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5화. 우 장로, 요즘 뭐가 그리 바쁜가?
제벽상은 두려웠다. 곧 곁에서 탄식을 내뱉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홍개천이 옆에서 고개를 내밀고 유서를 확인하고 있었다. 제벽상이 이를 악물고 물었다.
“뭘 보시는 거요?”
홍개천이 문서를 보는 와중에 대답했다.
“나도 천하전장의 감찰이 아니겠소. 홍운법에게 문제가 생겼으니, 그의 유서를 나도 확인해 봐야 하지 않겠소?”
그리고는 팔짱을 끼고는 천천히 옆으로 비켜서더니 여장생에게 다가가 어찌해야 할지 물었다.
제벽상은 이를 갈았다. 두 눈에 증오가 가득했다. 자신이 눈앞에 있는 늙은 요괴에게 속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사실 얼마 전, 홍개천은 갑자기 천하전장 안에서 여기저기 대대적으로 조사를 진행하기 시작했었다. 제벽상은 그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다들 제비뽑기를 할 때 어째서 천하전장으로 오고 싶어 했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최대한 번거로운 문제를 줄이기 위해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 그러니 자신이 보기에 홍개천의 행동이 아주 비정상적이었다. 그건 스스로 문제를 만드는 행동이었다. 분명 무슨 이유가 있어 보였다. 제벽상은 당연히 참지 못하고 홍개천에게 물었다.
당시 홍개천은 우유도가 그에게 알려준 사실을 제벽상에게 들려주었다. 다만 거기에 성과가 없으면 머리가 잘릴 것이라는 둥, 살짝 과장을 더 했다.
듣고 보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제벽상 또한 매우 놀랐다. 어쩐지 갑자기 천하전장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다니더라니.
제벽상도 당연히 앉아서 죽을 수 없었다. 다만 제벽상 혼자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천녀교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마침 운이 좋았다. 천녀교의 손에는 홍운법에 대한 단서가 있었고, 그 즉시 제벽상을 도와 조사를 시작했다.
홍개천이 여전히 헛손질하고 있을 때, 제벽상은 후발선제의 기세로 이미 큰 성과를 거둔 것이다.
다만 그 사건이 이런 일을 일으킬 줄은 몰랐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은근히 드러난 배후를 생각하며 그녀는 너무나 두려웠다. 어쩌면 자신이 엄청난 인물을 건드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실상 홍개천은 확실히 그녀를 이용했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제벽상에게 조언을 할 리가 없었다. 홍개천은 자신을 돕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또 천하전장은 조사하기 힘들 정도로 폐쇄적이다 보니 어려움이 많았다.
천하전장에 와서 감찰한다면, 장부를 조사하는 것 외에 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장부를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눈만 어지러울 뿐, 아무 쓸모가 없었다. 사실상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면서, 쓸데없는 소란만 일으킬 수는 없지 않겠는가? 또 하필이면 사해의 힘은 칠국이 차지한 육지에서 별다른 세력이 없어 도움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천녀교는 달랐다. 그가 조금 과장해서 제벽상에게 위험성에 대해 경고한 것은, 천녀교의 세력을 이용해서 꽉 닫힌 천하전장의 뚜껑을 치워버리기 위해서였다.
다만 눈앞의 일을 보니, 문제가 조금 심각해진 것 같았다. 홍개천도 일이 이렇게까지 심각해질 줄은 몰랐다. 천하전장의 집행자가 자진했다. 그 배후에 있는 일이 사소한 일일 리가 없었다.
“홍개천!”
제벽상은 유서를 여장생에게 돌려준 후, 홍개천을 불러 따라오라고 눈짓했다.
홍개천은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여장생에게 포권을 하고는 그녀를 따라가며 물었다.
“무슨 일이오?”
제벽상이 그의 팔을 잡아 자신에게 끌어당기더니 이를 갈며 조용히 물었다.
“당신, 나를 속인 것이오?”
홍개천이 깜짝 놀라고는 말했다.
“내가 뭘 속였다는 말이오?”
“모르는 척하지 마시오. 홍운법 배후에 분명 다른 사람이 있어….”
제벽상은 주절주절 원망의 말을 쏟아내며 홍개천이 자신을 이용한 것이 의심된다고 말했다. 홍개천에게 만약 자신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너도 편히 지내지는 못할 것이라며 협박했다.
뭔 헛소리야. 네가 저지른 일이 나와 개뿔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야!
홍개천은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렸지만, 겉으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보시오, 제 장로. 지금 우리는 같은 처지에 있소. 호의를 보여도 모자랄 판에 왜 당신을 속인단 말이오? 게다가 난 지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오. 전에도 뭔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알아보려 했더니, 당신은 내게 자세히 알려주려 하지도 않았소.”
제벽상이 분노하며 소리쳤다.
“이런 일을 어찌 함부로 발설할 수 있단 말이오!”
“아, 좋아, 좋아. 그렇다고 합시다. 됐소?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여자는 정말 여자요. 뭘 그리 두려워하는 거요?”
“이런 일에 만약 배후가 있다면, 그 사람은 더욱더 당신을 건들지 못할 것이오. 누군가 당신을 건들면 그 사람의 혐의가 가장 커지는 것이지. 당신에게서 숨기도 바쁠 것이오. 그러니 걱정은 치워두시오.”
홍개천의 말을 들은 제벽상은 냉정함을 되찾았다. 생각해보니, 가히 틀린 말이 아니었다.
바로 이때, 세 마리 적엽조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그 위에서 몇몇 사람이 뛰어내렸다. 표묘각의 각주 정위가 도착한 것이다.
여장생이 빠르게 다가와 예를 올렸다. 둘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는 몰랐지만, 곧 여장생이 유서를 정위에게 건네는 것을 보니, 아마도 홍운법에 관해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았다.
정위의 안색이 눈에 띄게 변했다. 빠르게 핏물 속에 누워있는 시체에 다가가더니 한쪽 무릎을 꿇고 상처를 살펴보았다.
여장생은 곁에서 의심할 필요 없다며 입을 열었다.
“선생님, 사람들 앞에서 자진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보았으니, 틀림없습니다.”
늦어 버렸다! 정위가 천천히 일어나 냉소 지었다.
“자진! 정말로 좋은 시기에 자진했군. 이걸 누가 믿겠나? 자네가 믿겠나, 아니면 내가 믿겠나? 성존께서 믿으시겠나?”
여장생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확실히 자진이었습니다. 선생님, 무슨 문제가 있으십니까?”
그는 아직 정위가 왜 왔는지 모르고 있었다. 이 문제는 제벽상이 직접 성존에게 보고를 올렸고, 아직 소문이 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정위는 이곳에 오기 전에 회부에 이 사실을 알리지도 않았다.
“내가 이번에 온 것은 성존의 법지를 받들어 홍운법을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이제 와 더는 숨길 필요 없었다. 정위는 사실을 여장생에게 알려주었다.
“정말로 좋은 시기를 골라서 죽었구나. 깔끔하게 죽었어. 한 장의 유서로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고 그냥 죽어버리다니.”
정위의 이야기를 들은 여장생은 대경실색했다.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것이다. 이건 단지 죄를 뉘우치고 자진했다고, 그저 그런 일로 치부할 수 있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정위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간을 계산해보면, 성존께서는 이틀 전에 보고를 받았다. 소식이 다시 홍운법에게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필요하지. 아마도 나보다 아주 살짝 빨랐던 것 같다. 그 시간 동안 홍운법과 왕래가 있었던 사람들에 대해 모두 조사해라.
그 사이에 홍운법과 접촉한 소식의 행방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또 보고가 성경의 출구에서 전달되던 과정에서 그 보고에 접촉했을 가능성이 있는 모든 사람을 조사해라. 조금이라도 혐의가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놓쳐서는 안 된다. 끝까지 엄중히 조사해야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여장생이 포권을 하며 대답하고는 잠시 망설이더니 말했다.
“혹시 성지에서 소식을 받은 후에…. 그러니까 성지 쪽에서 누군가 정보를 누설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정위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성지 쪽을 어떻게 할지는 너와 내가 신경 써야 할 것이 아니다. 성존께서 알아서 하실 것이다.”
말을 마친 정위가 홍개천과 제벽상에게 다가가더니 그들 앞에 서서 싸늘한 눈으로 두 사람을 살펴보았다.
“각주님을 뵙습니다.”
두 사람이 공손하게 포권하며 인사를 건넸다. 정위는 그들과 쓸데없는 소리 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제벽상에게 물었다.
“홍운법의 여인들이 아직 천녀교에 붙잡혀 있는가?”
“아직 뭔가 바뀌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아마 아직 천녀교에 붙잡혀 있을 겁니다.”
“더 늦기 전에 그대는 지금 즉시 천녀교에 돌아가서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라. 표묘각의 사람들을 붙여줄 것이니 같이 돌아가서 그 여자들을 표묘각 인원에게 넘겨라. 천녀교 부근에 있는 표묘각의 사람들을 보내 협조하게 하겠다.”
제벽상이 즉시 포권을 하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정위는 뒤돌아 수하에게 명령을 내렸다.
“너는 직접 사람을 데리고 제 장로를 호위하도록 해라. 기억해라. 사람들을 인계받은 후, 그들의 안전에 특히 주의해야 한다. 그들은 모두 증인이다. 어쩌면 뭔가 다른 단서를 찾을 수도 있으니, 절대 문제가 생겨서는 안 된다.
너는 표묘각을 대표해서 천녀교의 도움을 요청할 수 있고, 선조치 후보고의 권한을 주겠다. 누구든지, 감히 간덩이가 부어 표묘각의 행사를 방해한다면, 그 자리에서 붙잡거나, 즉결처분하거라! 네게 생사대권을 줄 테니, 반드시 증인의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
“존명!”
수하가 명을 받들었다.
* * *
대나성지,
왕존이 움직이며 주위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그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한 곳으로 향했다.
방 안에 들어가니 사여래가 서탁 뒤에 앉아 뭔가를 읽고 있었다. 왕존이 다가가 인사를 올린 후, 품에서 조심스럽게 은비녀를 꺼내 두 손으로 건네며 조용히 말했다.
“서신입니다.”
사여래가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피고는 비녀를 받아 법력으로 서신을 꺼내 내용을 확인하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이놈이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사여래는 서신을 왕존에게도 보여주었다. 왕존도 내용을 확인한 후,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보고 천마성지의 내부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을 찾아 달라니. 그것도 오상의 움직임을 알 수 있고, 통제하고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을 요구하다니, 요구조건이 너무 어려운 것 아닙니까?”
사여래가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아직 확실하게 답을 해주지 못한다고 전하게. 우유도의 요구를 정리해서 적당한 사람이 있는지부터 알아보고 이야기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가서 처리하겠습니다.”
왕존이 대답하고는 물러갔다.
* * *
요호사,
우유도는 사여래가 보낸 답장을 받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황택사지에 가기 위해 장원을 나설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때, 일단의 사람들이 입구를 막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머지 일곱 문파의 사람들이 같이 우유도를 찾아온 것이다.
우유도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안으로 들어가 손님을 접대할 수밖에 없었다.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혈신전의 장로 매장홍이 말했다.
“우 장로, 소식을 들었는가?”
“천하전장의 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것이라면 방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바로 그 일이네. 성경이 우리에게 그 일을 통보한 의도가 무엇인지 알겠는가?”
“우리에게 통보하면서 제벽상의 성과를 치하했으니, 우리보고 그녀를 배우라는 격려가 아니겠습니까.”
천화교의 노요가 말했다.
“인제 보니, 성경의 뜻을 깨달은 사람이 우리만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군. 이 제벽상도 참으로 대단하군. 이토록 큰일을 파헤치다니.”
“혹시 그 일 때문에 저를 찾아오신 겁니까?”
태숙산해가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그저 좀 이상하고 궁금한 점이 있어, 우 장로에게 가르침을 받고자 이렇게 찾아왔네.”
우유도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가르침이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제 다 같은 편 아닙니까. 할 말이 있으시면 부담 없이 하십시오. 그리 예의 차릴 필요 없습니다.”
“그럼 그러겠네.”
태숙산해가 손에 든 찻잔을 내려놓고 물었다.
“우 장로, 요즘 뭐가 그리 바쁜가?”
우유도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뭐겠습니까. 그냥 그런 것이지요.”
태숙산해가 냉소 지으며 말했다.
“그냥 그런 것이 어떤 것인가? 내가 알기로, 자네는 마치 지금 여기서 별로 할 일이 없다는 것처럼, 그저 주위나 한가하게 돌아다니고 있다고 하던데? 반면에 우리는 여기서 자네 말을 듣고 문제를 일으키고 있고 말이야. 우리가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해서 말이네? 심지어 빙설성지의 혼례에도 참석했다지?”