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5화. 영애가 제 손에 있습니다
“어찌 된 일인가, 아직도 연락이 없는가?”
대나성지,
누각 안에 앉아있던 사여래는 왕존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벌떡 일어나 물었다.
왕존이 고개를 저었다.
“성경 출구 쪽 소식에 따르면, 지금까지 아가씨 일행이 지나간 적이 없다고 합니다.”
사여래는 뒷짐을 지고 다소 초조하게 방안을 왔다 갔다 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원래라면 이미 성경을 떠났어야 할 시간이네, 설사 예상치 못하게 성경 안에 머물러야 하는 일이 발생했다 하더라돈, 향명이 날 이렇게 걱정스럽게 두지 않았을 거야. 분명 따로 보고했을 것이네.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
왕존이 위로하며 말했다.
“선생님, 진정하십시오. 지금 아가씨를 건드릴 사람은 없습니다. 아가씨를 건드려 봤자 아무 의미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 봤자 선생님의 분노를 사는 것이 다겠지요. 아무 가치가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진정하십시오. 제가 나가서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그 아이가 갔을 만한 곳을 다 찾아가서 한번 알아보게. 어서 가보게.”
사여래가 손을 내저었다. 지금 사여래의 정신은 매우 불안했다. 문제가 생겼을 것임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왕존이 포권을 하고 물러갔다.
혼자 남은 사여래는 누각 안을 배회하며 왕존의 말을 곱씹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성경 안에서는 자신의 딸을 건드릴 사람이 없었다. 굳이 누군가를 꼽자면, 유일하게 가능성 있는 사람은 오히려 대나성지 내부에 있었다. 다른 세력들에게 딸아이는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하지만 정확한 소식과 쓸모있는 단서를 얻기 전까지, 이 모든 것은 그저 추측에 불과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사람을 동원했음에도 아무런 단서를 찾지 못했다. 이 때문에 지금 사여래는 더욱더 조급해하는 것이었다.
사여래는 그렇게 다른 곳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줄곧 그 일에 대해서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저녁에 되었을 때, 왕존이 돌아왔다. 사색에 잠겨있던 사여래가 번뜩 고개를 들고 물었다.
“소식이 있는가?”
왕존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하지만 곧 주위를 둘러본 왕존이 상대방에게 다가가 손에 든 은비녀를 건네며 말했다.
“우유도가 서신을 보내왔습니다.”
“서신?”
사여래는 의외라는 듯이 손에든 비녀를 살펴보았다.
“비녀 안에 서신이 있습니다. 이번 행동이 참으로 특이합니다. 예전에는 그냥 말을 전해달라고 했는데, 이번에는 서신을 보내다니 말입니다. 그것도 진정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에게 전하라고 했으니 선생님께 직접 보내는 서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비녀 안에 서신이 있다고? 사여래는 멈칫하더니 법력을 이용해 비녀 내부를 살펴보았다. 과연 비녀 안에 비어있는 공간이 있었다. 법력을 이용해 비녀를 갈라 그 안에 있는 종이를 꺼내 펼쳐 보았다. 과연 서신이 분명했다.
내용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서신의 내용을 확인한 사여래는 두 눈을 부릅떴다. 곧 그의 눈 안에 분노가 가득 차올랐으며, 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옆에 있던 왕존은 깜짝 놀랐다. 사여래가 이처럼 격한 감정 표현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왕존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무슨 일입니까?”
사여래는 들고 있던 서신을 그대로 왕존에게 건네주었다.
왕존이 빠르게 서신을 받아 내용을 확인해 보았다. 그 위에는 몇 글자 적혀 있지도 않았다.
‘영애가 제 손에 있습니다!’
간단한 내용이었고, 깔끔할 정도로 명확한 뜻이었다. 알 사람은 이것만 보고도 그 뜻을 알 수 있으리라. 마침 사환려의 행방을 찾고 있던 두 사람이 어찌 이 뜻을 모를 수가 있을까.
“이것이….”
왕존은 대경실색했다. 그는 사여래를 바라보며 말했다.
“불가능합니다.”
두 사람은 우유도가 성경에서 사환려를 납치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분노로 격해진 사여래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사람을 잡아먹을 것 같은 눈빛이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현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천천히 냉정함을 되찾은 사여래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이미 자신의 손에 그 아이가 있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불가능할 건 무엇인가?”
“적지 않은 고수들이 아가씨를 호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지금처럼 소리소문없이 납치하는 것은 우유도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아마 수많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누가 우유도를 도와 이런 짓을 하겠습니까?”
사여래가 분노해 소리쳤다.
“내게 물어보면, 난 누구에게 물어보란 말인가?”
왕존이 다급히 말했다.
“선생님, 진정하십시오. 우유도가 서신을 보내왔다는 것은 분명 의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건 아가씨도 안전할 것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사여래가 깊은숨을 들이쉬고 말했다.
“그놈이 왜 그런 치욕을 감수하면서까지 빙설성지에 왔나 했더니…. 자네, 당시 잔치 자리에서 우유도가 우리 부녀를 계속 관찰했다고 했던가? 얼마 전까지는 신경도 쓰지 않던 일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날 저녁에 우유도가 그 아이를 목표로 삼은 것이 분명하겠군.”
“우유도가 아가씨를 뭐하러 납치한단 말입니까?”
사여래의 두 눈에 싸늘한 한광이 스쳐 지나갔다. 그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와 만나려고 하는 것이네!”
“…….”
왕존이 멈칫했다. 생각해보면, 확실히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다고 이런 극단적인 수단을 사용하다니, 설마 선생님과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음을 모른단 말입니까?”
“우유도는 배후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확인하려고 이러는 것이네. 영원히 다른 사람에게 조종당하는 걸 원치 않는 것이지…. 연락하게, 만나봐야겠네.”
“다시 생각해 주십시오. 선생님!”
왕존이 대경실색하더니, 다급히 사여래의 결정을 막아서며 말했다.
“선생님, 우유도 혼자서는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리 없습니다. 분명 우유도를 돕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누구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어느 쪽 세력이 개입했는지 전혀 모릅니다. 어쩌면 저들은 우유도를 이용해 선생님을 끌어내려고 그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일단 선생님이 나서면, 그건 암중에 우유도를 도운 사람이 선생님이라는 것이 사실이 되는 것이고, 그 결과는 아주 끔찍할 것입니다! 선생님, 어쩌면 함정을 판 세력이 대나성지일 수도 있단 말입니다!”
사여래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럼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다시 사람을 보내 우유도와 의논하게 하겠습니다. 최대한 이번 일을 원만하게 해결해 보겠습니다.”
사여래가 분노한 목소리로 말했다.
“뭘 의논한단 말인가? 또 어떻게 의논한단 말인가? 지금 우유도가 환려를 납치했다는 말을 한마디라도 했는가? 뭘 가지고 환려를 언급한단 말인가? 일단 환려에 대해서 물어보면, 그걸로도 나라는 것이 증명되는 것이네. 소용없네! 우유도가 환려를 납치한 것을 보면, 이미 전부터 나를 의심하고 있었을 것이네.”
“지금 우유도는 단지 배후에 있는 사람이 나인지 확인하려는 것일 뿐이야. 우유도가 소리소문없이 사환려를 납치한 것을 보면, 어떠한 증거도 남기고 싶지 않다는 말과 같네. 만약 배후에 있는 사람이 내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거나, 나인 것을 알았음에도 내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우유도는 그 어떠한 약점도 남기지 않으려 할 것이야. 그는 아무도 모르게 환려를 이 세상에서 없애버릴 것이네. 만약 나와 상관이 없다면, 나는 무엇을 근거로 그 일을 추궁하겠는가?”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왕존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선생님, 만약 다른 성지에서 파놓은 함정이면 어찌합니까?”
“내가 나타나지 않으면, 환려는 죽은 목숨이네, 그러니 내가 무슨 결정을 내려야 할까? 이대로 환려가 죽는 것을 지켜보란 말인가?”
왕존은 이를 갈았다.
“개자식, 간덩이가 부었구나. 감히 아무런 법력도 없는 연약한 여자에게 손을 쓰다니, 언젠가는 본때를 보여줄 것입니다!”
흉악한 얼굴의 사여래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우유도에게 연락해, 만날 시간과 위치를 정하게!”
* * *
우유도는 답장을 받았다.
탁자에 앉아 서신을 확인한 우유도는 등받이에 기대앉으며 미소 띤 얼굴로 중얼거렸다.
“역시 맞았군.”
서신에서는 배후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밝히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방이 우유도와 만나는 것을 허락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추측할 수 있었다. 만약 자신의 서신에도 불구하고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면, 그건 상대방이 사여래가 아니라는 증거임이 분명했다. 다른 사람이 사환려의 생사를 신경 쓸 리 없었다. 겨우 사환려 하나 때문에 자신을 드러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유도가 이번에 큰 모험을 치른 대가가 결코 헛수고로 끝나지 않은 것이었다.
서신을 깔끔하게 없앤 우유도는 성경 지도를 꺼내 들고 한참을 고민했다. 곧 자리에서 일어난 우유도는 천천히 입구에 가서 방문을 열고 처마 밑에서 사람을 불렀다.
“여봐라.”
진관과 가정걸이 우유도의 부름을 듣고 달려왔다.
그 외에 처마 밑에서 앉아 두 마리 금시를 지키고 있는 곤림수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앉은뱅이 의자에 앉은 채, 넋이 나가 있었다. 그는 우유도의 부름을 듣고도 그저 뒤돌아볼 뿐이었다.
“가자, 문천성에 보고하고 준비해라. 나가서 주위를 한번 돌아보자.”
우유도가 걸으며 말하고는 진관과 가정걸을 데리고 떠나갔다.
처마 아래 앉아있는 곤림수는 다시 좌우를 둘러 보았다. 조용했다. 다시 홀로 외롭게 남게 된 것이다.
감찰 인원이 순찰을 돌겠다고 하니, 문천성은 저지할 이유가 없었다. 곧 우유도 일행은 날짐승을 타고 문천성을 떠났다.
세 사람은 문천성을 나와 주위를 돌며, 표묘각의 아무 거점이나 들려 대충 조사를 했다.
그렇게 하고 돌아가는 중, 하늘 위에서 우유도가 갑자기 앞으로 나와 날짐승의 지령을 달라고 했고, 날짐승을 조종하던 진관을 뒤로 물리고 직접 날짐승을 조종하기 시작했다.
뒤로 물러난 진관과 가정걸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아마도 또다시 버려지리라 추측했다.
역시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날짐승은 아래 있는 숲으로 향하더니 그 위에서 맴돌며 우유도가 담담히 말했다.
“아래에서 적당한 곳에 숨어있어라. 나중에 찾으러 오겠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대답하고 그대로 날짐승에서 뛰어내렸다.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한 마디 묻지도 않았다. 하도 많이 버려지다 보니, 익숙해진 것이다.
땅에 내려선 두 사람은 멀어지는 날짐승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또 어딜 가시려는 것일까?”
“하아!”
진관과 가정걸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세, 어디 숨어있을 곳을 찾아야지.”
* * *
마치 대지가 갈라진 것 같은 협곡,
회우조가 아래로 쏘아져 들어가 협곡 아래에 내려섰다.
여기가 두 사람이 만나기로 한 곳이었다. 우유도는 먼저 도착해 주위를 관찰하더니, 한쪽에 있는 큰 바위 위로 올라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고 좌선을 했다.
태양이 서쪽으로 넘어가며 하늘이 천천히 어두워졌다. 달이 뜨고, 하늘에 별들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협곡 안은 여전히 조용했고, 가끔 벌레 소리만이 들려왔다.
한차례 바람이 불어왔고, 우유도가 눈을 번쩍 뜨니, 눈 앞에 펼쳐진 어둠 속에 사람이 나타나 있었다. 그 사람은 검은 피풍을 걸치고 있었다. 우유도는 법안을 열어 상대방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검은 피풍을 뒤집어쓴 사람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고, 바위에 있는 우유도와 두 눈을 마주쳤다.
천천히 드러난 상대방의 용모는 우유도에게 익숙한 얼굴이었다. 바로 사여래였다.
우유도는 웃었다. 검을 들고는 바위 위에서 뛰어내려 포권을 하며 말했다.
“사 선생님, 과연 당신이었군요. 얼굴 한번 보기 참으로 어렵습니다. 덕분에 이런 하책까지 사용해야 했으니, 이해 부탁드립니다.”
그 순간, 사여래의 몸이 번개처럼 움직이며 앞으로 튀어나오더니 우유도의 앞섶을 틀어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