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1화. 분명 목적이 있을 것이다
백무애 뒤에는 사람들이 일렬로 서있었고, 그중에 한 사람이 나와 우유도를 안내하며 배웅했다.
우유도가 떠난 후, 백무애 곁에 있던 한 사람이 조용히 말을 걸었다.
“연락하라고 하신 것을 보니, 혹시 정말 우유도와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연락통로를 만드시려는 것입니까?”
“내가 우유도에게 연락하고자 한다면, 언제든지 할 수 있다. 그러니 연락통로를 만들 필요 있겠느냐?”
“알겠습니다. 예의상 하신 말씀이군요.”
“내가 예의상 한 말 같더냐?”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고 하니, 제자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다시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우유도가 소문과 달리 그렇게 오만해 보이지 않습니다. 아래서 우유도를 관찰한 자들이 보고한 것에 따르면, 누구를 만나든 정중하게 마치 손자라도 되는 것처럼 아주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했다고 합니다. 소문과 매우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어쩌면 여기가 성지다 보니, 감히 무례하게 굴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요.”
제자의 말은 마치, 저런 사람에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 것 같았다. 정말 예의상 한 말이 아니란 말인가?
“손자처럼 굴었다고? 너는 소문이 거짓이라고 생각하느냐?”
백무애가 그를 힐끗 바라보고는 담담히 말했다.
“여기가 어디냐? 내가 알기로 성경 안에 남아있는 문파 사람 중에 락아와 안면이 있는 사람이 우유도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이 감히 여기 왔더냐? 성경 내에 락아를 아는 사람이 또 얼마나 있더냐? 초대 없이 알아서 온 사람은 우유도뿐이다. 너는 저런 사람에게 배짱이 없다고 보는 것이냐?”
제자가 의아해하며 말했다.
“사부님은 저자가 거짓으로 저런단 말입니까?”
“거짓인지 진심인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이곳에 와서 자신을 낮출 수밖에 없는 것일 수도 있지. 여긴 저자가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걸 모르지 않겠지. 오면 안 된다는 것을 분명 알고 있으면서 이곳을 찾아와 수치를 자초하는 것을 보면…. 또 여기 찾아와서 저렇게 시치미 떼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 의도가 있을 것이야!”
제자가 묵묵히 끄덕였다.
“사부님이 보시기에 어떤 의도가 있다고 보십니까? 여기서 별다른 이상한 짓을 하지 않았고, 지금은 떠나고 있지 않습니까.”
“락아가 혼례를 올리기 전에 저자와 만나지 않았더냐?”
그 제자가 뭔가를 깨달은 듯 말했다.
“각주 부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온 것이 분명합니다.”
백무애가 미소지었다.
“그것 말고 무슨 이유가 있을까. 재밌는 놈이군. 문천성에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우유도를 살펴보라고 해라. 혹시 뭔가 이상을 발견하면 즉시 보고하라 전해라.”
“알겠습니다!”
제자가 대답했다. 그때, 다른 손님이 백무애에게 다가오자, 제자가 즉시 뒤로 물러났다.
백무애는 다시 손님과 대화를 나눴다.
작별을 고한 우유도는 우선 자신의 거처로 향했다. 그곳에서 새장을 회수한 우유도는 그대로 손님의 날짐승이 몰려있는 곳으로 가서 자신의 회우조를 돌려받았다. 우유도를 배웅하는 사람은 우유도와 같이 날짐승 위에 오른 후에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렇게 빙설성지의 영역을 벗어나, 직접 우유도가 떠나는 것을 확인한 후, 빙설성지의 사람은 우유도와 포권을 하고 작별 인사를 나눴다. 이후, 날짐승 위에서 날아올라 빙설성지로 돌아갔다.
반면 우유도는 그대로 혼자 날짐승을 몰아, 근처 빙천지대의 갈라진 틈 주위를 날아다녔다. 잠시 후, 진관과 가정걸이 그 안에서 뛰어나왔다.
날짐승이 미끄러지듯이 아래로 내려왔고, 두 사람을 태우고 다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우유도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두 사람은 크게 걱정하고 있었다. 빙설성지가 어떤 곳인가? 두 사람은 장로님이 너무 대담하다고 생각했다. 혼자서 그런 곳에 들어갈 생각을 하다니, 두 사람이었다면 아마 감히 접근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둘은 장로님이 이번에 왜 이곳을 방문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두 사람은 표묘각 사람까지 죽이는 장로님이 무슨 짓인들 하지 못할까 라고 이해했을 뿐이었다.
“장로님, 제가 조종하겠습니다.”
진관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날짐승을 조종하고 있던 우유도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럴 필요 없다. 너희는 쉬고 있어라.”
두 사람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우유도가 뭔가 생각에 잠긴 것을 발견하고는 가정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장로님, 빙설성지의 축하주는 무슨 맛이었습니까?”
“그저 그랬다. 우리 초려산장의 술보다 못하더구나.”
가정걸이 다시 물었다.
“계획하신 일은 순조로우셨습니까? 별일 없으셨지요? 장로님을 난처하게 하지는 않았습니까?”
“경사가 있는 날이었다. 나만 조용히 있으면, 날 난처하게 할 사람은 없다.”
“장로님, 지금 저희는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자신들이 향하는 방향을 확인한 진관이 문천성으로 돌아가는 길이 아님을 확인하고는 물었다.
가정걸이 빠르게 주위를 살피고, 또 하늘의 별자리를 확인했다. 그도 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방향은 문천성으로 돌아가는 길이 아니었다.
“어디로 가는지 다 알고 있다.”
그 말은 더는 묻지 말라는 것이다.
* * *
한 마리 적엽조가 누각 밖에 내려섰다. 왕존이 뛰어내려 난간 쪽에 있는 사여래에게 가서 말했다.
“선생님, 가시지요.”
우유도와 대우가 달랐다. 우유도는 빙설성지 내부에서 날짐승을 타고 다닐 수 없었다. 반면 왕존은 직접 적엽조를 타고 안으로 들어왔다. 사여래를 배려해 준 것이다.
“그 아이는 떠났는가?”
왕존은 누굴 말하는지 잘 알았다.
“날짐승을 가지러 갔을 때 알아보니, 이미 떠나셨다고 합니다.”
사여래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설락아까지 시집을 갔으니, 아마 예전처럼 같이 붙어 다니기도 힘들겠지. 이제 친구도 없어졌구나.”
그에 대해서 왕존은 할 말이 없었다. 곧 그는 말을 돌리며 말했다.
“연회 때 소인이 우유도를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사여래가 정신을 차리고 천천히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인가?”
“우유도가 선생님과 아가씨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소인은 혹시 우유도가 뭔가를 발견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사여래가 냉소 지으며 말했다.
“뭘 발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 봤자 나를 의심하는 것이겠지. 여러 가지 단서를 보면 나를 의심하는 건 아주 정상적인 일이지. 그렇다고 또 뭘 어쩌겠는가? 가세!”
그리고는 몸을 돌렸다. 왕존이 안에 들어가 지시를 내리자, 다른 수행원이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날짐승이 날개를 펴며 일어났고, 세 사람이 그 위로 뛰어올랐다. 날짐승이 끝없이 펼쳐진 밤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 * *
빙설성지의 가장 높은 봉우리 위,
달빛 아래 얼음들이 차가운 빛을 뿌려대고 있었다. 얼음들의 냉기가 눈으로 볼 수 있을 만큼 강하게 느껴졌기에, 보는 사람마저 서늘한 느낌을 주었다.
싸늘한 바람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설파파가 구부러진 몸으로 얼음 절벽 앞에 지팡이를 짚고 서 있었다. 올빼미 같은 두 눈으로 아래 수많은 등불이 걸려있는 협곡을 오시하고 있었다.
그녀 뒤에는 눈으로 뒤덮인 빙궁성전(氷宮聖殿)이 있었고, 백무애가 빙궁에서 걸어 나와 설파파 곁으로 다가오더니 공손하게 말했다.
“어머님, 잔치가 끝났습니다. 손님은 한 명도 남김없이 모두 떠났습니다.”
“음, 이렇게 북적거린 것도 참 오랜만이구나.”
말을 마친 설파파는 다시 침묵했다. 그녀 뒤, 한쪽에 서 있는 백무애는 뭔가 할 말이 있는지 우물쭈물했다.
옆에서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을 확인한 설파파가 먼저 나서서 물었다.
“할 말이 있느냐?”
백무애는 결국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머님, 락아가 천영에게 시집가는 것이 정말 옳은 선택인지요?”
설파파가 하하 웃으며 말했다.
“아직도 내가 락아를 네 제자에게 주지 않은 것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것이냐? 무애야, 나는 너희 형제자매가 서로 편을 가르는 것이 보기 좋지 않구나. 사람의 욕망이란 참으로 두려운 것이다. 나는 그걸 일찍이 경험했었지.
사람은 그토록 원하던 뭔가를 얻은 후에도, 항상 더 큰 것을 얻고 싶어 하지. 나는 너희들이 상처 입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구나. 너희는 다들 내가 직접 키운 아이들이다. 다 너희를 위한 것이다. 알겠느냐?”
백무애가 다급히 말했다.
“어머님, 그런 뜻이 아닙니다. 저는 단지…. 어째 천영에게 뭔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무슨 문제를 찾아냈느냐?”
“락아가 우연히 만난 남자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니, 너무 공교롭지 않습니까. 어머님, 문제가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비정상적인 일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문제가 있을 수 있지.”
백무애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어머님은 다 알고 계셨군요. 그런데 왜 설락아와 천영의 혼인을 허락하셨습니까?”
“그럼 어쩐단 말이냐? 그 계집이 죽느니 사느니 하며 기어이 혼인하겠다고 난리를 치지 않았느냐. 게다가 배까지 불러오고 있었다. 설마 내가 죽이기라도 해야 한단 말이냐?”
“최소한 말리셨어야지요.”
“진실이 밝혀지기 전에는 너와 나 모두 저 계집을 설득할 증거를 내놓을 수 없다. 만약 강제로 막아선다면, 저 계집은 평생 나를 증오하겠지. 아니 증오는 상관이 없다. 만약 저 애정 때문에 목이라도 매달아 배 속에 있는 아이까지 같이 죽어버린다면, 너희들은 나를 어찌 볼 것이냐? 너희는 내가 너무 박정하다고 생각하지 않겠느냐? 역시 내가 요괴라 무정하다고 생각하지 않겠느냐?”
“어머님, 말도 안 됩니다. 우리가 락아를 말리는 것도 모두 그 아이를 위해서입니다. 만약 정말 무슨 문제가 있다면, 나중에 후회해도 늦습니다. 거기다 사실 수많은 사람이 이 혼인을 반대했었습니다.”
설파파는 지팡이로 땅을 짚으며 천천히 뒤돌아 백무애를 바라보았다.
“설득할 수 없다면, 사실을 보여줄 수밖에 없지. 지금까지 참으로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통달한 한 가지 진리가 있다. 그것은 시간이 모든 것을 설명해 준다는 것이다. 문제를 찾을 수 없다면…. 어차피 천영 혼자로는 아무 짓도 할 수 없고, 그 혼자서는 감히 경거망동하지도 못할 것이다.
만약 정말 무슨 문제가 있다면, 배후에 있는 사람이 아주 세심하게 계획한 것일 터이니 우리가 문제를 찾을 수 있을 리 없다. 배후에 이 계획을 세운 사람이 이러는 것에는 분명 목적이 있을 것 아니냐?”
설파파는 백무애의 어깨에 있는 눈송이를 털어주며 말했다.
“문제를 찾을 수 없으니, 천영에게 계속 연기하라고 하자. 계속 연기를 시키지 않으면 뭘 하려고 하는지 어찌 알겠느냐? 계속 연기를 해야지만 꼬리를 내밀 것이고, 꼬리를 끄집어내지 않으면 또 진실을 어찌 알 수 있겠느냐. 알겠느냐?”
백무애는 깨달음을 얻은 듯 끄덕이더니 곧 침음하며 말했다.
“하지만 이러다가 마지막에 정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 밝혀진다면, 락아가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아!”
설파파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백무애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천천히 빙궁을 향해 걸어가던 설파파는 백무애를 등진 채, 늙은 목소리로 말했다.
“설득했다. 그랬지만 이미 정이라는 그물에 걸려들어 먹히질 않더구나! 다만 우리의 우려가 쓸데없는 것이길 빌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길은 그 스스로 고른 것이니, 무슨 맛일지 스스로 맛볼 수밖에 없겠지. 너희가 어렸을 때 얼마나 귀여웠느냐. 얼마나 말을 잘 들었느냐. 최소한 너희에게 뭔가를 하지 말라고 하면 너희도 어쩔 수 없이 그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지.”
“그런데 이제 다 컸다고, 다들 자기 생각을 가졌다. 또 다들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고, 다들 자신의 수법을 가지고 있게 되었지. 그러니 내가 너희들 모두를 어찌 설득하겠느냐?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 들어먹질 않으니, 그래놓고 결국에는 이 늙은이만 나쁜 사람이 되는구나. 나도 그저 설득할 뿐, 결국 어떤 길을 갈지는 너희가 알아서 결정하는 것이다!”
굽은 등의 노파가 빙궁 깊은 곳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백무애는 침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