성지로 돌아갔다.
눈바람이 휘날리는 가운데 우유도는 떠나가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빙설성지에 참석할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해서 사실 우유도는 확신이 없었다. 물론 우유도는 자신이 설락아의 친구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우유도는 지금 도박을 하고 있었다.
여인이 처음 시집을 가는 순간은, 바로 가장 행복할 때였다. 축하를 위해 온 손님이라면 그 사람이 악객(惡客)이 아닌 이상 아마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그는 확실히 설락아와 아는 사이였다.
아무튼, 우유도는 시도해 봐야 했다. 정말 안 된다면, 어쩔 수 없이 외각에서 상황을 살펴야 할 것이다.
진관과 가정걸은 이해할 수 없었다. 장로님이 갑자기 왜 이처럼 힘들게 축하하러 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설락아 같은 신분의 사람들에게 아무리 잘 보인다 한들, 그들이 자신들을 안중에 둘 리 없었다. 그러니 보답 받지 못할 호의와 애정을 보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다만 둘이 보기에 장로님은 그야말로 자신들이 가늠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무슨 결정을 내린다면, 분명 그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믿고, 도울 수밖에 없었다….
눈으로 뒤덮인 협곡 사이에 푸름이 가득한 곳이 있었다. 봄처럼 따뜻할 뿐만 아니라 마치 세외의 무릉도원 같은 곳이었다. 지금 그곳은 초롱과 오색천으로 가득 장식되어 있었다.
손님도 적지 않게 자리하고 있었다. 다만 이들 손님은 모두 보통사람이 아니었다. 수행계 각 문파의 장문인조차 여기 올 자격이 없었으니, 손님의 신분이 어떠할지 대략 알 수 있었다.
설락아는 비록 외딴곳에 있는 빙설각 각주이지만, 설파파의 유일한 손녀로서 빙설성지에 당연히 자신의 거처가 있었다.
지금 설락아의 거처는 출가하기 전의 규방이자, 혼인 후의 신혼방이 되어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천영과 설락아는 서로 어울리는 신분이 아니었다. 천영은 이곳에 아는 사람도, 아는 곳도 없었으니, 그 자신이 머무를 곳도 없었다. 그렇다고 혼인 후에 설락아를 성경 밖에 있는 진국 천지문으로 데려가 신혼방을 차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름답게 꾸며진 규방은 반짝반짝 빛나는 구슬로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그 빛은 장식에 사용한 칠색보주에서 나오는 빛이었다.
행복한 얼굴의 설락아는 귀찮아하지도, 힘들어하지도 않고, 계속해서 이 옷 저 옷 갈아입고 있었다. 그렇게 혹시라도 자신의 모습이 완벽하지 않을까 봐 거울에 대고 계속해서 비추어 보고 있었다.
옷을 입었을 때는 확인하기 어려웠지만, 옷을 벗었을 때는 볼록하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복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한쪽에서는 그녀가 옷을 입고 벗는 것을 시중드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곳에는 적성성의 성주 사환려도 자리하고 있었다. 그녀 또한 매우 흥분한 얼굴로 설락아가 입고 벗는 옷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말해주고 있었다.
“어때?”
양팔을 벌리며 새로운 옷을 보여주며 설락아가 물었다.
“예뻐, 정말 예뻐!”
사환려가 연신 끄덕이며 속으로도 정말 예쁘다고 감탄하고 있었다. 사환려의 두 눈에 자신도 모르게 부러움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
사환려는 설락아가 천영과 만난 후 사람이 완전히 바뀐 것을 발견했다. 예전에는 수시로 자신과 교류를 주고받았지만, 나중에는 천천히 만남이 뜸해졌다. 당연히 자신의 정인을 만나러 간 것이다.
그리고 눈앞의 이 순간은 사환려가 무수히 상상했던 모습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그녀의 신분으로 남자를 찾는 것이 쉬울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누가 그녀의 고충과 어려움을 알아줄까.
그녀는 대나성지에서 그녀의 혼사를 추진한 적이 있음을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부친 사여래가 거절한 것 같았다.
예쁘다는 말을 들은 설락아는 활짝 핀 꽃처럼 웃었다. 그런데도 만족하지 못했다. 아니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오늘은 그녀 평생의 유일한 날이었다. 아마 평생 이번 한 번뿐일 것이다. 그러니 설락아는 더욱 좋게, 더욱 완벽하게 하고 싶었다.
평소였다면, 그녀는 친구의 두 눈에 얼핏 보이는 슬픔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너무 기뻤다. 친한 친구의 감정을 미처 고려하지 못할 정도로 기뻤다.
다시 옷을 갈아입고 있을 때, 한 여자가 규방에 들어와 인사를 올리고 설락아에게 말했다.
“각주님, 성지 밖에서 한 사람이 와서 자신이 각주님의 친구라고 주장하며 축하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합니다. 지금 성지 밖에….”
아직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에 설락아의 얼굴이 굳어졌다. 순간 기분이 나빠진 것이다. 그녀가 돌아보며 말했다.
“축하를 위해 온 손님을 왜 막아서는 것이냐? 그런 식으로 손님을 접대하는 곳도 있다더냐?”
신부의 기분이 안 좋아지자, 방 안에서 재잘거리던 여자들의 목소리가 모두 조용해졌다.
여자가 다급히 변명했다.
“각주님,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자의 신분이 다소 특수합니다. 성경 밖의 사람으로 연국 삼대 문파 중 한 곳인 자금동의 장로인 우유도입니다. 밖을 지키는 수위들이 어찌 아무 사람이나 성지 안으로 들여보내겠습니까. 그들은 이 우유도가 정말 각주님의 친구인지 확인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유도?”
설락아가 멈칫했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우유도를 기억하고 있었다. 심지어 우유도의 명성을 생각하면 모를 수 없었다. 다만 우유도가 축하를 위해 자신을 찾아올 줄 생각지 못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